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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조회수 :
41,939
추천수 :
885
글자수 :
363,122

작성
19.12.29 18:00
조회
138
추천
5
글자
9쪽

내가 내게?

DUMMY

"숙부. 부탁드립니다."


인마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황제는 산 사람에게 머리 숙여선 안 되는데.


대신들은 우선 희빈을 앞세워 인마의 성향을 체크했다. 서출이어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조카가 황제 자리에 앉는 바람에 인정받을 기회를 아예 박탈당해 서민보다 더 밑인 천마를 건드리는 거로 인마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켜봤다.


천마를 옹호하며 희빈을 처단하고 그 가족에게까지 죄를 묻는 모습을 보고 황실 혈통 및 혈족에 대해 아끼는 감정이 강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전대 황제 파종의 애완용 강아지를 내세워 파종이 심은 사군자를 파손하게 했다. 비록 말 못 하는 개새끼와 식물이지만, 둘 다 파종이 아끼던 거다. 둘 다 혈족과 엉겼을 땐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했던 거겠지.


희빈을 처리할 때와 마찬가지로 완용이한테도 인마는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단호히 대처했다. 그래서 세 번째로 건드린 건 황후 자리다.


이미 백리아담과 혼약을 맺었기에 황후 자리는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다. 그걸 은근슬쩍 건드리며 황후 후보 수십 명을 내미는 것으로 인마가 의리를 우선으로 하는지 실리를 더 따지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기반이 약한 인마에겐 무림맹 세력권에서도 변경에 있는 백리세가의 백리아담보단 자신한테 당장 도움이 될 황후가 더 필요하다.


"내가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까?"


진짜 천마라면 어떻게 대처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천동출은 감히 황궁을 못 떠나겠다. 지금은 웬만한 삼류 무사에게 칼만 들려줘도 이 하찮은 목숨을 쉽게 끊는다.


비록 망나니 천마가 싸움이 일어나면 나선다고 했지만, 불의의 일격에 치명상을 입으면 망나니를 불러내 봤자 아미타불이다.


"저들은 내가 일의 경중을 구분하는지 거듭 시험하고 있습니다. 희빈을 처리할 때 숙부께서 '사약가'를 불렀고 저는 희빈에게 사약을 내렸죠. 그래서 저들은 지금까지 판단이 내가 아닌 숙부의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황후 사건도 숙부를 잠시 떼어내고 제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켜보려는 것입니다."


저기. 앞에 내가 했던 분석 다 지워줘. 듣고 보니 인마 것이 좀 더 잘 정리된 거 같아.


###


다행히 황후인 백리아담을 모시러 가는 행렬은 천 명이 넘었고 마차가 수십 대나 되었다. 그래서 경공을 안 펼쳐도 되고 말 대신 마차를 타고 편하게 이동했다.


- 너 도대체 뭐 하는 새끼야?


마차에서 눈 감고 쉬는데 갑자기 천마가 시비를 걸어왔다.


- 갑자기 왜?

- 나 천마다.

- 범생이?


망나니가 아닌 모범생 천마였다. 하도 말투가 거칠어서 망나닌 줄 알았는데.


- 나 또 너한테 빙의했다. 더 어린 시절로.

- 했어?

- 실패. 넌 싹수부터 틀렸어.


헌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내 짝은 우크라이나나 우즈벡에 있는 걸까?


- 빨리 몸 내놔.

- 왜? 그냥 가져가지 그래.

- 무슨 이윤지 안돼.


조금 고민된다. 정작 몸을 차지했을 땐 매일 불안하고 뭔지 모를 걱정에 휩싸이곤 했는데, 갑자기 내놓으라니 또 뭔가 아쉽다.


뭐가 아쉽냐고 물으면 딱히 떠오르는 건 없고.


- 빨리. 안 그럼 나 또 끌려가서 너한테 빙의할 거야. 몸을 차지하고 있어야 흡력에 저항할 수 있어.


망나니가 한 말이라면 의심부터 했겠지만, 모범생이니 일단 믿자.


