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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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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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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5
글자수 :
36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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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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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영혼 분리

DUMMY

- 너한테 부탁할 일이 있다.


오호, 천하의 천마께서 이 천한 무명 천씨한테 부탁이라니. 들어나 보자.


- 달마와 장삼풍 그리고 왕중양을 염탐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


무공이 가장 약한 황실종은 왕간지가 지켜보기로 했다. 마교편은 막살자가 담당했고 제갈몽청은 공공칠이 책임졌다.


- 내가 무슨 재간으로?

- 영혼 상태로 가서 셋이 무슨 꿍꿍인지 좀 알아 와.


무력하고 괴로운 기분이 들더니 갑자기 천마 정수리가 보인다. 얜 정수리도 이쁘구나.


- 부탁해.


###


두두둥 둥둥. 어화둥둥 내 사랑아.


육신을 완전히 벗어난 해방감은 소맥 열 잔을 연속 마신 것보다 더 황홀하다.


그나저나. 개세를 수련해서 진짜 다행이다. 작은 바람에도 휘날리는 이 하찮은 영혼이 개세로 공기 속에서 유영할 수 있게 됐다. 나는 허공을 둥둥 떠서 달마가 머무는 절간으로 갔다.


'백마사.'


달마만 아니었으면 불교 중심이 되었을 절간. 사실 지금도 소림사에서 고위직에 오르려면 백마사 유학으로 커리어를 쌓아야 한다.

순수한 불심으론 여전히 백마사가 우위지만, 주먹이 법보다 가깝고 칼이 펜보다 무서운 시대여서 소림사의 지위는 불심만으로 초월하기 힘들다.


약간 텁텁한 향냄새가 가득한 백마사에서 수백 명 스님이 불경을 읊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온다. 나는 조심스럽게 백마사 담장에 접근했다.


'대박. 나 안 죽었을지도 몰라.'


비록 내가 죽었을 가능성을 애써 외면해 왔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선 은연히 나는 죽은 사람이라고 단정했었다.


하지만, 불경 소리를 듣고도 전혀 떨림이 없는 걸 확인하니 희망이 생겼다. 육체와 단절된 영혼은 불경을 비롯한 진리가 깃든 소리에 두려움을 느낀다. 백마사에 울리는 불경 낭송에도 괜찮은 걸 보면 영혼과 육신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진 건 아니다.


단, 나와 연결된 육신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니 살았다고 확신하기도 힘들다.


담장을 넘은 나는 곧장 백마사 중심에 있는 7층 건물로 걸었다. 드라마나 영화 보면 귀신이 막 벽을 뚫고 지나가고 그러는데, 난 아니다. 원래 영혼이 벽을 못 뚫는지 내가 귀신이 아니어서 인지는 모르겠다.


제발 후자이길.


"종사께서 이 중요한 시기에 속세의 인연을 만들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천마가 비록 약관에도 이르지 못한 소년이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을 내세우기엔 그 무게가 만만치 않습니다."


마침 백마사 주지 왕자(汪資) 스님과 달마 대사가 차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었다.


"차라리 장삼풍이나 왕중양한테 힘을 실어주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약속을 어기고 맹주 자리를 내놓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이거 우리도 분석해본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불교가 겨우 차지한 작은 우위가 사라지고 도교에 전면 추월당할 가능성이 크다.


주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불교와 달리, 도교는 연단을 통해 병을 치료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단약을 생산한다. 불교도 못 만드는 건 아니지만, 수천 년 동안 노하우를 쌓은 도교와는 비교도 안 된다.


"세분 모두 무기의 경지라고 들었습니다. 사형이 코앞이고 등신도 불가능한 게 아닌데 속세에 깊이 빠지려 하겠습니까?"


"왕자 스님은 무공을 익히지 않으셔서 자세한 부분은 잘 모르십니다. 사형의 경지는 여러 길로 나뉩니다."


총살(摠薩).

모두 총에 보살 살. 세상 모두가 부처로 보인다는 대동(大同)의 길.


"총살의 길로 들어서면 등신이 어렵습니다. 자신만 수련에 성공하면 되는 게 아니라 세 명을 사형의 경지로 이끌어야 합니다. 사실 총살의 길로 가려면 이미 백 년 전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등신에 이를 혜근을 갖춘 사람이 드물어서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고 있습니다."


교형(交形).

섞일 교에 모양 형. 다른 사형을 이룬 존재와 교류하여 부족함을 채우는 길.


