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 장연이 쏘아 올린 흑산적이란 이름의 공
총 12만에 달하는 자신의 전력을 소위 하내에 꼬라박은 장연의 일로 말미암아 사례를 비롯한 온 천하의 이들은 이를 두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암만 사례가 어쩌고 천하가 어쩌고 해봤자 제일 중요한 것은 그들과 같은 입장에 놓인 이들이며 그들과 같은 소속에 자리한 또 다른 흑산적의 이들이었으니, 이러한 장연의 습격으로 불만을 품은 이들은 하나둘 장우각을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콰앙-
“뭐야?”
“대두령 어디 있어?”
“뭐?”
“장병종사. 우리 장우각 대두령 어디 있냐고, 새끼야!”
퍼억-
“끄흑!”
“내가 씨발, 어? 장연, 그 새끼 지금 혼자 재미 보는 것 때문에......, 후우. 아니다, 이건 네놈들이 아니라 대두령에게 따져 물어야지.”
그렇게 장우각의 산채의 앞을 지키던 병사들은 거진 산채의 문을 발로 걷어차는 것도 모자라 그 앞에 보초를 때려눕히며 산채 안으로 들어서는 이들의 향연은 거진 반나절에 가까울 정도로 지속되었다.
그렇게 매양 실려 나가는 보초들이 한둘이 아니며 그리 산채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의 숫자 또한 점점 예상치 못한 숫자로 불어나고 있었다.
특히나 그들 중엔 이미 흑산적 내에서 인정을 받은 반독립적 성향을 띤 두령들과 채주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거진 많게는 수백에서 수천에 달하는 수하를 두고 있는 이들이었고, 당연히 이를 맞아들이는 장우각 또한 그러한 이들의 등장에 알게 모르게 신경이 곤두선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아, 이 빌어먹을 제비 새끼......”
그렇게 거대한 화로를 좌우로 두고 타닥이는 불덩이 사이에 그럴듯한 상좌를 가져다 놓은 채 손님을 맞이한 장우각은 이내 자신의 앞에 도열한 근 일백에 가까울 두령들의 앞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친 장연을 씹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 장연을 씹어댄다고 한들, 어디 눈앞에 자리한 이들의 불만이 가시랴?
결국 그리 모여든 이들의 선두에 자리하던 한 인영이 제 뒤에 자리한 이들을 대신해 장연의 앞으로 나왔다.
“저희가 할까요? 아니면 두령께서 하시겠습니까?”
“.......”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저희가 합니까? 아니면 두령께서 하시겠습니까?”
무례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었으나 장우각은 그런 그의 앞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저 말인즉, 자신들 또한 장연과 같이 하내를 털어먹겠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장연이 이미 하내의 절반이나 다름없는 동쪽을 털고 있는 만큼, 결국 이들의 목표는 아직 장연의 손길이 닿지 않는 하내의 서쪽을 털겠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작금의 장우각 자신이 저들의 앞에 이를 허락할 수 없는 연유였다.
좋든 싫든 사례의 조당과 나름 좋은 관계를 텄고 그 덕에 평난중랑장이라는 벼슬자리와 더불어 병주의 협력과 지원을 얻어냈다.
암만 도적들의 수가 많다고 한들, 산지고 평지고 가릴 것 없이 활약하는 병주의 기병들과 동탁만 못해도 일대를 평정한 뛰어난 군웅이자 장수인 정원과의 충돌도 피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거기다 그리 얻어낸 벼슬자리가 주는 이득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평난중랑장이라 그리 받아낸 자리 덕에 흑산적들의 존재는 장우각이라는 관헌이 이끄는 사병이자 수하들이 되어버렸고, 이는 그에 대한 인정과 더불어 더는 이 나라의 드높은 이들조차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이 나라의 관료들 또한 더는 도적을 운운하며 이쪽을 토벌할 수 없었다.
소위 어지간한 명분을 가지고서도 이제 그 어떠한 천하의 군벌들과 관료들조차 장우각, 자신을 비롯한 흑산적들을 건드리거나 공격할 수 없으니 이는 놀랍게도 작금의 자신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주는 일종의 보증이자 계약과도 같았다.
