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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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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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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5
글자수 :
36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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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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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삼호법

DUMMY

인마의 손가락 까딱거림에 따라 톡톡 튀는 물방울을 보니 난 평범한 게 아니라 머저리 아닐까 고민된다. 인마는 고작 세 살. 같은 천 씬데 왜 나만 이렇게 모자랄까?


"제자야, 넌 본이 어떻게 되느냐?"

"비단 천씨야."


역시. 나랑은 뿌리가 달랐어. 난 무명 천씨거든. 그래도 삼베 천씨가 아닌 게 어디야.


축 처져서 인마의 수련을 지켜봤다. 낮에 큰 잘못을 한 것 같아 제정신이 아니다 보니 또 '나가봐라'라고 했다. 물론, 지금은 난순이랑 꽁냥꽁냥할 기분도 아니고 그럴 기운조차 없다.


'천마야. 네 몸 보존하고 싶으면 어서 돌아와. 이대로면 난도질당해서 온전한 시신 못 남길 거 같아.'


###


"교주. 무림맹이 광명정 아래서 도발합니다."


대규모로 쳐들어오면 마교와 무림맹의 싸움이 된다. 천마만 나서게 하려고 무림맹이 찔끔찔끔 오는 거다. 무림맹과 장로회가 눈이 맞아 이번 기회에 천마를 어떻게든 치우려 한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조진궁장(鳥盡弓藏).


제갈몽청이 보낸 정보다. 다행히 조진궁장은 몰라도 토사구팽은 알기에 뜻을 이해했다.


개인적으로 천마에게 호감이 있는 막살자랑 아마존은 단체의 수장으로서 함부로 천마 편을 들 수 없다. 특히 아마존은 무림 곳곳에 바지사장을 내세워 거점을 만들고 표국 사업을 하고 있기에 무림맹과 함부로 척지려 하지 않는다.


천마는 마교에서 고립되었다.


인마를 안고 교주전으로 갔다. 의자에 내려놓자 인마는 의자 구석으로 가서 벌러덩 누워버렸다.


난 네가 참 부럽구나.


"교주께 아룁니다. 도발한 무리는 무림맹 현무대 귀갑병입니다."


"제길. 용간지 안 썼으면 흑염룡으로 다 태워버리는 건데."


왕간지가 가슴을 치며 통탄한다. 간지신공은 쿨타임이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용간지를 또 펼칠 수 있지만, 제어에 실패해 중이력이 폭발하면 적군은 물론 아군마저 위험하다.


"교주께서 직접 나서는 건 절대 아니 되옵니다."


정보는 안 떠오르지만, 천마가 예전에 피를 많이 보면 어둠이 깨어난다고 한 적이 있다. 아무래도 왕간지의 중이력처럼 쉽게 폭주하는 위험한 힘을 다루는 것 같다.


"교주. 어서 명을 내려주십시오."


독심술을 익힌 건 아니지만, 왕간지가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에 네가 뭐 어쩌나 보자는 심보가 느껴진다. 저 새끼 얼굴 똑똑히 기억했다가 천마가 돌아오면 일러바쳐야지.


교주전을 쭉 둘러봤다. 낯선 얼굴이 가득 보인다.


내게 호감을 품었을 거로 추정하는 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장로회에서 사상검증을 하고 불순분자들을 도려낸 것 같다.

깨달음을 전해 주고 시를 읊을 때는 분위기 꽤 좋았는데. 지금은 뭘 어떻게 하나 지켜보겠다는 나쁜 심보들이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교주. 노납이 비둘기 받고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보통 키에 단단한 몸매의 사내가 통보도 없이 대청에 뛰어들었다. 노납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스님인가? 근데 왜 달우랑 유니폼이 완전히 다르지?


푸른색과 검은색과 갈색이 불규칙적으로 섞인 옷. 마치 야전군 군복 같은 느낌이다. 가죽 신발엔 기름을 반지르르하게 발랐고 허리띠를 세 개나 찼다.

세 허리띠에는 짧은 검과 비수를 비롯해 뭔지 모를 물건이 주렁주렁 달렸다.


머리에는 속 다 파먹은 수박 껍질을 써서 대머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아, 부처님께 금식 기도를 한다던 삼호법이구나. 체통만 아니면 당장 달려가 와락 끌어안고 뽀뽀라도 해주고 싶다.


"삼호법, 잘 왔다. 현무대는 네게 맡긴다."


삼호법은 오른팔을 들어 손가락 끝을 눈썹에 댔다가 뗐다.


나한테 경례를 올린 삼호법은 바로 출발하지 않고 품에서 병 하나 꺼내 뚜껑을 딴 다음 검은 액체를 손에 쏟아 얼굴에 정성스럽게 발랐다. 얼굴을 새까맣게 한 삼호법은 허리띠에서 작은 막대기를 뽑았다.


막대기를 쭉쭉 당기더니 현무대의 병력 배치를 살폈다. 저게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외눈 망원경이구나.


