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 한파의 전조(3)
그리고 이러한 소식이 다름이 아닌 포홍에게 서신의 형태로 전해졌다.
“재미있군, 포 사형이라......”
갑훈의 제자인 부간이 멋대로 사형이라 적으며 적어낸 편지 속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는 사례 내부의 일들과 더불어 자신의 청명을 알리는 자리마저 따로 마련될 것 같으니, 이를 내어준 스승의 배려에 대한 감사함과 그 속에 자리할 자신이 어떠한 모습을 보일지에 대해 기대하라는 것이다.
“사례 관련 소식, 혹은 그와 연계된 것들 모조리 가져와.”
그런 포홍의 앞에 수십 명에 해당하는 이들이 증언과 풍문 등이 적힌 죽간들을 가져왔다.
촤르륵- 촤륵-
하나하나 세세하게 그 내용을 살피는 포홍은 이내 결국 여포가 밀려난 것과 정원이 무역로를 쥐고 사례와 어긋난 행보를 보인 것, 그리고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로 엄청난 물류의 이동이 시작된 유주와 기주의 상황을 확인하며 사례의 고립이 점차 현실화 되고 있음을 느꼈다.
“기주목 한복이 이리 나왔을 정도라면, 그만큼 상황판단이 쉬워졌다고 봐야지.”
특히나 기주가 내린 선택이 특이했는데, 원 역사에서도 동탁 측과 토벌군 측을 연달아 저울질하며 박쥐마냥 행동했던 한복이 아예 대놓고 이리 나왔다는 것이 조금 신선했다.
하지만 이를 반대로 말하자면 작금의 황보력은, 원 역사의 동탁보다 못하고, 서역무역로의 무게는 실로 동탁토벌군 이상이라는 소리가 된다.
“하긴 뭐, 군대가 쌀이며 돈이며 이것저것 다 잡아먹는 하마는 맞으니까. 차라리 그 시간에 하나의 이득이라도 더 나오는 쪽을 택하는 게 정상이긴 하지. 거기에 겁날 것도 없고, 돌아가는 상황도 아니까.”
상계에서의 정보는 도리어 어지간한 정계보다 빠르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것이 특히나 내부자의 정보라면 더더욱 민감하며 시대를 거스를수록 더한 경향이 있다.
기주의 토호들의 세는 막강하고 거기에 사례의 물자가 없는 것이 확인되었으니 당장에 전쟁을 비롯한 전방위적인 압박도 불가한 것이 확인된 마당에 옥새도 깨져 정통성에 흠집마저 간 상황이다.
이미 먼 지방의 이들 또한 그런 황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각자가 제 할 일에만 몰두하는 와중에 가뜩이나 토호의 천국이자 황하를 기점으로 아예 다른 세상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기주라고 다를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저수에게 전해. 하내 인근의 모든 교통로 심지어 황하를 끼고 있는 수운까지 가릴 것 없이 감시하라고.”
“허면......”
“뺏어.”
“예?”
“그 와중에도 후환이 두려워 줄타기 하겠다고 물자 보내면 뺏어야지. 대충 밀수, 밀매로 입장 정리하고 모조리 압류하면 알아들을 거야.”
다른 이들도 아니고 어사중승이라면 후대에 검찰청 차관이나 그 이상이다.
그 자리가 어디 우직한 공부와 실력으로만 오르는 자리도 아니고 줄타기와 뇌물도 모자라 세상 돌아가는 눈치는 필수다.
아무리 도적들이 침공한 하내가 지금 여유가 없다고 해도 동서 양쪽을 합쳐 20만의 흑산적들에게 침공을 당하고도 버텨낸 이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곳이 누구의 영향력 아래 있는지 그 또한 모르지 않을 터.
결국, 한복은 사례와의 연을 끊게 될 것이다.
거기에 운이 좋다면, 한 가지를 더 걸러낼 수도 있었다.
“우리 충직한 유 자사, 아니 유주목. 황제의 후보군에 해당하는 유우가 가만히 있진 않을 것인데, 과연 이를 두고 어찌 나올까?”
어차피 사례에서 기주, 그리고 유주까지는 거리가 있다.
