124화 – 위에서 가장 강한 군대, 밑에서 가장 강한 도적(2)
“주변을 경계하라!”
“교위께서 명을 내리시기 전까지 사주경계를 놓치지 말고 대기한다!”
그렇게 곽태의 조롱과 더불어 일대에 공포와 파란을 낳은 백파적들의 메아리에 서원군들은 자신들을 잠식해 들어가는 공포 속에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으로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온전히 공포에 물들지 않은 그들은 별다른 상관의 명 없이도 알아서 정찰을 보내고 산맥을 따라 경계병을 세우는 등, 아직도 저들의 위협에 저항하며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쩌실 겁니까?”
“도망쳐야겠지요? 아니, 도망칠 겁니다.”
“.......”
“저들이 노리는 것은 나와 서원군입니다. 이미 군량은 얻었으니 그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명성과 갑주를 비롯한 부산물들이겠지요.”
그나마 정신이 돌아온 것일까? 아니면 백파적들의 위용에 짓눌려 그 비상한 머리로 재빨리 살기 위한 합리화를 정하는 것일까?
“중군 교위.”
“이보세요, 허 호위. 내가 무능합니까?”
“그건.......”
“나도 알았어! 나도 알았다는 말입니다! 처음 함정이 떨어졌을 때! 나도 전력으로 이를 돌파하면 되는 것을 알았어요! 어차피 저들이 토사를 떨어트리는 것보다 그 협곡을 통과하는 것이 더 빠르고 그래서 우리가 최소한의 피해로 이를 줄일 수 있다 확신을 했단 말입니다!”
그러나 순전히 몸이 반응하며 머릿속에 멋대로 내린 판단과 합리화와는 달리, 이 엄청난 함정을 준비한 백파적들은 가히 예상을 뛰어넘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암만 사람이 인위적으로 떨굴 수 있는 돌과 나무를 비롯한 자갈과 토사가 한정되어 있다고 한들, 그 함정을 끝도 없이 만들어 이를 동시다발적으로 끊어내 그 규모를 엄청나게 상향시켰고 그 덕에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엄청난 수의 이탈과 더불어 그에 걸맞은 피해를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그러나 이 와중에 현실을 똑바로 마주한다는 핑계로 그 불편한 진실을 자꾸만 파헤치며 그 속에서 자신이 건질 변명거리와 자신만의 합리화를 찾는 것 같은 풍방의 모습은 실로 알게 모를 안타까움과 그의 미모에 어울리지 않을 추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삼천 정도가 피해를 입었다고 한들, 실상 그들은 혼란 속에 무리를 벗어나 떨어져 나간 이들에 불과해요. 그들 모두가 떨어지는 돌과 나무에 깔려, 토사에 휩쓸려 죽은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다시 그 길을 거슬러 살아남은 이들을 흡수해 남하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요, 군량은 넘겨줬어도 이 서원군과 나를 저들에게 넘겨줄 순 없지요.”
터억-
“중군 교위.”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허저는 다시금 그리 안타까운 모습으로 발버둥을 치는 그를 붙잡았다.
“왜요? 또 그리 뭐가 마음에 안 듭니까? 나는 내 사위의 장인이에요! 이 나라 최강의 무장! 포홍의 장인입니다! 그리고! 그런 내가 이끄는 서원군 또한 이 나라 최강의 이들이에요! 허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존재를 살려야지요! 나와 이 서원군이 작금의 내 사위를, 내 사위의 강력함을 상징하니까! 그래야 내 사위의 강함이 유지가 될 테니까!”
“중군 교위.......”
실로, 작금의 이성을 잃은 풍방은 거진 스스로가 무너진 것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수 없어 세상의 본질조차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 그만 나를 찾으세요!”
“주공께선 서원군이 없어도 강하십니다.”
“........!”
그리고 그 불편한 진실의 본질을 밀어 넣은 허저의 묵직한 비수에 풍방의 눈빛이 흔들렸다.
“제가 없어도 강하셨고, 서원군이 없을 적에도 강하셨으며, 차마 입에 담기 송구한 말이 아닐 수 없사오나 장인께서 계시지 않으셔도 강하셨습니다.”
