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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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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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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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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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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가시밭길

DUMMY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이 사람에게 큰 짐을 주기 전에, 마음을 괴롭히고 육체를 괴롭히고 허기로 괴롭히고 무력하게 하여 모든 일이 여의치 않게 한다. 이로써 심지를 굳게 하고 성정을 단단히 하여 갖추지 못했던 능력을 준다.


"동출아. 너 제정신이야? 자격증 따고 더 좋은 회사로 가려던 게 아니었어?"


어머니는 사흘이 멀다고 전화하신다. 삼십 대 중반에 서울에서 회사 다니는 남자라는 말에 가끔은 선이 들어온다. 예전엔 일 년에 한두 번 있던 일인데, 서른다섯을 넘기고 입질이 부쩍 늘었다.


35세를 넘겼으니 내 판매가는 반 토막이 났다. 그리고 매입가는 수 배로 뛰었다고 짐작하겠지. 그러나 난 살 생각도 팔 생각도 없다.


천마다운 품위를 회복하는 게 우선이니까.


"어머니. 나 자격증 공부하고 있어요."


서울대 로스쿨을 만점으로 입학했다. 내 평범한 대학 성적이 발목을 잡을 뻔했지만, 그건 면접에서 만회했다.


"거짓말하기 그래서 아들이 회사 그만두고 자격증 공부한다니까 다들 질색하더라. 너 결혼할 생각은 있는 거니?"


"어머니. 저 공부하러 가요. 시간 나면 다시 통화하죠."


이게 다 내 업보다. 천마임을 일찍 자각하지 못하고 평범하게 보낸 내 30년 세월의 빚을 열심히 갚는 거다.


통화를 마치고 경찰서로 갔다.


"이건 본인 과실이어서 보상 못 받습니다."

"그건 이미 열 번도 더 말씀하셨고, 저도 압니다. 도둑놈 잡으면 받아낼 수 있잖습니까."

"이렇게 재촉한다고 범인이 절로 잡힙니까? 처리할 사건이 가득한데 자꾸 찾아오시면 방해만 됩니다."


집에 도둑이 들었다. 카드를 훔쳐 8년 동안 내가 모은 1억6천을 홀라당 빼갔다.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CCTV 까보면 범인 나오잖아요."

"까봤죠. 그런데 모자에 마스크까지 써서 얼굴 확인 안 된다니깐요."

"체형이랑 걸음걸이는요? 그거로도 범인 특정할 수 있잖아요."

"이 친구 드라마 많이 봤네. 서울에 인구 천만이 넘어요. 체형이랑 걸음걸이로 어떻게 사람 특정해요?"


CCTV 보여주면 직접 범인 찾아내겠다는 나를 경찰은 무자비하게 쫓아냈다.


경찰서를 나와 곧장 학교로 달려갔다. 말 그대로 달려서.


"저기, 뒤로 두 번째 줄에 앉은 분, 누구시죠? 제 강의는 아무나 듣는 게 아닙니다."


나랑 나이가 비슷한 교수. 서른 중반에 서울대 로스쿨 교수면 대단한 거다. 정식 교수인지 임시직인지는 모르지만.


"학생입니다. 19학번이요."


학생 모두 큭큭거린다. 입술을 새빨갛게 칠한 조교 역시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들썩인다. 이런 특이사항은 조교가 미리 교수한테 보고하는 게 일반적인데, 저건 매번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다.


로스쿨 2년 동안 딱 한 분 빼고 모든 교수님이 날 강의실에서 쫓아내려 했다.


"저, 성함이?"


교수의 말에 학생들이 빵 터졌다. 이것들이, 너흰 영원히 이십 대일 거 같아? 너희는 안 늙을 줄 알지?


"천동출입니다."


출석부를 뒤적거리던 교수가 겸연쩍게 웃는다.


"미안합니다. 그래도 그 얼굴 평생 가는 거 알죠? 십 년만 지나면 동안 소리 들을 거예요."

"교수님. 저 서른여섯입니다."


교수가 입을 꽉 다물고 눈알을 좌우로 굴린다. 편집증이 좀 있는 성격이군. 이 상황에 뭐든 해서 마무리를 지으려는 의지가 보인다.


"그래도 내가 형입니다."


강의실이 뒤집혔다.


그간 새로 생기거나 바뀐 법이 좀 있어서 배울 게 전혀 없지는 않다. 그래도 한 글자 안 놓치려고 애쓰는 다른 학생들보다 여유가 만만하다.


"동출 후배님? 저녁에 술 한 잔 어때요?"


유일하게 날 챙겨주는 녀석. 놈도 얼굴이 좀 아니다. 그래선지 나한테 동질감을 느끼는 듯하다.


