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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조회수 :
41,963
추천수 :
885
글자수 :
363,122

작성
19.12.29 18:00
조회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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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9쪽

양아치

DUMMY

일상은 따분하면서도 신선했다.


학원 여럿 다니는 애들보단 훨씬 여유롭지만, 나름대로 꽤 바쁘게 보냈다. 이미 한 번 겪은 스케줄이어서 따분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같은 것을 보아도 예전과 다른 걸 느끼기에 꽤 신선하다.


"어이, 똥줄."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는 아니다. 중학교 때는 꽤 얌전했는데 고등학교 가서 거친 친구를 사귀며 양아치가 되었다.

내가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도 중학교 동창회 나와서 허세를 잔뜩 부렸다던데.


난 알은체를 하지 않고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날 붙잡으려고 빠르게 달리는 발소리가 귀에 똑똑히 들린다.


"야, 똥줄. 형이 부르는데 튀냐?"


정말 미안하지만, 저놈 이름이 기억 안 난다. 중학교 때도 별로 대화가 없었고 고등학교 이후엔 양아치로만 기억해서.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이름 까먹은 걸 알면 상처받을까 봐. 나야 거의 20년 만이지만, 저놈은 못 본 지 고작 몇 달이라고 알고 있을 테니.


"쫄지 마. 돈 뺏으려고 그런 거 아니니까. 그냥 말 좀 묻자."

"뭔데?"

"너네 학교 짱 이름이 뭐야? 1학년이 통합 짱 됐다고 하던데."


이 새끼들이 진짜. 내가 일진 노릇 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는데 몰래 짱을 뽑고 그랬구나. 내일 누군지 알아내서 혼내줘야지. 무리를 지으면 강한 듯 느껴지고, 강하다고 생각되면 삥 못 뜯게 하는 장애물인 날 치우고 싶을 것이고. 그런 귀찮은 일이 생기기 전에 미리 싹을 잘라야겠다.


"몰라? 공부만 하던 놈이라서 그런가?"

"내일 애들한테 물어보고 알려줄게."

"알았어. 내일 오후 교문에서 기다릴게."


###


둥실둥실.


이거 뭐야? 왜 영혼이 따로 뽑혀 나온 거야?


자던 도중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깨려고 하는데 영혼이 쑥 뽑혀 제멋대로 움직인다.


'여탕이나 가 볼까?'


소싯적 추억을 돌이켜 볼 겸. 여탕과 남탕의 구조적 차별도 고찰하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영혼은 제멋대로 움직였다. 게다가 동네 목욕탕은 이미 불이 꺼졌고.


"형님. 엄석고에서 상납금이 안 올라왔습니다."

"거기 책임자 누구야?"

"2학년에 고릴라라고 있습니다."

"2학년?"

"네. 거긴 3학년이 되면 은퇴하는 게 전통이거든요."


내 영혼은 불야성 지하에서 멈췄다. 4층은 사채업자 사무실, 3층은 당구장, 2층은 작은 사무실이 몇 개 있고 1층은 다방. 그리고 지하는 주점이다.


"시발. 양아치도 못 되는 놈들이 전통은 무슨. 고릴라라는 놈 당장 수배 때려."

"네, 형님."


덩치가 왜소하고 표정이 비굴한 놈이 바로 전화기를 꺼낸다. 약 20초 정도 지나서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형님, 이 밤중에 무슨 일로."

"불야성으로 당장 튀어 와. 10분 준다."


말을 마친 쫄다구가 바로 전화를 끊는다. 지켜보던 '형님'이나 다른 건달들이 만족한 얼굴로 웃는다.


이 새끼들은 양아치도 못 된 고등학생을 상대로 으스대면서 자기가 뭐라도 된 듯 착각하는 건가?


10분은커녕 채 5분도 안 되어 고릴라가 튀어왔다. 낡은 옷과 낡은 신발을 신고.


주점 문을 열고 들어와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는 고릴라의 행색을 살피던 건달들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신발이나 옷이 좋으면 뺏으려고 했던 거 같은데, 고릴라가 예상하고 일부러 헌 옷과 헌 신발을 장착하고 나온 거겠지.