결국, 움직인다면 한복이 먼저 움직일 확률이 높고, 그 다음으로 소식이 전해진다면 유주에 자리한 유우가 충심에 의해 부족하나마 사례를 위한 물자를 보낼 확률이 있었다.
그러나 만일, 한복이 보낸 물자가 모조리 압류당한다면 유우 측 또한 나름의 고심이 생길 것이다.
하내를 거치면 필경 그리 보낸 물자를 빼앗길 확률이 높았고 또 그와 동시에 이쪽의 심기를 거스를 위협을 감내해야 한다.
과연, 공손찬을 적으로 두고 있는 와중에 유우가 그럴 수 있을까? 설사, 유우가 그렇다고 한들 유우 측 세력들이 이를 내버려 둘까?
“허니 지켜봐야지. 그 충심이 어느 정도 되는지, 그 헛짓거리가 어디까지 닿는지.”
하내야 당연한 것이고 병주를 거쳐 사례로 보내도 애초에 가진 것 없고 흉노라는 낙인 덕에 한나라의 공적으로 내몰린 여포가 있다.
따로 명을 내리지 않아도 배가 주린 여포는 알아서 하동 땅을 거치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이다.
“자, 그러면 하북은 온전히 손을 털었다고 봐야지?”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소식이 하나 더 있었다.
저벅저벅-
“주공, 공손찬의 사자라며 이이자라는 이가 찾아왔습니다.”
“뭐라? 지금 누구의 사자가 와?”
생각지도 못했던 이의 방문에 포홍이 격정적으로 변한 것 또한 이 때문이었다.
“공손찬....., 공손찬. 하, 이것 참.”
실상 천하를 두고 그림을 그리며 살아온 이들이 대저 얼마나 될까?
비단 가후나 현대인의 정신을 집어삼킨 자신을 비롯해 그나마 범인의 사고를 지닌 이들이 몇 되지 않음은 알고 있으나 의외로 예상을 깨고 이리 공손찬이 튀어나올 줄은 전혀 예상을 못했다.
“저, 그리하옵고.”
“또 뭐가 남았나?”
“기주와 경계를 맞댄 태행산맥 인근에서 흑산적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답니다.”
“뭐야? 이것들이 설마, 지금? 원 역사마냥 벌써부터 동맹을 맺었다는 거야?”
“아무래도.....”
뜻하지 않게 육량이 전해준 소식은 가히 포홍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고립된 사례에 살길이 뚫릴 수 있으며, 재수가 없다면 병주의 정원도 모자라 이제는 유주의 공손찬을 비롯한 흑산적들까지 적이 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포홍이 내린 결단은 빠른 것이었다.
“사자를 들라 하라.”
* * *
“처음 인사 올리겠습니다.”
그렇게 포홍이 공손찬의 사자인 비단 장수 이이자의 접견을 허락한 순간, 사례에선 또 다른 공손찬의 사자인 악하당이 순상을 마주하고 있었다.
“상인이시군.”
“이를 말이옵니까?”
호걸도 아니고 효웅도 아니나 뜻하지 않은 노신의 눈초리에 슬쩍 미소를 지은 그는 이내 품에서 서찰을 꺼내 이미 한 차레 검수를 마친 서찰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했다.
스윽-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사례의 현 모습은 이제 막 시작된 작은 난국과도 같습니다. 그것도 외부의 도움이 절실한 난국이지요. 그래서 제가 이 서신과 함께 온 겁니다.”
“흑산적들이 도움을 주겠다?”
“하나는 징치지요, 세간에 아직 알려진 바는 아니나 사례의 품귀현상을 아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가는 형국입니다. 그 와중에 지난날 사례의 조당에서 임명한 기주목은 은혜도 모르고 서역과의 교역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해서 기주에서 병주로 넘어가는 물량을 건드리겠다?”
“거기에 얻어낸 물자를 모아 조금씩이라도 사례에 바치고자 합니다. 큰 도움은 되지 못하여도 작게나마 힘은 될 것입니다.”
확실히 상인답게 자신의 패를 올려놓는 모습이 제법이었다.