“뭐, 뭐라고요......, 어째서! 어째서 허 호위는 내게 그런 말을 합니까!”
“그게 사실입니다, 그게 진실입니다. 실상, 주공께 인정받은 저 또한 주공의 무위를 넘어서기는커녕, 그런 주공과의 대결에서 패하였습니다.”
“그건 허 호위가 못나 그런 것이지! 나는 아니야! 사위는 나를 붙들었다! 나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런 사위를 구제해준 것은 그건 나의 능력이야!”
그도 모자라 자신의 실수와 무능을 감추기 위해 작동한 방어기제가 굳이 애써 끌어오지 않아도 될 자신의 찬란한 과거를 가져와 그릇된 존재의 연유와 당위성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물론, 그 분야가 달라 그런 것도 있겠지요. 도성에서, 황궁에서, 조당에서 천하를 주무르는 이들을 상대하신 그 능력은 존경합니다. 허나, 전장은 다릅니다.”
“뭐라고......, 그러니까 지금 그대의 말은 내가 능력이 없다는 겁니까?”
“그건......”
“닥쳐! 닥치란 말입니다! 나는, 풍방입니다! 내 장인은 이나라 최고의 환관이자 중상시들의 하늘이셨던 조충 어른입니다! 그런 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 나라 제일의 환관의 사위가 되었겠습니까! 내가 그리 무능했다면 내가 어찌 그 어르신들을 대신해 서원군을 이끌 교위에 올랐겠습니까! 나의 무력은 준수하고 나의 지모는 뛰어납니다! 나의 통솔은 흔들림이 없고, 이는 지난날의 나의 과거가 말해줍니다!”
실로 찬란하고도 아름다운 나날들이었다.
가히 다른 이들은 꿈도 꿀 수 없는 과거였으며 그가 내린 선택과 판단 또한 가히 틀린 것이 없었다.
“내가 직접 저들의 난을 막았어요! 서원군을 집어삼키려는 저들의 난을 막았고, 내가 나의 의지로 건석을 방치했기에 저들이 건석을 사냥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 낙양의 하진을 서문에서 막아 세운 이가 납니다! 내가 그런 하진을 상대로 서문을 지휘해 시간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존재와 당위성을 증명했다.
이로 말미암아 작금의 자신이 오롯이 서 있었고 이는 그러한 자신의 과거로부터 기반된 결과물이었다.
“내가 아니었으면! 그때의 내가 사위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작금의 사위는 과연 존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까! 내가 그를 이끌었어요! 내가 그를 도왔습니다! 짐승이자 맹수라 알려진 그를 길들이고 그를 다독이며 그의 가족이 되어주었어요! 이 천하에 어느 누가 그렇게 합니다! 어느 미친놈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짐승을 그리 가까기에, 곁에 둡니까!”
허나 그 삐뚤어진 존재의 증명과 당위성은 정녕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야 말았다.
“교위, 선을 넘으시면 아니 되십니다.”
“아니, 선을 넘는 것은 허 호위야! 그대가 뭘 안다고, 가히 전장에서의 무력 외에 그대가 뭘 할 줄 아는 것이 있.......!”
콰아앙-
“주공께선 교위께 구제받아야 할 정도로 불쌍한 짐승이 아니시옵니다!”
순간 엄청난 힘으로 발을 구르며 분노를 토한 허저가 풍방의 앞에 이를 부정했다.
그리 발을 굴러 피어오른 흙먼지마저 날려버릴 만큼, 가히 공기를 찢어발길 듯한 엄청난 사자후에 놀란 풍방은 그 자리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얼음마냥 굳어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의 그 모든 것이 그런 것이었습니까?”
“허 호위.......”
“지금까지의 진심이, 가족이라, 사위라 부르고 대한 그것이 그저 고작해야 그따위 것이었습니까?”
“아, 아니야.....”
