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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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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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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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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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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정조를 지켜라

DUMMY

가방을 챙긴 난순이가 다가와서 어깨동무한다. 키가 170이어서 나랑 어깨높이가 비슷하다. 발 편하다며 늘 단화를 신어서 망정이지, 하이힐을 신었다면 175인 나보다 더 컸을 거다.


"너 지금도 무공 수련해?"

"응. 남는 시간에 딱히 할 일도 없고."

"그런다고 날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꿈 깨고 길지 않은 인생 즐겁게 살아. 바람만 안 피우면 뭐든 용서해 줄게."


갓 검사가 됐을 때 일이다. CM 그룹을 털자 장인어른이 조폭을 보내 나한테 으름장을 놓으려고 했다. 백 명이 넘은 조폭에게 포위당했는데, 그때 난 경지가 미흡하여 서혜부, 즉 샅굴 부위가 덜 단련된 상황이었다.


남성의 요해가 있는 부위지만, 싸우면서 수비하기 힘든 위치. 약 30명 정도 때려눕혔을 때 불행히도 바닥을 때려 부러진 각목이 튕겨 오르며 내 거기를 강타했고, 순간 힘이 풀린 나는 저항도 못 하고 밧줄에 묶였다.


그때, 표홀하게 등장한 난순이가 남은 수십 명 조폭을 모조리 눕히고 날 구했다. 난순이는 이미 기천을 12성까지 익혔고, 천마신공을 익힐 실마리를 찾는 중이다.


"내가 당신 이겨서 뭐 한다고."

"진심 아닌 거 아니까 입에 발린 소리 하지 마."


차고에서 집까지 약 5분 거리. 나는 난순이의 살냄새를 만끽했다. 신기하게 난순이 냄새만 맡으면 부정적인 감정이 모두 사라지며 마음이 편하다.


"야, 어깨 놔."

"왜? 부부로 산 게 7년인데 아직도 부끄러워?"


난순이는 어깨에 걸친 팔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내 수준으론 전혀 떨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난순이와 딱 붙어서 집에 들어갔다.


"하하, 우리 사위 왔는감. 둘이 다정하니 참 보기 좋구먼."


[이것 때문이었어?]

[너 기척 감지하는 능력 좀 키워라.]


일반인보다 훨씬 뛰어난 청각과 시각 덕분에 난 감각 키우는 일을 등한시했다. 굳이 수련하지 않아도 등 뒤 사람이 하는 행동이 다 느껴진다. 그래서 아까운 수련 시간을 감지 능력 키우는 데 허비할 생각이 없다.


"장인어른, 전화 주셨으면 술이라도 준비하는 건데."

"아니야. 지나가다가 잠깐 들렀어. 저녁에 중요한 약속 있어서 바로 가야 해."


사실 2년 전까지만 해도 죽일 상놈이라고 욕설을 일삼았다. CM 그룹이 다시 잘되고 나서야 사위라고 부르면서 인정해줬다.


역시, 남자는 능력이다.


"그나저나. 외손주 소식은 더 기다려야 해?"


"죄송합니다. 장인어른."


"둘 다 몸도 건강한데 도대체 뭐가 문제야?"


"아빠. 중요한 약속 있다면서요."


"내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전화로 안 하고 직접 찾아왔겠니. 그나저나, SS 전략실 실장이 널 찾아갔다면서?"


5위 정도에서 머물던 CM 그룹이 내게 털린 후 구조조정을 하며 2위가 되었다. 게다가 1위인 SS 그룹을 몇 년 안에 추월할 거란 판단이 지배적이다.


"그쪽 상속 문제가 정리된 것 같습니다. 그래선지 요즘 자료도 자주 넘기고 간간이 사람도 찾아옵니다."


"우리 장한 사위. CM이 1위 굳히기 전에 그 망할 놈들 털면 안 돼. 어차피 CM은 언젠간 난순이 거고, 그다음엔 자네랑 난순이 아들 몫이야. 그쪽에서 준다는 거 내가 다 해줄 테니 절대 거기 털지 마."


장인어른은 약 반 시간 동안 신신당부하고 떠났다.


풍성했던 도시락과 달리 우리 둘의 저녁 식사는 정말 단출했다. 밥도 국도 없이 찐 채소 몇 가지가 다였다.


"난순아. 아직이야?"

"응. 이대로 돌아가면 우린 범생이 손에 죽어. 내가 천마신공 익히기 전엔 못 돌아간다."


