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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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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71
추천수 :
885
글자수 :
36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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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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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청천벽력

DUMMY

차 엔진이 나직이 부르릉거린다. 아스팔트라곤 하지만, 그리 평탄하지 않은 길을 부드럽게 달린다.


미리 조사해 뒀는지 길도 묻지 않고 곧장 우리 집으로 향한다.


"편한 곳 찾아서 쉬어. 일 끝나면 전화할게."

"네, 아가씨."


집엔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출근, 어머니 역시 식당일 나갔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5시까지 청소랑 설거지 그리고 재료 다듬는 일 하신다.


"묻고 싶은 게 많은 표정이구나."

"먼저, 너 누군지부터 밝혀."


얼굴은 물론 몸매까지 난순이다. 그러나 표정, 말투, 몸짓 어느 하나 난순이와 비슷하지 않다.


"얼굴 바뀌었다고 못 알아봐? 기생충 실망이다."

"망나니?"

"어."


난 망나니랑 마음으로만 대화했기에 목소리도 표정도 모른다. 말투 역시 망나니답게 그리 일관성 있는 게 아니어서 확신할 정도는 아니다.


"진짜? 어떻게?"

"너도 이젠 다른 사람 말 들으면 본능적으로 참인지 거짓인지 구분할 정도는 되지 않았어? 개세도 10성은 이룬 것 같은데."


확실히 망나니 말대로 개세가 10성에 이른 후 상대 말을 들으면 감이 오긴 한다. 내 감이 맞는다는 확신이 없었을 뿐이지.


"진짜라는 건 믿을게. 그럼 어떻게 여길 왔는지 대답해 줘."

"모범생의 음모야."


망나니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내가 모르던 사실을 하나하나 서술했다.


"우선 비단 천씨는 천성적으로 다중인격이란 건 너도 알지? 정확히 우린 태어날 때 천 개의 인격을 갖고 태어나. 너희는 보통 정자가 난자와 결합하면 경쟁이 끝이지만, 우린 그때가 시작이야."


고난순은 냉장고를 열고 훑어보더니 제멋대로 맥주 한 캔 꺼냈다.


"그 경쟁에서 999개 인격은 무의식으로 쫓겨나고 승리한 인격만 겉에 나와. 아주 큰 위기를 겪지 않으면 다른 인격이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지. 3살 때 목표를 잃고 방황하던 모범생 덕분에 야심이 가득한 망나니인 내가 겉으로 떠오를 수 있었어. 그러나 고작 1년도 안 되어 모범생이 정신을 차리는 바람에 난 다시 무의식에 처박혔지."


섬섬옥수로 캔을 딴 고난순이 입을 안 대고 맥주를 쪼르르 붓는다. 입에서 보글보글 거품을 품던 맥주가 울대의 꼴깍거림에 따라 고난순의 식도를 거쳐 위에 도착한다.

찬 맥주를 만난 고난순의 위가 격렬하게 꿈틀댄다. 위의 꿈틀거림에 따라 맥주는 채 뱉어내지 못한 탄산을 마저 방출했다.


"그러나 3살 때 표면으로 떠오른 덕분에 명문대에서 동자공을 추천받았다. 사실 남자의 몸이어서 여성 인격체인 난 경쟁 초반에 탈락했었거든. 내가 2번째 인격이 될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었지."


꺽 트림을 한 고난순은 남은 맥주를 원샷했다.


"그러다가 모범생이 개세기천마신공에서 천마신공을 얻어냈다. 사실 창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개세기천마신공은 3단계에서 마공과 정공을 결합하여 안정성을 높인 것 외에는 별 볼 일 없는 무공이거든."


고난순 캔을 손으로 접어 작은 공 모양으로 만든 다음 쓰레기를 담은 봉투에 던져 넣었다.


"천마신공은 어마어마한 무공이었다. 모범생의 그릇으로도 제대로 담기 어려웠지. 그리고 무림맹과 싸울 때 끝내 파탄이 생겼다. 선봉에 선 천마는 무림맹 고수들의 협공에 더 많은 힘을 끌어쓸 수밖에 없었고, 천마신공이 폭주했다."


고난순이 아련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마치 그날의 전투를 회상하듯이.


"너도 알겠지만, 힘 조절은 내가 훨씬 잘해. 모범생이 대부분의 힘을 천마신공 견제하는 데 쏟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원래 여자가 남자보다 섬세하거든. 천마신공의 폭주로 위기 상황이 닥치고 내가 전면에 나서게 되었어. 난 그간 내가 꿈꿔오던 일을 완수했지. 사부 주제에 늘 모범생을 죽이지 못해서 안달인 전대 교주를 죽이고 무림맹은 물론 마교의 고수도 한가득 죽였지. 황제가 되려면 힘이 있어야 하고, 힘을 갖추기엔 마교 교주만 한 직업이 없거든."


"좀 빨리 말하면 안 될까? 곧 아버지가 퇴근할 시간이라서."


아버지 회사는 월급이 조금 짠 대신 야근이나 주말 근무가 없다. 늘 정시 퇴근이라는 말이다.