허나 도적의 이들에게 이러한 생존권을 보장받는다는 일이 얼마나 귀하고도 감사하며 어려운 일인지 모르는 눈앞의 머저리들은, 그러한 역학관계와 상호작용도 생각할 줄 모르며 심지어 작금의 온 나라가 미쳐 돌아가는 천하정세도 외면한 채 멋대로 눈앞에 자리한 당장의 이득만을 좇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머저리들 중에 작금의 자신을 미치게 만든 가장 큰 머저리가 바로 이러한 사단을 낸 장연이었다.
“대두령! 지금 내가 묻고 있지 않소! 대두령이 털 거요! 아니면 우리한테 넘길 거요!”
“병신들.”
그래서였을까?
“뭐, 뭐요! 아니, 그 무슨 무례한.....!”
“하내를 침공한 장연 놈이 재미를 본다고?”
“당연한 소리! 그놈이 지금 얼마나 많은 것을 뜯어오고 있는데 이미 태행산맥 인근에 소문 다 난 것을, 어찌 대두령만 모르는 척을 하려고 하시오!”
“야, 너는 네가 가진 전력을 꼬라박는 게 그게 재미냐?”
“그게 무슨.......”
“세상에 우리의 존재를 노출시켜서 지난 황건적의 난 이래, 더할 나위 없이 그에 딱 들어맞을 이 세상을 뒤흔들 천하의 악적이라 우리의 정체를 까발리는 것이 그게 재미냐?”
도적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에 지금까지의 자신이 발버둥 친 모든 것.
그 도적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지금까지의 자신이 이루어낸 모든 것.
그 모든 것이 담긴 공든 탑을 일거에 무너트리는 장연을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장우각이었다.
“거 무슨 알아듣지 못할 소리요! 그래봤자, 되도 않는 헛소리로 우리를 또 속이려 들 것이 빤한데, 결국 대두령은 이에 끝까지 반대하시겠다? 뭐 이거요!”
“이래서 머리가 떨어지는 것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 뭐, 이리된 거 더는 어찌할 수 없겠지.”
그렇게 장우각은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해 다시금 새로이 그 마음을 다잡았다.
“장병종사! 정녕 오늘 피를 봐야겠는가! 만일, 오늘에서도 이를 반대할 시에는 이 자리에선 우리 모두가......”
“좋다.”
“지금 뭐라고?”
“좋다고 하지 않았느냐? 왜? 이제는 그 귓구녕까지 탐욕에 절은 돼지마냥 살이 차서 사람 말도 못 알아 처먹는 게냐?”
도리어 씩씩거리며 그런 그의 앞에 몰려든 모두가 어이가 없어 황당하다는 표정을 만큼, 아주 시원스레 이를 허락해주었다.
“아, 아니......”
“그러나 개나 소나 저 정신 나간 장연마냥 모조리 전력을 이끌고 나간다고 한들, 홀로 약탈을 벌이는 것이 아닌 모두가 함께 움직이는 것이기에 필경 서쪽에 가까운 이들이 유리할 것은 물론, 약탈품을 가지고도 분란과 분쟁이 일어날 확률이 있음이야. 그리고 오랜만에 약탈인데 기왕이면 모두가 골고루 가져가는 그림이 좋지 않겠더냐?”
“그, 그건 그렇소만.....”
“거기다 아닌 말로 모두가 자리를 비우면 기주나 다른 곳에 자리한 관병들이 움직일 수도 있다. 장연 놈이 워낙에 크게 사고를 쳤으니, 도리어 기주와 유주의 이들은 자신을 감싼 산맥 속에 자리한 떨거지들이 제법 많이들 하내로 빠져나갔다 여기겠지.”
“설마? 우리가 빠진 뒤를......”
“그리되면, 그땐 정녕......”
“그래, 허니 막상 그때가서 관병들에게 제 산채를 털리고 내게 와서 하소연하는 이들은 없기를 바라마. 네놈들이 먼저 내 명을 어겼으니 나도 네놈들을 굳이 도울 필요는 없지 않겠더냐?”
