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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조회수 :
41,878
추천수 :
885
글자수 :
363,122

작성
19.11.14 18:00
조회
466
추천
13
글자
9쪽

엄친아 할아비

DUMMY

새벽이 되자 눈이 떠졌다.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오른다.


- 너 도대체 누구야?


천마가 돌아왔다. 기쁘면서도 아쉬운, 안도하면서도 걱정되는 미묘한 기분.


- 나? 천동출.


제발 부모님이 내 컴퓨터를 뒤져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인, 총각 귀신이어서 저승으로 못 간 불쌍한 영혼.


천마는 연무장에 내려가 달걀 부화하는 수련에 열중했다. 수련을 끝낸 천마는 환복하고 아침 먹으러 식당으로 날아갔다.


그간 기억을 읽었는지 용답답을 보고도 아무 질문 없었다. 용답답을 영입한 게 잘한 일인지 아닌지 좀 말이라도 해주지.


- 성화신한테 네 정체를 물었다. 모른다는 대답을 들었다.

- 모를 수도 있지.

- 신이야. 어떻게 모를 수 있지?


신에 관해 아는 게 있어야 뭐라고 대꾸라도 하지. 교회 다니면 어떻게든 장가간다고 해서 잠시 나갔던 적이 있다. 그러나 결혼의 필수 요건인 돈을 요구하는 바람에 발길을 끊었다. 결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결혼 후 생활이 더 중요하다는 게 내 어리석은 소견이다.


다시 나오라고 자꾸 찾아와서 집에 달마도를 붙이고 불자 코스프레까지 했다. 그리고 교회 사람들한테 악마로 낙인찍혔다.


- 우리 서로에 대해 좀 더 알 필요가 있는 거 같아.

- 네가 1년 치 얘기하면 내가 2년 치 얘기할게. 그럼 이야기가 비슷하게 끝나겠다.


천마는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 한 살 때 기억은 반년밖에 없다. 글자도 겨우 3백 자 정도만 익혔고 세 자리만 넘어가면 더하기 빼기도 가끔 틀리곤 했지. 이렇게 멍청해서 어른 되면 뭐 하고 사나 고민이 많던 때였어. 술도 그때 배웠고. 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다.


제길. 니 똥 굵다.


- 난 기억이 하나도 안 나.


- 두 살 때는 조금 달랐어.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을 갈고닦자. 내 그릇이 요 정도밖에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마음먹었지.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을 그때 처음 접했는데 등골이 짜릿했다. 어떻게 여섯 글자에 그렇게 크고 멋진 뜻을 갈무리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그 감동이 가시지 않아.


- 네 살부터 기억이 조금씩 나는데. 똥오줌은 확실히 가렸어. 맹세할 수 있어.


- 세 살 때 처음 아버지가 황제라는 사실을 알았다. 왜 내가 이름이 없는지와 서출이 무슨 의민지도 알았고. 차라리 내가 그냥 서민이었다면 열심히 공부해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아치라도 될 수 있어. 그러나 서출은 아무것도 안 돼. 너무 큰 박탈감에 난 술로 세월을 헛되이 보냈다. 삼삼사 비율로 온갖 술을 섞어 마시면서 인생을 낭비했지.


- 유치원에서 잘했어요 받았어. 다른 애들보단 적지만, 그래도 받았다는 게 중요하지.


- 네 살 무렵이었지. 어머니가 술에 취한 날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 그 눈물은 차가운 비수가 되어 내 심장을 후볐다. 세상엔 불가능이 없다. 도전하는 자가 없었을 뿐이지. 난 오랫동안 놓았던 붓을 다시 들고 밤마다 촛불을 밝혔다. 책은 최고의 스승이었고 커다란 세상을 내게 펼쳤다.


- 시 낭송 대회 나가서 참여상 받았어.


- 다섯 살 되니 읽을 책이 없었다. 그래서 직접 쓰기로 했지. '세 살도 이해하는 역경 풀이','도덕경이 가장 쉬웠어요','논어 사흘 만에 독파하기','소요유, 인생을 비춰줄 영원한 등대' 등 책을 썼지. 자서전도 쓸까 하다가 세 살 때 술에 절어 살았던 세월이 부끄러워 그만뒀다.


- 초등학교 입학했다.