그러나 이걸 명심해. 난 천마다. 간절히 원하면 얼굴을 잘생기게 바꿀 능력이 있지만, 부모님이 주신 몸 그대로 사는 거다.


솔직히 말하면, 평범한 외모와 비범한 재능의 반전을 노리는 부분도 조금 없지 아니하다.


"알바합니다. 전 재산 도둑맞았거든요."


다행히 핸드폰에 2백 정도 있어서 당장 생활의 불편함은 없다. 그러나 이 나이에 부모님께 손 빌리기도 그렇고 해서 저녁에 알바한다.


"천 씨, 일찍 왔네?"


택배 상하차 알바. 시급이 세며 밤에 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일. 그리고 얼굴 안 보고 알바 뽑는 몇 안 되는 곳.


호프집 접시 닦는 알바 지원했다가 얼굴 때문에 빠꾸 맞은 걸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린다. 혹시라도 손님 눈에 띄면 매출에 영향 준다나 뭐라나.


"잠깐 이리 와봐."


주변 눈치를 보는 모습이 영 수상쩍다.


"오늘부터 시급 2배로 줄 테니 다른 사람한텐 비밀로 해."

"왜요?"

"혼자 서너 사람 몫을 하는데 당연히 그래야지. 천 씨 덕분에 일도 한 시간 빨리 끝나서 사장님이 무척 좋아하셔."


같이 알바하는 수십 명의 한 시간 시급을 절약해서 좋으니까 일부를 나한테 준다는 뜻이군. 그 사람들한테 손해인 것 같을 테지만, 그만큼 그 사람들도 편하게 일하는 거니까 이득이다.


택배 상하차는 한 달 내내 출근 도장 찍기 힘들다. 그렇게 무리하여 일하면 몸 어딘가 상해서 오히려 치료비가 더 나간다.

그러나 나랑 같이 일하면 천천히 해도 한 시간 일찍 끝난다. 작업 시간이 줄고 일 강도도 줄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 때고.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더 열심히는 무슨. 그러다 탈 나. 쉬엄쉬엄해."


일을 마치니 새벽 4시다. 서로 수고했다고 인사하며 퇴근한다. 나 역시 집으로 돌아가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뉘었다.


###


"회사 8년이나 다니다가 갑자기 왜 검사 되려고 한 건가? 혹시 억울한 일이라도 당했는가?"


"아닙니다. 부모님은 물론 저 역시 위법 행위는 전혀 없었고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대로 평범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내로 태어나서 세상과 국가 그리고 국민을 위해 뭐라도 좀 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검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차 부장 입이 귀에 걸린다.


토막 세상에서 모시던 부장님. 첫 부장 말고 날 부부장검사로 해준 두 번째 부장님이다.


가슴에 호연지기를 가득 품은 중년 로맨티시스트 차 부장은 늘 사내라면 세상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사람은 검사밖에 없다고 여기기도 했다.


재벌과 정치인을 바퀴벌레만큼 싫어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그래. 세상을 위해 어떤 일을 해보고 싶은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습니다. 그런데 재벌이나 정치인은 흙탕물 똥물에서 뒹굴며 자꾸 국민 더러 1급 청정수가 되라고 하죠. 그런 흐린 물은 밑으로 끌어내려 아랫물을 더럽히지 못하게 해야지 않겠습니까."


"젊은 친구가 호연지기가 가득하구먼. 마음에 꼭 들어. 합격하면 지원하고 싶은 곳 있나?"


"중앙지검 특수본입니다. 거기 부장님이 아주 훌륭하신 분이라고 교수님들이 자주 언급하셨습니다."


차 부장이 좋아 죽는다. 저 단순한 성격에 부장 검사가 될 수 있었던 건, 잘 드는 칼 하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적의 심장에 꽂든 자기 썩은 살을 도려내든. 잘 벼린 칼이 아니면 아프게 베어내기 때문에, 저런 인물 한둘이 꼭 필요하다.


내가 차 부장 라인을 타려는 이유기도 하고. 차 부장이 검찰 그만두면 내가 그 자리를 승계할 생각이다.


"자네 혹시 나를 아나?"

"초면입니다. 집안도 평범하여 판사나 검사처럼 훌륭한 분들과 전혀 인연이 없습니다."

"꼭 십년지기 친구 보는 듯해서 말이야. 술친구 자주 해줄 거지?"


검사 면접은 만점이 분명하다. 이래놓고 낮은 점수를 주면 내가 차 부장 잘못 본 거고.


"사내가 술을 마다해야 쓰겠습니까. 영웅호걸이라면 당연히 천 잔을 마셔도 쓰러지지 않아야죠."