그렇게 졸지에 일백에 가까울 두령들을 또다시 유려한 말솜씨로 다스리며 꼬드기는 장우각이었다.
“해서, 이제와 그 말을 번복할 수도 없는 마당에 대두령은 어쩌자는 것이요?”
“호오? 이제와 아쉬운 것이 있으니 내 말을 듣겠다는 게냐?”
“크흠! 대신 우리가 약탈한 것에 일부는 내 반드시 상납하리다.”
“그래? 허면 다른 이들도 그렇고?”
어차피 벌어진 일, 더는 돌이킬 수 없는 그 상황 속에 새로운 이득을 발견하고 눈을 빛내며 자신을 적대한 이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며 그들을 압박하는 장우각이었다.
“허흠!”
“어흠! 흠!”
“이 의리도 충의도 없는 도적 나부랭이 새끼들이, 역시 힘든 게 뭔지 알려줘야, 그제야 내게 매달리며 아쉬운 소리를 하는구나.”
그렇게 만국 공통의 암묵적 동의와 다름없는 헛기침을 연달아 지켜보며 미소를 지은 그는 아주 기본적이고 단순한 대책을 이들에게 선사해주었다.
“딱 절반씩만 남겨라. 절반만 남겨도 이 자리에 모여든 이들의 수가 있으니 그 규모가 얼마나 될지 가히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이지 않더냐?”
이에 조금 전만해도 웅성이던 분위기가 다시금 차분히 가라앉았다.
짝-
“자, 이제 볼일 끝났으면 다들 알아서 잘 해보도록. 부디 좋은 약탈이 되기를, 그 시간이 일생일대에 잊혀지지 않을 시간이 되기를 바라지.”
두 손뼉을 마주한 채 소리를 내어 자리가 끝났음을 알리는 것은 물론, 이미 모든 것을 털어내어 더는 아쉬울 것이 없다는 듯한 표정의 장우각은 이제 대놓고 이들의 앞에 축객령을 내렸다.
“약탈한다며? 안 갈 건가? 아니면 뭐 더 볼일이 남았나?”
그렇게 뻔뻔한 얼굴로 자신들을 쫓아내는 장우각으로 말미암아 그리 바라는 것을 얻게 된 이들은 다소 얼떨떨한 모습으로 밖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예상과는 달리 너무 순조롭게 일이 풀렸고, 그 와중에 본의 아니게 그에게 의존하며 다시금 그의 도움을 받아 예상치 못했던 위험요인을 제거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알게 모를 양심의 가책과 일이 제대로 돌아갔음에도 자신들이 주체적으로 뭘 하기는커녕 또다시 장우각의 의중대로 따라가게 된 현실에 이들은 묘한 괴리감과 이질감을 느낀 이들은 하나같이 불편한 표정으로 그가 자리한 산채를 떠나갔다.
이제 더는 돌이킬 수 없고, 다시금 주워 담을 수 없는 그 일에 몸담은 이들이 그리 자신들의 병력을 움직여 하내의 서쪽을 들이칠 것이다.
* * *
“후우.”
그리고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며 안도할 수 있게 되는 장우각이었다.
저벅저벅-
“잘하셨습니다. 기왕지사 장연의 일로 모든 것이 틀어진 이상, 지금까지의 대우는 찰나의 꿈이라 생각하시지요.”
“누군가 했더니, 우리 흑산적 제일의 현자이신 곽대현 공이 아니신가?”
물론, 예상치 못한 수하의 방문이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는 셈이니 도리어 그를 반긴 장우각은 벽에 걸린 가죽 부대 중 하나를 들어 이를 스스럼없이 곽대현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런 장우각에게서 술이 든 가죽 부대를 받은 그는 이내 그 앞에 박힌 마개를 열고 입을 벌린 채, 입 안으로 짐승의 가죽 냄새로 얼룩진 꾸덕한 술을 들이부었다.
“크흐-, 제법.”
