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조회수 :
41,988
추천수 :
885
글자수 :
363,122

작성
19.12.27 18:00
조회
149
추천
6
글자
9쪽

아비수의 마왕들

DUMMY

루시파가 펼친 아비수 소환 법술로 바닥에 무저갱이 생겼다. 불길해 보이는 검은 기운을 마구 뿜어내는 구덩이에서 날개 달린 해골 뱀이 기어 나왔다.


특이한 점은, 가랑이로 추정되는 곳에 불타는 공이 이글거린다는 것이다.


"네가 천마라는 애송이냐?"


아비수에서 기어 나온 해골 뱀이 입을 열어 질문했다.


"넌 사마천? 어떻게 아직도 안 죽었지? 동방삭이랑 동시대 인물이잖아."


"난 이젠 사마엘이다. 한무제 잡놈에게 복수하려고 지옥에서 돌아왔다."


- 한무제랑 무슨 원한인데?

- 한무제한테 궁형 당했어. 요즘은 인권 어쩌고 하면서 불알만 제거하지만, 저 때는 막대기까지 잘랐거든.


정보가 뒤늦게 떠오른다.


무림에서 사기꾼의 조상으로 불리는 사마천. 그가 쓴 '사기'는 지금도 사기꾼 지망생들의 필독서다. 사기의 A to Z이고 사기의 바이블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49세 되던 해에 사기조장죄로 잡혔고, 벌금을 물지 못해 궁형에 처했다.


"계약에 따라 너만 해치우면 지상에 머물며 한무제의 후손을 일일이 찾아 다 죽일 수 있겠구나. 내 공격을 받아라."


갑자기 사마엘에게 팔과 다리가 자라났다. 물론, 살은 없고 뼈만.


왼손엔 검을 잡고 오른손엔 화살을 잡은 사마엘이 날개를 펄럭여 몸을 허공에 띄웠다.


"엔젤 오브 데스."


검과 화살을 십자로 교차한 사마엘이 천축어로 외쳤다. 악마는 십자가를 두려워하는 거 아니었어?


- 야, 저거 무슨 뜻이야?


망나니는 천축어에 약하구나.


- 죽음의 천사라는 말이야.


"생성. 선악과(善惡果)."


허공에 보기만 해도 탐스러운 빨간 사과가 나타났다. 코끝을 스치기만 해도 설레는 달곰한 향이 마음을 간질인다.


입에 침이 고인다. 목이 바짝 타들어 간다. 위가 배고프다고 요동친다. 창자가 빨리 먹으라고 칭얼댄다.


"먹어. 어서 먹어."


후릅. 망나니가 침을 삼킨다. 무슨 수작인지 까마귀 목청보다 듣기 싫던 뱀의 목소리가 진한 꿀물보다 더 달게 느껴진다.


- 야, 안돼. 백설 공주도 저거 먹고 죽을 뻔했어.

- 나 천마야. 만독불침이라고.


독을 걱정하는 게 아니잖아.


망나니가 앞으로 한 걸음 나갔다. 뼈밖에 없는 뱀 얼굴이지만, 득의에 찬 간사한 미소가 보이는 것 같다.


- 야, 자세히 봐봐. 누가 이미 한입 먹었어. 황실 혈통에 마교 교주를 역임했고 현 무림맹주인 천마가 먹다 버린 음식 먹어야겠어?


사과에 접근하던 망나니 몸이 멈췄다.


"아하. 누가 먼저 먹었다고 화난 거야? 이거 일부러 그런 거야. 어떤 세상에선 멀쩡한 사과보다 저렇게 한입 떼먹은 사과가 수백 배 비싸거든."


"저걸 먹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지?"


입에 고였던 침이 사라지고 목마름도 없어졌다. 위와 창자도 얌전히 휴식에 들어갔다. 사마엘이 당황한 듯 몸을 살짝 떤다.


"얼굴이 잘생겨져."


"이 얼굴보다?"


사마엘의 뼈밖에 없는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떠오른다.


"키가 자라."


"인간의 운동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키와 비율이야."


"남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약간 흐리던 시야가 설산에서 흘러내린 물보다 더 맑게 변했다. 사마엘의 법술에 현혹되었던 망나니가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


"고골흡수(敲骨吸髓)."


