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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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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35
추천수 :
885
글자수 :
36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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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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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천마신공

DUMMY

수라포가 허물 벗는 뱀처럼 꿈틀댄다. 벨제붑을 비롯한 다섯 마왕이 수라포 앞을 지킨다. 수라포를 소환한 라룰은 바닥에 주저앉아 입으로 하얀 김을 연신 뿜어낸다.


지옥의 18개 층을 지배하던 아수라를 영원한 죽음으로 몬 수라포. 왜 이런 반갑지 않은 정보는 바로 떠서 사람 불안하게 해.


피할 자신 있냐고 천마한테 묻고 싶지만, 괜히 내 질문에 집중이 깨질까 봐 침묵을 지켰다.


"육도의 끝을 지배하는 자, 인간의 육신에 신의 피가 흐르는 자, 영원의 강을 건너 다신 이 세상에 못 올 자, 지옥의 왕이었던 자."


천마의 주문에 기진맥진하여 바닥에 퍼더버렸던 라룰마저 몸을 벌떡 일으킨다. 라룰의 등장으로 겨우 혈색을 띠었던 루시파의 얼굴이 다시 도화지처럼 하얗게 변했다.


"어, 어떻게 저 주문을?"


"아홉 개의 머리를 이고 천 개의 눈을 한 자, 입에 지옥불을 머금어 세상 모든 것을 태우는 자, 구백구십 개의 손과 여덟 개의 다리를 갖춘 자."


천마의 몸에서 끈적한 기운이 뽑혀 주변 공간을 채운다.


"일곱 마왕이 있고 수라포가 있고 나 천마가 있다. 세 조건을 모두 만족하였으니, 영원한 죽음을 딛고 다시 일어서라. 새로운 지옥의 왕이여."


천마가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수라포를 가리켰다. 뭔가 큰일이 벌어지나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는데, 천마가 손을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어 주문을 완성했다.


"아수라(阿修羅) 발발타(發發陀)."


중절모에 가을 코트 입은 남자의 환영이 얼핏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너무 빨리 사라져서 확신은 못 하겠지만, 왼팔이 없는 듯했다.

달리는 기차에서 떨어진 것처럼 옷이 꽤 해지고 얼굴에도 찰과상이 가득했다.


"후아. 지상의 공기는 언제나 상쾌하군."


다리 여덟에 손이 수백 개. 머리 아홉 개에 눈이 천 개 정도 되는 괴물이 열여덟 개 콧구멍으로 공기를 힘껏 들이켠다. 뱀처럼 꿈틀대며 발사 준비를 하는 수라포는 안중에도 없는 눈치다.


"환영이지? 수라포에 죽은 아수라는 영원히 부활할 수 없는데."


라룰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채근한다.


"부활이 아니다. 새로 태어난 아수라의 왕 발발타다."


천마의 목소리가 조금 피곤하게 느껴진다. 문득 조건부 법술은 정신력 소모가 훨씬 강하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왕간지의 간지신공 역시 조건부 법술이다. 귀의 중이혈에 정확한 꽃을 꽂아야만 펼칠 수 있는 법술이다.


조건이 까다로울수록 펼치기 어렵고 법술의 위력도 강하다고 들었다. 지옥에 거주하는 일곱 마왕, 아수라 등급의 적을 상대할 때에만 소환하는 수라포, 거기에 천마까지 한자리에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니까. 저 발발타가 어마어마한 놈이라는 뜻이겠지?


- 다행이야. 지옥에서 근래 온천 개발을 한답시고 땅을 자꾸 뒤집으며 미세먼지와 유황 연기가 심해진 탓에 마왕들이 지상의 공기를 맡고 싶어하는 경향이 심하다. 덕분에 마왕 수를 맞췄지. 지옥 거주자는 지상에서 본신 위력을 다 끌어낼 수 없기에 라룰이 수라포를 소환했다.


- 그런데 넌 태어난 지 16년이잖아. 그런 네가 왜 주문의 조건에 들어가는데?


- 자웅동체가 된 미래를 담보로 걸었지. 자웅동체는 혼자서도 번식할 수 있잖아. 내가 어머니 아버지 되어 먼 미래에 생길 발발타를 미리 태어나게 했어.


그러니까. 천마가 발발타의 부모가 된다는 뜻인가?


