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조회수 :
41,934
추천수 :
885
글자수 :
363,122

작성
19.12.27 18:00
조회
141
추천
4
글자
9쪽

무마동맹

DUMMY

"소극적 군사동맹을 원한다."


혈마의 말에 천마가 코웃음 쳤다.


"진 놈이 뭔 혓바닥이 이리 길어? 적극적 군사동맹으로 간다."


해가 바뀔 때, 혈마는 석유회사로부터 주주 배당을 받았다. 비록 몇 달 안 되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바람에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 마교 몫으로 온 재물이 적지 않았다.


그 재물로 발록을 매수하여 무림맹 세력권에 가뭄을 내리려는 계획을 짰다. 루시파는 발록을 설득할 조력자인 동시에, 발록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하는 안전 스위치 역할로 모신 거였다.


지옥 마왕의 화신이었던 루시파는 물론, 비록 전투형은 아니어도 신성을 얻어 신의 반열에 든 자를 천마가 '가볍게' 해치우자 혈마는 어쩔 수 없이 협상 테이블을 차렸다.

그러나 전대 교주 때부터 야심을 키워 온 혈마답게 호락호락 끌려오진 않았다.


"분계선을 확실히 긋고 동맹 기간엔 전투를 멈춘다. 서로 영토가 침범받았을 때 상대의 요청에 따라 출병한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우리 동맹의 한계치다. 이보다 더 긴밀한 협력을 하기엔 그간 쌓은 원한이 얕지 않다."


"혈마 귀엽네."


천마가 깐죽대는 말투로 혈마를 긁었다. 그러나 혈마는 천마의 도발을 아예 무시했다.


"마교랑 황궁 사이는 사막과 황무지로 갈라져서 싸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작지. 그런데 혈마가 무림맹과 동맹을 맺어 평화를 이뤘다면 백성은 물론 교도들의 어마어마한 지지를 받겠지? 기름 팔아서 번 돈으로 생활도 풍족해지겠고. 거기에 국 장로가 언론 조작까지 하면 오늘 내가 루시파를 지옥에 보내고 발록을 굴복시킨 일은 없던 것처럼 되겠지?"


소극적 군사동맹은 천마의 잔재를 깡그리 지우고 오늘 패배까지 덮어버릴 수 있는 절묘한 수다. 멍청한 놈이었으면 싸움에서 이기고도 혈마 좋은 노릇만 가뜩 시켜줬겠지.


"천마의 자아는 모두 이렇게 훌륭한가?"


천마는 혈마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넌 그냥 싸움밖에 모르는 멍청한 놈이라고 여겼는데, 보조 자아도 주 자아 못지않게 똑똑하군. 보통은 서로 반대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야."


다 알고 지껄인 건 아니었군. 놈 아니라 년인데.


"어떻게 알았지? 결도 똑같을 텐데."


"비단 천씨의 다중인격이 비밀은 아니잖아. 위기 상황마다 훌륭한 자아가 튀어나와 형세를 바꿔버린 게 한두 번이어야 말이지. 그런데 진짜 천마는 어디 갔어?"


"진짜 가짜가 어딨어. 잘난 모습도 못난 모습도 모두 나인 것을."


가슴이 찌르르 울린다. 천마 말고 내 가슴이.


비록 못난 천동출이지만, 그게 나라는 걸 부정하여선 안 된다. 애써 자신은 평범하다고 위로하면서 거짓된 모습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자신을 부정하면서, 날 둘러싼 세상도 나를 부정했다. 진실한 나로 진실한 세상을 마주하지 않으니 뭔가 계속 어긋나기만 했다.


'누가 날 여기로 보냈는지 모르겠는데, 제발 내가 나로 살 기회 한 번만 주시오.'


내가 생각에 갇혀 파도에 떠밀린 페트병처럼 부침을 거듭하는 사이에도 혈마와 천마의 대화는 이어졌다.


"그래도 똑같지는 않겠지? 진정 원하는 게 뭔지 속 시원히 말하고, 거기에 합당한 대가를 줘. 서로 속이 훤히 보이는 상황에서 쓸데없이 감정 소모만 하지 말고."