천마의 몸에서 검은 그림자 수십 개가 날아가 사마엘의 몸을 두드린다. 망친지 도낀지 헷갈리게 하는 무기로 해골 뱀의 몸 전체를 두드렸다.


속이는 재주밖에 없는지, 선악과의 유혹이 실패하자 사마엘은 꼼짝도 못 하고 천마의 공격에 뼈가 바스러졌다.


"멸치 많이 먹어. 너 골다공증인 거 같다."


오래된 뼈여서 그런지 곧잘 부서졌다. 팍팍 튀는 뼛가루를 보노라니 겨울 낚시가 생각난다. 얼음에 구멍 뚫을 때도 저렇게 흰 가루가 멋지게 튀었는데.


"제길. 남자는 절대 못 버틸 유혹인데."


세 토막이 된 사마엘이 울분에 차서 소리쳤다.


네 실책은 천마의 정체를 몰랐다는 거지. 지금은 모범생 천마가 아니라 여성체인 망나니 천마거든. 가슴이 커진다거나 피부가 고와진다고 했으면 성공했을지도 몰라.


###


당황한 루시파가 손가락을 깨문다. 세게 문 것도 같지 않은데, 가는 손가락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루시파의 피는 자석에 끌린 쇳가루처럼 허공을 날아 아비수로 흘러갔다.


- 야, 다음 공격이 오기 전에 루시파를 해치워.

- 잠깐. 지금은 반성할 시간이야. 범생이라면 선악과의 유혹에 안 넘어갔을 거야. 그간 빙의로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제길. 상대의 변신을 기다려주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는데.


- 범생이 몸의 주인이 된 게 이해가 돼. 이 큰 그릇을 가득 채우려면 범생의 재능이 필수겠지.


아비수의 구멍이 점점 확장한다. 이러다 천마도 나락에 떨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 그러나 힘의 제어는 내가 훨씬 나아. 언젠간 그릇이 완성되면 이 몸은 내가 차지하는 게 합리적이야. 자웅동체가 되면 거부감도 덜할 테니까 위력도 범생보다 강할 거야. 기생충, 어때? 내가 이 몸의 진정한 주인이 되게 도우면 네 소원 다 들어줄게.


- 일단 첫 번째 소원. 어서 루시파를 해치워.


그때, 털이 가득 난 다리가 불쑥 나와서 구멍 가장자리를 짚었다. 너무 커서 확신하긴 힘들지만, 털 모양으로 봐선 곤충이 유력하다.


"벨제붑, 지옥의 지배자이자 파리의 왕인 내 형제여. 계약을 완수하면 지상에 머무를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겠다."


아니나 다를까. 대형 여객선 크기의 커다란 파리가 아비수에서 기어 나왔다. 날개에 커다란 해골 문신이 있다.


힙합 하는 파린가?


그러나, 밖으로 나온 벨제붑은 바로 천마를 공격하지 않았다. 파리의 표정은 읽기 어렵지만, 아무래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하하. 아자젤 너도 내 부름에 응했구나. 지옥의 삭풍을 다스리는 추락천사여."


커다란 파리 때문에 미처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는데, 어느새 산양 얼굴에 인간의 몸을 한 악마가 벨제붑 곁에 서 있었다.

몸 주변에서 유령처럼 희끄무레한 바람이 맴도는데, 보기만 해도 오줌이 마렵다.


"둘이 힘을 합쳐야 할 정도로 대단한 적인가?"


의외로 아자젤의 목소리는 변성기 전 소년의 목소리처럼 부드럽고 맑았다.


"사마엘이 당했다."


"오는 길에 봤다. 세 토막이 돼서 허둥지둥 자기 둥지로 도망치더군. 그러나 사마엘은 유혹에만 능한 자. 정신력이 강한 놈을 만나면 의외로 쉽게 패배하지."


그때, 아비수에서 온몸이 비늘로 덮인 악마가 기어 나왔다. 등에 낫 모양의 날개를 달았는데 다리가 유달리 굵다.


"오, 너도 왔구나. 메뚜기의 왕이자 종말의 예고자 아바돈이여."


아바돈 주변엔 전갈 꼬리에 금관을 쓴 메뚜기가 가득했다.


"벨리알도 왔다."