"섬멸 대상 확인. 현무대 귀갑병 160인."


망원경을 줄여 허리에 찬 삼호법이 사라졌다.


조금 지나 현무대가 어지럽게 뛰어다닌다. 쾅쾅 소리와 슉슉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수류탄 터지듯 쾅쾅거리는 폭발 소리와 소음기 단 권총 쏘는 것처럼 미약한 슉슉 소리 사이에 탕탕 소리가 이따금 섞였다.


정보가 떠오른다.


천룡사 밀덕(謐悳) 스님. 보유한 절기는 폭열공(爆裂功)과 탄지신통(彈指神通) 그리고 일양지(一陽指).

쾅쾅 소리는 폭열공이고 슉슉 소리는 일양지며 탕탕 소리는 탄지신통이다.


'저건 연막공.'

연막(煙幕)공은 살상력이 전혀 없는 무공이다. 살수들이나 익히는 잡술이라고 천대받는데 천룡사 주지인 밀덕 스님은 공들여 익혔다.


밀덕 스님을 중심으로 뭉게뭉게 퍼진 연막에 시야가 가려지자 눈에 정기가 솟는다. 연막공으로 퍼뜨린 연기를 뚫고 안에 상황이 또렷하게 보인다.


이거 어떻게 한 거지? 왜 이건 되는데 날아다니는 건 안 될까?


허리띠에서 비수를 뽑은 밀덕이 귀갑병에게 접근한다. 뒤나 옆으로 가는 게 아니라 정면이다. 파랗게 빛나는 밀덕 스님의 눈을 보니 새로운 정보가 떠오른다.


야시공(夜視功). 어두운 밤에도 대낮처럼 보게 해주는 무공으로 역시 잡술로 취급받는다.


정면보다 뒤나 곁을 더 주시하던 귀갑병은 대놓고 앞으로 접근한 밀덕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밀덕의 비수는 갑옷에 박힌 다음 쾅 터졌다.

폭열공에 당한 귀갑병의 귀갑에 실금이 갔다.


폭열공 소리에 가까운 귀갑병들이 몰려왔다. 이들은 귀갑을 믿고 무기를 마구 휘둘렀다. 같은 편을 공격해도 다치게 할 가능성이 없기에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밀덕은 바닥을 기어 소란의 현장을 떠나 다음 목표를 공격했다. 160명이나 되는 귀갑대가 밀덕에게 끌려 우왕좌왕한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삼호법을 두고 하는 말이지."

왕간지도 연막공을 뚫고 전투를 구경하고 있었다.

"스승인 람보(藍菩)를 뛰어넘었어."


청출어람의 람이 람보를 말하는 거였구나.


"그런데 왜 귀갑만 파괴하고 죽이지 않지? 나야 중이력을 아껴야 해서 싸움을 빨리 끝내느라 늘 적을 살려둔다지만, 삼호법은 안 죽이려고 위력을 조절하는 게 오히려 어렵잖아."


삼호법의 싸움을 지켜보던 왕간지가 혼자 중얼거렸다.


귀갑병은 귀갑 의존도가 높다. 귀갑만 파괴해도 전투력을 대부분 상실하기에 죽일 필요가 없다. 무림맹이 너무 약해져서 황궁에 흡수될 것을 걱정한 밀덕 스님은 수고를 무릅쓰고 힘을 조절하여 귀갑만 파괴하는 것이다.

비록 귀갑병은 귀갑이 90%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잘 훈련된 귀갑병 역시 귀한 존재니까.


잠깐만. 뭔가 어마어마한 게 떠오른다.


무림맹은 천마가 황제 될까 봐 걱정하며 말종을 보호한다. 천마는 마교에서 왕따 비슷한 존재고 무림맹이 약해져서 황궁에 흡수될까 봐 걱정이다. 황궁은 무림맹하고 마교가 싸우다 약해지기만 바란다.


각자 속셈이 확실하다.


그러나. 혹시나. 만약에. 황태자 아들이 마교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좀 더 철학적인 사고를 이어가려고 하는데 전황에 큰 변화가 생겼다.


"멍청이들이 귀갑진을 펼쳤다."

귀갑진으로 뭉친 귀갑병들은 서로 보호하며 사각을 없앴다. 각개격파할 틈이 사라졌다.


그러나 걱정할 틈도 없이 밀덕 스님이 필살기를 펼쳤다.


"융단폭격(融團爆擊)."

합칠 융에 뭉칠 단. 밀집한 상대를 강하게 때리는 폭열공 절초 융단폭격. 원래 사호법이었던 밀덕이 융단폭격을 연성한 덕분에 삼호법이 되었다.

왕간지는 사호법이 되면서 죽을 사가 앞에 붙었다며 오히려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단단하기로 유명한 귀갑이 잘 반죽한 밀가루처럼 출렁였다. 금속이 흐물대는 장면은 나도 처음이다. 영화에서 CG로 연출한 거 빼면.


