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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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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80
추천수 :
885
글자수 :
36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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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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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지뢰밭길

DUMMY

무림으로 다녀온 뒤 걸었던 고난의 길이 빠르게 떠오른다.


회사 쉬면서 자격증 딴다는 말에 부모님은 처음에 응원했다. 8년 다니고도 대리인 건 그나마 괜찮다. 문제는 후배가 과장이 되었다는 거다.

아버지는 그런 상황에서 회사에 붙어있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아시는 분이다.


허나, 자격증 따는 기간이 길어지자 부모님은 기대 대신 걱정의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서울대 로스쿨 합격이라는 걸 자랑도 못 하고 숨겨야 했다. 8년 동안 쌓아온 것을 싹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한다는 말이니, 아들이 변호사 된다고 해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 걸 알기에.


그래도 이건 약과다. 고진감래를 매일 되뇌며 정신의 압박을 이겨냈다. 같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은근한 따돌림도 웃어넘겼다.


로스쿨 2년 차에 카드 도둑맞은 게 큰 타격이었다.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안에 돈을 대부분 빼갔다. 잔액 18만 원 남기고.


그때부터 밤마다 택배 상하차 알바를 했다. 몸만 쓰는 일이어서 공부하면서 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일당이 20만 원씩 나와서 마음에 들었다.


몸은 고되지만,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 때마다 천마신공이 지친 육신을 치유했다. 돈이 도둑맞은 건 마음이 쓰리지만, 내가 괴로웠던 건 도둑맞은 돈이 아니라 그로 인해 이어진 상황들이다.


"선배. 밥 좀 사주세요."

"나 약속 있어. 다음에."


"저 선배 별로야. 나이도 많고 얼굴도 그렇고."


밥 잘 안 사는 노땅 선배로 찍혔다. 누나는 밥 잘 사면 드라마로도 찍는데, 오빠는 사주는 게 당연한지 안 사면 욕먹는다.


"형. 단체 미팅이야. 저쪽 여섯, 우린 다섯. 형 와서 숫자만 채워 줘."


원래라면 거절해야 하지만, 부탁한 사람이 선배다. 내가 사춘기 고딩이면 선배 말을 씹는 게 멋지다고 생각하며 콧방귀로 일관했겠지만, 최소한의 사회성은 갖춰야 한다는 걸 알 나이다.


"흐흐흑, 왜, 엉엉."


한마디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짝이 다섯 지어지고 마지막 남은 여자애가 갓 산 명품백을 도둑맞은 것처럼 서글프게 울었다.


누가 결혼하재? 마음에 안 들면 찢어진 후 그냥 바이 하고 헤어지면 되지. 서울대 로스쿨 오빠들이라고 잔뜩 기대하고 나온 건 알겠지만, 어차피 재들도 결혼까지 갈 건 아니야.


명절만 되면 집안 어른들이 장가 안 가냐, 취직 안 하냐, 옷 좀 사 입어라고 잔소리한다. 그러면서도 곧 사십 되는 놈이라고 용돈 한 푼 안 주신다.


알바로 번 돈은 또 도둑맞을까 봐 은행에 금고를 대여해 현금으로 쌓아뒀다. 검사가 된 후에 청렴하게 살려고 최대한 아껴 썼다.


"검사님, 검사님."


귀에 울리던 이명이 사라지고 눈이 번쩍 떠졌다. 사실 천마라는 자부심 아니었으면 열 번도 더 쓰러졌을 일이 여럿 남았지만, 빨리 깬 탓에 미처 회상하지 못했다.


"역시 불세출."

"이번에 여섯 번째야?"


"일곱 번째야."


나는 병원 응급실의 침대에서 일어났다. 간호사가 도도도 달려온다.


"괜찮습니다. 내부 출혈 없고요. 심박 수 정상입니다. 귀에 이명도 없고 시야 정상. 뇌에도 손상 없습니다. 퇴원하겠습니다."


