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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조회수 :
41,972
추천수 :
885
글자수 :
363,122

작성
19.11.06 18:00
조회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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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보름달이 뜨다

DUMMY

아이들이 신나서 뛰어다닌다. 추석이 오며 대부분 선생이 고향으로 돌아갔기에 수업이 금방 끝났다.


"허수야. 그러다 넘어진다."


맨손으로 벽도 타는 아인데. 엄마 눈엔 걱정투성이인 모양이다.


지금 교주전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다. 아낙들이 잔뜩 몰려와서 전을 부치고 고기를 굽고 떡을 빚고, 그 사이로 아이들이 떼를 지어 달린다.

허수아비의 아내 죽순은 봄철에 잘라 소금에 절인 죽순을 칼로 얇게 썰면서도 눈길을 외동아들한테서 단 한 순간 떼지 않았다.


한석봉 어머니도 그렇고 죽순이도 그렇고. 노룩썰기는 패시브 스킬인 것 같다. 저런 어머니가 있으니 허수도 곧고 바르게 자라겠지?


"장로들 입장합니다."


마교 장로들이 입장했다. 직급으론 교주가 최고지만, 장로회 역시 만만치 않다. 일을 벌일 권한은 없지만, 교주전에서 발의한 안건을 반대할 수 있다.


가만히 보면 여기 구조는 엄청 합리적이다.


늙어서 생각이 고루한 자들은 장로가 된다. 교주를 비롯해 실무진은 늘 젊은 사람이 차지한다.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는 걸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교주전에서 안건을 발의하면 장로회가 검토한다. 고루한 대신 경험은 풍부한 장로회가 젊은 혈기로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제동을 걸어준다.


- 이론적으론 그렇지. 현실은 달라.


교주전을 가득 채운 사람 중 천마의 편은 적다. 아직 얼굴도 비추지 않은 사대호법을 비롯해 72도 도주와 36동 동주에 호위대까지 천마 직속 수하다. 남은 자들은 각자 장로회의 파벌에 줄을 대고 있다.


발의한 안건 대부분이 장로회의 입김이 닿을 수밖에 없다. 다행이라면 안건을 발의하는 최종 결정권자가 교주이기에 천마의 동의가 없으면 아예 안건이 장로회에 회부되지도 않는다.


- 발의한 안건 수가 적으면 탄핵당할 수도 있어. 장로회가 힘이 더세.


"대장로 아마존이 장로회 일동을 대표하여 교주께 인사 올립니다."


아마존만 무릎을 꿇고 남은 자들은 허리를 숙였다. 천마와 장로회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착석을 허락한다."


천마의 말이 끝나자 장로들이 경공을 펼쳐 자기 자리에 앉았다. 대부분 관에 박을 못 고르러 다닐 것 같은 늙은이들인데 동작이 의외로 날렵하다.

뛰어다니던 애들이 장로들의 멋진 모습에 손뼉을 치며 환호한다.


"이리 온. 네가 허수구나."


허당의 아버지는 장로회에서 가장 큰 파벌을 이끄는 장로다. 대장로인 아마존은 거의 세력이 없다시피 하여 실질적인 대장로다.


덕분에 허수는 장로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공부 참 잘한다지. 이 용돈으로 책 많이 사거라."


헐. 은자 백 냥이 용돈이라고? 재드래곤도 추석 용돈이랍시고 1억씩 주진 않을 텐데.


"어허, 이 사람 보게. 용돈이 애들한테 주는 건가? 결국엔 부모가 쓰게 되어 있다고. 그러니까 나처럼 이런 걸 준비했어야지."


선물을 보는 인마 눈에 부러움이 가득하다.


"몸이 새까만 곤륜노들만 사는 곳에 있는 기린이라는 동물 가죽으로 만든 옷이야. 이렇게 접은 곳을 펴면 옷과 바지가 길어져. 무림 전체를 뒤져봐도 이런 물건은 둘 없어."


"옷도 좋지만, 애들한텐 먹을 게 최고지."


장로 하나가 허수 입에 사탕을 넣어준다. 허수 눈이 휘둥그레지는 걸 보니 맛이 좋은 모양이다.


"곤륜산 동굴에서 캔 석청이야. 잔병치레 안 하게 해주고 내공 증진에도 도움이 되며 눈과 귀를 밝게 하고. 그리고 남자한테 참 좋은데, 말로 표현하기 힘드네."


전을 부치고 고기를 굽던 아낙들 눈초리가 사나워진다. 음식에 침 아니라 독이라도 뱉을 표정들이다.


"혈도야, 이리로 와."


성이 혈이고 이름은 도. 이름만 들어도 짚이는 데가 있겠지. 그래, 부교주 혈마의 아들이다. 혈마는 주로 세력권 변방에 머물기에 추석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금선보의(金蟬寶衣)다. 어떤 공격도 한 번은 막아준다는 보물이지."


금선탈각의 법술을 내장한 금선보의. 치명적인 공격을 받았을 때 옷이 허물처럼 벗겨지며 착용자를 보호한다. 매미 속 날개를 제련하여 뽑은 실로 만드는데, 실로 어려운 일이어서 일 년에 몇 벌 생산되지 않는다.


크기를 보니 맞춤옷이 틀림없다. 신축성이 훌륭해 보이긴 하는데, 무림은 대체로 품이 넉넉한 너른 옷을 선호한다. 어른이 입으면 쫄쫄이가 될 게 뻔하니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맞춤 제작했을 거다.


두 아이를 시작으로 선물 공세가 펼쳐진다. 명절에 아이들만 즐거운 건 어느 세상이나 똑같네.