"적극적 군사동맹. 누구든 영토가 침범을 받는다면 요청 없이 출병하여 돕는다. 반대로 다른 세력의 영토로 침입할 때, 요청이 있으면 상대 동원 병력의 3할 이상 5할 이하의 병력으로 지원한다. 어때?"


혈마가 눈알을 팽이처럼 빠르게 굴렸다.


"황궁을 때려 말종을 끌어내릴 작정이군. 어린 조카를 황제로 만든 다음 뒤에서 무림을 호령할 생각이겠지?"


"호령은 무슨. 황궁 세력권이 황제 말만으로 돌아가는 곳도 아니고, 인마가 황제 되면 난 서출이어서 아무런 관직도 못 얻어. 그냥 힘만 센 필부일 뿐이지."


"무림맹엔 몰라도 너한텐 정말 득이 되는 동맹이야. 그럼 마교에 뭘 줄 거지?"


나야 망나니의 속셈을 알기에 왜 동맹을 맺으려는지 확실히 안다지만, 몇 마디 대화로 천마의 목적을 비슷하게 꿰뚫은 혈마는 역시 대단한 놈이다. 망나니한테 몸을 양보했으니 망정이지, 내가 직접 혈마와 협상했다면 질질 끌려다니겠지?


천마의 못난 자아로 내심 조롱받으면서.


"분계선 그을 때 여기까지 양보할게."


천마가 지도에 그은 선을 본 혈마가 큰 소리로 웃었다. 강한 무공은 못 익혔지만, 무혈지체인 덕분에 내공이 심후하여 건물 전체가 소리에 따라 몸을 떤다.


"이러면 마교랑 무당이랑 정말 가깝게 붙겠네? 그리고 화산이랑 종남 역시."


천마는 무림맹 세력권의 땅을 가득 양보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별 영양가 없는 땅뿐이다.


실질적으로 사는 사람이 얼마 없어 굳이 무사를 파견하여 지키지도 않는 땅. 마적을 비롯해 범죄자들이 몸을 숨길 때나 찾는 척박한 땅. 마교와 무림맹이 필요에 따라 차지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는 땅.


"쫄리면 뒈지시든가."


천마의 여유 가득한 미소에 혈마가 이마를 찌푸리고 다시 지도를 들여다봤다.


"그렇군."


시파. 유치원도 안 나온 놈들이 왜 이리 똑똑해.


"이러면 강 하나가 우리 영역으로 들어오는구나. 바위로 덮인 땅을 흘러 농사는 못 짓지만, 탱구 운반 비용은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겠군."


딱히 무림맹의 땅이라고 부르기도 무엇한, 농사도 못 짓고 광산도 없는 땅을 주는 대신 적극적 군사동맹을 맺어 황궁 세력권이나 다른 접경 국가를 공격할 때 마교의 군사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다.


"왕중양과 장삼풍은 설득할 자신 있어?"


"루시파랑 발록보다 말이 안 통할까?"


혈마가 코를 찡그린다.


"차라리 원래 대단한 천마가 상대하기 편한 거였군."


"칼을 뽑지 않고도 무기로 쓰는 놈이 있고, 나처럼 뽑아서 휘두르는 게 더 편한 놈도 있지. 그럼 무마동맹을 맺는 거다."


"무마동맹이라니. 마교 영역에서 맺는 동맹이니 당연히 마무동맹이어야지."


###


채 10분도 안 걸린 협상과 달리, 무마동맹이냐 마무동맹이냐로 사흘 싸웠다. 결국, 동맹 조약서를 체결할 때 마교가 보관할 문서는 마무동맹으로 적고 무림맹의 문서는 무마동맹으로 하기로 타협했다.


"다른 목적이 더 있지? 동맹도 체결했고 조약 기간도 10년이나 되니까 솔직히 말해 봐. 뭘 더 노리는 거야?"


혈마가 친근하게 웃으며 천마를 채근한다.


"종교 분쟁."


응? 나도 처음 듣는 말인데.


"다들 무림맹 세력권에서 불교가 도교를 누른다고 생각하지? 실상은 그렇지 않아. 왕중양이 웅크린 바람에 불교가 청교 일맥을 누른 듯 보이지만, 왕중양까지 나서면 도교가 절대적 우위야. 용호파나 모산파도 왕중양을 따라 웅크리고 있거든."