그렇다. 내가 소원을 이루면 빙의가 끝난다. 망나니는 좋아서 나랑 사귀고 결혼한 게 아니었다. 내가 다른 여자랑 '사고' 쳐서 빙의가 끝날까 봐 자기 곁에 두고 감시하는 것이다.


난순이는 전학 온 이튿날 나랑 연인 관계임을 발표했고, 대학교 다닐 때 집안의 반대를 물리치고 나와 결혼했다.


난순이의 어마어마한 스펙과 내 얼굴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최소 대한민국에선 날 노리는 여자가 사라졌다.


원래부터 없었겠지만.


###


"천동출. 우리 결혼하자."


태양보다 더 눈 부신 난순이가 내게 프러포즈한다.


"제길, 또 꿈이군."


내가 툴툴거리거나 말거나 난순이는 자기 대사를 이어갔다. 당시 너무 놀란 내가 아무 말도 못 해서, 난 대사가 없다.


"내가 맘에 안 들어? 표정이 왜 그래?"


마음을 가라앉히고 꿈에 집중했다. 이 꿈을 반복해서 꾸는 덴 분명히 이유가 있다.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 네 몸과 마음을 얻는 데 얼마면 되냐고."


저 때만 해도 난순이가 날 어떻게 하려는 줄 알았다. 설마 정조를 지키게 하려고 저러는 줄은 꿈에도 몰랐지. 지금은 꿈에서도 알지만.


"저기, 도움 필요하세요?"


지나가던 여자 둘이 핸드폰을 들고 난순이한테 질문한다. 이미 112가 찍혔고 여차하면 통화 버튼을 누를 기세다.


"우리 사귀는 사이에요."


두 여자는 예수가 아미타불 외치는 걸 들은 사람처럼 하얗게 질린 채 도망쳤다.


"천동출, 넌 입이 없어? 왜 말을 못 해. 이 여자가 내 여자다. 이 여자가 내 사람이다. 왜 말을 못 해? 너 내가 창피해?"


저 때 거절해야 했는데.


"자. 이거 마시면 이제부터 우리 사귀는 거다. 안 마시면 다신 안 보는 거고."


내 손에 바나나 우유 하나가 쥐어졌다. 난 천천히 우유를 입가로 가져갔다.


"버텨, 멍청아. 결혼해서 총각으로 살기 싫으면 버티라고."


그러나 소용없다. 이건 꿈이니까. 난 저 때 개세가 겨우 11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순이의 내력에 전혀 저항하지 못했다.


그렇게 난 억지로 바나나 우유를 입에 흘려 넣었다.


그날 혼인신고를 했다. 혼인신고서를 접수한 사무소 직원이 경찰에 신고해서 조금 문제가 됐었고, 장인어른이 경호팀을 데리고 와서 죽이니 살리니 온갖 협박을 다 했던 기억이 있지만, 꿈은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는 장면에서 끝났다.


꿈의 마지막은 언제나처럼 구김살 없는 난순이의 밝은 얼굴이었다.


###


"야, 뭐야?"


우리 부부는 각방을 쓴다. 사귈 때도 손만 잡았고 결혼식 때 억지로 한 뽀뽀가 유일한 스킨쉽이다.


그런데 잠에서 깨니 난순이가 나랑 같은 이불을 덮고 있었다.


"제길. 나 집유 끝자락이야. 당분간 해외만 돌아야겠다."


"잠깐."


벼락이 내 머리를 때렸다.


"너, 나 좋아하니?"


난순이 얼굴이 빨개진다. 고개를 숙이고 쭈뼛쭈뼛 눈을 피한다.


화가 난다.


"왜? 왜 날 좋아하는데?"


"동정(同情) 아니야."


뭐? 나 동정(童貞)이라고 놀리는 거야? 누구 때문에 유부남인 내가 동정인데. 대한민국 남자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이 천동출이, 임관 3년 차에 벌써 미래의 검찰총장이니 법무부 장관이니 하는 이 천동출이가 동정인 건 네 책임이 커.


"널 동정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좋아해."


"그니까 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참기 어렵다.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데 이유가 필요해?"


"근데 나 왜 화가 나지?"


"방어기제야. 날 좋아하지 않으려고 나도 널 좋아하지 않는다고 억지로 생각한 거야.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나 솔직히 말할게. 언제부턴지 모르고 왜인지도 모르지만, 난 널 좋아해."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날 좋아하지 않으면 큰 상처가 된다. 난 지금까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쉽게 납득되게 잘 정리했다. 수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사는 삶을 살면서도 하루하루 가시밭길 같았다.

