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조회수 :
41,967
추천수 :
885
글자수 :
363,122

작성
19.11.19 18:00
조회
412
추천
9
글자
9쪽

영혼과 육신

DUMMY

- '어둠에 홀로 핀 순백의 꽃'으로 검색해.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하는데, 입사 기념으로 생성한 계정이다. 결코 15살 중학교 2학년 때 만든 게 아니라는 점 꼭 명심하길.


계정이 세 개 뜬다. 왜 난 SNS도 유니크하지 못할까.


- 회식 끝나고 절대 걷지 말고 반드시 택시 타든지 대리 부르라고 글 적어줘.


생성 날짜가 최근인 계정을 클릭하고 들어갔다.


- 소용없어. 여긴 토막 세계야.

- 토막 세계?

- 내가 빙의한 사람이 목숨을 마감하는 순간 이 세상은 사라져.


천마가 떠나고도 이 세상은 계속 존재한다. 그러다 빙의된 상대가 사라지면 이 세상도 함께 없어진다.


- 제길. 토막 세상에서라도 행복하게 살자. 박순녀 정도 여자친구면 나도 행복할 수 있어. 결혼까지 바라진 않아. 그냥 짧게 10년 정도 연애만 하자고. 어서 고백해. 어서 고백하라고! 이때의 나라면 고민 없이 받아줄 거야. 성공률 100%를 장담할 수 있어.


천마는 내 의견을 귓등으로 흘리며 SNS 계정을 훑었다. 내가 썼지만, 부끄러운 글이 참 많다.


이때 난 왜 이리도 철들지 못했을까.


- 어? 너한테 빙의한 적 있는데.

내 사진을 보며 천마가 말한다.

- 응? 내가 죽었단 말이야?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 살 의욕이 없다. 기생충처럼 천마에게 빙의해 사는 건 나에 대한 모욕이다. 내 드높은 자긍심은 이런 비참한 삶을 결단코 허락하지 않는다.


세상이여, 이만 안녕.


"순녀 언니, 우리 같이 씻어요."


비록 내 육신은 죽었지만, 영혼은 여전히 굳건하다. 육신의 삶은 끝나도 내 얼과 넋의 여행은 이제 시작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힘겹더라도 계속 살아가자.


"싫어."


육신도 없는데 영혼만 남아서 뭐 하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언니. 등 좀 밀어줘요. 난 팔이 짧아서 등에 손이 안 닿는단 말이에요."


인간을 규정하는 건 육신일까 영혼일까? 만약 육신이라고 하면 태생적으로나 후천적으로 신체 일부를 잃은 사람은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육신이 온전치 않아도 인간이다. 인간의 존재 의의는 영혼에 있다.


난 굳세게 살 것이다.


"내가 밀어줄게. 언니 피곤한가 봐. 교통사고 후유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작가 언니가 그랬어."


안 피곤해. 전혀 안 피곤해. 네가 뭔데 내 영혼까지 죽여? 내 육신은 이미 타서 없는데. 왜 내 영혼마저 갈기갈기 찢는 거야.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삶과 죽음. 육신과 영혼. 고차원적인 문제로 고민했더니 조금 피곤하다.


잠깐. 나한테 빙의했다고? 내 인생에 후회할 만한 일이 있었던가? 평범 그 자체였는데.


- 어느 때로 빙의했는데? 설마 돈가스 사준다고 날 병원에 데려다가 고래 잡았을 때는 아니지?


굳이 찾으라면 어차피 안 쓸 거 아프게 내 살 베어낸 그 일뿐이다.


- 강아지 바로 전에 너한테 빙의했어. 총각으로 죽은 게 한이라면서 여자랑 번식 행위 한 번 하는 게 소원이었어.


제길. 난 그런 소원 품은 적 없어.


- 혼백이라고 하잖아. 혼은 정신적인 부분이 크고 백은 육체적인 부분이 커. 넌 지금 혼이야. 백은 본능에 충실한 것뿐이니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


- 그래서? 성공했어?


- 실패. 고백해서 11번 차이고 클럽은 입장 거부. 교회라는 곳에 가면 여자 사귀기 쉽다고 해서 나갔는데 악마라고 쫓아내더라.


난 구제 불능이구나. 천마마저 속수무책인 천동출이란 이 남자. 탐내는 사람 있으면 공짜로 줘버리고 싶다.


