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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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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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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5
글자수 :
36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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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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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대기업 회유

DUMMY

"예전에 어떤 노인이 임종 전에 자식을 모두 불러놓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젠장. 빙의해 있을 때라면 혓바닥 길다고 엄청나게 험담했을 테지만, 지금은 귀 기울여 듣는 척 연기해야 한다.


"노인은 자식한테 나뭇가지 하나씩 주고 부러뜨리라고 시켰습니다."


알아. 하나일 때는 잘 부러지는데 둘, 셋 이렇게 숫자가 늘수록 부러뜨리기 힘들어졌지. 자식한테 싸우지 말고 똘똘 뭉치라고 교훈을 내린 이야기잖아.


"대기업은 마교 세수의 6할을 직접 책임지고, 대기업으로부터 파생된 사업체들이 내는 세금도 1할 가까이 됩니다. 독점금지법을 통과하면 대기업은 최소 셋으로 갈라야 합니다. 그럼 철옹성처럼 단단하던 대기업이 쉽게 부러뜨릴 수 있는 가는 나뭇가지가 됩니다."


유 장로가 발언한 중년 장로에게 박수를 보낸다. 파 장로는 같은 파벌의 장로들한테 인상을 쓰며 눈치를 연신 줬다.


"잠깐. 의문이 하나 있다."


유흥이 얼굴을 콱 찌푸린다. 이놈은 겁대가리를 전당포에 맡겼나? 무림맹주이자 천마인 날 빤히 쳐다보며 인상을 써?


"누가 대기업을 부러뜨리려 한다는 거지?"


"당연히 마교에서."


"아니야. 대기업을 무너뜨리는 정도의 큰일을 교주였던 내가 몰랐을 리가."


"그리고 황실도."


"무림맹의 근간이나 다름없는 대기업을 황실이 무너뜨리려 한다고? 당장 황실에 공식적인 항의를 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전쟁이다."


내 질문에 대답하던 중년 장로가 부들부들 떨며 유 장로 눈치를 본다.


"에헴. 맹주께서 오해한 거 같소. 지금까지는 그런 정황이 없지만, 대기업을 여럿으로 나누면 당연히 그럴 거란 뜻이오. 이런 큰 회의는 처음이라 우리 견 장로가 긴장으로 실수한 것 같소."


"파산, 독점금지법을 시행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지?"


언제 발언 기회가 주어지나 애타게 기다리던 파산이 내 질문을 냉큼 받았다.


"세상은 큽니다."

파산의 눈짓에 전쟁광이 벽에 지도를 쫙 펼쳤다.


"무림 주변만 해도 고려와 야차국을 비롯해 서른 개에 가까운 국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더 멀리 가면 비루한 백인이 차지한 유로파라는 곳이 있습니다. 땅 크기는 무림 정도이고 인구는 무림의 3할 정도로 추정합니다."


"무슨 문파가 사람이 그리도 많다는 것인가? 혹시 무림을 침공하면 막아낼 수 있는가?"


맹 장로의 말에 몇몇 장로가 고개를 돌려 몰래 웃었다.


"유로파는 그들이 사는 땅 이름입니다. 주변 국가들이 무림을 중원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파산의 설명에 맹 장로는 뾰로통한 얼굴로 의자에 푹 기댔다.


"지금 유로파에서 금융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나와 일하지 않고도 돈이 생기게 한다고 합니다."


장로들이 놀란 얼굴로 서로 쳐다본다.


놀라긴. 뻥이야. 금융에 관해 내가 아는 만큼만 파산에게 말해줬는데, 파산은 그걸 이해했다. 유치원생이 발로 대충 그린 그림을 보고 누군지 맞추는 것과 비슷하게 어려운데.


"그런 유로파에 대항하려면 독점을 없애야 합니다."


파산은 유 장로 방향으로 몸을 조금 틀었다.


"유흥 장로께 묻겠습니다. 예전에 무림맹이 부유하지 않을 때, 여기 낙양엔 기루가 몇 개 있었습니까?"


"뭘 물어. 하나밖에 없었지. 하나같이 통나무 허리에 얼굴도 박색인 것들이 분과 연지를 두껍게 바르고 나와선. 제길, 양심도 없는 것들."


그런 곳을 명절에도 빼먹지 않고 찾아간 유 장로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몇 년 뒤에 대기업 본부가 낙양에 생기면서 기루와 주점이 우후죽순처럼 늘었죠."


"그래. 그때부터 기루 갈 맛이 났지. 치마만 두르면 기녀랍시고 방에 들여보내 대충 때우던 기루는 다 망해버렸지."


"그렇습니다. 방금 저와 유흥 장로의 대화에서 알 수 있다시피. 독점의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독점이 사라지고 경쟁이 도입된 후, 기루들이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맞소. 요즘은 술 많이 시키면 공짜 안주도 주고, 한 달에 다섯 번 이상 가면 술도 공짜로 주지."

