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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조회수 :
41,949
추천수 :
885
글자수 :
363,122

작성
19.11.25 18:00
조회
282
추천
6
글자
9쪽

민폐 천마

DUMMY

"쟤 뭐야!"


살짝 깔아 내린 눈빛은 이를 데 없이 고혹하다. 작은 몸짓에도 색기가 철철 넘친다. 골반이 모터라도 달린 것처럼 어마어마한 속도로 흔들린다. 자신의 몸 여기저기 쓰다듬는 손길에 남자나 여자나 모두 야릇한 상상에 빠진다.


- 쟤 뭐야?


나도 똑같은 질문을 떠올렸다.


- 뭐긴. 지금까진 자신이 야하게 보일까 봐 신경 쓰여 박자 자꾸 놓쳤던 거지. 놓친 박자를 억지로 만회하려다 보니 춤이 꼬였고. 다 내려놓으니까 잠재력 나오네. 저거 무림에도 몇 없는 패왕색인데.


패왕색(覇王色).

패왕지체를 타고난 자만 쓸 수 있는 기술. 전장에서 아군의 사기를 고취하고 적군 기세를 누르는 용도로 쓰이며 초패왕 항우가 가장 먼저 보여줬다.

최근엔 나폴래 옹이 패왕색을 연마해내고 명장 반열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렸다.


"닥쳐! 다 부숴버릴 거야!"


동문탁의 보컬 역시 흠잡을 데 없다. 원곡자가 녹음 후 성대가 망가진 바람에 단 한 번도 라이브를 해본 적 없다는 제주도 푸른 밤 후렴구를 멋지게 소화했다.


후렴은 밤이 되어 푸른 달이 뜨자 아르바이트생이 변신하여 모든 걸 찢어발기는 내용이었다. 아현이 가사에 따라 옷 찢는 시늉을 할 때마다 무대 아래서 탄식이 터진다.


찢을까 봐 걱정인지 안 찢어서 실망한 건지. 후자에 변강쇠 고환 하나 건다.


후렴이 끝나자마자 박순녀가 발을 쿵 굴렀다. 무대 감독이 약속을 잊지 않고 조명을 껐다. 미혼술 효과 오래 가는구나.


옆 부스에서 비명이 커다랗게 들려온다. 자기 차례가 오길 기다리며 모니터로 무대를 지켜보던 연습생들이 가식적인 리액션 말고 진심을 듬뿍 담아 놀란 소리를 질러댔다.


유일과 유아이 옷이 바뀌었고 동문탁과 아현의 옷이 바뀌었다. 그리고 유일과 동문탁 위치도 바뀌었다. 2초 사이에 해낼 일이 절대 아니다.


2절 도입부는 푸른 달이 원숭이 엉덩이처럼 빨개졌다는 내용이다. 원래부터 가창력에 자신 있는 아현인데 춤까지 폭발해 버리니 도입부가 클라이맥스 느낌이 난다.


무대 아래서 사람들이 팔을 흔들며 미친 듯이 소리 지른다.


도입부가 끝나고 박순녀가 발을 굴렀다. 암전되었다. 모두 기대에 찬 눈으로 조명이 켜지길 기다린다.


조명이 회복하고 비명이 터졌다.


옷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유아이와 아현의 위치가 바뀌었다. 그리고 넷의 헤어 스타일이 바뀌었다.


유일과 유아이가 랩을 한다. 한두 마디씩 주고받으며 뱉은 랩은 두꺼운 사운드를 뚫고 무대 아래에 전해졌다.


랩이 끝나고 박순녀가 발을 굴렀다. 다시 조명이 들어왔을 때 다섯이 한 줄로 섰다.


마무리를 담당한 박순녀를 제외한 남은 넷이 헤드뱅잉 했다.


"푸른 달에 원귀가 구슬피 울고 붉은 달에 악귀가 날뛴다."

"피에 미친 하얀 까마귀들이 꽁지 세우고 춤을 추노니."

"달이 창백하게 비추는 땅에 삭풍이 불어와 죽음을 흩날린다."

"세찬 비와 차가운 눈보라가 내 눈을 가리려 하니."

"동산에서 머리 내밀어 비추려던 해가 고개 돌려 떠난다."


###


"언니. 남은 15팀 모두 재녹화한대요."