서서히 감각이 무뎌진다. 몸을 내주자는 결심을 내리자마자 천마가 통제권을 천천히 앗아갔다.


- 사실 그간 몇 번 돌아왔어.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네가 대답을 안 하더라. 그렇게 대기하고 있다가 끌려갔지.

- 그땐 망나니가 몸을 차지하고 있었을 거야.

- 이번엔 아마 네가 끌려갈 거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이런 중요한 얘긴 몸 내놓기 전에 자세히 했어야지.


- 미안하다. 네 몸으로 여자랑 교미하는 거 나한테 무리다.


제길. 천마 너마저 포기하면 난 어떡해.


갑자기 어마어마한 힘이 날 송두리째 뽑아갔다.


###


"동출아. 빨리 일어나 세수해. 개학 첫날부터 늦겠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전화 와서 언제 손주 안겨주냐고 잔소리하던 어머니. 오랜만에 목소리 들으니 눈물이 핑 돈다.


"어이구, 내 새끼. 엄마가 정말 미안해."


내 눈에 맺힌 눈물을 본 엄마가 울상을 지으며 날 포근히 안아준다. 그리고 내 머리에 새로운 기억이 샘솟듯 떠올랐다.


중2인 나한테 빙의한 천마는 열심히 운동하고 공부했다. 덕분에 난 안정적으로 전교 10등에 드는 성적을 냈다.


아무리 천마라도 내 머리로는 전교 1등이 무리였나 보다.


그러나 고등학교 진학할 때, 비싼 학비를 부담하기 어려워서 명문고 대신 집과 가까운 학교를 선택했다.

아주 엉망은 아니지만, 적당히 문제 있는 고등학교로.


오직 여자랑 한 번 교미하는 게 목적인 천마는 어떻게든 부모님을 설득해 명문고로 가려 했다. 명문고 그리고 명문대 타이틀이면 빙의 미션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거겠지.


그런데 학비 때문에 명문고 진학을 포기하자 천마도 미션을 포기하고 나한테 떠넘긴 거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 꼬리 끼고 살 바엔 늑대 굴에 들어가 호랑이 노릇 하지. 엄마가 미안한 게 뭐 있다고 그래."


서른넷까지 손주는커녕 며느리 그림자도 못 보여준 이 불효자식이 미안하지.


"그래도 미안해. 엄마가 허리만 안 다쳤어도 너 명문고 보내주는 건데."


어머니가 일하시다가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수술비로 목돈을 지출했다. 예전에야 내가 공부를 못 했으니 별 죄책감 없으셨을 텐데.


가난한 놈은 공부 잘해도 불효가 될 수 있구나.


"괜찮아. 저쪽 가면 내신 때문에 서울대 엄두도 못 냈을 거야. 서울대 가기엔 오히려 지금 학교가 나아."

"진짜야?"

"그럼. 명문고 갔다가 일반 대학 가는 것보단 일반 고등학교 다니고 서울대 가는 게 낫지."


일어나 세수하며 몸을 살피니 복근은 물론 흉근도 장난 아니다. 밸런스를 중요시하는 천마가 보기 좋자고 근육 만들었을 리는 없으니, 코어도 잘 단련됐다고 봐야 하겠지?


"동출아."


식탁에 앉으니 아버지가 입을 연다. 일 년에 전화 한번 안 하는 무뚝뚝한 양반인데, 눈에 살짝 물기가 보인다.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부모 제대로 못 만났다고 기죽지 말고 열심히 해라. 이 애비나 네 어미는 정직하게 살아서 네가 이후 뭘 하든지 뒷다리 잡지 않으마."


"천씨 가문의 자랑이 되겠습니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아버지가 자주 하던 말씀이다. 넌 커서 천씨 가문의 자랑이 되라고.


그러나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점점 당부가 줄었고, 중학교 1학기 성적표를 받은 후부턴 아예 입에 올리지도 않으셨다.


그래도 내가 인서울 했을 땐 친척들에게 전화를 다 돌렸고, 나름대로 규모 있는 중견기업에 취직했을 땐 친척과 친구들 모아놓고 잔치도 치르셨지.


