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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조회수 :
41,981
추천수 :
885
글자수 :
36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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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20 18:00
조회
375
추천
8
글자
9쪽

배움은 끝이 없다

DUMMY

"무림에서 춤 솜씨가 가장 훌륭한 자는 누구지?"


천마는 춤도 D 받았다. 무공 초식에서 살기를 뺐더니 로봇 같다는 혹평을 받았다. 춤에 영혼이 없다나.


"마이글입니다."


이름 마이글(馬二契). 호는 재액승(再液昇). 황궁 세력권에 거주하는 자로 강시 춤으로 수많은 사랑을 받는 춤꾼이다.

참고로 사호법 왕간지의 호는 중이(中二)다. 밀덕은 원래 호가 미필(未畢)이었는데 스님이 되면서 양거(良拒 - 양심 거부)로 바뀌었다.


천마의 호는 비지(飛志 - busy)다.


"정중히 모셔라. 그리고 노래 잘하는 사람 중 데려올 수 있는 게 누구 있지?"


춤은 마이글이 독보적인데 노래는 여럿이다.


"고려에 박치(朴治)라는 노래꾼이 있습니다. 박치 노래를 듣고 봉구한 사람이 백이 넘습니다."


봉구(封口). 노래를 끊는다는 뜻으로 무림의 금분세수와 같다. 그냥 은퇴한 노래꾼은 심심할 때 흥얼거릴 수도 있다. 그러나 봉구를 선언한 자는 다신 노래하지 못한다. 금분세수한 자가 어떤 일이 있어도 무림 일에 끼어들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유명한 자라면 왜 처음 듣는가?"

"아마 교주께서는 호만 들으셨을 겁니다. 박치의 호는 음치(音治)입니다."


음을 다스린다는 좋은 의미다.


###


천마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D 그룹이 된 후 노래와 춤을 열심히 배웠다. 수십 명 선생이 101명의 연습생을 혹독하게 가르쳤다. 가능성이 보이는 연습생은 전담으로 보컬 한 명 춤 한 명 붙였다. 박순녀 역시 제작진이 신경 써주는 기대주였다.


그런데도 노래나 춤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교주. 마이글을 데려왔습니다."

"지하 연무장으로 모셔라."


인마를 용답답에게 맡긴 천마는 오랜만에 부동성왕의 경공으로 순간이동했다.


"교주는 춤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몇 분 뒤에 도착한 마이글은 인사도 생략하고 질문부터 던졌다.


"뭔가를 표현하는 거라고 들었다."


마이글이 고개를 젓는다.


"춤은 옷 벗는 행위입니다."

천마야 난순이 있는 자리에서도 훌러덩 잘 벗는데, 박순녀가 그러면 큰일이다.

"가리는 것들을 벗겨내는 신성한 의식입니다. 진실한 나를 내보이는 수단입니다."


마이글은 왼손으로 허리를 짚고 오른손으로 하늘을 찔렀다. 골반이 좌우로 부드럽게 흔들린다.


"이건 뭔가 흥미로운 걸 찾는 날 표현한 겁니다."

"이건 당황한 마음을 표현하는 겁니다."

"이건 분노."

"이건 환희."


천마는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때론 기교도 필요합니다."

앞으로 걷는 것 같은데 몸은 뒤로 향한다. 내 눈이라면 의심했을 테지만, 천마 눈이 잘못 봤을 리 없다.


"기교는 뭐랄까. 내가 전한 진심을 느끼지 못하는 자에게 보여주는 거짓입니다. 사실 방금 보여준 화려한 달걸음보다 그 전의 작은 몸짓들이 내가 진정으로 표현하려는 겁니다."


"그랬군. 내가 전한 진심을 누구도 받아들이지 못할 때는 거짓이라도 보여줘야 하는구나. 그게 사람 사는 모습이구나."


노래는 아니었지만, 춤엔 천마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런데 누구도 그 진심을 알아주지 않은 것이다.

