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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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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6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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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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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제자 돌보기

DUMMY

"인마는 내가 손수 돌볼 것이다."

"감축드리옵니다."


인마가 순진한 눈으로 허리를 공손히 굽히는 어른들을 굽어봤다. 지금 천마는 인마를 품에 안고 대략 6미터 정도 허공에 떠 있다.


"보통 세 살이면 무슨 술 좋아하지?"

천마의 말에 모두 이마를 찌푸렸다. 세 살 때를 기억하는 자가 드문 탓이겠지.


"저는 동동주를 좋아했던 거 같습니다."

윤 동주가 입을 열었다.

"저는 고량주가 첫술이었습니다."

"여아홍이 최고죠."

"죽엽청."

"그래도 연한 소주가 애들 입맛에 맞지 않겠습니까?"

"백세주 마시면 무병장수한다는 풍문을 들었습니다."


- 미친. 애들은 술 안 마셔. 술 마시면 신경 손상이 와서 바보가 될지도 모른다고.


천마는 내 말을 무시했다. 하긴, 이 싸움만 잘하는 무식한 놈이 신경이 뭔지나 알겠어?


"천마 사형. 사형께서는 세 살 때 무슨 술을 마셨습니까?"

"모태주와 오량액 그리고 천축에서 들여온 위스키라는 걸 삼삼사 비율로 맞춰서 마셨지. 석 잔이면 대라신선도 부럽지 않아."


막살자가 어느새 소매에서 붓을 꺼내 죽간에 천마가 한 말을 기록했다.


이놈 중증일세.


"교주. 지하 술 창고에 있는 술을 조금씩 맛보이면서 본인이 직접 고르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세 살이면 자기 주견 내세울 나이잖습니까."


천마는 아기를 안고 천천히 날았다. 부르르 떨며 순식간에 이동하는 건 아기 때문에 자제하는 듯하다. 나야 천마 몸에 빙의해 있으니 상관없지만, 아기는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잠깐. 왜 이렇게 빙의라고 확신하지? 그리고 묘하게 침착해. 난 공포 영화 포스터도 안 쳐다보는 쫄본데.


"금원보는 됐고. 천마 사형이 썼던 수건이나 입었던 옷 같은 거 있으면 하나만 줘."

멀리 막살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마라는 별호가 당첨되었기에 막살자가 상품을 받게 되었다. 이혼대법도 거절했고 집이 부잔지 금원보도 마다했다.


어느새 도착한 지하 술 창고에는 어림짐작으로 만 통이 넘은 술이 있었다. 종류별로 모아뒀는지 술통 크기나 모양 그리고 색이 조금씩 달랐다.


"교주께서 누추한 곳에 어인 일로."

코가 새빨간 다부진 몸매의 남자가 천마에게 인사한다.


정보가 떠올랐다.

주정(朱正). 특기는 취권. 주정(酒精)을 내공 대신 사용하며 아무리 마셔도 주정(酒酊)을 부린 적 없음.


"인마는 내 제자다."

"벌써 술 가르치시려고요?"

"세 살이면 다소 늦은 감이 있는데."


"교주처럼 하늘이 내린 몸을 타고난 분이야 상관없지만, 범부속자들은 세 살에 술 마시면 죽기도 합니다."


역시. 여기도 깬 사람이 있었어.


코가 새빨갛고 이름이 주정이고 특기는 취권이고 술 창고를 지키는 놈이란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아니다. 취중 진담이라는 말도 있잖아. 술에 절어 사는 놈은 거짓말 절대 못 해.


"그럼 일단 천마신공부터 가르쳐야겠다."


###


아주 다행스럽게도 천마는 인마에게 술을 먹이려는 시도를 멈췄다.


"인마, 이거 읽을 수 있어?"

"응, 사부. 개세기 천마신공."


얼핏 욕처럼 들리지만, 세상을 덮는 기개를 갖춘 천마신공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건 내가 유추한 거다. 회사에서 중국 관련 업무를 하는 바람에 한문을 좀 공부했거든. 나랑 선배가 줄 잡았던 부장이 상무로 승진하지 못하고 퇴사하는 바람에 그만뒀지만.


"아니야, 인마. 개세(開勢) 기천(氣天) 마신공(魔神功)이다."


천마는 날아서 욕실로 갔다. 커다란 욕조에는 뜨거운 물이 가득했다.