그때 같은 기숙사를 쓰는 두 꼬맹이가 샤워실에서 나온다. 화장이 지워진 앳된 얼굴이 해맑다.


참. 내가 방금 무슨 추태를 보인 거야. 내년에 고등학교 진학하는 애들인데. 더구나 지금은 여자 몸이고.


난 백뿐이 아니라 혼도 더러운 놈이었어.


###


핸드폰을 압수당했다. 어차피 연락할 사람은 오칠밖에 없기에 미련도 없다.


"언니. 인터넷에 우리 연습 영상 유출됐대. 그것 때문에 핸드폰 다 압수한 거야."


강태령. 별명은 나팔 귀.


중3인데 정말 싹싹하다. 이미 제작진 절반은 구워삶았고 특히 작가들과 친하다.


"오늘은 무슨 촬영이지?"

"등급 매기는 거. 최고 A급이고 최하 D급이야. 분량은 A급과 D급이 가장 많아. A 안될 바엔 차라리 D가 나아."


개인 연습생과 작은 회사 연습생들이 박순녀를 중심으로 뭉쳤다. 천마의 눈빛과 카리스마는 어린아이들이 거스르기 힘들다.


굳이 따지면 천마도 중3인데.


"춤이랑 노래를 보여주면 등급 매긴다는 말이지? 그 기준이 뭔데?"

"심사위원마다 다를 거야. 우린 그냥 열심히 하면 돼. 괜히 머리 굴리면 티 나거든."


- 야. 통제권 아직도 못 가져가?


얼마 전 촬영에서 제작진이 천마에게 애교 3종 세트를 요구했다. 늘 도도한 표정에 거칠 것 없는 눈빛을 한 박순녀한테서 반전 매력을 찾아보려는 거겠지.

천마는 할 짓이 못 된다며 내게 육체 통제권을 넘기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 노래 어쩌지?


천마는 유독 노래에 자신이 없었다. 노래 잘하는 사람이 부럽다는 말도 했었고.


- 괜찮아. 춤만 잘 춰도 돼.

- 춤도 배운 적 없는데.

- 다른 애들 하는 거 보고 비슷하게 따라 하면 돼. 혹시 너 아는 무공 중에 춤 비슷한 거 없어?


내가 부지런히 기를 모은 덕분에 박순녀는 처음 촬영장에 왔을 때보다 더 이뻐졌다. 춤과 노래만 어떻게 하면 우승도 가능할 것 같은데.


애교 안 되는 거야 카리스마로 커버하면 되니까.


"다음. '춤신춤왕'에서 온 박정현 연습생."

"안냐세요. 츔씬츔완에서 온 팍쩡혀닙니다. 자 부탁뜨려요."

"교포세요?"

"미쿡서 와써요."

"뭘 보여줄 건가요?"

"돈요 R&B 스따일로 바꿔써요."


와. 귀가 호강한다.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살았단다. 엄마 곰이랑 아빠 곰이랑 아기곰까지.

슬프다. 아빠 곰은 뚱뚱한데 엄마 곰은 자기 먹을 걸 아기곰한테 양보했는지 날씬하단다. 그 와중에 아기곰은 귀엽기까지.


동요가 끝나자마자 박수갈채가 터졌다.


저래서 R&B 요정으로 불렸지. 그러나 이번 오디션에선 중간 즈음에 탈락한다. 발음이 문제고 노래 스타일이 너무 튄다는 이유였다.


"다 좋은데 발음 어쩔 거야. 그리고 목소리도 창법도 너무 튄다. 음색은 참 좋은데. 솔로로 하기엔 긴 가사 다 소화할 수도 없고. 영어 너무 많이 넣으면 이게 한국 노래냐고 사람들이 뭐라 할 거고. 난 C 줄게요."


2년 뒤에 솔로 앨범으로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R&B 요정이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이게 토막 세계가 아니라면 내가 당장 박정현 데려다 키우는 건데. 오디션 탈락하고 소속사인 춤신춤왕에서 방출됐다고 들었다.


"자, 다음은 '신토부리'에서 온 박순녀 연습생."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녹화본 보니까 굉장히 재밌는 친구던데. 패기만큼 실력도 있는지 지켜볼게요."