"교형은 총살보다 더 힘듭니다. 총살은 내가 혜근을 갖춘 자를 찾아내서 가르치고 이끌 수 있지만, 이건 같은 교형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 나타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사형의 경지도 요원한데 누군가가 꼭 교형의 길을 선택한다고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교형의 길을 가노라면 꼭 밧줄로 목을 조르는 느낌이 들 겁니다. 완전히 운과 인연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니깐요."


주사(珠私).

구슬 주에 사사로울 사. 자신을 구슬에 가둬 등신에 쉽게 이르는 길.


"주사의 길이 최곱니다. 작은 구슬에 스스로 빚은 사형을 가두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작은 구슬을 세상으로 인식하죠. 복잡할 게 없는 구슬 안에서 등신을 이루는 건 쉽습니다. 그다음엔 구슬을 조금씩 키워서 세상을 담으면 됩니다. 이미 등신한 상태기에 조급하지만 않으면 세상을 모두 담을 수 있습니다. 세상을 다 담은 후 구슬을 깨고 나오면 등신에 성공합니다. 용이 키우는 여의주가 바로 주사 방식입니다."


천마는 어느 길이 목표지? 뭐 이제 겨우 집유인데 벌써 고민하는 건 오바려나?


"이 외에도 사형에는 수많은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견된 길 중에 주사의 방식이 가장 편하고 확실합니다. 저는 주사의 길로 가는 실마리를 잡으려고 무기의 경지에 계속 머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왕중양과 장삼풍 역시 주사의 길로 들어서려고 사형의 경지에 이르는 걸 급급해하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그럴 겁니다. 둘이 약속하고 교형의 길로 가도 되지만, 만에 하나 둘 중 누구라도 실패하면 영원히 등신이 어렵습니다. 게다가 주사의 길은 속세의 인연이 많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작은 구슬을 세상으로 간주하는 순간, 어떤 인연도 쉽게 끊을 수 있으니깐요."


나랑 전혀 상관없는 얘긴데 이해는 잘 된다. 그간 보고 들은 게 많아서 복잡한 이야기만 아니면 웬만해선 다 알아듣는다.


"장삼풍이나 왕중양을 믿기 어려우니 어떻게든 선거에서 이길 작정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 왕자 스님도 많이 도와주십시오. 제가 등신에 이르면 기필코 잊지 않고 부처님께 다가가는 길에 작은 도움이나마 드리겠습니다."


"천하를 위한 일이고 불교를 위한 일입니다. 당연히 소매 걷고 도와드려야죠."


그때 이마에 붉은 점을 아홉 개 찍은 스님이 노크도 없이 방에 뛰어들었다.


"달마 사조께 아룁니다. 장삼풍이 왕중양 거처로 향했다고 합니다."


"단일화 아니겠습니까? 비록 둘이 갈래는 다르다지만, 뿌리는 같은 청교(靑敎)잖습니까."


###


무림에는 불교 문파보다 도교 문파가 훨씬 많다.


불교 문파는 수익원이 적다. 절간이 소유한 전답과 신자들의 후원 외에는 딱히 고정 수입원이 없다.

살생을 못 하고 술도 금하니 객잔과 같은 사업체를 운영할 수 없다. 신자를 위해 채식만 제공하는 객잔을 운영하긴 하는데, 무림맹 전역에 스무 개도 안 될 정도로 숫자가 적다.


반면, 도교는 객잔은 물론 주점에 기루까지 운영한다. 도교의 홍교(紅敎) 계열엔 음양합방술을 전문으로 하는 계파도 있다. 님을 보고 뽕도 따고 병도 치료하고 몸도 건강해지니 향락 위주의 기루 못지않게 장사가 잘된다.


게다가 종남파를 비롯한 몇몇 청교 계열의 문파는 단약을 판매하는 거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낸다.


그런 상황에서도 불교가 우위라는 점에서 소림사와 달마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그렇기에 장삼풍과 왕중양이 단일화를 추진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말이 되는 소리 좀 해라."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대화가 시작되었다. 달마가 달마도랑 닮았는지 궁금해서 백마사부터 간 게 조금 후회된다. 거기선 별로 영양가 있는 정보가 없었으니까.


참고로 달마는 말상이다. 그림과 달리 살도 별로 안 붙은 야윈 얼굴이다.