아바돈이 탈곡기 돌아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바돈을 둘러싼 메뚜기에 가려졌던 벨리알이 모습을 드러냈다. 외모만 보면 악마라기보단 천사라고 하는 게 맞다. 품위가 넘치고 표정이 고상하다.


"최고의 타락천사인 벨리알. 그대가 부름에 응해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사마엘이 당할 때부터 쪼그라들었던 루시파의 어깨가 점점 펴진다.


"이런 자리에 나도 빠질 수 없지. 오랜만에 맡는 상쾌한 지상의 공기를 포기하면 마스테마가 아니지."


"이런. 악마마저 타락시킨다는 유혹의 천사 마스테마. 사마엘의 부재로 조금 걱정했는데, 와줘서 고맙다."


"하하. 원래 응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분이 오시는 바람에 나도 따라온 거야."


마스테마의 말에 루시파가 몸을 떨었다.


"그분이라면 설마?"


"맞아. 날개 잃은 천사 라룰께서 너의 계약에 응했다."


마스테마의 말에 루시파는 물론 남은 네 악마도 몸을 떨었다.


- 뭐야? 더 센 놈이 오는 거야?

- 걱정하지 마. 나 천마야.


하늘에 먹장구름이 짙게 드리운다. 바람이 질서 없이 동서남북에서 마구 불어온다. 빛도 빨아들이는 새까만 아비수의 구멍이 마라톤 선수의 심장처럼 수축과 팽창을 빠르게 반복한다.


이번에 나타난 남자는 평범했다. 검은 털옷을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그냥 철 지난 멋을 부리는 아싸 아재와 같은 느낌.


그러나 지옥에서 저런 평범함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무시무시한 자인지 추측할 수 있지.


"날개 잃은 천사, 수라포의 주인, 빚 천사로 불리는 음신 라룰께서 와주시다니, 영광입니다."


"계약 내용을 완수하면 내 빚 대신 갚아줄 거지?"

"아무렴요. 이 루시파가 돈은 없지만, 친구는 많습니다."


악마들이 몸을 조금씩 움직여 라룰을 에워쌌다. 빙의해 있을 때 미각이나 촉각 등은 100% 전달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여섯 악마가 쏘아내는 살기로 온몸이 찌릿찌릿한 게 여실히 느껴진다.


"자, 한 방에 가자. 수라(修羅)! 포(砲)!"


여기 숨 쉬는 이 시간은···


지옥의 왕이었던 아수라를 부활 여지도 없이 죽였다는 수라포가 지상에 첫 모습을 드러냈다.


작가의말

사마엘 가랑이에서 불타는 공은 파이어볼입니다. 사마엘은 복수를 위해 지옥에서 돌아온 파이어 볼러 컨셉입니다.