입을 쩍 벌리고 굳은 간호사를 향해 김 검사가 상냥한 얼굴로 설명했다.


"트럭에 치여 병원 들어온 게 일곱 번쨉니다. 앞에 여섯 번 모두 작은 후유증도 없었습니다."

"뭐 하시는 분인데요?"

"대한민국 검사입니다."


간호사가 김 검사의 훈훈한 얼굴을 흠모의 눈으로 바라본다. 동그란 눈동자가 일그러지며 하트 모양으로 변하려고 하는 꼴이 눈 시려서 초를 쳤다.


"선배님, 며칠 뒤면 저 서른아홉 생일입니다. 오실 거죠?"


간호사 얼굴에 실망이 떠오르고 김 검사가 당황한다. 그러나 처음 보는 사람에게 사실 선배인 내가 열 살이나 어리다고 설명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퇴원 수속은 수사관한테 맡기고 김 검사랑 먼저 나왔다. 나보다 고작 몇 개월 빨리 임용되었다고 선배 행세를 하던 김 검사한테 한 방 먹이니 기분이 상쾌하다.


"형, 벌써 일곱 번이야. 저쪽도 멈출 생각 없는 거 같은데, 형이 그만두는 건 어때?"

"칼산 불바다가 가로막아도 내 길은 정해졌어."

"이러다 가족한테 손쓰지 않을까?"

"그렇게 멍청한 놈들 아니야. 가족을 건드리면 다른 검사들이 가만있을까? 자기 가족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 적극적으로 날 도울 거야. 대한민국은 검사동일체(檢事同一體)라는 거 몰라?"


게다가 난 차 부장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다. 검찰 생리에 밝고 일 처리가 확실하며 여자든 뇌물이든 이빨도 안 들어가는 강직한 검사. 차 부장이랑 일주일에 술 서너 번씩 먹는 검사.


"근데 형은 미리 알았어? 트럭이 덮치는 걸?"

"일곱 번씩 당하면 너도 느낌이 올 거야. 다음부터 너도 태워줄까?"

"불사조는 형 혼자서 해. 난 삼대독자야."


트럭에 치이고 멀쩡했을 때 다들 명이 질기다고 했다. 두 번째에 불사조란 이름이 생겼다. 그리고 세 번째도 차는 폐차밖에 답이 없는 상황에 사람만 멀쩡하자 불세출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불사조 세 번 한 천동출.


자동차 회사에서 광고 모델 섭외로 연락 온 적도 있을 정도다. CM 그룹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라는 게 문제여서 그렇지.


"검사님. 옷 갈아입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일 참 잘하는 내 사무관. 보통은 사무관이 초임 검사보다 나이가 많다. 그래서 기분 나쁜 일이 꽤 많이 벌어진다.

그러나 39세에 검사가 된 천동출의 사무관은 그럴 일 절대 없다.


"아니야. 이대로 가야 상대를 압박할 수 있어."


내 차는 폐차장으로 갔기에 사무관의 차를 타고 경찰서로 갔다.


"불 검사님, 오셨습니까."

내 동선이 그리 다양하지 않기에 이 경찰서는 벌써 다섯 번째다. 여기도 불세출의 별명이 쫙 퍼져서 나를 불 검사라고 부른다.


"그러다 더 친해지면 아예 세출아 하겠습니다."

"경위 나부랭이가 어찌 감히 검사님께."

"유선 전화 좀 씁시다."


양 반장 자리에 가서 전화기를 들었다.


"형님. 별일 없으시죠?"

"그래. 다들 무사해. 비바람 조짐도 없고."

"저도 잘 지냅니다. 이번 일 끝내고 제가 술 사겠습니다."


김청탁. 김촌지 선생님의 동생.


김촌지 선생은 돌에 분필을 잡았고, 김청탁 경찰관은 돌에 수갑을 잡았다. 돌잔치에 온 어떤 형사가 장난으로 자기 수갑을 생일상에 올렸는데, 김청탁이 덥석 잡은 거였다.