“독한 것이 맛이 좋지? 비싼 명주일세, 아마 작금엔 그만한 것을 구하기도 힘들 게야.”
“독한 건 맞으나 정확히는 구린 냄새만 나는 것이 암만 명주라도 가죽 부대에 담긴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그를 대하려 했건만, 정작 그러한 장우각의 호의를 받아든 곽대현은 꽤나 뼈가 있는 말을 그의 앞에 내어놓고 있었다.
“나를 원망하는가?”
“거듭 말씀드리는 바이지만, 저는 대두령께 잘했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허면?”
“대두령께서도 마찬가집니다. 본 것이 있고, 들은 것이 있으며, 생각한 것이 있으니 저들처럼 선택을 해야지요. 이는 구린 냄새가 나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작금의 곽대현은 자신을, 흑산적의 수장으로서의 장우각의 결단을 그리 옹호해주고 있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더는 어찌할 수 없으니, 믿지 못할 놈들이 그리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것을 굳이 막을 연유 또한 없었다.
“아, 그게 바로 남들의 위에 선 자의 올바른 자세이자 숙명일세. 다스리는 자는, 실로 그러해야 함이야. 우리 모두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서라도 말이지.”
그렇게 말을 듣지 않는 이들이 알아서 사지로 떠나가면, 남아있는 절반의 전력과 더불어 그들의 영역을 집어삼킬 계획을 세운 장우각은 이 모든 것이 다 흑산적을 위한 결단임을 강조했다.
“청우각, 유석, 좌자장팔, 황룡을 비롯해 좌교, 이대목, 우저근, 장뇌공, 오록 등의 이들이 제법 심심해하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이에 장단을 맞춘 곽대현은 이미 장우각의 밑에 자리한 수하들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그들을 동원해 단숨에 하내의 서쪽으로 빠지는 이들의 영역을 집어삼킬 것을 은근한 자세로 권하고 있었다.
“크흐흐흐, 막상 장연 놈이 제 전력을 꼬라박은 것을 비웃으며 조롱하던 내가 그놈과 똑같은 것을 노리고 똑같은 판단을 내렸군.”
어느새 자신 또한 그 머저리와 다를 바 없게 된 것을 깨달은 장우각의 자조적인 웃음은 이미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으며,
“허면 미리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곧바로 이해한 곽대현은 고개를 숙이며 계획한 일을 도맡기 위해 자리를 비우려 했다.
저벅-
“사례에는 뭐라 설명해야 할까?”
“........”
“황보숭의 뒤를 이었다던 그놈이 과연, 정녕 나를 이해해주기는 할까?”
탁-
허나 그리 돌아간 그의 걸음을 붙잡는 것은 때아닌 장우각의 걱정이었다.
그래, 사례와의 연결점.
그것이야말로 지금까지의 장우각을 이 자리에 있게 한 근간이자 계기임을 알기에 그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그에 대한 답을 못한 곽대현은 이내 다시금 몸을 돌려 걱정을 떨치지 못하는 장우각의 앞에 거짓이 없는 진실만을 담았다.
“솔직한 말로 힘들겠지요.”
“그렇겠지?”
“허나 지금까지 저희는 황보숭도, 그 뒤를 이었다던 황보력도 아닌 다른 이와 지금까지의 협력을 이어왔습니다.”
“그 또한 그렇지.”
그리고 그 진심은 이내 곧 자신들의 앞에 그 어떠한 진심도 드러내 보인 적이 없는 아주 께름칙한 한 사내를 떠올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가 문화,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한 사람과의 끈만 놓지 않으면 됩니다.”
“.........”
어느덧 그 누구보다도 기억하기 싫은 그가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 장우각이었다.
* * *
그리고 그런 장우각의 궁금증도 해소해 줄 겸, 황보력에 대한 위협에서 벗어나기도 할 겸,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수습과 더불어 일찍이 포홍의 세를 줄여놓기도 할 겸, 이만에 달하는 병력을 이끌고 있는 가후는 한창 훈련에 매진하는 와중이었다.
두두두두-
“선회하라!”