천마가 걱정했던 건 진심을 전할 방법이 아니라 안 전해지는 진심이었다.


한참 고민하던 천마가 갑자기 춤췄다. 이럴 땐 천마 몸에 있는 게 한이다. 감각이 완전하게 전달되지 않기에 지금 어떤 춤을 추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그저 마이글의 정신 가출한 표정과 멍한 눈동자로 어마어마한 춤을 추고 있다는 걸 유추해야 했다.


"천마무."

천마가 멈추고 한참 지나서야 마이글이 겨우 입을 뗐다.

"교주는 이런 분이셨군요."


"평범한 자들에게도 뭔가 전하려면 어떻게 해야지?"

"주고받는 게 아닌 일방적으로 주는 거라면 기교를 섞어야죠. 자주 쓰는 기법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동작이 바뀔 때마다 시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고 숨은 들이쉬어야 하는지 내 쉬어야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손 모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이글은 사흘 동안 열과 성을 다하여 천마에게 춤을 가르쳤다.


"어릴 적 말입니다."

쉬는 시간엔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형제들과 함께 공연했습니다. 막낸데도 공연에 늘 제 이름을 걸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릴 '재액승 다섯'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돈 때문에 서로 사이가 소원해졌습니다. 그래서 황궁 초청이 있을 때만 마지못해 공연했고 남은 시간엔 다른 소일거리로 보냈습니다."


"교주를 보니 다시 공연하고 싶은 욕구가 치솟습니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내 진심을 전하고 싶습니다."

"혼자 할 생각인가?"

"형들은 이미 나이도 많고 해서 함께 공연할 수 없을 겁니다. 마음에 맞는 동료 넷 찾아서 어릴 적 공연을 재현할 겁니다. 이름도 생각해 뒀습니다."


마이글 눈에 별이 내려앉았다.


"'이글 다섯'이라는 이름으로 공연할 겁니다. 오징어랑 외계인 흉내를 섞어서 새로운 춤 만들 겁니다. 오징어외계인이라고."

"성공적인 공연을 미리 축하한다."


마이글이 떠나고 하루 뒤에 박치가 도착했다.


"교주 양반은 노래가 뭐라고 생각하시오?"

"곡에 가사를 얹어서 뭔가를 표현하는 것."

"교주 양반. 당신 정도면 곡이나 가사 없어도 원하는 바를 표현할 수 있지 않소?"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기 반 소리 반. 명심하시오. 이것만 지키고 남은 건 그냥 자기 편한 대로 부르면 되오. 노래하는 사람이 편해야 듣는 사람도 편하니까."


이론 교습을 마친 박치는 노래를 불렀다. 음정이나 박자를 무시하고 정말 제멋대로 불렀다.


"후리태임포(喉里態任抛)."


후리는 목구멍. 태는 상태. 임포는 마구 던져라. 난해하다.


"시간과 장소와 상대에 따라 사람 몸은 달라지기 마련이오. 어떻게 부르겠다고 정해놓지 마시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부르라는 뜻이요. 목구멍 상태에 따라 편하게 던지라는 깊은 뜻이 있지. 굳이 음정 지키고 박자 지키고 할 건 없소. 중요한 건 공기 반 소리 반."


천마는 노래에 감정 싣는 걸 정말 어려워했다. 금방 끝내고 돌아간 마이글과 달리 박치는 꽤 오래 가르침을 내려야 했다.


"저기. 고향에 두고 온 자식에게 편지 좀 쓰고 싶은데 교주께서 대필해 주시겠소? 내가 아는 글자도 적고 워낙 악필이어서."


천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붓을 잡았다. 먹을 듬뿍 찍은 다음 박치를 바라봤다.


"사랑하는 아들아."


붓이 간결하게 움직이며 종이에 글자를 얹는다.


"내가 없다고 게으름 피우는 건 아니겠지? 넌 얼굴이 못났으니 노래라도 잘해야 한다. 그러니 절대 노래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아라."