"게다가 애들이 얼마나 살갑게 대하는데. 마누라보다 백 배 낫다니까."


"다들 체통 지키시게."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유흥이 나서서 제지한다. 그러나 분위기는 이미 이쪽으로 넘어왔다.


"마찬가지로 무림맹에 갑옷과 무기를 납품하는 대장간들도 어떻습니까. 예전엔 싸우다 칼이 부러지는 일이 허다했는데, 지금은 황궁 정예를 제외하면 무림맹의 무장이 가장 든든합니다."


파산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독점금지법이 무림맹을 얼마나 강성하게 만들어주고, 모두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줄지를 자세히 늘어놓았다. 사람마다 입장이 달라서 다양한 예로 최대한 설득하려는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회의 분위기는 완전히 독점금지법을 통과하는 쪽으로 흘렀다.


###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천마가 원하는 게 맞을까?'


이제야 천마의 고충이 느껴진다. 박순녀를 비롯해 여러 사람한테 빙의했을 때, 난 구경꾼 입장에서 흥미진진하게 구경했다. 비록 함께 고민하며 가슴을 졸이긴 했지만, 결과에 대한 특별한 책임감을 느끼진 않았다.


'얼마나 찐인 놈에게 빙의했길래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지?'


천마의 지혜와 능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소원이 있기나 할까?


"맹주, 도착했습니다."


낙양에서 가장 큰 장원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리니 총관이 공손히 허리를 숙여 마중한다.


"가주께서 몸이 불편하여 마중 나오지 못했습니다. 아주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양해를 대신 구하라고 저한테 신신당부했습니다."


매국노의 몸이야 몇 년 전부터 불편했으니 애써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매춘이나 매질 따위도 코빼기 하나 안 비춘 걸 보면, 일부러 시위하는 게 틀림없다.


'천마라면 어떻게 대응했을까?'


나라면 당장 마차를 돌려 그냥 떠나버렸을 거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대통령이 되어 어딜 방문했는데 집주인이 안 나오면 당연히 배알이 꼬이지.

게다가 난 지금은 천마다. 재벌 밑으로 쳐주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고.


"늙으면 아프고 아프면 죽는 게 세상 이치니까 어쩔 수 없지. 안내해라."


총관이라는 자가 뻣뻣한 동작으로 몸을 돌려 앞장섰다.


안에 들어가니 가마가 열 개 있었다. 우리 머릿수에 맞춰 준비한 걸 보니 역시 대기업이라는 감탄이 든다.


나, 용답답과 인마, 왕간지, 밀덕, 파큐유, 공공칠, 막살자, 태식, 파산, 전쟁광까지 열 명이 가마에 탔다.


무법자는 원리원칙주의자여서 대기업과 사석에서 협상하는 것에 불참을 선언했다.


"천하의 천마께서 왕림하셨는데 마중을 못 나가 송구합니다. 상석에 앉으시지요."


매국노와 여섯 아들이 대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매국노는 신경 써서 치장한 티가 나는데 여섯 아들은 아니었다. 내가 대문에서 한 협박성 발언 때문에 다급히 이 자리에 나온 게 틀림없다.


이러면 나야 고맙지. 준비를 단단히 했으면 설득이 힘드니까.


"독점금지법에 관해 들었겠지?"

"당연합니다. 가문의 지낭들이 면밀히 분석하여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긴말 않겠다. 독점금지법과 그에 딸린 기타 법안을 통과하는 데 방해하지 않으면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보답하겠다."


"자유무역은 무림맹과 마교 그리고 황궁이 거래하면서 관세를 매기지 않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상대 세력권에서 사업을 할 수 있는 권리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세금은 좀 더 내셔야겠지만요."


매국노와 여섯 아들은 파산의 설명을 한 글자라도 놓칠세라 주의를 기울였다.


"이 아둔한 노인네가 맹주께 질문이 있습니다. 독점금지법과 자유무역협정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독점을 금지하여 경쟁력을 높인다. 그저 그런 놈들은 경쟁에서 밀려나는 거지. 그렇게 강한 경쟁력을 갖춘 자들이 살아남아야 황궁이나 마교 세력권에서 성공할 수 있다."


매국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고개를 끄덕이는 속도도 폭도 그리 시원치 않다.


"어차피 세 세력권의 통합은 언젠간 이뤄질 일이다. 독과점에 만족하여 효율도 형편없고 경쟁력이 전무한 대기업이 갑자기 이뤄진 통합에 제대로 대응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대기업 같은 큰 사업체를 황궁에서 그대로 둘까?"


매국노의 고개가 모이 쪼는 닭처럼 빠르게 끄덕여진다.