“그저 남들보다 선한 일을 한다고. 남들이 하지 않는 힘든 일을 한다고, 남이 거둬가지 않은 불쌍한 것을 거두었다고. 그 같잖은 선민의식이, 그저 투철한 봉사와 희생정신과 맞물려 남들이 하지 않은 무언가를 행함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자 내가 나보다 못한 아랫것을 도움으로 인해서 느끼는 그릇된 만족과 알량한 선의와 만족을 바라는 내재된 우월감의 표출이었습니까!”
“아니야아아아-!”
저벅-
그렇게 어느덧 죽일 듯한 눈빛으로 살기를 띤 허저가 풍방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오, 오지 마! 오지 말란 말이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고, 그 누구도 원치 않은 짐승을 떠맡았으니 그 일평생을 그리 언제 공격받을지 모를 짐승에 대한 위협을 감내하고 감수하면서도 얻어낼 것이 있으니 그리 좋은 사람의 행세를 한 것이었습니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남들의 앞에 과시하기 위해 본인도 통제하지 못할 것을 멋대로 가족이라 품고, 마치 아무렇지 않은 척,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척 그리 만인의 앞에 거짓된 연기를 보이신 것이었습니까?”
“네가, 뭘 알아!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
“그러고 보니 사위에 대한 집착이 심하셨습니다. 젊어서는 만인이 알아주는 조충의 사위셨고, 늙어서는 만인이 두려움에 떠는 포홍을 사위로 받아들이셨지요. 남들이 알아서 설설 기는 그 엄청난 후광을 병풍마냥 두른 채 만인의 앞에 인정을 받은 그런 삶을 작금의 중군 교위께선 살아오셨습니다.”
“나, 나는.......”
“그리 스스로 빛날 능력이 있었음에 언제고 스스로 풍방이란 두 이름으로 자리한 적이 계시옵니까? 늘 자신에게 기회가 오지 않는다! 늘 자신이 인정을 받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늘 자신을 조충의 사위임을 강조하시며 풍방을 사위로 두고 있음을 강조하셨던 본인이 아니시옵니까?”
“으아아아아아!”
“스스로가 스스로의 가치를 정의 내리지 못하며 자신의 본질조차 돌아볼 수 없습니까? 그리 곁에 자신의 가치를 드높일 무언가를 두지 않으면 세상의 앞에 당당할 수 없습니까?”
채앵-
“닥쳐라! 닥쳐!”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완전한 모습을 갖춘 풍방이었다.
그 누구도 부러워할 배경을 두고 그만한 능력을 보유한 풍방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리 완전하고 모든 것을 갖췄음에도 그 스스로의 작은 흠결과 안타까운 실수 하나를 인정하지 못해 그 모든 것을 부정하면서까지 굳이 추하디 추한 그 밑바닥의 한구석에 꽁꽁 감춰둔 본성을 드러낸 그는 어느덧 주변에 자리한 서원군들조차 꺼려할 불편한 모습을 지닌 추악한 괴물로 변해있었다.
“네놈이 뭘 안다고, 네놈이 뭘 안다고!”
“아니면 보여주십시오. 그리 스스로에 대해 증명을 할 수 있다면,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는 본인의 실력으로 입증시켜 주십시오.”
“아니, 그러려면 네놈부터 모범을 보여야지.”
그리고 역시나 그런 허저의 앞에 칼끝을 겨눈 풍방은 이내 주변에 자리한 이들이 놀라 동요할 만한 명을 내렸다.
“일천을 내어주마, 저것들을 상대로 쫓기는 우리의 후미를 책임져라.”
“주, 중군 교위!”
“닥쳐! 저놈이 나를 모독하고 모욕했다! 존재의 증명을 운운했으니 나의 유능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그래! 내가 능력을 보여주겠다! 허나, 작금과 같이 저들에게 포위되어 쫓길 것이 빤한 상황에 저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능력 운운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아니, 그러하더냐?”
그렇게 놀란 허정이 이를 말리려는 것조차 거부한 풍방은 주변을 노려보며 허저를 압박했다.
“좋습니다.”
“아우야!”
“괜찮습니다, 형님. 차라리 이게 났습니다.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흥, 낙양성 서문의 성벽 위에 피를 뿌리던 그때가 생각나는구나. 오냐, 네놈도 잘난 놈이니 그 정도 자부심은 있다는 것이겠지. 허나, 네놈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는 강하다.”
