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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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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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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63,122

작성
19.11.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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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그간 천마가 업무를 어떻게 보는지 흥미를 갖고 지켜봤기에 별문제 없이 잘 대처했다. 교주전의 누구도 사람이 바뀐 걸 의심하지 않았다.


"다른 호법들에게도 빨리 복귀하라고 전해라."


왕간지 한 명으론 마음이 안 놓인다. 허수아비는 수비만 잘하는 데다가 천마 사람이라고 확신하기도 어렵고.


"바로 전갈을 보내겠습니다."

"허 대주. 그거 하지 마세요. 기분 엄청 나빠요."


왕간지가 툴툴댄다. 교주전의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여 왕간지 말에 동의했다.


"마교의 유구한 전통이오."

"시대가 바뀌면 전통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왕간지와 입씨름하기 싫은지 허수아비가 무릎을 꿇고 나를 향해 외친다.


"교주. 분부를 내리시면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허수아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왕간지도 부복한다.


"교주. 전갈 대신 비둘기로 하도록 교칙을 바꿀 것을 감히 청합니다. 속도도 비둘기가 더 빠릅니다."


왜 다투는지 몰라 걱정이었는데 다행히도 늦지 않게 정보가 떠오른다.


마교는 척박한 땅에 산다. 먹을 게 적은 만큼 사람도 적다. 문제는 황궁이나 무림맹 세력권에서 죄지은 놈들이 죄 마교로 도망 온다는 것이다.


인재 수급이 여의치 않은 마교는 몰려오는 자들을 무턱대고 거부할 수도 없었다. 결국, 옥석을 가리기 위해 전갈을 보내는 풍습을 만들었다.


교주전에서 사람을 부를 때 독전갈을 보낸다. 죽으면 쓸모없는 입 하나 사라진 거다. 천적이 거의 없는 독전갈이어서 성공률도 비둘기를 비롯한 다른 통신 수단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천마가 마교 교주가 되고 몇 년 사이에 사정이 나아졌다. 처음엔 황제가 은밀히 지원했고, 말종이 황제가 된 후엔 둘밖에 없는 황실 혈통으로 알려져서 황궁 및 무림맹 세력권의 권력자들이 천마에게 줄을 대려고 교역을 예전보다 더 활발히 벌여왔다.


"전갈 대신 비둘기를 보낸다. 그리고 전갈을 보내는 관습을 없앨 것을 안건으로 발의해라."


비록 내 사람은 아니지만, 교주전에 있는 대부분이 기뻐하는 걸 보니 기분이 좋다. 허수아비 역시 자기 의견이 묵살되었음에도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


눈을 뜨자마자 이불을 힘껏 걷어찼다.


어제저녁 인마의 개세 수련을 목적으로 목욕탕을 찾았다. 난순이가 매크로처럼 '목욕 시중을 들까요' 질문했다. 그리고 난 멍청하게 '나가봐라'라고 대답했다.


천마가 매번 똑같이 했기에 나도 모르게 그만.


이 몸의 주인이 내가 아닌 천마라는 자각이 있다. 나 역시 19금 상황을 만들겠다는 건 아니다. 그저 내 주제에 평생 얼굴 마주하기 힘든 미녀랑 오붓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회사에 이쁜 여직원 들어오면 남자들이 일도 열심히 하고 평소보다 좀 더 꾸미기도 하고. 화도 덜 내고.


그게 꼭 상대랑 뭐 어떻게 해보겠다는 게 아니라, 무릎반사처럼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거다.


"사부 똥."


인마를 안고 화장실로 달렸다. 일을 다 본 인마 엉덩이를 물로 깨끗이 씻어줬다. 어제 목욕탕에서 몰래 수련한 결과 물이 조금씩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긴 하는데, 아직은 손으로 해줘야 한다.


간사하게도 개세 수련에 효과를 조금 보자 천마가 늦게 돌아왔으면, 혹은 아예 안 돌아왔으면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가장 좋기는 위급한 상황에 짠 하고 나타나 주는 건데, 내가 그 정도로 운 좋은 놈은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적당한 때에 돌아왔으면 하는 게 내 공식적인 입장이다.


아침을 맛있게 먹고 교주전으로 갔다. 그나저나 새벽 수련을 연속 이틀 빼먹어서 사람들이 의심할까 봐 걱정이다.

추석 후에 이틀 정도 새벽 수련을 쉰 적은 있지만, 그거야 명절 증후군으로 해마다 있던 일이다.


"교주, 축하드립니다."


내가 평소보다 일찍 도착한 탓에 사람이 다 모이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멍 때리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축하 인사를 올린다.


"고맙다."


뭔진 모르지만.


"갑자기 수련을 쉬고 평범하게 걸어 다니는 걸 보면 경지가 한 단계 오를 모양입니다. 작은 깨달음이라도 공유해 주시면 안 될까요."


마음이 약한 난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눈을 반짝이며 기대하는데 감히 거절하지 못했다.


"내가 불러주기 전에 그는 그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다가와 꽃이 되었다."


단어 몇 개 빠진 것 같긴 하지만, 당장 생각나는 게 없는 걸 어떡해.


교주전 곳곳에서 감탄이 터진다. 심지어 몸을 숨기고 있던 자들도 입단속을 못 해 무더기로 기척을 드러냈다.


"교주의 은혜를 영원히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어깨들이 기죽어 등 밀어줄 인상의 왕방울 눈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부복한다. 이런 대접을 처음 받아보니 조금 가슴이 벅차다.


