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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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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70
추천수 :
885
글자수 :
36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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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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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9쪽

사필귀정

DUMMY

SS 그룹 관련 최후 공판.


이례적으로 차선호 지검장이 직접 나섰다.


"SS 그룹 오 회장을 참고인으로 소환합니다."


그룹 중진 절반 이상이 구속 수사를 받는 바람에 오 회장은 꾀병을 오래 부리지 못했다. 가뜩이나 그룹이 풍전등화인데 회장이 죽을병으로 누워있다고 하니 주식이 폭락에 폭락을 거듭했다.


오 회장이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나오자 내림세가 둔화하긴 했지만, 여전히 반등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난 8월 26일. 참고인은 본 사건 수사 검사인 천동출을 제거하라고 지시한 적 있습니까?"


"반대합니다. 현안과 관련 없을 뿐만 아니라 오 회장님은 증인이 아닌 참고인으로 소환에 응한 겁니다. 답변을 거부합니다."


판사가 잠깐 고민한다.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청와대와 국회 그리고 사법부와 언론을 비롯해 사면팔방에서 압박을 가해 왔다.


"대답하지."


오 회장의 말에 판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마음이 살짝 움직였다. 오 회장이 자기 편의를 봐줬으니, 심판 과정에 약간의 도움으로 보답할 마음이 생겼다.


"대한민국에서 경제인으로 사는 건 참 힘듭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병으로 수술을 갓 한 사람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목소리가 딴딴하다.


"책임져야 할 게 너무 많습니다. 솔직히 좋게 불러 경제인이지, 우리 땐 장사치에 불과했습니다. 장사치가 돈 많이 벌 궁리만 하면 되는데, 우리나라에선 그게 안 됩니다."


"국가 경제도 걱정해야 하고, 수십만 직원과 그에 딸린 수백만 가족의 생계까지 걱정해야 합니다. 외국 자본의 침투도 걱정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배척할 수도 없습니다. 권력을 쥔 자들이 뇌물을 공공연하게 요구하기도 하고, 후원금을 대놓고 강탈하기도 합니다."


"법을 지키며 살고 싶어도, 다른 기업이 정치인 혹은 공무원과 결탁하여 치고 들어옵니다. 내가 손수 일군 기업과 직원들을 살리려면 어쩔 수 없이 방어적으로 불법을 자행하게 되었습니다."


쿨룩쿨룩. 오 회장은 기침을 멈춘 다음 손수건을 입에 갖다 대고 한참 있었다. 그리곤 보여줘선 안 될 뭐라도 있다는 듯 손수건을 조심스럽게 구겨서 주머니에 넣었다.


"제 불찰입니다. 아이들과 그룹 임직원들을 닦달하기만 했습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해결해라, 이 일은 그룹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닦달하기만 하고 그 과정이 공정했는지, 법에 저촉되지 않았는지 살피는 일에 게을렀습니다."

"마음 같아선 그룹의 모든 죄를 제가 안고 벌 받고 싶습니다. 지시를 내리고 결과만 살핀 전 직무유기입니다. 그러나 법이 그렇지 않더군요. 제가 구체적인 실행을 지시했거나 불법을 행하는 과정에 개입된 증거가 없다면, 아무리 제가 죄인이라고 우겨도 안 된다네요."


오 회장은 눈물 몇 방울을 짜내고 말을 이었다.


"법은 공평해야 합니다. 그래서 법원의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다만, 대한민국 경제를 위해 불철주야 노심초사해온 대한민국 국민의 한 명으로 감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못난 사람이 두려워서 원치 않은 죄를 지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옛날에도 죄지은 장수는 백의종군이라고 하여 일반 병사로 전장에 나가 자기 죄를 씻었습니다. 이 부족한 늙은이가 더 애쓸 테니, 저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와 열심히 대한민국 경제에 이바지하는 거로 자신들의 죄를 좀 더 확실히 씻을 수 있도록 부탁합니다. 감옥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먹이고 입히면서 허송세월하는 것보다 밖에서 일 시키는 게 훨씬 이득인 인재들입니다."


방청석에서 작게 박수가 터졌다. 오랜 기간 국가 GDP 성장에 기여했고 외화벌이도 많이 했으며, 국가의 자랑인 기업이다. 죄가 없다고 발뺌하는 것도 아니고, 죄를 인정하고 더 큰 기여로 죄를 갚겠다는 말에 감동한 사람이 적잖았다.


그때, 조명이 껌뻑였다. 스산한 바람이 법정을 싸늘하게 감쌌다.


"오 회장님."


갑자기 나타난 내 모습에 사람들이 화들짝 놀란다. 이미 실종된 지 2주나 되어 죽음이 기정사실로 된 사람이니까.


"그냥 죽이지 왜 고통스럽게 죽이라고 했습니까."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소리. 더구나 내 입은 하얀 손수건으로 막혀 있다. 손에는 경찰 수갑이 채워졌고 몸은 물에 푹 젖은 밧줄로 칭칭 감겼다.