“쯧쯧쯧, 모두가 글자를 써도 모두가 사대부가 아니듯 그대의 제안은 실로 구리군. 물길을 통해서든 육로를 통해서든 그대들이 보낸다는 물자가 온전히 사례에 도달한다는 보장이 없지. 상이라는 자가 이조차도 모르면서 어찌 교역을 하겠다는 게요?”
허나 순상에게 있어 이는 어린애 말장난과도 같았으니, 그는 혀를 차며 이 어설픈 속임수를 까발리고 있었다.
“하동으로 넘어간 여 봉선의 일만에, 기존의 백파적들도 사연택에 무역로에 흥분하며 활동을 개시했소. 거기에 하내는 포홍의 세력권이고, 연주는 지금 내전 중이며 청주에는 황건적들이 있지. 대저 어디를 통해 온전히 물자를 넘겨준다는 말인가?”
“하, 하오나 이는 이 나라의 하늘이신 황상께 헌납하는 조공이옵니다!”
“쯧쯧쯧, 도적의 입에서 나온 말을 믿어줄 이가 과연 누가 있을까?”
“그, 그건......!”
“제법 머리를 잘 썼구려. 좋든 싫든 흑산적들은 이미 한차례 하내를 습격한 전력이 있소. 암만, 하내가 포홍의 세력권이라 하나 그 소속은 부정할 수 없는 사례지. 그리고 그에 적지 않은 이득을 얻었으니, 필경 그 우두머리인 장우각은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불안해 할 것이 빤하지. 그렇다고 나라에서 받은 벼슬자리를 내어놓기도 싫고 자신의 물자를 내어놓기도 싫고.”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순상의 심오한 눈동자에 악하당은 절로 식은땀을 흘렸다.
“결국, 사례를 위해 대신 나서겠다는 핑계로 기주에서 서역으로 넘어가는 물자를 약탈해 잇속을 채우고 애초에 보내지도 않을 상단의 무리를 보냈다가 습격을 받았다는 등의 헛소리를 운운하며 그 누군가가 될지 모르는 다른 이들을 압박하겠지. 그 이간책이 하내가 될지 아니면 하동이 될지 모르나 최소한도 자신들에게 날아올 화살을 돌리고픈 마음이 큰 것이요.”
투욱-
“크흡.....”
그도 모자라 순상이 내뻗은 손가락이 어느덧 그의 가슴에 닿자 악하당은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묵직한 압박에 신음하며 그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공손찬은 이를 통해 생색을 내는 게지. 도적의 이들에게 있어 외교란 쉽지 않은 것이니 다른 이들이 노는 판 위로 손을 잡고 이끌어준 대가의 생색을 그대가, 그대의 주인이 노리는 게요. 그리고 이는 기주와 유주를 한데 가두기 위함이지. 뭐, 정확히는 기주야 어찌 되든 상관이 없어도, 유주목을 처리하기에 앞서 빚을 만들어두고 또 자신이란 선택지도 남아있음을 사례에 보여주기 위한 게지. 어차피 사례의 개입은 최소한으로 만들어둬야 하니까, 그래야 유우를 죽인 뒤에 정식으로 유주목을 계승해 직후에 일어날 잡음을 모조리 짓누를 수 있을 테니까.”
사례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러한 이가 도성에 남아있을 줄 꿈에도 몰랐던 악하당이었다.
한데 갑자기 나타나서 이리 자신이 몸담은 세력에 모든 것을 까발리니 가히,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마저 나왔다.
“예, 그렇지요. 빌미도, 명분도 모조리 사절입니다. 해서 황명으로 찍어누르려 했는데, 이거 아예 모든 게 다 틀어져 버렸군요.”
그래서였을까? 모든 것이 까발려진 마당에 아예 체념한 듯 보이는 악하당은 도리어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타악-
“......!”
“하지만, 그 덕에 일이 쉬워졌습니다. 그 때문에라도 사도께선 저희와 손을 잡으셔야 합니다.”
그도 모자라 자신의 가슴에 닿아있는 순상의 손가락을 붙잡아 쥐니, 순상 또한 이번만큼은 그에 격정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잡은 거지요, 손.”
“그러니까 이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
“사공께선 명가의 이들을 믿으십니까?”