"그래. 그렇게 마교 교주가 되었는데 모범생이 날 다시 무의식으로 돌려보냈다. 이 치밀한 놈이 위기를 벗어나려고 일부러 나한테 통제권을 넘긴 거야. 통제권만 넘겼지 주도권은 계속 쥐고 있었어. 기생충 넌 멍청하게 주도권까지 홀라당 넘겼는데."


마교로 갈 때 얘긴가 보다. 어차피 그때 내가 할 만한 일은 없었으니 딱히 후회하진 않는다.


"하여간. 마교 교주가 된 모범생은 성화신과 만났다. 마교는 성화신과 암흑신을 섬기지. 신의 앞면은 성화신이고 뒷면은 암흑신이라고 생각하는데, 암흑신을 섬기는 교도는 채 3만 명도 안 된다. 백만 교도 중에서 3%밖에 안 되지."


망나니는 내 다급한 마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첫 만남에서 성화신이 천마한테 다른 세상에 빙의하여 소원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그릇을 키우라고 제안했다. 모범생은 고민도 않고 동의했고. 그렇게 모범생은 수시로 토막 세계에 빙의하며 그릇과 능력을 키웠다."


"네가 여기로 온 거랑 무슨 상관인데?"


"나도 처음엔 몰랐는데, 빙의 횟수가 늘면서 인격이 하나둘 사라졌다. 그리고 지난번에 모범생이 돌아왔을 땐 나만 남았다."


소름이 쫙 돋는다. 뭔가 어마어마한 게 머리에 떠오른다. 구체적이지 않고 실체도 제대로 안 보이지만, 그래서 더 무섭다.


"네 추측이 맞아. 모범생은 빙의를 통해 다른 인격들을 쫓아낸 거야. 그리고 마지막 인격인 나를 너한테 묶어서 이 세상으로 보냈지. 아마 무림맹주 선출의 중요한 시기에 갑자기 혼자 떠난 것도 사전에 계획한 음모였을 거야. 일부러 내가 못 나오게 묶어두고, 무림맹주가 되든 못 되든 위기가 닥쳐 네가 몸을 내게 양도할 수밖에 없는 시기에 내가 너랑 대화할 수 있게 했고."


시발. 모범생이 나한테 그럴 리 없어. 나랑 범생은 서로 이용하고 버리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우리에겐 우정이 있어.


"놈은 아마 중간에 몇 번씩 돌아오면서 간을 봤을 거야. 그러다가 너랑 내가 운명이나 인연 혹은 뭔지 모를 것으로 묶인 걸 확인하고 나타났을 거야. 그리고 무자비하게 우릴 토막 세상으로 빙의 보냈겠지."


"상관없잖아."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뇌를 안 거치고.

"토막 세상이어도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 아닌가? 미리 얘기해주지 않은 건 섭섭하지만, 딱히 너나 나한테 해를 끼친 건 아니잖아. 특히 너, 나랑 달리 좋은 집안에서 호의호식하는 거 같은데."


"지금 말이 진심이면 좋겠어. 사실 나도 지금 삶이 마음에 들거든. 특히 여자의 몸으로 살 수 있어서 아주 행복해."


고난순이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온다.


자연 반사로 귀와 목이 빨개지고 숨이 가쁘다. 급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꽉 쥔 주먹이 부르르 떨고 있었다.


"대단해. 내 미혼술에 안 넘어가다니."


"뭐, 뭐 하는 짓이야?"


"너도 이 세상이 토막 세상이라는 추측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우리 둘 다 죽어야 이 세상이 사라질지, 둘 중 하나만 죽어도 사라질지 모르잖아. 그래서 널 내 통제에 두고 보호하려고 했지."


"나 모범생 진혼술도 금방 벗어났어. 그러니 괜한 짓 하지 마. 서로 피곤하니까."


고난순이 이쁜 코를 찡그리며 눈썹을 움찔댔다.


천동출 많이 컸다. 고난순 같은 미녀를 앞에 두고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니.


"동출아, 엄마 삽겹살 사 왔다."


문이 벌컥 열리며 어머니가 소리친다. 신발을 보고 집에 있는 걸 알아채셨다. 신발이 하나여서 신발이 있으면 내가 있고 신발이 없으면 내가 없다.


"응? 이 구두는 뭐야?"


거기에 아버지까지. 평소라면 20분 뒤에서나 집에 도착해야 하는데.


서둘러 신을 벗은 두 분은 빠르게 안으로 들어왔다. 딱 봐도 여자의 것인 구두가 있으니 걱정되겠지. 판검사가 되어야 할 아들이 혹시 사고라도 칠까 봐.


"안녕하세요. 아버님, 어머님. 동출이 같은 반 학생 고난순이라고 합니다."


고난순이 단정한 자세로 머리를 살짝 숙이며 인사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삼겹살과 채소를 담은 비닐봉지를 툭 떨궜다. 얼빠진 표정을 보니 매우 많이 놀라셨다.


"반가워요. 어디 앉아요. 내가 마실 거 내올게요."