"돌아갈 때 황성에 들러 마이글 서명 꼭 받아 갈 테니 그건 걱정하지 말고. 그러나 네가 여전히 공기 반 소리 반을 이루지 못했다면 마이글 서명은 불태워버릴 것이다."


박치는 꽤 엄한 부친 같았다.


"그리고 자꾸 살 태우지 말아라. 검게 태우면 이목구비가 흐릿해져서 덜 못생겨 보일 거라는 건 네 착각이다. 이목구비가 흐릿하면 오히려 자세히 볼 가능성이 크다. 넌 뜯어볼수록 못났으니 제발 살 그만 태우거라."


"글솜씨가 부족해 이만 줄인다."


"진영이를 진심으로 아끼는 아빠가 광명정에서."


내공으로 먹물을 순식간에 말린 천마는 신조를 호출했다.


"저기. 신조 양반.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소?"

"뭐야? 귀찮게."

"내 아들이 떡 정말 좋아하는데. 떡 두 개만 함께 갖다주면 안 되겠소?"


###


프로토스 101 촬영 현장.


"등급 전이고 생존 미션입니다."

진행자가 룰을 설명한다. 연습생들은 이미 숙지했기에 사실상 시청자한테 해주는 거다. 진행자의 실수로 이미 몇 번 다시 찍고 있다. 연습생들은 한 컷이라도 더 따내겠다고 열심히 리액션했다.


"A등급이 한 팀이 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BCD도 같은 팀이 됩니다. 그러나 단순한 팀전은 아닙니다."


네 등급 사이의 경쟁에 개인 평가도 곁들였다. 등급에 어울리는 모습을 못 보여주면 강등하고 훌륭한 모습을 보이면 승급한다. 그리고 정말 아니다 싶은 연습생은 오디션에서 탈락한다.


101명 연습생 중에서 다음 미션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80명뿐이다. 21명은 짐 싸서 떠나야 한다.


"팀마다 팀명을 짓겠습니다. A등급부터 시작하죠."


미리 상의했기에 오래 끌지 않았다.


"저희는 팀명 캐리어 하겠습니다. 프로토스 101 프로그램은 캐리어가 캐리한다!"

"저희는 팀명 스카웃 하겠습니다. 프로토스 101을 사랑하는 여러분, 우릴 데뷔 조로 스카웃 해주세요!"

"저희는 질럿. 모두 함께 소리 질럿!"


D조 차례다.


"저희는 셔틀입니다. 우리 사랑을 여러분께 전해드리겠습니다."


"조명도 정해졌으니 첫 미션 전달합니다. 첫 미션은 큐티 댄스입니다."


- 제길.


천마는 무뚝뚝한 소녀다.