'그래. 이번 기회에 부모님께 효도나 실컷 하자. 토막세상이면 어때.'


아침을 든든하게 먹은 후 책가방을 들고 학교로 향했다. 오랜만에 보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에 가슴이 울렁였다.


"야, 우리 오늘 1학년 짱 먹는 거야. 일단 우리 학년 꽉 잡고 선배들한테 인사드려야 잔심부름 안 당해."


주변 사람이 듣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고 큰 소리로 말하는 저놈. 얼굴에 여드름이 가득한 저놈. 1학년 때는 나랑 접점이 없었는데, 2학년 때 날 잠깐 괴롭혔었다. 결국 털어봤자 먼지뿐인 개털이라는 걸 알고 빠르게 포기했지만, 그건 또 그거 나름으로 기분 나쁘다.


'그래. 개세가 되나 해보자.'


마침 여드름과 두 똘마니가 가는 길에 물웅덩이가 있었다. 분식집 아줌마가 버린 구정물이 고여있는데, 갓 버려서 그런지 김이 솔솔 피어올랐다.


'하나, 둘, 셋, 발사.'


고요하던 구정물이 갑자기 튀어 올라 여드름 신발을 적셨다. 원래 내 목표는 바지까지 적시는 거였는데.


"아, 씨발. 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고."


여드름이 길길이 날뛴다. 지나가는 학생은 물론 어른들까지 웃음을 꾹 참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학생들이야 똥이 무서운 거고, 어른들은 똥이 더러워서 피하는 거겠지.


"야, 신발 벗어."

"상식아, 나 발 240이야. 너 250이잖아."

"나도 240이야."


하긴. 저런 놈들이 무슨 의리가 있겠어. 근데 여드름 이름이 상식이었나?


"야, 너 이리 와봐."


갑자기 상식이가 나한테 손가락을 까딱인다. 두 똘마니도 날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견적 나왔다는 듯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다.


시발. 너희 뭐 베테랑 사냥꾼이야? 사냥감 보자마자 승리의 미소는 왜 짓는데?


"왜?"

"나 이거 신발 30만 원짜리야. 우리 신발 안 바꿀래?"

"네 거 맞아?"


의외의 반격이었는지 여드름 얼굴이 굳는다. 여드름이 입을 다물자 두 똘마니가 눈알을 부라린다.


"이 새끼가."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더니 발목이 부드럽게 돌아간다. 거기에 맞춰 무릎과 골반 그리고 허리는 물론 어깨도 돌아간다.


어느새 꽉 쥐어진 주먹이 곡선을 그리며 사각으로부터 날아가 귀와 목이 이어지는 요해를 강하게 때렸다.


여드름이 기절했다.


작가의말

본격적인 본고깽 시작입니다.

이고깽 : 이계로 간 고딩이 깽판 치는 이야기.