사방에서 흙먼지가 피어나고 말을 달리는 이들이 그 방향을 틀어 날카로운 돌파와 회전을 보일 때마다 이를 다듬은 그는 여전한 부족함을 느끼며 이를 채워줄 이들의 다른 훈련 또한 그 자리에서 함께 병행하고 있었다.
척척척-
“오와 열을 맞춰서 움직여라! 진이 무너지고 서로 간의 간격이 흐트러지고 있지 않더냐!”
“낭중령! 낭중령!”
그렇게 기병과 보병의 연수 혹은 분리에 관한 움직임의 성과를 확인하며 이를 확인하던 가후는 문득, 자신을 찾는 전령의 외침에 고개를 돌려 그가 달려오는 방향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흐음, 동쪽인가?”
“허억, 급....., 급보이옵니다! 새로이 9만에 달하는 병력을 이끌고 밀고 들어온 장연이 사견성과 산양성을 포위한 채, 교전을 벌이고 있다 하옵니다.”
“아니야.”
“예?”
그렇게 제가 바라던 방향과 소식이 아님을 확인한 가후는 이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조만간 자신을 찾아올 새로운 전령을 기다렸다.
“낭중령! 천정관 인근에서의 소식이옵니다!”
“호오, 이번에는 북쪽이라?”
그리고, 실로 놀랍게도 그리 전령이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새로운 방향에서의 새로운 소식이 그에게 날아들었다.
“천정관에서 보고드리옵니다! 조금 전 엄청난 수의 흑산적들이 산맥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는 보고가 있었사옵니다!”
“몇이나 된다더냐?”
“송구하오나, 가히 그 수를 짐작할 수 없다 합니다. 말, 그대로 초목이 흔들리며 파랑을 이루니 마치 거대한 산이 그대로 움직이는 것 같다고.......”
그렇게 놀랄만한 보고를 알린 전령이었으나 도리어 가후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별다른 감흥조차 보이질 않고 있었다.
“쯧, 아직도 아닌가?”
“예?”
“서쪽에서 흑산적들이 산맥을 타고 내려와 하내를 침공하면 그때 내게 와 알려라. 기왕지사 저수가 이끄는 군대와 교전을 벌이기 시작했다면 더 좋고.”
그렇게 자신의 앞에 자리한 전령들에게 도리어 이해가 가지 않을 소리를 남긴 가후는 다시금 군사들을 지휘하며 훈련에 몰두했다.
그리고 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정녕 왕옥산이 자리한 하내의 서쪽 산맥을 넘어 엄청난 수의 흑산적들이 남하하기 시작했다는 전령의 보고가 들려왔다.
“낭중령, 찾으시던 소식이옵니다.”
“그래, 드디어 때가 왔구나.”
사락-
회색, 정체 모를 새의 깃털을 뽑아 만든 것으로 보이는 그 회색빛 우선(羽扇)이 가후의 얼굴에 기분 좋은 바람과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탁-
“전군에 명을 내린다, 훈련을 멈추고 맡겨둔 군량을 되찾을 것이니, 전군은 지금 당장 회현으로 이동한다.”
그렇게 제 옆에 부채를 내려놓은 그로 말미암아 사례에서 올라온 물경 이만에 달하는 정병이 모든 훈련을 정리한 채, 다시금 하내군의 치소가 자리한 회현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저수는 자신을 따르는 정예와 더불어 혹시 모를 흑산적들의 침입을 방어할 방어선의 구축을 위해 기관과 지관이 자리한 서북쪽으로 병력을 움직인 지 오래였고, 그 외에 굵직한 이들 또한 작금의 동쪽 전선에서 지속적인 전투를 벌이는 만큼, 비어있는 후방에 맡겨둔 군량을 찾으려는 가후의 움직임에 간섭할 이들은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허면 대저 그리 찾은 군량을 가지고 가후는 대체 뭘 하려는 것일까?
이제까지 아무런 의구심도 심증도 없었던 것이 아님에, 더더욱 의문을 품게 되는 그의 행동은 이제 막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을 뿐이었다.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