작가의말

천마가 추면 천마무. 마이글이 추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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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나는 모를 이야기 +9 20.01.06 742 12 11쪽
88 사필귀정 20.01.06 270 6 9쪽
87 저승사자의 손짓 20.01.06 183 5 10쪽
86 경지 상승 20.01.05 163 5 9쪽
85 견제 20.01.05 173 5 9쪽
84 생방송 20.01.05 173 5 9쪽
83 자충수 20.01.04 154 6 9쪽
82 민중의 칼 20.01.04 156 4 9쪽
81 지뢰밭길 20.01.04 141 4 9쪽
80 가시밭길 20.01.03 142 8 9쪽
79 천동출 20.01.03 152 4 9쪽
78 진상 20.01.03 140 5 9쪽
77 성화신의 정체 +2 20.01.02 162 7 9쪽
76 합체와 분리 20.01.02 140 5 9쪽
75 전쟁 20.01.02 153 5 9쪽
74 저지르고 보자 20.01.01 176 4 9쪽
73 정조를 지켜라 20.01.01 200 4 9쪽
72 검사 천동출 20.01.01 155 4 9쪽
71 청천벽력 +2 19.12.31 164 7 9쪽
70 전학생 19.12.31 190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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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생김에 관한 고찰 19.12.30 152 7 9쪽
67 나는 강하다 19.12.30 127 6 9쪽
66 처형식 19.12.30 125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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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간타자 +1 19.12.29 138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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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의욕 잃은 망나니 19.12.28 152 8 9쪽
61 말종의 반격 19.12.28 126 6 9쪽
60 동맹주 19.12.28 124 5 9쪽
59 무마동맹 19.12.27 142 4 9쪽
58 천마신공 19.12.27 144 4 9쪽
57 아비수의 마왕들 19.12.27 149 6 9쪽
56 망나니 강림 +3 19.12.26 144 8 9쪽
55 어마어마한 지원군 +1 19.12.25 154 6 9쪽
54 마교와 전쟁 19.12.24 143 7 9쪽
53 애송이들아 +2 19.12.23 157 8 9쪽
52 대기업 회유 +2 19.12.22 181 7 9쪽
51 독점금지법 +2 19.12.21 180 5 9쪽
50 후원금 +5 19.12.20 172 6 9쪽
49 난 진실만 말한다 +2 19.12.19 174 6 9쪽
48 청문회 +2 19.12.18 173 5 9쪽
47 무림맹의 저력 +2 19.12.17 166 7 9쪽
46 비무 대회 +2 19.12.16 187 7 9쪽
45 천마의 대응 +4 19.12.15 187 7 9쪽
44 후보자 토론회 +2 19.12.14 176 7 9쪽
43 영혼 분리 +2 19.12.13 182 7 9쪽
42 공약 +3 19.12.12 220 6 9쪽
41 출마 선언 +2 19.12.11 187 6 9쪽
40 차별에 관하여 +2 19.12.10 221 7 9쪽
39 빙의가 준 계시 +2 19.12.09 269 7 9쪽
38 세 번째 빙의 +2 19.12.08 216 7 9쪽
37 탄핵 +2 19.12.07 202 10 9쪽
36 프리즌 브레이크 +4 19.12.06 219 8 9쪽
35 공청석유 +4 19.12.05 259 5 9쪽
34 십색기 +2 19.12.04 233 9 9쪽
33 문신 법술 +3 19.12.03 226 5 9쪽
32 천마 감옥에 갇히다 +2 19.12.02 241 5 9쪽
31 범인 검거 +2 19.12.01 213 7 9쪽
30 두 번째 빙의 +3 19.11.30 250 6 9쪽
29 대호법의 활약 +3 19.11.29 252 5 9쪽
28 상거지 만수로 +2 19.11.28 287 8 9쪽
27 첩자 이야기 +2 19.11.27 283 8 9쪽
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40 7 9쪽
25 민폐 천마 +2 19.11.25 283 6 9쪽
24 망나니 천마 +2 19.11.24 309 9 9쪽
23 최악의 16팀 +3 19.11.23 301 9 9쪽
22 노력하는 천마 +2 19.11.22 384 7 9쪽
21 무림맹의 재도발 +5 19.11.21 361 8 9쪽
» 배움은 끝이 없다 +2 19.11.20 376 8 9쪽
19 영혼과 육신 +1 19.11.19 413 9 9쪽
18 첫 경험 +6 19.11.18 523 13 9쪽
17 세상에 이런 일이? +2 19.11.17 418 13 9쪽
16 뒷수습 +4 19.11.16 422 12 9쪽
15 말종의 사신 +2 19.11.15 444 14 9쪽
14 엄친아 할아비 +3 19.11.14 467 13 9쪽
13 이호법 +4 19.11.13 486 12 9쪽
12 인재 영입 +3 19.11.12 546 18 9쪽
11 삼호법 +5 19.11.11 576 14 9쪽
10 간 보기 +2 19.11.10 613 13 9쪽
9 내가 천마라니 +3 19.11.09 719 1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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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치란 말이야 +4 19.11.07 848 2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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