- 여섯 살 때 학문의 끝을 봤다는 생각에 무공을 익히려 했다. 건강한 몸에 강한 정신이 깃들거든. 황제는 일 년에 얼굴 한두 번 비추지만, 환관을 통해 내 소식을 자주 들었다. 내가 무공에 뜻이 있다는 말을 듣고 명문으로 보내줬다. 명문고로 간 나는 거기서 제갈몽청을 만나 친구가 되었다. 내가 열 마디 하면 세 마디 정도 알아듣는 멍청이지만, 그나마 대화가 됐으니까.


- 돈가스 사준다고 속이고 날 병원에 데려갔어. 거기서 고래 잡았지.


서른넷까지 쓸 일이 없을 걸 알았으면 수술 안 받았을 텐데.


- 일곱 살에 제갈몽청과 함께 명문대로 옮겼다. 제갈몽청은 여덟 살에 명문고에 입학했고 그땐 열두 살이었다. 토납법 가르치는 선생들이 제갈몽청 정도면 천재에 속한다고 하더라. 그때 무림에 참 인물이 없구나 처음 느꼈지.


이거 계속 참고 들어줘야 하나?


- 특별한 일 없이 2년 보냈다.


- 여덟 살 때 달마랑 장삼풍이 와서 날 제자로 삼겠다고 싸웠다. 장삼풍은 달마를 정신적 고자라고 비난했고 달마는 장삼풍을 종교계의 수치라고 욕했다.

- 그건 왜지?

- 스님이야 여자를 멀리해야 하니까 그렇게 말한 거고. 장삼풍은 원래 장삼봉이었어. 여자 밝히는 난봉꾼에 자기보다 센 놈들 꼬봉 짓이나 하고 유명한 아첨꾼이었대. 자기보다 센 놈이 방귀만 뀌어도 따봉을 남발해서 장삼봉으로 불렸지. 난봉에 따봉에 꼬봉.


- 그거 진짜야?


- 자세한 건 나도 몰라. 장삼풍이 원래 장삼봉으로 불렸던 건 확실해. 후에 달마랑 왕중양이랑 비슷한 고수가 되고 나서 장삼풍이라고 바꿨어.


- 거절했으니 네가 지금 여기 있는 거겠지?


- 그럼. 달마는 견식이 넓은데 깊이가 부족해. 달마가 만든 소림 72절기는 어느 하나 대단치 않은 게 없지만, 어느 하나 절세신공으로 불리지 않는다. 사대호법 중 말석인 왕 호법의 간지신공만 해도 소림 72절기 중 어떤 무공보다 강해.


- 장삼풍은?


- 장삼풍은 깊이는 있지만 너무 편협해. 태극혜검. 운 좋게 진리의 두둑을 슬쩍 건드렸지. 그런데 장삼풍은 그걸 전부라고 여겨. 진리에 어설프게 닿았는데 진리의 핵에 이르렀다고 자만해. 어쩌면 알면서 인정하지 않는 걸지도 몰라. 달마랑 사이가 안 좋아 어떻게든 누르려고 하거든.


- 중학생이 되었다. 남들이 다 힘들어하는 중2를 난 정말 평범하게 보냈어.


- 아홉 살이 되어 마교에 납치당했다. 달마랑 장삼풍이 탐낸다는 소문에 마교 교주가 날 보고 싶었나 봐. 그리고 일방적으로 제자로 들였어. 막살자가 그래서 날 사형이라고 부르는 거야. 내가 열 살 되는 해에 막살자도 교주 제자가 되었거든.


- 고등학교 1학년 때 동아리 들어가서 밴드 잠깐 했어. 너 밴드 뭔지 모르지? 쉽게 말하면 여럿이 협력해 노래하는 거야. 악기 다루는 사람 있고 노래하는 사람 있고. 난 노래하는 사람이었어. 그땐 목청이 맑았거든.


- 그거참 부럽구나. 난 노래 잘 못 하는데.


천마는 마교라는 진흙탕에서도 한 줄기 인간다움을 꿋꿋이 지켜냈다. 그래. 사람이라면 사람 같은 구석이 한 군데라도 있어야지.


- 열 살에 개세기천마신공을 우연히 접했다. 거창한 이름과 달리 마교에서 꽤 많은 사람이 익히는 무공이었다. 난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느꼈고 개세기천마신공을 익혔다. 삼 단계까지 반년 만에 익혀내고 사 단계를 감지했지.