"우리 무당에서 해마다 은자 백만 냥 지원한다니까. 형님이 무림맹주 자리에 이 년만 앉아주면 불교를 누르고 우리 청교가 무림맹 세력권을 석권할 수 있어요."


소림사 측의 추측대로 장삼풍은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천마야. 넌 이들을 너무 착하게 봤어. 널 떨어뜨리는 걸 명분으로 자기들 이익 챙기려고 속셈이야.'


달마야 처음부터 실천 가능한 공약을 들고나왔다. 맹주 자리에 어느 정도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왕중양이나 장삼풍은 불가능할 것 같은 공약을 들고나왔기에 그저 천마를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분석했는데, 천마를 방해하는 건 목적이 아니라 명분이었다.


"단약이 은자만 있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느냐. 공약을 지킬 자신이 없어."


"형님. 화산이랑 청성 그리고 아미까지 합치면 단약 숫자 채우는 거 가능합니다. 단약 가격이 내려갈까 봐 일부러 꿍쳐둔 거 있잖아요. 그것까지 합치면 이 년 동안 공약 지키는 거 아무 문제 없어요."


천마가 최강이냐고?


아니. 자본주의가 최강이야.


작가의말

총살을 선택하면 3명을 사형으로 인도해야 등신합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다시피, 피라미드의 시초는 이집트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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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견제 20.01.05 173 5 9쪽
84 생방송 20.01.05 173 5 9쪽
83 자충수 20.01.04 154 6 9쪽
82 민중의 칼 20.01.04 156 4 9쪽
81 지뢰밭길 20.01.04 140 4 9쪽
80 가시밭길 20.01.03 142 8 9쪽
79 천동출 20.01.03 152 4 9쪽
78 진상 20.01.03 140 5 9쪽
77 성화신의 정체 +2 20.01.02 162 7 9쪽
76 합체와 분리 20.01.02 140 5 9쪽
75 전쟁 20.01.02 153 5 9쪽
74 저지르고 보자 20.01.01 176 4 9쪽
73 정조를 지켜라 20.01.01 200 4 9쪽
72 검사 천동출 20.01.01 155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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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처형식 19.12.30 125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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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의욕 잃은 망나니 19.12.28 152 8 9쪽
61 말종의 반격 19.12.28 126 6 9쪽
60 동맹주 19.12.28 124 5 9쪽
59 무마동맹 19.12.27 142 4 9쪽
58 천마신공 19.12.27 144 4 9쪽
57 아비수의 마왕들 19.12.27 149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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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어마어마한 지원군 +1 19.12.25 154 6 9쪽
54 마교와 전쟁 19.12.24 142 7 9쪽
53 애송이들아 +2 19.12.23 157 8 9쪽
52 대기업 회유 +2 19.12.22 181 7 9쪽
51 독점금지법 +2 19.12.21 179 5 9쪽
50 후원금 +5 19.12.20 171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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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청문회 +2 19.12.18 173 5 9쪽
47 무림맹의 저력 +2 19.12.17 165 7 9쪽
46 비무 대회 +2 19.12.16 187 7 9쪽
45 천마의 대응 +4 19.12.15 187 7 9쪽
44 후보자 토론회 +2 19.12.14 176 7 9쪽
» 영혼 분리 +2 19.12.13 182 7 9쪽
42 공약 +3 19.12.12 220 6 9쪽
41 출마 선언 +2 19.12.11 187 6 9쪽
40 차별에 관하여 +2 19.12.10 221 7 9쪽
39 빙의가 준 계시 +2 19.12.09 268 7 9쪽
38 세 번째 빙의 +2 19.12.08 216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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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40 7 9쪽
25 민폐 천마 +2 19.11.25 283 6 9쪽
24 망나니 천마 +2 19.11.24 308 9 9쪽
23 최악의 16팀 +3 19.11.23 301 9 9쪽
22 노력하는 천마 +2 19.11.22 384 7 9쪽
21 무림맹의 재도발 +5 19.11.21 361 8 9쪽
20 배움은 끝이 없다 +2 19.11.20 375 8 9쪽
19 영혼과 육신 +1 19.11.19 412 9 9쪽
18 첫 경험 +6 19.11.18 522 13 9쪽
17 세상에 이런 일이? +2 19.11.17 417 13 9쪽
16 뒷수습 +4 19.11.16 421 12 9쪽
15 말종의 사신 +2 19.11.15 444 14 9쪽
14 엄친아 할아비 +3 19.11.14 467 13 9쪽
13 이호법 +4 19.11.13 486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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