천마는 펄펄 끓는 물에 손가락을 넣고 빙빙 돌렸다. 냉기가 퍼지며 물이 순식간에 식었다. 천마의 손끝으로 느껴지는 온도는 대략 32도 정도로 추정한다.


"목욕 시중을 들까요?"


마교 사대 미녀로 꼽히는 난순이다. 지구로 가면 순식간에 오징어 숫자가 60억 늘게 할 미모인데 천마는 눈길 한 번 제대로 안 준다.


"나가봐라."


천마는 인마를 안고 물에 들어갔다. 인마가 물장구치며 좋아한다. 귀여운 아이가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니 내가 막 힐링 된다.


"내 무공은 네 단계로 나눈다. 첫 단계는 개세, 두 번째 단계는 기천, 세 번째 단계는 마신공, 네 번째 단계는 천마신공이다."

"사부. 네 번째 단계부터 가르쳐 줘."


헐. 천재다. 나도 초등학교 때부터 수능 공부를 했다면 S대에 붙었을지도 모르겠다.


"앞에 세 단계는 웬만한 자질이면 다 익힐 수 있다. 네 번째 단계는 누가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다. 네가 알아서 깨우쳐야 한다. 그럼 개세부터 가르치겠다."


개세라 쓰고 모세라 읽는다.


욕조 물이 양쪽으로 쭉 갈라졌다. 인마도 놀랐는지 아무 반응이 없다. 천마는 이어서 욕조의 물을 둥근 구로 뭉치게도 하고 두부처럼 네모난 모양을 만들기도 했다.

물이 온갖 모양으로 변화했다. 시간이 흐르며 나도 놀라는 걸 잊고 천마의 워터쇼에 푹 빠져 감상하기에 급급했다.


"물은 기보다 다루기 쉽다. 그래서 물 다루는 걸 첫 단계 수련으로 한다. 개세는 네 몸을 열어 바깥과 공명한 후 동세를 이루라는 뜻이다."

인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천마를 바라봤다. 약간 원망의 빛이 서린 것 같다.


애한테 너무 어려운 말 했어. 아이한테 뭔가 가르치려면 일단 취미부터 양성해야 한다. 천마는 고작 열여섯이어서 그런지 애 상대하는 스킬이 미숙하군.


"아, 미안. 내가 널 너무 얕봤구나. 다음부턴 좀 어렵게 설명할게."


인마가 방그레 웃었다. 그러더니 고사리 같은 손을 뻗어 물을 돌렸다.


잠시 후 인마는 휘젓던 손을 멈추고 손가락을 까닥했다.


인마 손가락에서 세 뼘 정도 떨어진 수면에 물방울 하나 톡 튀어 올랐다. 내가 뭘 본 거지? 둘이 짜고 날 농락하는 건가?


인마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물방울이 톡톡 튀어 오른다. 물방울마다 생명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점점 많은 물방울이 튀어 오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작은 오리 모습을 이뤘다. 물방울들이 튀어 오르고 떨어지다가 만나 짧은 순간 이룬 형상이지만, 분명히 오리였다.


"네 뜻이 작지 않구나. 첫 작품으로 봉황을 만들다니."


기를 살려주려는 건가? 누가 봐도 미운 오리 새끼였는데 말이다.


인마는 한참이나 물방울을 튀기며 개세를 수련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멈추고 입을 열었다.


"사부. 똥 마려."

천마는 인마를 안고 욕조에서 나왔다.


- 야, 똥은 어떻게 누고 어디로 가야 하지?

- 너 똥 눠본 적 없어?

- 경지에 이르고부터 안 눴어. 잘 기억이 안 나.


제길. WC라면 모를 거고 화장실이라고 해도 모를 거다.


- 변소라고 알아?

- 그거 뭔데?


제길. 겨우 생각해 낸 건데. 다른 이름 뭐 있지?


- 해우소.

- 몰라.


"난순. 인마가 똥 누고 싶다는데, 어떻게 해야지?"

"풉."


꾀꼬리가 들으면 질투로 피눈물 흘릴 아름다운 목청이다.


"측간에 가면 됩니다."

"똥 누는 방법은?"

"그냥 마려우면 나갑니다."

"무공이랑 같은 거구나.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하면 되는 거였어."


욕 나온다 이놈아.


###


- 아이한테 젖을 먹여야 한다고? 그건 너무 수치스러운 일 아니야?

천마는 한 살이 넘어서도 젖을 먹는 건 수치라고 여겼다.