본고깽 : 본계로 돌아온 고딩이 깽판 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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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나는 모를 이야기 +9 20.01.06 742 12 11쪽
88 사필귀정 20.01.06 269 6 9쪽
87 저승사자의 손짓 20.01.06 183 5 10쪽
86 경지 상승 20.01.05 163 5 9쪽
85 견제 20.01.05 173 5 9쪽
84 생방송 20.01.05 173 5 9쪽
83 자충수 20.01.04 154 6 9쪽
82 민중의 칼 20.01.04 156 4 9쪽
81 지뢰밭길 20.01.04 140 4 9쪽
80 가시밭길 20.01.03 142 8 9쪽
79 천동출 20.01.03 152 4 9쪽
78 진상 20.01.03 140 5 9쪽
77 성화신의 정체 +2 20.01.02 162 7 9쪽
76 합체와 분리 20.01.02 140 5 9쪽
75 전쟁 20.01.02 153 5 9쪽
74 저지르고 보자 20.01.01 176 4 9쪽
73 정조를 지켜라 20.01.01 199 4 9쪽
72 검사 천동출 20.01.01 155 4 9쪽
71 청천벽력 +2 19.12.31 163 7 9쪽
70 전학생 19.12.31 189 4 9쪽
69 세상이 너무 쉬워 19.12.31 129 6 9쪽
68 생김에 관한 고찰 19.12.30 152 7 9쪽
67 나는 강하다 19.12.30 127 6 9쪽
66 처형식 19.12.30 125 6 9쪽
65 양아치 19.12.29 122 6 9쪽
64 간타자 +1 19.12.29 138 6 9쪽
» 내가 내게? 19.12.29 139 5 9쪽
62 의욕 잃은 망나니 19.12.28 152 8 9쪽
61 말종의 반격 19.12.28 126 6 9쪽
60 동맹주 19.12.28 124 5 9쪽
59 무마동맹 19.12.27 142 4 9쪽
58 천마신공 19.12.27 144 4 9쪽
57 아비수의 마왕들 19.12.27 149 6 9쪽
56 망나니 강림 +3 19.12.26 144 8 9쪽
55 어마어마한 지원군 +1 19.12.25 154 6 9쪽
54 마교와 전쟁 19.12.24 142 7 9쪽
53 애송이들아 +2 19.12.23 157 8 9쪽
52 대기업 회유 +2 19.12.22 181 7 9쪽
51 독점금지법 +2 19.12.21 179 5 9쪽
50 후원금 +5 19.12.20 171 6 9쪽
49 난 진실만 말한다 +2 19.12.19 174 6 9쪽
48 청문회 +2 19.12.18 172 5 9쪽
47 무림맹의 저력 +2 19.12.17 165 7 9쪽
46 비무 대회 +2 19.12.16 187 7 9쪽
45 천마의 대응 +4 19.12.15 187 7 9쪽
44 후보자 토론회 +2 19.12.14 176 7 9쪽
43 영혼 분리 +2 19.12.13 181 7 9쪽
42 공약 +3 19.12.12 220 6 9쪽
41 출마 선언 +2 19.12.11 187 6 9쪽
40 차별에 관하여 +2 19.12.10 221 7 9쪽
39 빙의가 준 계시 +2 19.12.09 268 7 9쪽
38 세 번째 빙의 +2 19.12.08 216 7 9쪽
37 탄핵 +2 19.12.07 202 10 9쪽
36 프리즌 브레이크 +4 19.12.06 218 8 9쪽
35 공청석유 +4 19.12.05 259 5 9쪽
34 십색기 +2 19.12.04 232 9 9쪽
33 문신 법술 +3 19.12.03 226 5 9쪽
32 천마 감옥에 갇히다 +2 19.12.02 241 5 9쪽
31 범인 검거 +2 19.12.01 213 7 9쪽
30 두 번째 빙의 +3 19.11.30 250 6 9쪽
29 대호법의 활약 +3 19.11.29 252 5 9쪽
28 상거지 만수로 +2 19.11.28 286 8 9쪽
27 첩자 이야기 +2 19.11.27 283 8 9쪽
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39 7 9쪽
25 민폐 천마 +2 19.11.25 282 6 9쪽
24 망나니 천마 +2 19.11.24 308 9 9쪽
23 최악의 16팀 +3 19.11.23 301 9 9쪽
22 노력하는 천마 +2 19.11.22 384 7 9쪽
21 무림맹의 재도발 +5 19.11.21 361 8 9쪽
20 배움은 끝이 없다 +2 19.11.20 375 8 9쪽
19 영혼과 육신 +1 19.11.19 412 9 9쪽
18 첫 경험 +6 19.11.18 522 13 9쪽
17 세상에 이런 일이? +2 19.11.17 417 13 9쪽
16 뒷수습 +4 19.11.16 421 12 9쪽
15 말종의 사신 +2 19.11.15 444 14 9쪽
14 엄친아 할아비 +3 19.11.14 467 13 9쪽
13 이호법 +4 19.11.13 486 12 9쪽
12 인재 영입 +3 19.11.12 545 18 9쪽
11 삼호법 +5 19.11.11 575 1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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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내가 천마라니 +3 19.11.09 718 1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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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치란 말이야 +4 19.11.07 848 2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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