"사는 게 귀찮아?"

"죄송합니다. 말씀해 주시면 시정하겠습니다."

"이번 달 상납금이 빈다."

"저, 형님. 안 그래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전화로 고릴라를 부른 왜소한 체격의 건달이 훌쩍 뛰어가 배를 걷어찬다. 내가 보기엔 전혀 세게 안 때린 거 같은데 고릴라는 바닥에 쓰러졌다.


"묻는 말에나 대답해. 감히 큰형님한테 토나 달고."


"그게 아니라요. 새로 온 1학년이 짱 먹었습니다. 근데 성질이 하도 더러워서 상납금 얘기를 아직 못 했습니다."


"응? 1학년이 짱 먹어?"


"네. 1학년 2학년 다 모아놓고 혼자서 눕혔습니다. 그리고 우리한테 삥 뜯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지 혼자 다 해 먹으려는 거죠."


"진짜지?"


"제가 감히 어떻게 형님들을 속이겠습니까."


고릴라는 몇 대 더 얻아맞고 집으로 돌아갔다. 고릴라가 떠나고 한참 동안 숨소리와 침 삼키는 소리만 들렸다.


"이거 큰일이다."


큰형님 소리를 듣던, 얼굴에 칼자국 있는 놈이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여섯이서 엄석고 1학년과 2학년 애들 모두 눕힐 수 있어?"


"당연하죠. 저런 허접한 새끼들은 주먹 하나로 끝입니다."


말을 꺼낸 건달은 누구도 호응하지 않자 눈치를 살살 봤다.


"쟤네 한 달에 삥 뜯는 액수가 얼만지 알아? 우리한테 5백 상납하고도 몇백 남아."


헐. 한 달에 천 가까이 삥 뜯는다고? 그게 가능해?


"그런 자리를 뺏기고도 상대를 짱이라고 인정하는 거 보면, 다이다이 깐 게 아니라 무리로 덮쳤는데도 당한 거야."


"어떻게 할까요? 엄석고는 포기할까요? 형님?"


"소문 퍼지면 다른 학교도 상납을 거부하겠지. 그럼 우린 망하는 거다."


월 5백이지만, 고등학교는 방학이 있다. 게다가 우리 지역에 고등학교가 많은 것도 아니고.


내가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이놈들도 위는 물론 경찰이나 공무원 등에게 매달 상납해야 한다. 엄석고의 5백이 없으면 이 무리는 망할 가능성이 크다.


"중학교도 작업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요?"

"야. 촉법소년 못 들어봤어? 눈이 돌아가 우릴 칼로 쑤셔도 감방 안 가. 소년원도 안 가고. 게다가 2학년 애들은 또 얼마나 무서운데."

"그치만, 괜히 우리가 나섰다가 고딩한테 깨지면."


"야, 우리가 주먹으로 여기까지 왔어? 머리 쓰면 돼."


건달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상의한다. 자세히 듣고 싶었는데 영혼이 순식간에 몸에 빨려 들어갔다.


###


"동출아, 너 학원 보내줄까?"


새벽 수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침밥을 짓던 어머니가 말을 꺼낸다.


"갑자기 왜요?"


"우린 학비만 면제인 줄 알았는데, 교과서나 급식비 모두 면제란다. 돈에 여유가 있으니 학원 한두 개 정도 보내줄 수 있어."


"안 가도 돼요. 학원은 시험 잘 보는 방법만 가르쳐요. 대학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정답이 있는 시험지를 들이미는 곳이 아니에요."


어머니가 갑자기 눈물을 훔친다.


"에구. 부모가 제 노릇 못 하니까 자식이 일찍 철드는구나."


예전엔 이런 적이 없는데. 속으론 어떨지 몰라도 내 앞에서 미안하다고 말하진 않았다.


설마, 천마 덕분에 내가 변해서인가? 내가 중학교 때 공부 잘하니까 부모님 마음이 복잡해진 건가?


"엄마 갑자기 왜 이래."

"다른 애들이 학원 다니는 시간에 넌 할 게 없어서 운동이나 하잖아. 내가 허리만 안 다쳤어도."