라룰은 누군지 대충 짐작 가시겠죠? 3! 4!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마에 빙의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9 나는 모를 이야기 +9 20.01.06 742 12 11쪽
88 사필귀정 20.01.06 270 6 9쪽
87 저승사자의 손짓 20.01.06 183 5 10쪽
86 경지 상승 20.01.05 163 5 9쪽
85 견제 20.01.05 173 5 9쪽
84 생방송 20.01.05 173 5 9쪽
83 자충수 20.01.04 154 6 9쪽
82 민중의 칼 20.01.04 156 4 9쪽
81 지뢰밭길 20.01.04 141 4 9쪽
80 가시밭길 20.01.03 142 8 9쪽
79 천동출 20.01.03 152 4 9쪽
78 진상 20.01.03 140 5 9쪽
77 성화신의 정체 +2 20.01.02 162 7 9쪽
76 합체와 분리 20.01.02 140 5 9쪽
75 전쟁 20.01.02 153 5 9쪽
74 저지르고 보자 20.01.01 176 4 9쪽
73 정조를 지켜라 20.01.01 200 4 9쪽
72 검사 천동출 20.01.01 155 4 9쪽
71 청천벽력 +2 19.12.31 164 7 9쪽
70 전학생 19.12.31 190 4 9쪽
69 세상이 너무 쉬워 19.12.31 129 6 9쪽
68 생김에 관한 고찰 19.12.30 152 7 9쪽
67 나는 강하다 19.12.30 128 6 9쪽
66 처형식 19.12.30 125 6 9쪽
65 양아치 19.12.29 123 6 9쪽
64 간타자 +1 19.12.29 138 6 9쪽
63 내가 내게? 19.12.29 139 5 9쪽
62 의욕 잃은 망나니 19.12.28 152 8 9쪽
61 말종의 반격 19.12.28 126 6 9쪽
60 동맹주 19.12.28 124 5 9쪽
59 무마동맹 19.12.27 142 4 9쪽
58 천마신공 19.12.27 144 4 9쪽
» 아비수의 마왕들 19.12.27 150 6 9쪽
56 망나니 강림 +3 19.12.26 144 8 9쪽
55 어마어마한 지원군 +1 19.12.25 154 6 9쪽
54 마교와 전쟁 19.12.24 143 7 9쪽
53 애송이들아 +2 19.12.23 157 8 9쪽
52 대기업 회유 +2 19.12.22 181 7 9쪽
51 독점금지법 +2 19.12.21 180 5 9쪽
50 후원금 +5 19.12.20 172 6 9쪽
49 난 진실만 말한다 +2 19.12.19 175 6 9쪽
48 청문회 +2 19.12.18 173 5 9쪽
47 무림맹의 저력 +2 19.12.17 166 7 9쪽
46 비무 대회 +2 19.12.16 188 7 9쪽
45 천마의 대응 +4 19.12.15 187 7 9쪽
44 후보자 토론회 +2 19.12.14 176 7 9쪽
43 영혼 분리 +2 19.12.13 182 7 9쪽
42 공약 +3 19.12.12 220 6 9쪽
41 출마 선언 +2 19.12.11 187 6 9쪽
40 차별에 관하여 +2 19.12.10 221 7 9쪽
39 빙의가 준 계시 +2 19.12.09 269 7 9쪽
38 세 번째 빙의 +2 19.12.08 216 7 9쪽
37 탄핵 +2 19.12.07 202 10 9쪽
36 프리즌 브레이크 +4 19.12.06 219 8 9쪽
35 공청석유 +4 19.12.05 260 5 9쪽
34 십색기 +2 19.12.04 233 9 9쪽
33 문신 법술 +3 19.12.03 226 5 9쪽
32 천마 감옥에 갇히다 +2 19.12.02 241 5 9쪽
31 범인 검거 +2 19.12.01 213 7 9쪽
30 두 번째 빙의 +3 19.11.30 250 6 9쪽
29 대호법의 활약 +3 19.11.29 253 5 9쪽
28 상거지 만수로 +2 19.11.28 288 8 9쪽
27 첩자 이야기 +2 19.11.27 283 8 9쪽
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40 7 9쪽
25 민폐 천마 +2 19.11.25 283 6 9쪽
24 망나니 천마 +2 19.11.24 309 9 9쪽
23 최악의 16팀 +3 19.11.23 301 9 9쪽
22 노력하는 천마 +2 19.11.22 384 7 9쪽
21 무림맹의 재도발 +5 19.11.21 361 8 9쪽
20 배움은 끝이 없다 +2 19.11.20 376 8 9쪽
19 영혼과 육신 +1 19.11.19 413 9 9쪽
18 첫 경험 +6 19.11.18 523 13 9쪽
17 세상에 이런 일이? +2 19.11.17 418 13 9쪽
16 뒷수습 +4 19.11.16 422 12 9쪽
15 말종의 사신 +2 19.11.15 444 14 9쪽
14 엄친아 할아비 +3 19.11.14 467 13 9쪽
13 이호법 +4 19.11.13 486 12 9쪽
12 인재 영입 +3 19.11.12 546 18 9쪽
11 삼호법 +5 19.11.11 576 14 9쪽
10 간 보기 +2 19.11.10 613 13 9쪽
9 내가 천마라니 +3 19.11.09 719 18 9쪽
8 무림맹 +6 19.11.08 809 20 9쪽
7 정치란 말이야 +4 19.11.07 848 25 9쪽
6 보름달이 뜨다 +3 19.11.06 1,052 22 9쪽
5 스카이 캐슬 +3 19.11.05 1,453 27 9쪽
4 제자 돌보기 +2 19.11.04 1,812 32 9쪽
3 별호 짓기 대회 +6 19.11.03 3,102 40 9쪽
2 천마의 신분 +3 19.11.02 5,094 56 9쪽
1 그린 라이트 +10 19.11.01 7,978 74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