실제로 보니 영화 CG보다 백 배는 멋지다.


저런 강한 무공을 여럿 가르치면 무림 통일이 코앞일 것 같지만, 폭열공을 익히다 실패하면 열폭으로 죽는다. 람보의 제자 수천 명 중 밀덕만 살아남았다.


"몸을 가볍게 해라."


조금이라도 빨리 도망치려고 현무대 대원들은 투구와 갑옷을 던지며 도망쳤다.


"가서 귀갑 잔해를 수습해라. 녹여서 호미나 낫 등을 만들어 농사짓는 백성에게 나눠줘라."

"분부 받들겠습니다."


아무 조짐도 없이 아까 사라졌던 자리에 밀덕이 나타났다. 엄청난 전투를 겪었음에도 머리에 쓴 수박 껍질은 작은 흠도 나지 않았다.


"삼호법 밀덕. 임무 충실히 완수하고 무사히 귀환했음을 신고합니다."

"고생했다. 뭐 원하는 거 있으면 말해보도록."

"명장 나포래(羅布來) 옹(翁 - 어르신)께서 검을 닦던 천이 창고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포상으로 주시면 휴가 반납하고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허락한다."


밀덕은 취향이 확실한 스님이었다.


작가의말

검색해보니 무명천과 삼베의 가격대가 비슷하더군요. 그래도 전 무명천이 삼베보단 고급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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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경지 상승 20.01.05 163 5 9쪽
85 견제 20.01.05 173 5 9쪽
84 생방송 20.01.05 173 5 9쪽
83 자충수 20.01.04 154 6 9쪽
82 민중의 칼 20.01.04 156 4 9쪽
81 지뢰밭길 20.01.04 140 4 9쪽
80 가시밭길 20.01.03 142 8 9쪽
79 천동출 20.01.03 152 4 9쪽
78 진상 20.01.03 140 5 9쪽
77 성화신의 정체 +2 20.01.02 162 7 9쪽
76 합체와 분리 20.01.02 140 5 9쪽
75 전쟁 20.01.02 153 5 9쪽
74 저지르고 보자 20.01.01 176 4 9쪽
73 정조를 지켜라 20.01.01 200 4 9쪽
72 검사 천동출 20.01.01 155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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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나는 강하다 19.12.30 127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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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내가 내게? 19.12.29 139 5 9쪽
62 의욕 잃은 망나니 19.12.28 152 8 9쪽
61 말종의 반격 19.12.28 126 6 9쪽
60 동맹주 19.12.28 124 5 9쪽
59 무마동맹 19.12.27 142 4 9쪽
58 천마신공 19.12.27 144 4 9쪽
57 아비수의 마왕들 19.12.27 149 6 9쪽
56 망나니 강림 +3 19.12.26 144 8 9쪽
55 어마어마한 지원군 +1 19.12.25 154 6 9쪽
54 마교와 전쟁 19.12.24 142 7 9쪽
53 애송이들아 +2 19.12.23 157 8 9쪽
52 대기업 회유 +2 19.12.22 181 7 9쪽
51 독점금지법 +2 19.12.21 179 5 9쪽
50 후원금 +5 19.12.20 171 6 9쪽
49 난 진실만 말한다 +2 19.12.19 174 6 9쪽
48 청문회 +2 19.12.18 173 5 9쪽
47 무림맹의 저력 +2 19.12.17 166 7 9쪽
46 비무 대회 +2 19.12.16 187 7 9쪽
45 천마의 대응 +4 19.12.15 187 7 9쪽
44 후보자 토론회 +2 19.12.14 176 7 9쪽
43 영혼 분리 +2 19.12.13 182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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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출마 선언 +2 19.12.11 187 6 9쪽
40 차별에 관하여 +2 19.12.10 221 7 9쪽
39 빙의가 준 계시 +2 19.12.09 268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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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십색기 +2 19.12.04 233 9 9쪽
33 문신 법술 +3 19.12.03 226 5 9쪽
32 천마 감옥에 갇히다 +2 19.12.02 241 5 9쪽
31 범인 검거 +2 19.12.01 213 7 9쪽
30 두 번째 빙의 +3 19.11.30 250 6 9쪽
29 대호법의 활약 +3 19.11.29 252 5 9쪽
28 상거지 만수로 +2 19.11.28 287 8 9쪽
27 첩자 이야기 +2 19.11.27 283 8 9쪽
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40 7 9쪽
25 민폐 천마 +2 19.11.25 283 6 9쪽
24 망나니 천마 +2 19.11.24 308 9 9쪽
23 최악의 16팀 +3 19.11.23 301 9 9쪽
22 노력하는 천마 +2 19.11.22 384 7 9쪽
21 무림맹의 재도발 +5 19.11.21 361 8 9쪽
20 배움은 끝이 없다 +2 19.11.20 375 8 9쪽
19 영혼과 육신 +1 19.11.19 412 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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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뒷수습 +4 19.11.16 422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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