나와 고난순을 번갈아 바라보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곧 혼란한 마음을 수습했다. 내 표정에서 걱정할 일이 아님을 안 것이다. 근데 왜 실망한 얼굴이지?


"잠시만요. 드릴 말씀 있습니다."


쿵. 고난순의 무릎이 바닥을 찍었다. 소리를 들은 내가 막 아프다.


"아버님, 어머님. 아드님을 제게 주십시오. 평생 손에 잉크 한 방울 안 묻히고 살게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고난순이 이마로 바닥을 쿵 찍었다.


작가의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몸 건강히 마음 편하시길 기원합니다.


특별히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로또 당첨과 같은 뜻밖의 행운도 깃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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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경지 상승 20.01.05 163 5 9쪽
85 견제 20.01.05 173 5 9쪽
84 생방송 20.01.05 173 5 9쪽
83 자충수 20.01.04 154 6 9쪽
82 민중의 칼 20.01.04 156 4 9쪽
81 지뢰밭길 20.01.04 140 4 9쪽
80 가시밭길 20.01.03 142 8 9쪽
79 천동출 20.01.03 152 4 9쪽
78 진상 20.01.03 140 5 9쪽
77 성화신의 정체 +2 20.01.02 162 7 9쪽
76 합체와 분리 20.01.02 140 5 9쪽
75 전쟁 20.01.02 153 5 9쪽
74 저지르고 보자 20.01.01 176 4 9쪽
73 정조를 지켜라 20.01.01 200 4 9쪽
72 검사 천동출 20.01.01 155 4 9쪽
» 청천벽력 +2 19.12.31 164 7 9쪽
70 전학생 19.12.31 190 4 9쪽
69 세상이 너무 쉬워 19.12.31 129 6 9쪽
68 생김에 관한 고찰 19.12.30 152 7 9쪽
67 나는 강하다 19.12.30 127 6 9쪽
66 처형식 19.12.30 125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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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간타자 +1 19.12.29 138 6 9쪽
63 내가 내게? 19.12.29 139 5 9쪽
62 의욕 잃은 망나니 19.12.28 152 8 9쪽
61 말종의 반격 19.12.28 126 6 9쪽
60 동맹주 19.12.28 124 5 9쪽
59 무마동맹 19.12.27 142 4 9쪽
58 천마신공 19.12.27 144 4 9쪽
57 아비수의 마왕들 19.12.27 149 6 9쪽
56 망나니 강림 +3 19.12.26 144 8 9쪽
55 어마어마한 지원군 +1 19.12.25 154 6 9쪽
54 마교와 전쟁 19.12.24 142 7 9쪽
53 애송이들아 +2 19.12.23 157 8 9쪽
52 대기업 회유 +2 19.12.22 181 7 9쪽
51 독점금지법 +2 19.12.21 179 5 9쪽
50 후원금 +5 19.12.20 171 6 9쪽
49 난 진실만 말한다 +2 19.12.19 174 6 9쪽
48 청문회 +2 19.12.18 173 5 9쪽
47 무림맹의 저력 +2 19.12.17 166 7 9쪽
46 비무 대회 +2 19.12.16 187 7 9쪽
45 천마의 대응 +4 19.12.15 187 7 9쪽
44 후보자 토론회 +2 19.12.14 176 7 9쪽
43 영혼 분리 +2 19.12.13 182 7 9쪽
42 공약 +3 19.12.12 220 6 9쪽
41 출마 선언 +2 19.12.11 187 6 9쪽
40 차별에 관하여 +2 19.12.10 221 7 9쪽
39 빙의가 준 계시 +2 19.12.09 268 7 9쪽
38 세 번째 빙의 +2 19.12.08 216 7 9쪽
37 탄핵 +2 19.12.07 202 10 9쪽
36 프리즌 브레이크 +4 19.12.06 219 8 9쪽
35 공청석유 +4 19.12.05 259 5 9쪽
34 십색기 +2 19.12.04 233 9 9쪽
33 문신 법술 +3 19.12.03 226 5 9쪽
32 천마 감옥에 갇히다 +2 19.12.02 241 5 9쪽
31 범인 검거 +2 19.12.01 213 7 9쪽
30 두 번째 빙의 +3 19.11.30 250 6 9쪽
29 대호법의 활약 +3 19.11.29 252 5 9쪽
28 상거지 만수로 +2 19.11.28 287 8 9쪽
27 첩자 이야기 +2 19.11.27 283 8 9쪽
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40 7 9쪽
25 민폐 천마 +2 19.11.25 283 6 9쪽
24 망나니 천마 +2 19.11.24 308 9 9쪽
23 최악의 16팀 +3 19.11.23 301 9 9쪽
22 노력하는 천마 +2 19.11.22 384 7 9쪽
21 무림맹의 재도발 +5 19.11.21 361 8 9쪽
20 배움은 끝이 없다 +2 19.11.20 375 8 9쪽
19 영혼과 육신 +1 19.11.19 413 9 9쪽
18 첫 경험 +6 19.11.18 522 13 9쪽
17 세상에 이런 일이? +2 19.11.17 418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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