난 운 좋게 찍은 문제가 전부 정답이 되는 바람에 인서울에 성공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 평범한 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 열한 살에 천마신공을 익혔다. 사부는 내게 당시 마존으로 불리던 아마존과 대결을 시켰다. 세 초식 만에 마존을 아마존으로 만들었지. 그리고 난 천마로 불렸다. 그때부터 사부의 견제가 시작됐다. 내 동자공을 깨려고 온갖 짓을 다 벌였지.


- 동자공이 천마신공이랑 무슨 상관이야?


- 동자공은 명문대에서 배운 나랑 가장 알맞은 내공심법이다. 천마신공은 정해진 형태 없이 알아서 깨달아야 하는 무공이고. 천마신공은 동자공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지금이야 둘을 분리했지만, 그땐 동자공이 깨지면 천마신공도 사라졌을 거야.


- 난 군대 갔어. 우리나라에선 남자는 의무적으로 입대해야 하거든.


난 군대 이야기를 조금 자세히 들려줬다. 다 들은 천마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 그러고도 나라가 안 망해?


- 응. 망할 일이 뭐 있어?


천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야기를 이었다.


- 열두 살 때 교주를 죽였다. 무림맹이 대규모로 쳐들어왔는데 날 선봉에 세웠다. 난 싸우다가 정신을 잃었고. 깨어보니 사부를 죽이고 교주가 되었다.


교주가 된 다음 천마의 생활은 상대적으로 평범했다. 무림맹이 쳐들어오면 막고 아닐 때는 수련했다.

직속 수하가 호위대밖에 없어서 사대호법을 영입했고 36동과 72도의 동주와 도주도 사대호법에게 도움받아 직속으로 들였다.


- 난 제대한 다음 복학했어. 졸업할 즈음에 친한 선배가 자기 다니는 회사로 오라고 해서 면접을 봤고 바로 통과했지.


나는 8년 회사 생활을 간단히 압축해서 들려줬다. 이야기를 다 들은 천마가 또 고개를 갸우뚱했다.


- 그런 회사가 어떻게 안 망했지?


천마는 조금 재수 없는 소년이었다.


작가의말

우리 소년 천마의 파란만장 일대기를 짧게 압축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99 DarkCull..
    작성일
    19.11.14 18:18
    No. 1

    하아.
    자괴감 드는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8 글쇠
    작성일
    19.11.15 10:57
    No. 2

    판타지답게 허황하게 쓸 걸 그랬습니다. 제 경험을 비추어 사실적으로 쓰는 바람에 읽는 분들 마음을 상하게 했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DarkCull..
    작성일
    19.11.15 10:02
    No. 3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태어나자 마자 사방으로 일곱걸음 걷고 천상천하 유아최승 외치지 않았다는...

    인간적인 평범한 천마;;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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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에 빙의하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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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천마신공 19.12.27 143 4 9쪽
57 아비수의 마왕들 19.12.27 149 6 9쪽
56 망나니 강림 +3 19.12.26 144 8 9쪽
55 어마어마한 지원군 +1 19.12.25 153 6 9쪽
54 마교와 전쟁 19.12.24 142 7 9쪽
53 애송이들아 +2 19.12.23 156 8 9쪽
52 대기업 회유 +2 19.12.22 181 7 9쪽
51 독점금지법 +2 19.12.21 179 5 9쪽
50 후원금 +5 19.12.20 171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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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천마의 대응 +4 19.12.15 187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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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출마 선언 +2 19.12.11 187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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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문신 법술 +3 19.12.03 226 5 9쪽
32 천마 감옥에 갇히다 +2 19.12.02 240 5 9쪽
31 범인 검거 +2 19.12.01 213 7 9쪽
30 두 번째 빙의 +3 19.11.30 250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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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상거지 만수로 +2 19.11.28 286 8 9쪽
27 첩자 이야기 +2 19.11.27 282 8 9쪽
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39 7 9쪽
25 민폐 천마 +2 19.11.25 282 6 9쪽
24 망나니 천마 +2 19.11.24 308 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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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뒷수습 +4 19.11.16 421 12 9쪽
15 말종의 사신 +2 19.11.15 443 14 9쪽
» 엄친아 할아비 +3 19.11.14 467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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