"부족한 실력이나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재밌어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순하게 생긴 얼굴인데 분위기는 무척 도도하다. 그러나 새침한 스타일이라고 여기기엔 눈동자에 절제된 야성미가 넘실거린다.


"무슨 노래 부를 건가요? 자료 보니 트로트 가수 준비 중이었다던데."

"타령 진호가를 부르겠습니다."


구성진 가락이 박순녀 목청에서 쭉쭉 뽑혀 나간다. 어깨가 절로 덩실거린다. 음정이나 박자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정확하게 부른다.


시각과 청각만 공유받아서 그런지 노래가 유난히 구성지게 들린다.


- 너 노래 못 한다며?

- 무림에서 나보다 잘하는 사람 최소 다섯은 있어.


제길. 5등 밖은 사람도 아니야?


아까 박정현 때만큼 큰 박수가 터졌다.


"잘해. 기술적으로 완벽해. 직접 앞에서 부르지 않았다면 난 로봇인 줄 알았을 거야. 근데 말이지. 그게 다야. 난 박순녀 연습생 노래에서 감정을 하나도 못 느꼈어. 정신 차리라고 D 줍니다."


박정현 때와 마찬가지로 심사위원의 평가는 냉정했다.


- 역시. 예상대로군.

- 일부러 D 받으려고 연기한 거야?

- 진호가는 평생 최고를 바랐지만, 늘 두 번째 자리에서 고통받았던 한 남자의 한을 담은 타령이다. 난 노래 빼고는 모두 최고였기에 이런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없어.


딱 한 분만 C를 줘서 종합평가 D 받았다.


- 춤에선 A 받을 수 있지?

- 무림에서 여자들이 주로 익히는 무공을 펼치면 되겠지?

- 그래. 그런데 우리가 이뤄야 할 목표가 뭔지는 아직도 몰라?


이젠 이뤄야 할 목표를 알려줄 법도 한데 말이지.


- 빙의 전에 미리 알려주는데. 이번엔 빙의한다는 말도 없이 시작했어.

- 아무래도 우승이 목표 아닐까?

- 가능성을 널리 열어두자. 우승에만 집착하다가 오히려 목표를 못 이룰지도 모른다.


천마는 신중한 소녀였다.


작가의말

토막 세계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99 DarkCull..
    작성일
    19.11.19 19:29
    No. 1