아이가 선물 받은 아낙의 손짓은 부드러워졌고, 선물 받지 못한 아이의 엄마는 칼질이 점점 난폭해진다. 초반엔 평화롭고 즐겁던 분위기가 점점 날카롭고 무겁게 변한다.


막살자가 금과 은 그리고 다섯 가지 보석으로 만든 장명쇄(長命鎖)를 인마 목에 걸어줬다.

장명쇄는 저승사자를 막아준다는 목걸이의 일종이다. 아이한테만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서 대여섯 살만 되면 벗어버린다.


"사질. 막내임에도 공부를 으뜸으로 잘한다지? 사부를 닮아 뭐든 뛰어나군. 그러고 보니 얼굴도 천마 사형이랑 많이 닮았어."


갑자기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심지어 고기 굽다가 튀는 기름마저 소리를 죽이고 조신한 몸짓을 보였다.


- 뭐지? 갑자기 분위기가 왜 이래?

- 인마가 내 자식 아닐까 의심하고 있는 거야.

- 인마가 네 자식이면 어때서?

- 저들은 마교 교주인 내가 황제가 되었으면 해. 교주는 탄핵만 안 당하면 종신제야. 사임 같은 건 할 수 없거든. 그러면 마교와 황궁이 자동으로 합병되는 거야. 무림맹을 해산하는 건 일도 아니지.


이해했다. 그러니까 음···


- 좀 더 알아듣기 쉽게 얘기해 줘.


- 나 말고 내 아들이 황제가 되면 마교와 황궁은 별도인 거야. 난 서출이니까. 말종과 나 외에 황위 계승자가 더 있으면 저들한텐 안 되는 거야. 그게 내 자식이라도.

- 네 자식이면 상관없는 거 아니야?

- 내가 교주라고 마교를 제멋대로 할 수 없는 것처럼, 황제도 황궁에서 마음대로 할 수 없어. 말종이 황제가 되었는데도 황궁이 안 망했잖아. 내가 황제와 마교 교주를 겸직해야만 저들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거야.


도박판에는 부모·자식도 없다. 뭐 그런 거랑 비슷한 얘기 같긴 한데. 아무튼, 난 이해했다.


"인마 공자는 무공 경지가 어느 수준에 이르셨소?"

"개세 수련하는 중이야."


인마의 대답에 장로들이 흠칫한다. 개세와 기천 그리고 마신공 다음은 천마신공이다. 고작 세 살에 개세 수련을 시작했다는 말에 놀라지 않은 자가 드물었다.


"인마 개세."

"공부도 잘해."

"잘생겼어."

"힘도 세."

"아니야. 옆집 아저씨가 힘이 더 좋다고 엄마가 그랬어."


어른들이 입을 다물자 아이들 입이 터졌다.


잠깐. 마지막에 말한 애 누구야? 넌 오늘 저녁 친구 집에서 자는 게 좋겠어.


- 인마한테 선물 준비한 거 없어?

- 난 미혼이기에 명절에 선물 받아야 하는 입장이야.


하긴. 열여섯인 천마도 용돈 받아야 할 나이긴 하다.


- 애 풀 죽은 거 안 보여? 저 나이에 받은 상처는 평생 간단 말이야.


세 살 때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있잖아.


다른 애들은 선물 여럿 받았고 엄청 귀한 선물도 받았다. 막살자의 장명쇄 역시 가격은 높은 물건이지만, 희소성이나 유용성에선 다른 선물에 크게 뒤진다.


"교주께 아룁니다. 사호법이 교주께서 제자를 받으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오색 진주로 조각한 꽃을 축하선물로 보내왔습니다."


헐. 은자 천 냥도 넘은 귀한 물건을. 허수에게 백 냥짜리 은표를 용돈으로 줬던 장로가 부끄러움에 얼굴을 가린다.


"삼호법이 여래불의 사리자로 만든 염주를 선물로 보내왔습니다."


이건 가격이 아니라 희소성 문제다. 무림에선 구경도 힘든 기린 가죽옷을 준비한 장로가 허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이호법이 천축에서 만든 신발을 보내왔습니다. 승리의 여신 '나이겨'라고 합니다."


갈고리가 그려진 천축 명품 신발 나이겨. 금선보의를 선물한 장로가 얼굴을 크게 찡그리고 입을 씰룩인다.


"대호법이 자연산 장어를 보내왔습니다. 고려삼만 먹고 자란 놈이라고 합니다."


아까 곤륜산 석청을 선물로 준비했던 장로 얼굴이 수치심으로 빨개진다. 고려삼만 먹고 자란 자연산 장어는 꼬리만 해도 석청 백 알보다 귀하다.


"무림맹이 교주가 제자를 맞이한 걸 축하하여 소림사의 소환단, 무당파의 무환단, 화산파의 화환단을 보내왔습니다."


함께 복용하면 무공에 입문하지 않은 사람도 삼화취정의 경지로 이르게 한다는 세 영단. 물론,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먹으면 오히려 목숨이 위험하다.


"조만간 날 잡아서 세 영단을 먹고 기해 수련을 시작하자."


나이스. 천마의 선물도 나쁘진 않아.


작가의말

나이겨 PPL 아닙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74 n7******..
    작성일
    19.11.06 19:17
    No. 1

    PPL아니라고 해명하시려면 경쟁사인 아이다써도 본문에 넣어주싶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DarkCull..
    작성일
    19.11.06 19:21
    No. 2

    이런 생생한 현장감이라니!
    추석때 쓰셨군요.

    災冗을 독자들이 못알아 볼까봐 재드래곤으로 쓰신거 같은데 글쇠님 독자들은 어찌 쓰셔도 다 알아 봅니다^^(건축학개론 납땜을 못 알아들은 1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5 사먁티791
    작성일
    19.12.04 13:45
    No. 3

    즐감합니다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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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40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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