그날. 어마어마한 무대를 보고 주눅이 든 다른 팀은 실수를 연발했다. 점수는 그날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고 방송에 내보낼 분량이라도 확보하려고 부랴부랴 재녹화했다.


"그날 진짜 미쳤어요."


동문탁은 병원에 실려 갔다. 원곡자처럼 성대가 완전히 망가지진 않았지만, 3달 정도 쉬어야 한다. 사실상 탈락이나 다름없다.


"언니. 나 이제 섹시 컨셉 버리고 노래에만 집중할래요."

아니야. 넌 배우가 천직이야. 괜히 가수 한답시고 그러지 마.

"아현 때문에 댄스에 자신감이 사라졌어요."


유아이와 대화하면서도 아현의 통화를 놓치지 않았다. 입방체 사장이 아현을 메인으로 해서 아이돌을 구상하는데 초반부터 섹시 컨셉으로 밀고 갈 작정이란다.

제작진이 면담까진 허락하지 않았기에 통화로 설득하느라 땀 빼는 중이다.


"아이돌은 청순 혹은 귀여움으로 시작해 섹시를 거치죠. 카리스마까지 가면 끝물인 거예요. 처음부터 섹시 컨셉으로 가는 건 아이돌 수명을 줄이는 짓이에요. 아현한테서 동의 얻어내려면 계약서 새로 써야 할 거예요."

"아현이면 솔로도 가능한 거 아니야?"

"솔로보단 그룹이 돈 더 벌어요. 아현 덕분에 다른 멤버들 몸값도 올라가니깐요. 아현은 아현대로 돈 벌고 남은 멤버들이 원래보다 더 벌어들이니 소속사 입장에선 솔로보다 그룹이 낫죠."


"소속사 입장에선? 그럼 가수는 솔로가 낫다는 거야?"

"그룹은 돈을 나눠야 하잖아요. 혼자 번 돈도 함께 나눠야 하니까 아현 입장에선 손해죠. 저라면 무조건 솔로로 갈 거예요."


"언니. 우리 사장님이 허벅지에 바르라고 꿀 보내왔어요. 같이 먹어요."

통화를 마친 아현까지 넷이서 유일 소속사 사장이 보낸 꿀을 빨았다. 다른 팀은 오후에 진행할 재녹화를 대비해 연습하고 새 아이디어 짜느라 고생이다.


"아현. 결정했어?"

"응. 이제야 적성을 찾은 느낌이야. 그래도 계약 조건 좋게 받으려면 싫다고 버텨야지."


아무리 토막 세계라지만, 섹시 여배우가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가수가 되려 하고 청순 여신이 섹시 여왕이 되려 하다니.


이 반전, 난 반댈세.


- 지랄. 어차피 박순녀가 죽으면 사라질 세상이야. 어떻게 굴러가든 뭔 상관이야.

- 범생이 이래서 널 보낸 거야? 아무리 토막 세상이어도 이렇게까지 난장 부리는 건 못 할 짓이니까?

- 응. 마음이 흔들리면 실수할 가능성이 크지. 그래서 날 보낸 거야. 난 망나니거든.


- 어쩌다 인격이 분리된 거야?

- 뭐. 당연한 일 아니겠어? 황제 사생아는 망나니가 될 확률이 엄청 높은 직업 아니야? 황제의 비호 덕분에 두려울 게 없는데 서출이어서 관직따윈 못 얻어. 다른 황자들은 왕이나 공이 되어 떠받들리는데 나만 아니야.


모범생 천마는 좋은 것만 배운 어른 같고 망나니 천마는 볼꼴 못 볼 꼴 다 보고 자란 어른 같다. 둘이 합쳐도 나보다 2살 어리지만, 형 느낌이 물씬 난다.


- 전대 교주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걸 알면서도 범서출은 망설였어. 무림맹과 싸우면서 피를 너무 많이 보고 마음이 흔들릴 때 이 망서출이 몸을 차지하고 거슬리는 놈들 다 없애버렸지. 정확한 계산으로 내가 마교 교주가 되어야만 무림맹도 마교도 생존할 수 있도록 골라 죽인 거야. 난 이유 없이 성질대로 막 죽이는 그런 하찮은 짐승이 아니거든.


망나니 천마는 그 뒤에도 자신은 평범한 망나니가 아님을 역설했다.


- 그런데 너 그만 물러나야 하는 거 아니야? 경험상 곧 돌아갈 텐데.