"맹주의 은혜를 모르고 속으로 적잖이 원망했습니다. 이 아둔한 늙은이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런데 참으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일면식도 없는 미련한 늙은이한테 왜 이런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까."


오는 내내 준비했던 대사를 칠 시간이다.


"세상 혼자 사나? 다들 더불어 도우며 사는 거지. 여기 천덕 황태손이 황제가 되면 뭐 세상이 저절로 다스려지나? 눈이 되어주고 손발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할 거야. 우리 매 가주, 잘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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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민중의 칼 20.01.04 153 4 9쪽
81 지뢰밭길 20.01.04 140 4 9쪽
80 가시밭길 20.01.03 141 8 9쪽
79 천동출 20.01.03 151 4 9쪽
78 진상 20.01.03 137 5 9쪽
77 성화신의 정체 +2 20.01.02 161 7 9쪽
76 합체와 분리 20.01.02 139 5 9쪽
75 전쟁 20.01.02 152 5 9쪽
74 저지르고 보자 20.01.01 173 4 9쪽
73 정조를 지켜라 20.01.01 197 4 9쪽
72 검사 천동출 20.01.01 153 4 9쪽
71 청천벽력 +2 19.12.31 162 7 9쪽
70 전학생 19.12.31 184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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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생김에 관한 고찰 19.12.30 148 7 9쪽
67 나는 강하다 19.12.30 125 6 9쪽
66 처형식 19.12.30 122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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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내가 내게? 19.12.29 135 5 9쪽
62 의욕 잃은 망나니 19.12.28 150 8 9쪽
61 말종의 반격 19.12.28 125 6 9쪽
60 동맹주 19.12.28 123 5 9쪽
59 무마동맹 19.12.27 140 4 9쪽
58 천마신공 19.12.27 143 4 9쪽
57 아비수의 마왕들 19.12.27 146 6 9쪽
56 망나니 강림 +3 19.12.26 144 8 9쪽
55 어마어마한 지원군 +1 19.12.25 152 6 9쪽
54 마교와 전쟁 19.12.24 141 7 9쪽
53 애송이들아 +2 19.12.23 156 8 9쪽
» 대기업 회유 +2 19.12.22 176 7 9쪽
51 독점금지법 +2 19.12.21 177 5 9쪽
50 후원금 +5 19.12.20 171 6 9쪽
49 난 진실만 말한다 +2 19.12.19 171 6 9쪽
48 청문회 +2 19.12.18 167 5 9쪽
47 무림맹의 저력 +2 19.12.17 165 7 9쪽
46 비무 대회 +2 19.12.16 187 7 9쪽
45 천마의 대응 +4 19.12.15 186 7 9쪽
44 후보자 토론회 +2 19.12.14 174 7 9쪽
43 영혼 분리 +2 19.12.13 181 7 9쪽
42 공약 +3 19.12.12 215 6 9쪽
41 출마 선언 +2 19.12.11 185 6 9쪽
40 차별에 관하여 +2 19.12.10 217 7 9쪽
39 빙의가 준 계시 +2 19.12.09 267 7 9쪽
38 세 번째 빙의 +2 19.12.08 212 7 9쪽
37 탄핵 +2 19.12.07 201 10 9쪽
36 프리즌 브레이크 +4 19.12.06 216 8 9쪽
35 공청석유 +4 19.12.05 257 5 9쪽
34 십색기 +2 19.12.04 231 9 9쪽
33 문신 법술 +3 19.12.03 224 5 9쪽
32 천마 감옥에 갇히다 +2 19.12.02 238 5 9쪽
31 범인 검거 +2 19.12.01 211 7 9쪽
30 두 번째 빙의 +3 19.11.30 248 6 9쪽
29 대호법의 활약 +3 19.11.29 252 5 9쪽
28 상거지 만수로 +2 19.11.28 285 8 9쪽
27 첩자 이야기 +2 19.11.27 280 8 9쪽
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35 7 9쪽
25 민폐 천마 +2 19.11.25 282 6 9쪽
24 망나니 천마 +2 19.11.24 308 9 9쪽
23 최악의 16팀 +3 19.11.23 298 9 9쪽
22 노력하는 천마 +2 19.11.22 383 7 9쪽
21 무림맹의 재도발 +5 19.11.21 358 8 9쪽
20 배움은 끝이 없다 +2 19.11.20 373 8 9쪽
19 영혼과 육신 +1 19.11.19 409 9 9쪽
18 첫 경험 +6 19.11.18 521 13 9쪽
17 세상에 이런 일이? +2 19.11.17 413 13 9쪽
16 뒷수습 +4 19.11.16 418 12 9쪽
15 말종의 사신 +2 19.11.15 442 14 9쪽
14 엄친아 할아비 +3 19.11.14 465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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