용호산은 도교 발원지로 추정되는 곳이다. 모산파는 강호에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종남파의 단약을 주로 모산파에서 생산한다는 소문이 은밀히 떠돈다.


"장삼풍이 갑자기 강해진 이유가 뭐겠어? 구양진경을 익혀서지. 그럼 구양진경을 누가 장삼풍한테 줬을까?"


설마 왕중양이?


"왕중양(王重陽)은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중양지체야. 좋기만 한 천양지체나 그나마 안정적인 극양지체보다 훨씬 위력이 강한 중양지체. 구음진경과 정말 알맞은 체질이야. 구양진경은 오히려 독이고. 그래서 구양진경을 장삼풍한테 준 거야."


"장삼풍이 나서자 왕중양이 숨어들었구나."


"그래. 원래 팽팽하던 불교와 도교의 균형이 그때부터 조금씩 불교 쪽으로 기울었지. 그러나 왕중양이 전면에 나서면 불교가 다시 밀릴 수밖에 없어."


"마교가 도교와 종교 분쟁이 붙으면 왕중양은 조금씩 실력을 드러낼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불교가 우리랑 동맹을 제안할 수도 있겠군. 우리나 불교나 뿌리가 천축인 건 같으니까."


아주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외래 종교와 토속 신앙의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무림맹의 세 기둥 문파가 종교 분쟁에 빠져들면 어떻게 될까? 똑똑한 놈들은 알아서 나한테 붙겠지. 내가 무림맹의 3할 정도만 장악하면 황궁에 선전포고할 거야."


"그럼 먼저 만만한 나라 하나를 힘을 합쳐 굴복시키는 게 어때?"


"모든 일엔 때가 있는 법. 우리 동맹 소식이 알려지면 주변 국가들이 알아서 움직일 거야. 그때 상황 봐가면서 첫 제물을 고르자고."


그래. 이게 악당들의 대화지. 범생 천마 탓에 내가 마교에 대한 이미지가 꽤 좋게 박혔었는데, 지금 대화를 들으니 찬물을 맞은 느낌이다.


"그럼 낙양에 가서 어떤 자세를 보여야 할지 잘 알겠지?"


"걱정하지 마."


천마와 마교 사절단은 보름달을 머리에 지고 말을 달렸다. 일행에겐 신조를 보내 귀환 명령을 내렸기에 말머리는 낙양이 있는 동쪽으로 곧추 향했다.