“명가?”
특히나 악하당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대상이 튀어나오자 순상은 가늘게 눈을 뜨며 그에 집중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최근 들어 유우의 진중에 청류파 사대부들을 데리고 원 본초가 들락거리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공공연히 이런 말을 하고 다니지요.”
“........”
“황실은 기울었고 사례의 조당은 이미 실패했다. 지난날 옥새에 대한 책임조차 외면한 채, 기존에 폐지된 제도를 부활시켜 권력만을 탐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누군가가 이를 바로잡아야 할 때다. 그리고 나는 이를 유 종정이라 생각한다. 라고.”
노골적인 이간책이라 하기엔 악하당의 눈빛은 너무나도 진중했다.
“명가의 서자가 되려, 명가를 욕하는군.”
“어차피 명가의 사생아와 다름없는 이 아닙니까? 그 대신이라곤 뭣하지만 벌써 발해 인근에 많은 사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다만, 출신의 비천함답게 힘을 모으는 방법 또한 천박하지요. 그는 지금 기주의 외곽과 유주의 후방에서 유우를 위한 선전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밑에 자리한 청주에서 황건적들에 의해 수많은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음에도, 청주로 내려가기는커녕 제게 속한 이천의 군병을 도리어 유우를 지원하는 후방군으로 편입시켰습니다. 이게 뭘 뜻하겠습니까?”
보신, 그리고 이를 넘어선 자신의 이득을 위한 원소의 정치적 행보를 꼬집는 악하당의 비난은 신랄했다.
그 명망이 자자한 유우를 부추겨 그의 곁에서 힘을 얻고 세력을 얻어 자라나려는 목적이 너무 훤히 보이지 않으냐는 것이다.
“지금이야, 쉬쉬하는 이들이 다수라지만 이내 제대로 된 수습을 못하고 사례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그땐 정녕 사례에 대한 책임론이 천하에 대두될 겁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 시작은 벌써부터 여론을 조장하는 원소와 일찍부터 황실의 이름난 어른이자 성덕을 갖춘 군주에 비견될 유 종정을 필두로 힘을 얻겠지요. 그때 가서 과연 누가 사례를 지지하겠습니까? 그때 가서 과연 누가 그리 천하의 인망을 얻은 이들을 징치할 수 있겠습니까?”
여전히 순상의 손가락을 놓지 않은 채, 자신들의 필요성을 피력하는 악하당의 눈빛은 이미 위험할 정도로 일렁이고 있었다.
순상 또한 작금의 사례의 조정에 충성하는 입장이며, 그 마지막을 바치기로 각오한 몸이기에 이러한 악하당의 주장을 고심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자네들은 민심을, 천심을 등질 각오가 있는가?”
“사인들의 논란만 붙잡아주신다면야 못할 것도 없습니다. 실상, 청류를 비롯한 이들 덕에 왜곡된 낙인이 찍힌 주공의 억울함은 저희가 가장 잘 알지요. 만일, 그리 못되고 악한 이라면 애초에 사인보다 떨어지는 저희 상공인들은 물론, 다른 유주의 백성들이 미쳤다고 주공을 따르겠습니까?”
“이미 각오한 셈이로군.”
“이제와 밝히는 바이지만, 유 종정은 지금 저희가 비축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물자를 비축하고 있습니다. 뭐, 말로는 하북의 물가 또한 작금의 옹주와 이질적인 교환비를 보이는 사례처럼 변화하면 훗날에 문제가 생긴다며, 이를 위해 만약의 상황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라는 변명을 일삼지만, 실상 누가 봐도 그 엄청난 비축량이 전쟁 준비임을 모르는 바는 없지요.”
거기에 한 가지 정보를 더 얻었다.
도리어 상인들을 움직여 서역과의 무역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는 공손찬의 움직임은 솔직한 모습이 되었고, 그리 서역과의 통교가 뚫렸음에도 도리어 그 이득을 두고서도 이를 취하지 않은 채 더 많은 물자를 비축하는 유우의 움직임을 무언가 목적을 띈 음흉함과 의구심을 내포하게 되었다.
그러나 순상이라고 어디 유우의 청명을 모를까?