[교주, 드디어 결심을 내린 겁니까?]


36동 동주와 72도 도주는 현령과 같은 존재들이다. 대부분 기간은 지방에 있기에 교주전 회의에 없다. 왕간지는 피곤해서 오늘 쉰다고 휴가를 냈다.


내게 전음을 보낸 건 허수아비였다. 무슨 얘긴지 모르는 나는 그저 작은 미소만 지었다.


[장로회의 견제를 조심하십시오. 방금 있은 일이 곧 장로회에 전해질 거고, 오늘 안으로 뭔가 반응을 보일 겁니다.]


허수아비의 말대로 반응은 곧바로 왔다. 업무가 거의 끝날 때 장로 몇이 사내 둘을 데리고 교주전에 들어섰다.


"교주. 판결이 어려운 일이 생겨서 교주께 부탁하러 왔소."


두 사내 중 하나는 옷도 얼굴도 말끔하고 남은 하나는 피투성이다.


"왼쪽 사내가 다짜고짜로 손찌검했소. 오른쪽 사내가 반격으로 먼저 손찌검한 사내를 피투성이로 만들었소. 지금 교의 재판에 회부하려는데 누굴 가해자로 하고 누굴 피해자로 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오. 우리끼리 결론을 내릴 수 없어 부득이하게 교주를 번거롭게 하기로 했소. 부디 현명한 판단으로 좋은 사례를 만들어주기 바라오."


수많은 정보가 떠오른다. 비록 모든 정보를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이번 사건의 두서는 파악했다.


무림엔 정당방위라는 개념이 없다. 모든 방위가 정당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욕하면 뺨을 때릴 수 있고 침을 뱉으면 다리를 분질러도 된다. 시비를 건 상대가 무기를 들었을 땐 죽여도 무죄로 풀려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건 관습법이다. 무림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온 관습일 뿐 어디에도 명확히 관련 법항을 규정하지 않았다.


마교에서 가장 우선으로 준수해야 할 건 교칙이다. 교칙에 명확한 규정이 없는 경우 황궁의 법을 따르거나 관습법을 따른다. 무림맹이나 마교 세력권 모두 이론적으론 황제의 땅이니까.


'관습법으로 하면 먼저 때린 피투성이가 가해자고 멀쩡한 자가 피해자다. 황궁 법으로 하면 쌍방이다. 교칙대로 하면 피투성이가 피해자고 멀쩡한 자가 가해자다.'


마교의 교칙엔 모든 교도가 형제라는 말이 있다. 복장이나 목에 새긴 불꽃 문신을 보면 둘 다 교도다. 교도끼리 싸울 땐 피해 상황을 최우선으로 따진다. 싸우더라도 큰 다툼으로 번지지 않도록 억제하기 위한 규정이다.


'천마라면 어떻게 결정할까?'


내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다. 왜냐면 난 지금 천마니까. 누구나 천동출이 아닌 천마가 내린 결정으로 여길 것이다.


황궁 세력권에서 태어나고 황실 혈통. 무공은 무림맹 세력권인 명문고 명문대에서 기초를 닦았다.

쌍방으로 하거나 피투성이를 가해자로 하면 가뜩이나 낮은 천마의 지지도가 더 하락할지도 모른다.


'제길. 내가 멋도 모르고 나대는 바람에.'


아까 교주전의 무인들에게 나도 뭔지 모르는 깨달음을 전한 것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장로들이 간을 보려는 거다.


'만약 마교 교칙대로 하면 마교에 야심이 있다고 판단하고 엄청나게 견제하겠지?'


이도 저도 아닌 게 아니라 이도 저도 그도 아니다. 셋 중 어느 답을 선택해도 천마에게 피해가 간다.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일단 아무 소리나 해서 시간이나 벌어야겠다.


읭? 장로들 낯빛이 하얗게 질린다. 갑자기 단체로 빈혈이 왔나? 하필 전부 그날인가?


교주전 양쪽에 시립 한 젊은 층의 얼굴도 살폈다. 하나같이 감탄 혹은 감동한 얼굴이다.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지금 이 상황 나만 궁금하고 이해 안 되는 건가?


"교주의 뜻은 잘 알았소. 연작은 과연 홍학의 뜻을 가늠하기 어렵구려."


문자 좀 쓰지 마. 대학 나왔다고 다 문학 소양이 높은 건 아니야.


장로들이 납덩이처럼 무거운 얼굴로 두 사내를 끌고 교주전을 떠났다. 뒤에 꼼지락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인마가 작은 엄지손가락을 빼 들고 내게 따봉을 날린다.


[교주의 뜻은 과연 천하에 있군요. 이 허당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성심성의로 보필하겠습니다.]


왠지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느낌이다.


작가의말

이 글의 주인공은 도대체 천서출인가 천동출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99 DarkCull..
    작성일
    19.11.10 20:54
    No. 1

    전갈. 뭐지? 하다가 꽤 웃었습니다.

    홍학? 燕雀不知 鴻鵠之志 아닌가요,
    독자의 좁은시각으로 작가님의 큰그림을 놓친거 아닌가 싶네요.
    아! 쓰다보니 동출이의 아리까리한 지식을 보여주기위한...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5 사먁티791
    작성일
    19.12.04 14:03
    No. 2

    마교 친구들 도대체 왜 저런 착각을 하는건지 ㅋㅋ 웃기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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