작가의말

매일 3개씩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마에 빙의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9 나는 모를 이야기 +9 20.01.06 742 12 11쪽
88 사필귀정 20.01.06 269 6 9쪽
87 저승사자의 손짓 20.01.06 183 5 10쪽
86 경지 상승 20.01.05 163 5 9쪽
85 견제 20.01.05 173 5 9쪽
84 생방송 20.01.05 173 5 9쪽
83 자충수 20.01.04 154 6 9쪽
82 민중의 칼 20.01.04 156 4 9쪽
81 지뢰밭길 20.01.04 140 4 9쪽
80 가시밭길 20.01.03 142 8 9쪽
79 천동출 20.01.03 152 4 9쪽
78 진상 20.01.03 140 5 9쪽
77 성화신의 정체 +2 20.01.02 162 7 9쪽
76 합체와 분리 20.01.02 140 5 9쪽
75 전쟁 20.01.02 153 5 9쪽
74 저지르고 보자 20.01.01 176 4 9쪽
73 정조를 지켜라 20.01.01 199 4 9쪽
72 검사 천동출 20.01.01 154 4 9쪽
71 청천벽력 +2 19.12.31 163 7 9쪽
70 전학생 19.12.31 189 4 9쪽
69 세상이 너무 쉬워 19.12.31 129 6 9쪽
68 생김에 관한 고찰 19.12.30 152 7 9쪽
67 나는 강하다 19.12.30 127 6 9쪽
66 처형식 19.12.30 125 6 9쪽
65 양아치 19.12.29 122 6 9쪽
64 간타자 +1 19.12.29 138 6 9쪽
63 내가 내게? 19.12.29 138 5 9쪽
62 의욕 잃은 망나니 19.12.28 152 8 9쪽
61 말종의 반격 19.12.28 125 6 9쪽
60 동맹주 19.12.28 124 5 9쪽
» 무마동맹 19.12.27 142 4 9쪽
58 천마신공 19.12.27 143 4 9쪽
57 아비수의 마왕들 19.12.27 149 6 9쪽
56 망나니 강림 +3 19.12.26 144 8 9쪽
55 어마어마한 지원군 +1 19.12.25 154 6 9쪽
54 마교와 전쟁 19.12.24 142 7 9쪽
53 애송이들아 +2 19.12.23 157 8 9쪽
52 대기업 회유 +2 19.12.22 181 7 9쪽
51 독점금지법 +2 19.12.21 179 5 9쪽
50 후원금 +5 19.12.20 171 6 9쪽
49 난 진실만 말한다 +2 19.12.19 174 6 9쪽
48 청문회 +2 19.12.18 172 5 9쪽
47 무림맹의 저력 +2 19.12.17 165 7 9쪽
46 비무 대회 +2 19.12.16 187 7 9쪽
45 천마의 대응 +4 19.12.15 187 7 9쪽
44 후보자 토론회 +2 19.12.14 176 7 9쪽
43 영혼 분리 +2 19.12.13 181 7 9쪽
42 공약 +3 19.12.12 220 6 9쪽
41 출마 선언 +2 19.12.11 187 6 9쪽
40 차별에 관하여 +2 19.12.10 221 7 9쪽
39 빙의가 준 계시 +2 19.12.09 268 7 9쪽
38 세 번째 빙의 +2 19.12.08 216 7 9쪽
37 탄핵 +2 19.12.07 202 10 9쪽
36 프리즌 브레이크 +4 19.12.06 218 8 9쪽
35 공청석유 +4 19.12.05 259 5 9쪽
34 십색기 +2 19.12.04 232 9 9쪽
33 문신 법술 +3 19.12.03 226 5 9쪽
32 천마 감옥에 갇히다 +2 19.12.02 241 5 9쪽
31 범인 검거 +2 19.12.01 213 7 9쪽
30 두 번째 빙의 +3 19.11.30 250 6 9쪽
29 대호법의 활약 +3 19.11.29 252 5 9쪽
28 상거지 만수로 +2 19.11.28 286 8 9쪽
27 첩자 이야기 +2 19.11.27 283 8 9쪽
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39 7 9쪽
25 민폐 천마 +2 19.11.25 282 6 9쪽
24 망나니 천마 +2 19.11.24 308 9 9쪽
23 최악의 16팀 +3 19.11.23 301 9 9쪽
22 노력하는 천마 +2 19.11.22 384 7 9쪽
21 무림맹의 재도발 +5 19.11.21 361 8 9쪽
20 배움은 끝이 없다 +2 19.11.20 375 8 9쪽
19 영혼과 육신 +1 19.11.19 412 9 9쪽
18 첫 경험 +6 19.11.18 522 13 9쪽
17 세상에 이런 일이? +2 19.11.17 417 13 9쪽
16 뒷수습 +4 19.11.16 421 12 9쪽
15 말종의 사신 +2 19.11.15 444 14 9쪽
14 엄친아 할아비 +3 19.11.14 467 13 9쪽
13 이호법 +4 19.11.13 486 12 9쪽
12 인재 영입 +3 19.11.12 545 18 9쪽
11 삼호법 +5 19.11.11 575 14 9쪽
10 간 보기 +2 19.11.10 612 13 9쪽
9 내가 천마라니 +3 19.11.09 718 18 9쪽
8 무림맹 +6 19.11.08 808 20 9쪽
7 정치란 말이야 +4 19.11.07 848 25 9쪽
6 보름달이 뜨다 +3 19.11.06 1,051 22 9쪽
5 스카이 캐슬 +3 19.11.05 1,451 27 9쪽
4 제자 돌보기 +2 19.11.04 1,811 32 9쪽
3 별호 짓기 대회 +6 19.11.03 3,099 40 9쪽
2 천마의 신분 +3 19.11.02 5,091 56 9쪽
1 그린 라이트 +10 19.11.01 7,974 74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