물론, 사람 일을 모르며 다른 이들에 의해 휩쓸릴 가능성도 있으니, 당장에 이를 두고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았던 그는 가벼운 한숨과 더불어 판단을 뒤로 미뤘다.
“후우, 알겠네. 생각해보지.”
“저희는 그런 거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부로 저희는 사례를 믿고 가겠습니다.”
그렇게 그 마지막까지 순상의 손가락을 꽉 움켜쥐며 짙은 여운을 남긴 악하당은 이내 인사를 올리며 돌아선 자리에서 다시금 한 마디를 남겼다.
“변방의 이들은 매양 북적과 동호의 이들의 침략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그 두려움을 씻어내며 모두를 구원하고 한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다시 세워 준 이는 저희 주공 밖에 없습니다. 한데, 갑자기 저들이 나타났지요. 여태까지 유주에 자리한 백성 하나 구원하지 않았던 이들이 유 종정과 함께 나타나 저희를 악으로, 적으로 매도했습니다.”
이는 어떻게든 이번 방문을 통해 사례에 자신들의 억울함을 피력하고, 이를 통해 꼭 유우가 아니라, 그 외에도 충분히 다른 선택지가 있음을 확실히 각인시키고자 하는 그만의 노력이었다.
“부디 그 발버둥이, 그 구구절절함이 아까와 같은 거짓이 아니길 바라겠네.”
“아닌 말로, 유주의 백성들에게 직접 물어보십시오. 지금까지 침략과 약탈만을 일삼은 이들이 이제와 갑자기 유 종정의 은혜와 덕치에 감복해 그에게 복종하고 서로 친하게 지낸다는 연유만으로 그리 멋대로 유주를 들락날락하는 게 가히 말이나 되는 소리인지?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의 세월을 그리 당하고 당해왔으면서도 그 찰나의 호의에 혹하여, 자신들의 업적을 위하여 이 땅의 수많은 백성들을 불편하고 힘들게 만드는 것이 정녕 선의인지.”
쿠웅-
“저희는 그렇게 못합니다. 저희는 군자도 되지 못하지만, 위군자도 될 수 없는 놈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그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까지 악하당은 가히 각인에 가까울 강렬한 인상을 순상에게 남겼다.
“공손찬이라, 실로 예상치 못한 이가 새로이 모습을 드러내는군. 하지만 지금은 사례의 일이 우선이야.”
하지만 그 강렬함 앞에서도 순상은 본래의 목적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외부의 요인이 다시금 사례를 고립으로 이끈다면, 도리어 그 외부를 통한 탈출구 또한 존재할 것이라 여겼다.
“여긴가?”
끼이이익-
그리고 그런 그가 찾은 곳은 다름이 아닌 가후의 집무실이었다.
이제는 먼지만이 가득한 그곳에서, 황보력을 대신해 천하를 둔 주무르던 그의 흔적들을 살피기 시작한 순상은 가히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 정도였구나, 그가 준비해두었던 것이.”
주준의 증언에 따르면, 가후는 함곡관에서 마지막으로 황보력이 나아갈 길을 알려주었다고 했다.
심지어 그 끝에 포홍의 파멸마저 담고 있는 이 길은, 그리 곧바로 돌아온 주준과 이를 기억하는 군사들의 증언을 한데 모아 책처럼 만들어졌는데 이는 황보력이 지금도 품에 품고 다닐 정도로 소중한 것이 되었다는 말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와 그것이 정녕 거짓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이다.”
그렇게 순상은 미친 사람마냥 주변에 흩어져 있는 죽간과 지도 그리고 문건들을 모조리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스스슥-
그와 동시에 엄청난 속도로 이를 훑어낸 그는 이내 비단으로 된 보자기로 이를 단단히 묶은 뒤, 그 위에 붓을 들어 두 개의 지역과 두 사람의 이름을 적어 내렸다.
“이것이라면 우린 살아날 수 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순상의 뜻을 받은 두 사절이 낙양을 빠져나와 예주와 연주를 향해 말을 달렸다.
- 작가의말
짤막하지만 주인공을 넣었습니다. 그 외에 이와 맞물려 다른 이들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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