두 분의 부모님은 선생이 될 것 같은 아들에겐 촌지라는 이름을, 경찰이 될 것 같은 아들에겐 청탁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래서 김촌지 선생님은 평생 촌지 안 받고 사셨고, 김청탁 형님도 청탁 한 번 안 받고 정직하게 사셨다.


내가 부모님 안전을 살펴달라고 부탁한 게 첫 청탁인 셈인데, 대가성 없음므로 불법은 아니다.


부모님 주변이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후 취조실에 들어갔다. 트럭 운전자가 피 묻은 넝마를 입고 멀쩡하게 걷는 날 보고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오호. 역시 우연이 아니군. 날 알아보는 걸 보면."

트럭 운전자가 미처 입을 열기 전에 연속으로 공격을 날렸다.

"대한민국 검사를 죽이려 했으니 이제 사돈의 팔촌까지 다 감옥으로 갈 거야. 어디까지 듣고 얼마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아저씨는 물론 아저씨 주변 사람들도 다 호적에 빨간 줄 그어야 할 거야. 대한민국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어디 있다고."


"몰랐습니다."

"그래. 상대가 검사라는 건 몰랐겠지. 싸구려 국산 차 타니까 죽여도 괜찮은 거 같았겠지?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중앙지검 특수본 천동출이야. 특수본 나오면 최소 지검장 달고 퇴직하는 거 몰라? 검사 중에서도 엘리트만 가는 곳이야. 잘하면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도 하고 청와대로 갈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죄송합니다. 진짜 몰라요."

"모르면 다야? 모르면 다냐고. 너도 미리 알아봤겠지. 의뢰한 쪽에서 말해줬거나. 기껏해서 과실치사로 몇 년 받고 나올 거고, 손 써서 형량 반만 채우면 빼내겠다고 했겠지? 안 죽으면 살인미수니까 더 적게 받을 거라고 했겠지?"


"아닙니다."

"그런데 법전에도 없는 죄가 있는 거 알아? 괘씸죄라고. 너 앞서서 트럭으로 날 들이받은 사람이 여섯이야. 전부 10년 이상 받았고 가족 중 절반 정도가 감옥에 갔어. 너도 걔들처럼 버텨. 어차피 넌 배후가 누군지도 모르고 브로커만 알 거 아니야. 그러니까 제발 불지 말고 버텨. 형량 최대로 때릴 수 있게 말이지."


"알아요. 브로커를 미행해서 의뢰자랑 대화하는 거 동영상 찍어뒀습니다. 제발, 제발 감옥 보내지 마세요. 어머니랑 딸이 있습니다. 돈 못 받고 제가 감옥으로 가면 둘 다 굶어 죽어요."


"알았어. 진술이 사실이면 선처하지."