찢긴 셔츠 틈으론 총알이 관통한 상처도 보였다.


"나 아니야."

"아니라뇨. 회장님이랑 통화하는 걸 죽기 전에 들었습니다. 고통스럽게 죽이라고 해서 이렇게 다리에 시멘트 친 다음 바다에 버려졌습니다."


판사는 이미 책상 밑으로 숨었다. 대담한 기자 몇이 핸드폰을 켜고 날 찍었다.


"어, 카메라에 안 잡혀."


기자 하나가 새된 소리로 외쳤다. 오 회장이 휠체어에서 급히 일어나 판사석 쪽으로 도망간다.


"난 그저 진실을 밝히고 죄지은 사람 벌주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게 죽을죄가 됩니까?"

"나 아니야. 자넬 죽인 사람들 찾아가게."

"전부 찾아 죽였습니다. 그런데도 원한이 안 풀려 이승에 남았습니다. 회장님도 죽이고, 그래도 모자라면 회장님 자식들도 다 죽여야겠습니다. 이승에 있는 단 한순간도 제겐 고통입니다. 폐에 바닷물이 차오르는 느낌, 숨이 꽉 막히는데 기도로는 짠 물만 흐르는 그 느낌 아십니까?"


"최 비서. 최 비서부터 죽여. 난 지시만 했고 구체적인 건 최 비서가 다 알아서 했어."

"최 비서도 죽였습니다."

"강 대위. 강 대위가 내 부탁에 자기 직속 수하를 보내줬어. 다리 놔준 건 박 대장이고."

"이미 죽었습니다."

"조폭을 소개해 준 경 의원이랑 배 의원도 있어."


그 뒤로도 수십 명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와. 대한민국 시궁창이었네."


이 정도일 줄은 나도 몰랐다. 악의 최종 보스로 자주 묘사되는 재벌만 처리하면 될 줄 알았는데, 벌레는 돈이 흐르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서식했다.


매듭을 당겨 몸에 묶은 밧줄을 쉽게 풀었고, 손에 채운 수갑도 입에 문 핀으로 쉽게 열었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망치로 시멘트를 부쉈다.


"존경하는 판사님. 방금 보고 들으신 걸 증거로 제출하고 오 회장의 살인교사 혐의 13건에 천동출 검사 살인 교사 혐의를 추가합니다."


"위력에 의한 진술은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오 회장님은 심신미약 상태에서 횡설수설한 겁니다. 최근 큰 수술을 받아 몸도 허하여 허언한 겁니다."


"제가 녹화한 파일입니다. 대화 당사자니까 증거 효력이 있겠죠?"


카메라에 안 담긴다며 나조차 깜빡 속을 연기를 한 기자와 손뼉을 치며 자축한 후, 녹음기 세 개와 영상이 담긴 칩 하나를 건넸다.


"천동출 검사 살인 교사 혐의는 따로 분리하여 새 사건으로 심의하겠습니다. 그런데 천 검사, 진짜 귀신 아니죠?"


잇츠 쇼 타임.


"다리에 무거운 시멘트를 달고 손에 수갑을 차고 입에 재갈을 물린 채 깊은 바다에 던져졌을 때, 전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원하는 국민의 염원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웃통을 깠다. 얼굴과 달리 내 몸은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다.


"오 회장 지시를 따른 놈에게 총 맞은 자립니다. 구멍이 세 개지요. 스무 발을 쐈는데 세 발 맞았습니다. 대한민국 군인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총을 쐈다는 것도 충격이지만, 직업 군인의 명중률이 고작 15%라는 것도 놀랍습니다."


"이건 CM 그룹 조사 때 세 번째 트럭 사고에서 파편이 박히면서 생긴 상첩니다. 이건 다섯 번째 사고 때 에어백이 안 터져서 운전대와 부딪혀 생긴 상처고요."


자잘한 상처는 무시하고 큰 상처만 일일이 짚어줬다.


"영광의 상처냐고요? 아니요. 이게 왜 영광스럽습니까? 제대로 된 나라라면 생기지 말아야 할 상처 아닙니까? 영광이 아닌 부끄러운 상첩니다. 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 평검사 천동출이 국민을 대신해 새긴 치욕의 낙인입니다."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민생에 기여하고 수십만 수백만 사람을 먹여 살렸다고 칩시다. 그럼 법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해도 됩니까? 그 사람들을 핑계로 수십 수백 명의 삶을 짓밟아도 되는 겁니까?"


"CM 그룹 보셨죠?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한 다음 서서히 발전하는 모습을요. 오 회장 당신은 벌렙니다. 뇌에 둥지를 틀고 신경을 자극하는 거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니 자길 신으로 여겼겠죠. 하지만, 뇌에 든 벌레든 창자에 든 벌레든 똑같은 벌레입니다. 제거하면 사람은 더 건강해집니다."