- 내가 존재 자체만으로도 민폐긴 하지. 그럼 이만 간다. 기생충, 다음에 또 봐.


###


감개가 무량하다.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프로토스 101 마지막 녹화다.


유아이가 4위, 유일이 3위.


"1위는 박순녀와 아현 두 연습생 중 누구일까요? 57초 후에 공개합니다."


원성이 마구 터진다. 그러나 현장 모니터에 박순녀와 아현의 얼굴이 함께 뜨자 곧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얼음과 불의 대결. 박순녀가 얼음이고 아현이 불이다. 얼음이 불을 얼릴지 불이 얼음을 녹일지가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다.


"프로토스 101의 우승자는 박순녀 연습생입니다."


세상이 지워진다.


- 많이 배웠더냐?

-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저 빛 덩이가 성화신인가?


- 박순녀는 1년 뒤에야 겨우 일어나서 테란 101에 참가했다. 안타깝게도 13등으로 데뷔 조에 못 들었다. 그리고 심사위원으로부터 1년 전이었으면 우승도 가능한 실력이라는 말을 들었지. 그게 평생 한으로 남았던 모양이다.


테란 101부터는 대형 기획사들도 연습생을 내보냈다. 기존에 강한 화력으로 문자 투표에서 위세를 부리던 기획사들도 대형 기획사 앞에선 박격포 수준밖에 안 되었다.

그런 경연에서 달랑 사장과 가수 둘만 있는 기획사 소속인 박순녀가 13위까지 갔으니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하다.


- 그럼 저 아이의 인생이 나아졌습니까?


너보다 누나야. 순녀 20살이잖아. 넌 16이고.


- 아니. 별로 나아지진 않았다. 소속사 사장이랑 의리 지키다가 서른도 안 되어 은퇴했다. 대형 기획사로 옮겼으면 훨씬 성공했을 텐데.


- 그럼, 제가 제대로 한 겁니까?

- 저 아이가 절대 못 할 운명이었다면 네가 아무리 애써도 우승하지 못했을 거다. 바꿀 수 있는 운명이었고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았으니 속에 얹힌 것들이 다 풀렸다. 이번엔 잘했다.


기분 탓인지 나한테 빙의했을 때는 제대로 못 했다는 뜻으로 들린다.


대화를 마치고 세상이 바뀌었다. 어느새 무림으로 돌아온 천마는 깨달음을 정리한다며 명상에 빠졌다.


'제길. 이번 일에 뭐 깨달을 게 있다고.'


천마는 독후감을 잘 쓸 거 같은 소년이었다.