내 대답에 차 부장이 호탕하게 웃는다. 옆에 두 들러리 면접관은 내 자료가 보물 지도라도 되는 듯 샅샅이 훑는다.

내가 어떻게 차 부장 비위를 이렇게 잘 맞추는지 궁금한 거겠지. 차 부장은 사람이 까다로워 친구도 몇 없다. 그래서 차 부장의 언행에 대해 나처럼 소상하게 아는 건 웬만한 뒷배로는 힘들다.


"면접 시간이 좀 더 남았군. 혹시 좋아하는 음식이 뭔가?"

"매운 족발, 소 곱창, 고등어구이 좋아합니다."

"허. 자네 혹시 날 조사했나?"


이대로 면접이 끝나고 시간이 흐르면 차 부장 마음에 의혹이 남을 거다. 내 대답이 너무 마음에 드니까.


이 기회에 털고 가려고 차 부장이 좋아하는 음식만 말했다.


"부모님이 분식집 하시는데 장사가 안됩니다. 고등학교 근처여서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만 준비했거든요. 바로 옆집은 매운 족발과 소 곱창 그리고 고등어구이로 대박 났고요."


"그럼 부모님 경쟁적수의 메뉴를 좋아한단 말인가?"


"메뉴가 다르니 상생을 도모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께 어설프게 옆집 따라 해서 같이 망하지 마시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자기 길을 꿋꿋이 가는 게 이기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말

회귀물이 왜 많은지 궁금했는데, 읽는 분들도 재밌을 뿐 아니라 쓰는 것도 편하네요. 이야기를 주인공한테 유리하게 이끌어도 회귀로 개연성을 미리 확보했으니깐 설득의 과정이 생략되니깐요. 게다가 주인공의 답이 정답인지 오답인지 조마조마할 필요도 없으니 사이다 팡팡 터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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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경지 상승 20.01.05 163 5 9쪽
85 견제 20.01.05 171 5 9쪽
84 생방송 20.01.05 172 5 9쪽
83 자충수 20.01.04 153 6 9쪽
82 민중의 칼 20.01.04 153 4 9쪽
81 지뢰밭길 20.01.04 140 4 9쪽
» 가시밭길 20.01.03 142 8 9쪽
79 천동출 20.01.03 151 4 9쪽
78 진상 20.01.03 137 5 9쪽
77 성화신의 정체 +2 20.01.02 161 7 9쪽
76 합체와 분리 20.01.02 139 5 9쪽
75 전쟁 20.01.02 152 5 9쪽
74 저지르고 보자 20.01.01 173 4 9쪽
73 정조를 지켜라 20.01.01 197 4 9쪽
72 검사 천동출 20.01.01 153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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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전학생 19.12.31 184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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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의욕 잃은 망나니 19.12.28 150 8 9쪽
61 말종의 반격 19.12.28 125 6 9쪽
60 동맹주 19.12.28 123 5 9쪽
59 무마동맹 19.12.27 140 4 9쪽
58 천마신공 19.12.27 143 4 9쪽
57 아비수의 마왕들 19.12.27 146 6 9쪽
56 망나니 강림 +3 19.12.26 144 8 9쪽
55 어마어마한 지원군 +1 19.12.25 152 6 9쪽
54 마교와 전쟁 19.12.24 141 7 9쪽
53 애송이들아 +2 19.12.23 156 8 9쪽
52 대기업 회유 +2 19.12.22 176 7 9쪽
51 독점금지법 +2 19.12.21 177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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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비무 대회 +2 19.12.16 187 7 9쪽
45 천마의 대응 +4 19.12.15 186 7 9쪽
44 후보자 토론회 +2 19.12.14 174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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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문신 법술 +3 19.12.03 225 5 9쪽
32 천마 감옥에 갇히다 +2 19.12.02 239 5 9쪽
31 범인 검거 +2 19.12.01 211 7 9쪽
30 두 번째 빙의 +3 19.11.30 249 6 9쪽
29 대호법의 활약 +3 19.11.29 252 5 9쪽
28 상거지 만수로 +2 19.11.28 285 8 9쪽
27 첩자 이야기 +2 19.11.27 280 8 9쪽
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35 7 9쪽
25 민폐 천마 +2 19.11.25 282 6 9쪽
24 망나니 천마 +2 19.11.24 308 9 9쪽
23 최악의 16팀 +3 19.11.23 298 9 9쪽
22 노력하는 천마 +2 19.11.22 383 7 9쪽
21 무림맹의 재도발 +5 19.11.21 358 8 9쪽
20 배움은 끝이 없다 +2 19.11.20 373 8 9쪽
19 영혼과 육신 +1 19.11.19 409 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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