"옳기만 한 것도 없고 그르기만 한 것도 드뭅니다. 오 회장의 인생이 가치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지은 죄 인정하고 죗값은 받으세요. 자신이 한 기여와 공헌을 방패로 죄를 축소하거나 무마하진 마세요. 남자답게, 대한민국 1위 기업을 이끈 총수답게 당당하게 말입니다."


요란한 박수 소리를 뒤로하고 법정을 떠났다. 밖에서 기다리던 구급차가 급히 나를 싣고 병원으로 향했다.


"저기, 가는 길에 간장게장이나 꽃게탕 하는 집 보이면 잠깐 세워주세요. 배고픕니다."


작가의말

게 새끼 결국 생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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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저승사자의 손짓 20.01.06 183 5 10쪽
86 경지 상승 20.01.05 163 5 9쪽
85 견제 20.01.05 173 5 9쪽
84 생방송 20.01.05 173 5 9쪽
83 자충수 20.01.04 154 6 9쪽
82 민중의 칼 20.01.04 156 4 9쪽
81 지뢰밭길 20.01.04 140 4 9쪽
80 가시밭길 20.01.03 142 8 9쪽
79 천동출 20.01.03 152 4 9쪽
78 진상 20.01.03 140 5 9쪽
77 성화신의 정체 +2 20.01.02 162 7 9쪽
76 합체와 분리 20.01.02 140 5 9쪽
75 전쟁 20.01.02 153 5 9쪽
74 저지르고 보자 20.01.01 176 4 9쪽
73 정조를 지켜라 20.01.01 200 4 9쪽
72 검사 천동출 20.01.01 155 4 9쪽
71 청천벽력 +2 19.12.31 163 7 9쪽
70 전학생 19.12.31 190 4 9쪽
69 세상이 너무 쉬워 19.12.31 129 6 9쪽
68 생김에 관한 고찰 19.12.30 152 7 9쪽
67 나는 강하다 19.12.30 127 6 9쪽
66 처형식 19.12.30 125 6 9쪽
65 양아치 19.12.29 123 6 9쪽
64 간타자 +1 19.12.29 138 6 9쪽
63 내가 내게? 19.12.29 139 5 9쪽
62 의욕 잃은 망나니 19.12.28 152 8 9쪽
61 말종의 반격 19.12.28 126 6 9쪽
60 동맹주 19.12.28 124 5 9쪽
59 무마동맹 19.12.27 142 4 9쪽
58 천마신공 19.12.27 144 4 9쪽
57 아비수의 마왕들 19.12.27 149 6 9쪽
56 망나니 강림 +3 19.12.26 144 8 9쪽
55 어마어마한 지원군 +1 19.12.25 154 6 9쪽
54 마교와 전쟁 19.12.24 142 7 9쪽
53 애송이들아 +2 19.12.23 157 8 9쪽
52 대기업 회유 +2 19.12.22 181 7 9쪽
51 독점금지법 +2 19.12.21 179 5 9쪽
50 후원금 +5 19.12.20 171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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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청문회 +2 19.12.18 173 5 9쪽
47 무림맹의 저력 +2 19.12.17 166 7 9쪽
46 비무 대회 +2 19.12.16 187 7 9쪽
45 천마의 대응 +4 19.12.15 187 7 9쪽
44 후보자 토론회 +2 19.12.14 176 7 9쪽
43 영혼 분리 +2 19.12.13 182 7 9쪽
42 공약 +3 19.12.12 220 6 9쪽
41 출마 선언 +2 19.12.11 187 6 9쪽
40 차별에 관하여 +2 19.12.10 221 7 9쪽
39 빙의가 준 계시 +2 19.12.09 268 7 9쪽
38 세 번째 빙의 +2 19.12.08 216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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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문신 법술 +3 19.12.03 226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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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두 번째 빙의 +3 19.11.30 250 6 9쪽
29 대호법의 활약 +3 19.11.29 252 5 9쪽
28 상거지 만수로 +2 19.11.28 287 8 9쪽
27 첩자 이야기 +2 19.11.27 283 8 9쪽
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40 7 9쪽
25 민폐 천마 +2 19.11.25 283 6 9쪽
24 망나니 천마 +2 19.11.24 308 9 9쪽
23 최악의 16팀 +3 19.11.23 301 9 9쪽
22 노력하는 천마 +2 19.11.22 384 7 9쪽
21 무림맹의 재도발 +5 19.11.21 361 8 9쪽
20 배움은 끝이 없다 +2 19.11.20 375 8 9쪽
19 영혼과 육신 +1 19.11.19 413 9 9쪽
18 첫 경험 +6 19.11.18 522 13 9쪽
17 세상에 이런 일이? +2 19.11.17 418 13 9쪽
16 뒷수습 +4 19.11.16 422 12 9쪽
15 말종의 사신 +2 19.11.15 444 14 9쪽
14 엄친아 할아비 +3 19.11.14 467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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