“그 증명 달게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허저와 풍방이 헤어졌다.
맑디맑은 하늘 그 아래, 드높은 산세와 더불어 그 아래 비좁게 자리한 협곡의 땅 위로 두 발을 딛고 올라선 허저는 그리 당당히 그보다 더한 사람의 밑바닥을 마주하고도 흔들림이 없는 뒷모습으로 일천에 달하는 서원군과 함께 후방에 남았다.
그리고.
두두두두-
“지금 당장 이동한다! 남쪽으로 남하하며 흩어진 전력을 회복한다!”
분노와 살기 그리고 열등감에 취한 풍방이 또다시 엄청난 속도로 협곡을 따라 남하하기 시작했다.
“주, 중군 교위!”
“살아남은 이들을 모조리 합류시켜라! 최대한의 전력을 챙겨 밑으로 남하한다!”
그렇게 다시금 산등성이에 자리한 모퉁이를 돌며 사람과 말 그리고 피와 모래 등으로 얼룩진 처참한 현장 속에 살아남는 생존자의 이들을 하나둘 합류시키며 본래의 규모를 되찾아가는 풍방이었다.
어느덧 육천 언저리였던 그들의 규모는 이내 부상병들까지 합류하며 가히 팔천에 가깝게 늘어있었고 그리 회복된 전력은 어느덧 주린 배와 쓰라린 고통을 비롯해 더불어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속력이 나지 않는구나.”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거기다 제대로 끼니도 때우지 못해 배를 주리는 이들이 태반입니다.”
“이 근방에 고을이 있더냐?”
“실상 하동에 속하긴 하지만 평양현과 양릉현이 있긴 합니다.”
“협곡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지요.”
“허면 그 근방의 고을부터 털어야겠다.”
“예?”
“왜? 이제와 인근을 약탈하라 하는 게 이상하더냐?”
“아, 아니 그것이 아니옵고.......”
“이 협곡의 안에 자리하고 있으면 좋든 싫든 저 백파적들의 영향권 아래 있는 마을이 아니겠더냐? 애초에 그런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곳에 고을들이 살아남았을 수 있겠느냐?”
“하, 하오나 중군 교위! 이는 자칫......”
“이는 엄벌이며 징치다! 감히 국법을 어기고 삿된 도적들에 협력하여 이 나라를 대표하는 군대에 대한 폐해를 끼친 도적에게 수그리며 그들에게 힘을 보탠 그릇된 이들에 대한 정당한 보복이야!”
이미 반쯤 이성을 잃은 풍방과 이를 말리려는 허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곧게 자라지 못하고 비틀린 이의 삐뚤어진 재능은 가히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송곳처럼 자라나 그 능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주린 배를 채우고 약재를 털어 상처를 치료한다, 저 빌어먹을 것들에게 엄벌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저 더러운 사례의 이들이 다스리는 하동 땅의 민심을 이반시키겠다. 도적이 되어 아예 하동 전역을 백파적의 이름으로 불살라버리겠다. 아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주마.”
그렇게 위로 북상하던 이 나라에 가장 강한 군대는 양현의 아래에 자리한 평양현과 양릉현을 기점으로 가히 이 나라에 둘도 없을 백파적에 비견될 도적으로 돌변했다.
두두두두-
“쳐라! 백파적에게 순응하고 복종하며 그들에게 곡식과 인력을 내어주며 그들에게 협조하는 저것들을 모조리 죽여라!”
“꺄아아악!”
서걱-
“누이!”
“도적에게 협조하는 것들이 가족애는 끈끈하구나!”
“이놈들! 이 천벌을 받을 놈들! 우리가 뭘 했다고! 그저 살려고 발버둥 친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래? 미안하구나. 한데 이는 나 또한 마찬가지야.”
뎅겅-
“나도 네놈과 같다. 살려고, 그리 살려고 내가 나를 증명해야 함이야.”
그렇게 눈앞에 제 누이를 잃은 사내의 목을 날려버린 풍방과 더불어 온전히 고을을 덮친 서원군들은 아이 하나, 노인 하나 남겨두지 않고 그 고을에 자리한 이들을 모조리 학살하기 시작했다.