작가의말

고진감래라. 고는 고구마의 고, 감은 사이다의 감이라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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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나는 모를 이야기 +9 20.01.06 742 12 11쪽
88 사필귀정 20.01.06 270 6 9쪽
87 저승사자의 손짓 20.01.06 183 5 10쪽
86 경지 상승 20.01.05 163 5 9쪽
85 견제 20.01.05 173 5 9쪽
84 생방송 20.01.05 173 5 9쪽
83 자충수 20.01.04 154 6 9쪽
82 민중의 칼 20.01.04 156 4 9쪽
» 지뢰밭길 20.01.04 141 4 9쪽
80 가시밭길 20.01.03 142 8 9쪽
79 천동출 20.01.03 152 4 9쪽
78 진상 20.01.03 140 5 9쪽
77 성화신의 정체 +2 20.01.02 162 7 9쪽
76 합체와 분리 20.01.02 140 5 9쪽
75 전쟁 20.01.02 153 5 9쪽
74 저지르고 보자 20.01.01 176 4 9쪽
73 정조를 지켜라 20.01.01 200 4 9쪽
72 검사 천동출 20.01.01 155 4 9쪽
71 청천벽력 +2 19.12.31 164 7 9쪽
70 전학생 19.12.31 190 4 9쪽
69 세상이 너무 쉬워 19.12.31 129 6 9쪽
68 생김에 관한 고찰 19.12.30 152 7 9쪽
67 나는 강하다 19.12.30 127 6 9쪽
66 처형식 19.12.30 125 6 9쪽
65 양아치 19.12.29 123 6 9쪽
64 간타자 +1 19.12.29 138 6 9쪽
63 내가 내게? 19.12.29 139 5 9쪽
62 의욕 잃은 망나니 19.12.28 152 8 9쪽
61 말종의 반격 19.12.28 126 6 9쪽
60 동맹주 19.12.28 124 5 9쪽
59 무마동맹 19.12.27 142 4 9쪽
58 천마신공 19.12.27 144 4 9쪽
57 아비수의 마왕들 19.12.27 149 6 9쪽
56 망나니 강림 +3 19.12.26 144 8 9쪽
55 어마어마한 지원군 +1 19.12.25 154 6 9쪽
54 마교와 전쟁 19.12.24 143 7 9쪽
53 애송이들아 +2 19.12.23 157 8 9쪽
52 대기업 회유 +2 19.12.22 181 7 9쪽
51 독점금지법 +2 19.12.21 180 5 9쪽
50 후원금 +5 19.12.20 172 6 9쪽
49 난 진실만 말한다 +2 19.12.19 174 6 9쪽
48 청문회 +2 19.12.18 173 5 9쪽
47 무림맹의 저력 +2 19.12.17 166 7 9쪽
46 비무 대회 +2 19.12.16 187 7 9쪽
45 천마의 대응 +4 19.12.15 187 7 9쪽
44 후보자 토론회 +2 19.12.14 176 7 9쪽
43 영혼 분리 +2 19.12.13 182 7 9쪽
42 공약 +3 19.12.12 220 6 9쪽
41 출마 선언 +2 19.12.11 187 6 9쪽
40 차별에 관하여 +2 19.12.10 221 7 9쪽
39 빙의가 준 계시 +2 19.12.09 269 7 9쪽
38 세 번째 빙의 +2 19.12.08 216 7 9쪽
37 탄핵 +2 19.12.07 202 10 9쪽
36 프리즌 브레이크 +4 19.12.06 219 8 9쪽
35 공청석유 +4 19.12.05 259 5 9쪽
34 십색기 +2 19.12.04 233 9 9쪽
33 문신 법술 +3 19.12.03 226 5 9쪽
32 천마 감옥에 갇히다 +2 19.12.02 241 5 9쪽
31 범인 검거 +2 19.12.01 213 7 9쪽
30 두 번째 빙의 +3 19.11.30 250 6 9쪽
29 대호법의 활약 +3 19.11.29 252 5 9쪽
28 상거지 만수로 +2 19.11.28 287 8 9쪽
27 첩자 이야기 +2 19.11.27 283 8 9쪽
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40 7 9쪽
25 민폐 천마 +2 19.11.25 283 6 9쪽
24 망나니 천마 +2 19.11.24 309 9 9쪽
23 최악의 16팀 +3 19.11.23 301 9 9쪽
22 노력하는 천마 +2 19.11.22 384 7 9쪽
21 무림맹의 재도발 +5 19.11.21 361 8 9쪽
20 배움은 끝이 없다 +2 19.11.20 375 8 9쪽
19 영혼과 육신 +1 19.11.19 413 9 9쪽
18 첫 경험 +6 19.11.18 523 13 9쪽
17 세상에 이런 일이? +2 19.11.17 418 13 9쪽
16 뒷수습 +4 19.11.16 422 12 9쪽
15 말종의 사신 +2 19.11.15 444 14 9쪽
14 엄친아 할아비 +3 19.11.14 467 13 9쪽
13 이호법 +4 19.11.13 486 12 9쪽
12 인재 영입 +3 19.11.12 546 18 9쪽
11 삼호법 +5 19.11.11 576 1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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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치란 말이야 +4 19.11.07 848 2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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