    피 안섞인 외국인들은 한국거주 몇년 안돼도 한국말 잘하는데, 몇십년 한국서 돈버는 외국국적 한인들은 발음도 단어구사능력도 ㅠㅠ 비록 한국서 돈 벌어도 본인이 미쿡인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기위해 일부러 그러는지... 실명 거론된 저 여가수가 대표적...몇년전 애국가 부르는거 보고 욕나오던.
    뭐 그렇다고요.(편협한 꼴통 독자)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마에 빙의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9 나는 모를 이야기 +9 20.01.06 742 12 11쪽
88 사필귀정 20.01.06 269 6 9쪽
87 저승사자의 손짓 20.01.06 183 5 10쪽
86 경지 상승 20.01.05 163 5 9쪽
85 견제 20.01.05 173 5 9쪽
84 생방송 20.01.05 173 5 9쪽
83 자충수 20.01.04 154 6 9쪽
82 민중의 칼 20.01.04 156 4 9쪽
81 지뢰밭길 20.01.04 140 4 9쪽
80 가시밭길 20.01.03 142 8 9쪽
79 천동출 20.01.03 152 4 9쪽
78 진상 20.01.03 140 5 9쪽
77 성화신의 정체 +2 20.01.02 162 7 9쪽
76 합체와 분리 20.01.02 140 5 9쪽
75 전쟁 20.01.02 153 5 9쪽
74 저지르고 보자 20.01.01 176 4 9쪽
73 정조를 지켜라 20.01.01 200 4 9쪽
72 검사 천동출 20.01.01 155 4 9쪽
71 청천벽력 +2 19.12.31 163 7 9쪽
70 전학생 19.12.31 190 4 9쪽
69 세상이 너무 쉬워 19.12.31 129 6 9쪽
68 생김에 관한 고찰 19.12.30 152 7 9쪽
67 나는 강하다 19.12.30 127 6 9쪽
66 처형식 19.12.30 125 6 9쪽
65 양아치 19.12.29 123 6 9쪽
64 간타자 +1 19.12.29 138 6 9쪽
63 내가 내게? 19.12.29 139 5 9쪽
62 의욕 잃은 망나니 19.12.28 152 8 9쪽
61 말종의 반격 19.12.28 126 6 9쪽
60 동맹주 19.12.28 124 5 9쪽
59 무마동맹 19.12.27 142 4 9쪽
58 천마신공 19.12.27 144 4 9쪽
57 아비수의 마왕들 19.12.27 149 6 9쪽
56 망나니 강림 +3 19.12.26 144 8 9쪽
55 어마어마한 지원군 +1 19.12.25 154 6 9쪽
54 마교와 전쟁 19.12.24 142 7 9쪽
53 애송이들아 +2 19.12.23 157 8 9쪽
52 대기업 회유 +2 19.12.22 181 7 9쪽
51 독점금지법 +2 19.12.21 179 5 9쪽
50 후원금 +5 19.12.20 171 6 9쪽
49 난 진실만 말한다 +2 19.12.19 174 6 9쪽
48 청문회 +2 19.12.18 173 5 9쪽
47 무림맹의 저력 +2 19.12.17 166 7 9쪽
46 비무 대회 +2 19.12.16 187 7 9쪽
45 천마의 대응 +4 19.12.15 187 7 9쪽
44 후보자 토론회 +2 19.12.14 176 7 9쪽
43 영혼 분리 +2 19.12.13 182 7 9쪽
42 공약 +3 19.12.12 220 6 9쪽
41 출마 선언 +2 19.12.11 187 6 9쪽
40 차별에 관하여 +2 19.12.10 221 7 9쪽
39 빙의가 준 계시 +2 19.12.09 268 7 9쪽
38 세 번째 빙의 +2 19.12.08 216 7 9쪽
37 탄핵 +2 19.12.07 202 10 9쪽
36 프리즌 브레이크 +4 19.12.06 219 8 9쪽
35 공청석유 +4 19.12.05 259 5 9쪽
34 십색기 +2 19.12.04 233 9 9쪽
33 문신 법술 +3 19.12.03 226 5 9쪽
32 천마 감옥에 갇히다 +2 19.12.02 241 5 9쪽
31 범인 검거 +2 19.12.01 213 7 9쪽
30 두 번째 빙의 +3 19.11.30 250 6 9쪽
29 대호법의 활약 +3 19.11.29 252 5 9쪽
28 상거지 만수로 +2 19.11.28 287 8 9쪽
27 첩자 이야기 +2 19.11.27 283 8 9쪽
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40 7 9쪽
25 민폐 천마 +2 19.11.25 283 6 9쪽
24 망나니 천마 +2 19.11.24 308 9 9쪽
23 최악의 16팀 +3 19.11.23 301 9 9쪽
22 노력하는 천마 +2 19.11.22 384 7 9쪽
21 무림맹의 재도발 +5 19.11.21 361 8 9쪽
20 배움은 끝이 없다 +2 19.11.20 375 8 9쪽
» 영혼과 육신 +1 19.11.19 413 9 9쪽
18 첫 경험 +6 19.11.18 522 13 9쪽
17 세상에 이런 일이? +2 19.11.17 418 13 9쪽
16 뒷수습 +4 19.11.16 422 12 9쪽
15 말종의 사신 +2 19.11.15 444 14 9쪽
14 엄친아 할아비 +3 19.11.14 467 13 9쪽
13 이호법 +4 19.11.13 486 12 9쪽
12 인재 영입 +3 19.11.12 546 18 9쪽
11 삼호법 +5 19.11.11 576 14 9쪽
10 간 보기 +2 19.11.10 613 13 9쪽
9 내가 천마라니 +3 19.11.09 719 18 9쪽
8 무림맹 +6 19.11.08 809 20 9쪽
7 정치란 말이야 +4 19.11.07 848 25 9쪽
6 보름달이 뜨다 +3 19.11.06 1,051 22 9쪽
5 스카이 캐슬 +3 19.11.05 1,453 27 9쪽
4 제자 돌보기 +2 19.11.04 1,812 32 9쪽
3 별호 짓기 대회 +6 19.11.03 3,101 40 9쪽
2 천마의 신분 +3 19.11.02 5,093 56 9쪽
1 그린 라이트 +10 19.11.01 7,977 74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