예전에야 성적도 어중간하고 늦잠꾸러기에다가 틈만 나면 놀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찼다. 그래서 부모님도 미안함을 크게 못 느낀 거고. 미안하게 생각하더라도 나한테 표현하지 않았겠지.


그런데 내가 지금 열심히 사니까 부모님 마음이 괴로운 거다.


"엄마 안 미안해도 돼. 내가 전에도 말했잖아. 명문고 가서 잘난 애들이랑 어렵게 경쟁하는 것보다, 엄석고에서 내신 잘 받는 게 서울대 가기 더 쉽다고. 어차피 서울대 타이틀만 달면 고등학교 어디 나왔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집에 돈이 넘쳐도 난 명문고 안 가고 엄석고 선택했을 거야. 그리고 학원도 마찬가지야. 그런 데 가서 창의력을 다 말살하면 사회 나가서 큰일 못 해. 평생 학교 다니고 시험 볼 게 아니잖아. 난 멀리 보고 준비하는 거야."


"어이구. 내 새끼 어른이 다 됐네."


그때 화장실에서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가 눈물 헤픈 분인 거 이제야 알았네.


"여보, 변비 왔어? 빨리 안 나오고 뭐 해요?"


밥상을 다 차린 어머니가 아버지를 불렀다. 그제야 아버지는 미적거리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찬물로 급히 씻었지만, 얼굴과 코가 여전히 빨갛다.


"당신 눈이랑 코 왜 그래? 설마 눈병 온 거예요?"

"아니야. 아침에 일어났는데 개운하지 않아서 찬물로 씻었더니 살짝 얼었나 봐."

"어이구. 미련한 양반."


우리 세 식구는 밥상에 오손도손 앉아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고 아버지는 커피, 나와 어머니는 보리차를 마셨다.


"동출아. 넌 커서 뭐가 될래?"

"아직 안 정했어요. 검사나 판사 될 생각인데, 확고한 건 아니에요."


내가 회사 생활을 8년이나 했지만, 이 세상을 아주 잘 아는 건 아니다. 천마 덕분인지 빙의 덕분인지 통찰력이라고 할 만한 게 조금 생겼다. 일단은 판검사로 정하고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할 생각이다.


"뭐가 되든 이 아버지는 널 적극 지지한다. 집 팔고 지하 단칸방에 살아도 웃을 수 있으니, 집안 형편 생각해서 꿈을 작게 갖지 말아라."


작가의말

회귀물 쓰는 연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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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지뢰밭길 20.01.04 140 4 9쪽
80 가시밭길 20.01.03 142 8 9쪽
79 천동출 20.01.03 152 4 9쪽
78 진상 20.01.03 140 5 9쪽
77 성화신의 정체 +2 20.01.02 162 7 9쪽
76 합체와 분리 20.01.02 140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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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나는 강하다 19.12.30 127 6 9쪽
66 처형식 19.12.30 125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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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간타자 +1 19.12.29 138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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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말종의 반격 19.12.28 126 6 9쪽
60 동맹주 19.12.28 124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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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대기업 회유 +2 19.12.22 181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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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후보자 토론회 +2 19.12.14 176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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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공약 +3 19.12.12 220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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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차별에 관하여 +2 19.12.10 221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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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세 번째 빙의 +2 19.12.08 216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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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첩자 이야기 +2 19.11.27 283 8 9쪽
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40 7 9쪽
25 민폐 천마 +2 19.11.25 283 6 9쪽
24 망나니 천마 +2 19.11.24 308 9 9쪽
23 최악의 16팀 +3 19.11.23 301 9 9쪽
22 노력하는 천마 +2 19.11.22 384 7 9쪽
21 무림맹의 재도발 +5 19.11.21 361 8 9쪽
20 배움은 끝이 없다 +2 19.11.20 375 8 9쪽
19 영혼과 육신 +1 19.11.19 412 9 9쪽
18 첫 경험 +6 19.11.18 522 13 9쪽
17 세상에 이런 일이? +2 19.11.17 417 13 9쪽
16 뒷수습 +4 19.11.16 422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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