- 그런 거 아니야. 신조의 새끼가 강아지 될 수 있다는 거 잊었어? 신의 영역에 들어가면 인간이 말하는 혈연·학연·지연 따위는 소용없어. 난 그냥 발발타가 세상에 오는 수단이야. 발발타가 세상에 올 운명에 내가 그 수단으로 우연히 선택되었을 뿐이지.


무척 복잡하지만, 이해했으니 다음 문제로 넘어가자.


- 그러니까 이후 네가 이 몸을 차지했을 때, 아무것도 하지 마. 여자나 남자와 교미하는 것뿐이 아니라, 네 생각엔 잘한 일이다 싶어도 하지 마. 알았지?


여기서 남자가 왜 나와.


###


쾅 소리와 함께 수라포가 발사되었다.


- 왜 안 피해?

- 아수라는 혼재 종족이야. 종족이 개인이고 개인이 종족이야. 전대 아수라가 수라포에 죽었잖아. 덕분에 아수라는 수라포에 면역 능력이 생겼어.


그러니까 백신 주사 맞는 거랑 비슷한 이치구나. 전대 아수라왕이 수라포를 맞음으로써 아수라 종족은 수라포 면역이다.


- 그렇다고 해도 굳이 맞아줄 필요 있을까?

- 나한테 해로운 힘은 독이고 나한테 이로운 힘은 약이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는, 전대 아수라왕을 죽일 정도의 힘을 그저 버리는 건 멍청한 짓이지. 발발타는 지금 수라포의 힘을 흡수하는 거야.


"젠장, 튀어."


라룰이 가장 먼저 아비수의 구멍으로 뛰어들었다. 일말의 희망을 품고 발발타가 죽는지 지켜봤는데, 크게 실망했겠지. 벨제붑을 비롯한 다른 마왕들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락으로 향하는 심연의 구멍에 몸을 던졌다.


"유희를 이만 끝내야겠군."


루시파가 허물 벗듯이 머리부터 변했다. 여덟 장의 날개는 여전하지만, 남루한 차림새와 비루한 모습은 사라지고 누가 봐도 우러르고 싶은 멋진 남자가 되었다.


"내 예감이 틀리지 않는다면, 우린 지옥에서 만날 거다. 그때 오늘 진 빚을 꼭 갚겠다."


점점 작아지는 구멍으로 루시파와 발발타가 연이어 투신했다.


"하하. 역시 천마는 천마구나. 비록 네 본신 실력은 아니지만, 발발타를 불러온 건 참 대단한 일이야."


혈마가 짐짓 태연하게 웃는다. 그러나 미세하게 떨리는 볼살이 천마의 눈을 피하진 못했다.


"설마, 뭘 또 준비했어?"


천마나 혈마보다 더 무섭다는 설마. 제발 여기서 끝내자.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지친다.


"우선 네가 여기까지 온 목적을 듣고 싶다."

"너랑 마교에도 좋은 일이야. 너흰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혈마. 설마 내 실력을 못 믿는 건가?"


방금 지옥의 마왕을 쉽게 해치우는 걸 보면서도 나서는 걸 보면 만만치 않은 자겠지?


"발록? 너도 혈마랑 아는 사이야?"


푸른 궁장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여자. 지금까지 내가 본 여자 중에서 가장 이쁘다. 난순이는 저 여자 발을 닦아줄 자격도 없다.


- 정신 차려. 신성을 얻은 자여서 지옥의 마왕보다 더 강하다.


지옥의 마왕은 지상에서 힘을 제대로 못 쓴다. 그러나 발록은 신성을 얻었으나 지상에 머물 자격을 얻었기에 100%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천마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만 명 마교 무사 중 제대로 서 있는 자가 백 명도 안 된다. 서 있는 무사 중 대부분은 여자다.


- 미혼술 같은 거야?

- 신이 되어서도 성별을 버리지 못한 하찮은 신인데, 덕분에 인간한테는 위력이 강하지. 저기 같은 여자도 침을 질질 흘리는 거 좀 봐봐.


서 있는 무사 중에 여자가 많아서 그렇지, 쓰러진 무사 중에도 여자가 적지 않았다.


- 방법 있어?

- 방법? 저따윈 그냥 힘으로 누르면 돼.


우웅 소리가 귀에 연속 울린다. 소리의 근원지가 어딘지 고개를 돌려 확인하고 싶지만, 천마는 차가운 눈으로 발록을 주시하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천마가 자신의 유혹에 전혀 영향을 안 받는 눈치자 발록도 당황한다. 마교 소속들은 억지로 버티는 티가 역력한데 천마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니까.