작가의말

다시 무림 파트로 돌아왔습니다. 망나니 천마, 모범생 천마, 평범남 천동출. 셋이 공동 주연입니다. 분량은 공평하게 인기에 따라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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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에 빙의하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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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나는 모를 이야기 +9 20.01.06 742 12 11쪽
88 사필귀정 20.01.06 269 6 9쪽
87 저승사자의 손짓 20.01.06 183 5 10쪽
86 경지 상승 20.01.05 163 5 9쪽
85 견제 20.01.05 173 5 9쪽
84 생방송 20.01.05 173 5 9쪽
83 자충수 20.01.04 154 6 9쪽
82 민중의 칼 20.01.04 156 4 9쪽
81 지뢰밭길 20.01.04 140 4 9쪽
80 가시밭길 20.01.03 142 8 9쪽
79 천동출 20.01.03 152 4 9쪽
78 진상 20.01.03 140 5 9쪽
77 성화신의 정체 +2 20.01.02 162 7 9쪽
76 합체와 분리 20.01.02 140 5 9쪽
75 전쟁 20.01.02 153 5 9쪽
74 저지르고 보자 20.01.01 176 4 9쪽
73 정조를 지켜라 20.01.01 199 4 9쪽
72 검사 천동출 20.01.01 155 4 9쪽
71 청천벽력 +2 19.12.31 163 7 9쪽
70 전학생 19.12.31 189 4 9쪽
69 세상이 너무 쉬워 19.12.31 129 6 9쪽
68 생김에 관한 고찰 19.12.30 152 7 9쪽
67 나는 강하다 19.12.30 127 6 9쪽
66 처형식 19.12.30 125 6 9쪽
65 양아치 19.12.29 122 6 9쪽
64 간타자 +1 19.12.29 138 6 9쪽
63 내가 내게? 19.12.29 139 5 9쪽
62 의욕 잃은 망나니 19.12.28 152 8 9쪽
61 말종의 반격 19.12.28 126 6 9쪽
60 동맹주 19.12.28 124 5 9쪽
59 무마동맹 19.12.27 142 4 9쪽
58 천마신공 19.12.27 144 4 9쪽
57 아비수의 마왕들 19.12.27 149 6 9쪽
56 망나니 강림 +3 19.12.26 144 8 9쪽
55 어마어마한 지원군 +1 19.12.25 154 6 9쪽
54 마교와 전쟁 19.12.24 142 7 9쪽
53 애송이들아 +2 19.12.23 157 8 9쪽
52 대기업 회유 +2 19.12.22 181 7 9쪽
51 독점금지법 +2 19.12.21 179 5 9쪽
50 후원금 +5 19.12.20 171 6 9쪽
49 난 진실만 말한다 +2 19.12.19 174 6 9쪽
48 청문회 +2 19.12.18 173 5 9쪽
47 무림맹의 저력 +2 19.12.17 165 7 9쪽
46 비무 대회 +2 19.12.16 187 7 9쪽
45 천마의 대응 +4 19.12.15 187 7 9쪽
44 후보자 토론회 +2 19.12.14 176 7 9쪽
43 영혼 분리 +2 19.12.13 181 7 9쪽
42 공약 +3 19.12.12 220 6 9쪽
41 출마 선언 +2 19.12.11 187 6 9쪽
40 차별에 관하여 +2 19.12.10 221 7 9쪽
39 빙의가 준 계시 +2 19.12.09 268 7 9쪽
38 세 번째 빙의 +2 19.12.08 216 7 9쪽
37 탄핵 +2 19.12.07 202 10 9쪽
36 프리즌 브레이크 +4 19.12.06 219 8 9쪽
35 공청석유 +4 19.12.05 259 5 9쪽
34 십색기 +2 19.12.04 232 9 9쪽
33 문신 법술 +3 19.12.03 226 5 9쪽
32 천마 감옥에 갇히다 +2 19.12.02 241 5 9쪽
31 범인 검거 +2 19.12.01 213 7 9쪽
30 두 번째 빙의 +3 19.11.30 250 6 9쪽
29 대호법의 활약 +3 19.11.29 252 5 9쪽
28 상거지 만수로 +2 19.11.28 286 8 9쪽
27 첩자 이야기 +2 19.11.27 283 8 9쪽
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40 7 9쪽
» 민폐 천마 +2 19.11.25 283 6 9쪽
24 망나니 천마 +2 19.11.24 308 9 9쪽
23 최악의 16팀 +3 19.11.23 301 9 9쪽
22 노력하는 천마 +2 19.11.22 384 7 9쪽
21 무림맹의 재도발 +5 19.11.21 361 8 9쪽
20 배움은 끝이 없다 +2 19.11.20 375 8 9쪽
19 영혼과 육신 +1 19.11.19 412 9 9쪽
18 첫 경험 +6 19.11.18 522 13 9쪽
17 세상에 이런 일이? +2 19.11.17 417 13 9쪽
16 뒷수습 +4 19.11.16 421 12 9쪽
15 말종의 사신 +2 19.11.15 444 14 9쪽
14 엄친아 할아비 +3 19.11.14 467 13 9쪽
13 이호법 +4 19.11.13 486 12 9쪽
12 인재 영입 +3 19.11.12 546 18 9쪽
11 삼호법 +5 19.11.11 575 14 9쪽
10 간 보기 +2 19.11.10 612 13 9쪽
9 내가 천마라니 +3 19.11.09 718 18 9쪽
8 무림맹 +6 19.11.08 808 20 9쪽
7 정치란 말이야 +4 19.11.07 848 25 9쪽
6 보름달이 뜨다 +3 19.11.06 1,051 22 9쪽
5 스카이 캐슬 +3 19.11.05 1,452 27 9쪽
4 제자 돌보기 +2 19.11.04 1,812 32 9쪽
3 별호 짓기 대회 +6 19.11.03 3,100 40 9쪽
2 천마의 신분 +3 19.11.02 5,092 56 9쪽
1 그린 라이트 +10 19.11.01 7,976 7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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