- 영양학 관점과 면역학 관점에서 보자면, 젖에는 아이의 성장에 유익한 성분이 많고 면역력을 키우는 데도 큰 도움이 돼.


이런 고집 센 애들은 어려운 말을 해줘야 한다. 사춘기 애들은 알아듣게 말하면 죽어라 안 듣는다. 못 알아듣게 어렵게 말해야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른다.


어떻게 아냐고? 내 얘기야. 난 사춘기 때 그랬거든.


- 그런데 다른 사람 젖을 뺏는 건 나쁜 짓이야.

천마도 도덕 과목 공부했나?

- 소나 양은 젖이 많이 나와. 그걸 짜다가 먹이면 돼. 여러 젖을 골고루 먹이면 면역력을 키워 건강하게 자랄 거야.


"허 대주."

허수아비가 허리를 빳빳이 세우며 대답했다.

"분부하십시오. 교주. 칼산에 오르고 불바다에 뛰어들라고 해도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인마의 성장을 위해 젖이 필요하다."


허수아비가 눈물을 뚝뚝 떨궜다.

"속하 젖은 안 나옵니다."

젖 안 나오는 게 큰 죄가 된다는 듯이 허수아비는 슬프게 울었다.


"그건 나도 알지. 가서 소나 양 그리고 고양이나 쥐 젖을 짜와. 범이나 사자 그리고 늑대 젖도 구하고. 구할 수 있는 젖은 다 구해와."


마교 정예 수백 명이 광명정에서 출발했다. 반나절 후에 백 가지가 넘은 젖이 인마 앞에 쭉 진열됐다.


- 젖 먹는 방법은?

- 모두 섞어서 끓인 다음 식혀서 먹이면 돼.


양이 너무 많아 인마가 배불리 마시고도 가득 남았다.


"가져다가 젖 제대로 못 먹는 아이들에게 줘라. 그래도 남으면 임신한 여자들한테 먹여라."


천마의 분부에 수하들이 젖을 들고 마을로 달려갔다.


천마는 착한 소년이었다.


작가의말

개세기천마신공은 광풍살 댓글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 글을 시작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죠.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 글은 작가의말과 답댓글을 본문에 적는 느낌이어서 작가의말도 답댓글도 쓰기 막막하네요. 답댓글 안 적어드리는 거 불쾌히 여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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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동맹주 19.12.28 124 5 9쪽
59 무마동맹 19.12.27 141 4 9쪽
58 천마신공 19.12.27 143 4 9쪽
57 아비수의 마왕들 19.12.27 149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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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대기업 회유 +2 19.12.22 181 7 9쪽
51 독점금지법 +2 19.12.21 179 5 9쪽
50 후원금 +5 19.12.20 171 6 9쪽
49 난 진실만 말한다 +2 19.12.19 174 6 9쪽
48 청문회 +2 19.12.18 172 5 9쪽
47 무림맹의 저력 +2 19.12.17 165 7 9쪽
46 비무 대회 +2 19.12.16 187 7 9쪽
45 천마의 대응 +4 19.12.15 187 7 9쪽
44 후보자 토론회 +2 19.12.14 176 7 9쪽
43 영혼 분리 +2 19.12.13 181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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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출마 선언 +2 19.12.11 187 6 9쪽
40 차별에 관하여 +2 19.12.10 219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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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세 번째 빙의 +2 19.12.08 216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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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십색기 +2 19.12.04 232 9 9쪽
33 문신 법술 +3 19.12.03 226 5 9쪽
32 천마 감옥에 갇히다 +2 19.12.02 240 5 9쪽
31 범인 검거 +2 19.12.01 213 7 9쪽
30 두 번째 빙의 +3 19.11.30 250 6 9쪽
29 대호법의 활약 +3 19.11.29 252 5 9쪽
28 상거지 만수로 +2 19.11.28 286 8 9쪽
27 첩자 이야기 +2 19.11.27 282 8 9쪽
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39 7 9쪽
25 민폐 천마 +2 19.11.25 282 6 9쪽
24 망나니 천마 +2 19.11.24 308 9 9쪽
23 최악의 16팀 +3 19.11.23 301 9 9쪽
22 노력하는 천마 +2 19.11.22 384 7 9쪽
21 무림맹의 재도발 +5 19.11.21 361 8 9쪽
20 배움은 끝이 없다 +2 19.11.20 375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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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내가 천마라니 +3 19.11.09 718 1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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