"호호. 가끔 실력보다 정신력이 훨씬 강한 자들이 있어 버텨내기도 하지. 그러나 이걸 꺼내면 대부분 바닥에 엎드려 엉금엉금 기더라고."


어디서 꺼냈는지 어느새 발록 손에 채찍이 하나 들렸다. 그리고 얼굴에 검은 눈가면이 생겼고, 푸른 복장도 몸에 찰싹 달라붙은 검은 가죽옷으로 변했다.


"날, 날 때려. 힘껏 때려줘."


입에 나뭇가지를 문 신조가 로켓보다 더 빠르게 날아 발록 앞에 내렸다. 발록의 채찍이 더 마음에 드는지 입에 문 나뭇가지를 홱 버리더니 바닥에 퍼더앉아 연신 고개를 조아린다.


찰진 찰싹 소리와 함께 채찍이 신조를 때렸다. 신조는 배를 발라당 까고 드러누워 몸을 미세하게 버둥거렸다.

마약 한 사람이 어떤 표정인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천국을 거니는 듯한 신조와 비슷한 얼굴일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어렵게 버티던 자들도 모두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린다. 심지어 혈마마저 무릎을 꿇은 자세로 발록을 향해 엉금엉금 무릎걸음으로 걸어간다.


"천한 년. 여자 망신은 너 같은 게 다 시키지."


하늘이 쪼개졌다. 쪼개진 하늘에서 빛이 아닌 검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오의(奧義). 실연흑루(失戀黑淚)."


마치 남자와 이별한 후 흘리는 여자의 마스카라 번진 눈물과 같은 검정비가 발록의 몸을 흠뻑 적셨다.


"가뭄을 부르는 하찮은 년에겐 여자의 슬픈 눈물이 쥐약이지."


발록이 고통과 환희에 찬 표정으로 바닥을 뒹굴었다.


작가의말

지옥의 군단장 발록은 불타는 채찍을 든 형상이죠.

실연한 여자의 검은 눈물은 발록에게 쥐약입니다. 여적여는 무림에서도 잘 먹히는 법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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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생방송 20.01.05 173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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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지뢰밭길 20.01.04 140 4 9쪽
80 가시밭길 20.01.03 142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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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진상 20.01.03 140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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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말종의 반격 19.12.28 125 6 9쪽
60 동맹주 19.12.28 124 5 9쪽
59 무마동맹 19.12.27 142 4 9쪽
» 천마신공 19.12.27 144 4 9쪽
57 아비수의 마왕들 19.12.27 149 6 9쪽
56 망나니 강림 +3 19.12.26 144 8 9쪽
55 어마어마한 지원군 +1 19.12.25 154 6 9쪽
54 마교와 전쟁 19.12.24 142 7 9쪽
53 애송이들아 +2 19.12.23 157 8 9쪽
52 대기업 회유 +2 19.12.22 181 7 9쪽
51 독점금지법 +2 19.12.21 179 5 9쪽
50 후원금 +5 19.12.20 171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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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후보자 토론회 +2 19.12.14 176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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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문신 법술 +3 19.12.03 226 5 9쪽
32 천마 감옥에 갇히다 +2 19.12.02 241 5 9쪽
31 범인 검거 +2 19.12.01 213 7 9쪽
30 두 번째 빙의 +3 19.11.30 250 6 9쪽
29 대호법의 활약 +3 19.11.29 252 5 9쪽
28 상거지 만수로 +2 19.11.28 286 8 9쪽
27 첩자 이야기 +2 19.11.27 283 8 9쪽
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39 7 9쪽
25 민폐 천마 +2 19.11.25 282 6 9쪽
24 망나니 천마 +2 19.11.24 308 9 9쪽
23 최악의 16팀 +3 19.11.23 301 9 9쪽
22 노력하는 천마 +2 19.11.22 384 7 9쪽
21 무림맹의 재도발 +5 19.11.21 361 8 9쪽
20 배움은 끝이 없다 +2 19.11.20 375 8 9쪽
19 영혼과 육신 +1 19.11.19 412 9 9쪽
18 첫 경험 +6 19.11.18 522 13 9쪽
17 세상에 이런 일이? +2 19.11.17 417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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