마치 예상치 못한 함정과 더불어 백파적에게 당한 울분을 토해내기라도 하듯, 처음엔 살육을 머뭇거리던 이들 또한 사방에서 말을 달리며 활을 쏘고 칼을 내지르며 죽은 동료들에 대한 원한과 더불어 백파적으로 인해 더럽혀진 기억을 그보다 더한 피로 씻어내고 있었다.
덜컹-
“중군 교위! 여기 약재가 있습니다!”
“부상자들을 옮기고 치료해라. 남은 이들은 이들의 식량으로 주린 배를 채운 뒤, 고을을 불사른다.”
“옛!”
어차피 그 부상이 심한 이들은 살 가망이 없기에 애초에 협곡 안쪽에서부터 거동이 가능한 이들만을 무리에 합류시킨 풍방이었다.
그렇게 가벼운 응급처지와 밥 짓는 연기 그리고 고기가 익는 냄새와 더불어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서원군들은 이내 일말의 아쉬움도 없다는 듯 그 자리에서 불을 질러 인근의 모든 고을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허나, 이것은 도리어 백파적들에게 그 위치를 노출 시키는 꼴이 되었으니 졸지에 바람이 불지 않은 인근의 수목이 흔들리며 산세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풍방은 이내 이를 굳게 다물며 다시금 백파적들과의 충돌을 각오했다.
부우우우-
“전군! 전투 준비!”
비좁은 협곡을 울리는 서원군의 장대한 뿔나팔 소리는 가히 이전과는 달리 자신감을 회복한 모습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산자락을 따라 내려와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백파적의 이들은 그러한 서원군의 위용에도 겁을 먹지 않는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건 도적이 아니지 않더냐!”
척척척-
작금의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마주한 풍방은 가히 절규에 가까울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갑주를 걸친 채, 기다란 극을 앞세워 방진을 짜고 그 뒤로는 방패를 든 병사들과 더불어 궁수들까지 갖춘 채, 이쪽과의 충돌을 막아설 대형을 짜고 있는 저들의 모습에 놀란 풍방은 가히 작금의 자신들이 상대하는 이들의 본질이 다시금 도적이되 도적을 넘어선 이들임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다각- 다각-
“그러니까 대두령의 외침을 통해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소? 그대들은 이곳을 벗어날 수 없소.”
그리고 그러한 이들을 제치며 한 사내가 풍방을 비롯한 서원군의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절그럭-
말에 오른 것도 모자라 부족하나마 장수와 같은 모양새로 갑주를 걸치고 그 어깨에 자루가 긴 도끼를 걸친 그는 절로 풍방을 비롯한 이들의 시선을 받았다.
“네놈이 이들을 이끄는 두령인 모양이로구나.”
“두령은 아니고 그 밑에 자리한 종사요.”
“종사? 도적에 불과한 네놈들이 감히 이 나라의 군적과 벼슬을 따라 하느냐!”
부웅-
“뭐라 비난하셔도 좋소. 허나 여기까지 온 이상 그대들은 돌아갈 수 없으니 이것이 마지막이요.”
흔들림이 없는 모습과 장대한 체구, 그리고 그에 비견된 묵직한 사내다움을 드러낸 그는 이내 공기를 가르며 자신의 묵직한 도끼를 풍방을 향해 드리웠다.
“무례한 놈, 이름이 뭐냐?”
“서 공명이오.”
“서 공명, 네놈은 여기서 죽는다.”
“것 참, 어쩔 수 없는 분이시로군. 이거 진짜로 죽일 수밖에 없겠소.”
“뭣들 하느냐! 쳐라! 저들을 뚫고 하동으로 나간다!”
“우리도 나선다! 아직도 주제를 모르고 오만에 젖어든 이들에게 현실을 알려주어라!”
와아아아아-
그렇게 위에서 내려와 도적의 행세를 하게 된 이 나라 최강의 군대와 밑에서 올라와 군대의 모습을 표방하고 있는 이 나라 최강의 도적이 맞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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