내가 느끼는 행복도 가짜 같고 내가 얻은 성취도 가짜 같고. 그러나 그 가짜라도 사라질까 봐 조마조마한 삶을 이어왔다. 자신을 속여가며, 아무렇지 않은 듯 연기하며.


나를 감싸던 보호막이 철저하게 부서졌고, 난 또 알몸으로 잔혹한 현실에 내쳐졌다.


하지만.


번데기는 고치를 헤쳐야 나비가 될 수 있고, 새는 껍데기를 깨야 날개를 키울 수 있다. 성장을 위해 작은 미물마저 안락한 고치와 단단한 껍데기를 직접 부순다.


그래. 난 더 단단해질 것이다.


"널 좋아하지만, 부부의 일을 할 생각은 없어. 날 주체하기 힘드니 당분간 해외로 나갈 거야. 내가 없어도 경호팀이 24시간 지켜볼 테니 허튼 생각은 하지 말고."


난 풀이 죽었다.


"내가 자신을 주체할 수 있을 때까지 안 돌아올지도 몰라. 통화는 하루에 한 번 하는 거로 하고. 그럼 마저 자."


말을 마친 난순이는 베개를 들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천마의 두 번째로 강한 자아가 왜 나 따위를? 굳이 천마가 아니라고 쳐도 말이 안 돼. 대기업 상속녀에 얼굴, 몸매, 학벌 하나 꿀리는 게 없는데.'


그러고 보니 나랑 결혼하자고 할 때 난순이 얼굴은 참 밝았다. 난순이의 미혼술과 진혼술에 대비하여 늘 경계한 나는 지금까지 몰랐지만.


그래서 자꾸 꿈으로 알려주려고 한 건가? 난순이가 날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작가의말

모든 성취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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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경지 상승 20.01.05 163 5 9쪽
85 견제 20.01.05 173 5 9쪽
84 생방송 20.01.05 173 5 9쪽
83 자충수 20.01.04 154 6 9쪽
82 민중의 칼 20.01.04 156 4 9쪽
81 지뢰밭길 20.01.04 140 4 9쪽
80 가시밭길 20.01.03 142 8 9쪽
79 천동출 20.01.03 152 4 9쪽
78 진상 20.01.03 140 5 9쪽
77 성화신의 정체 +2 20.01.02 162 7 9쪽
76 합체와 분리 20.01.02 140 5 9쪽
75 전쟁 20.01.02 153 5 9쪽
74 저지르고 보자 20.01.01 176 4 9쪽
» 정조를 지켜라 20.01.01 200 4 9쪽
72 검사 천동출 20.01.01 155 4 9쪽
71 청천벽력 +2 19.12.31 163 7 9쪽
70 전학생 19.12.31 189 4 9쪽
69 세상이 너무 쉬워 19.12.31 129 6 9쪽
68 생김에 관한 고찰 19.12.30 152 7 9쪽
67 나는 강하다 19.12.30 127 6 9쪽
66 처형식 19.12.30 125 6 9쪽
65 양아치 19.12.29 122 6 9쪽
64 간타자 +1 19.12.29 138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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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의욕 잃은 망나니 19.12.28 152 8 9쪽
61 말종의 반격 19.12.28 126 6 9쪽
60 동맹주 19.12.28 124 5 9쪽
59 무마동맹 19.12.27 142 4 9쪽
58 천마신공 19.12.27 144 4 9쪽
57 아비수의 마왕들 19.12.27 149 6 9쪽
56 망나니 강림 +3 19.12.26 144 8 9쪽
55 어마어마한 지원군 +1 19.12.25 154 6 9쪽
54 마교와 전쟁 19.12.24 142 7 9쪽
53 애송이들아 +2 19.12.23 157 8 9쪽
52 대기업 회유 +2 19.12.22 181 7 9쪽
51 독점금지법 +2 19.12.21 179 5 9쪽
50 후원금 +5 19.12.20 171 6 9쪽
49 난 진실만 말한다 +2 19.12.19 174 6 9쪽
48 청문회 +2 19.12.18 173 5 9쪽
47 무림맹의 저력 +2 19.12.17 165 7 9쪽
46 비무 대회 +2 19.12.16 187 7 9쪽
45 천마의 대응 +4 19.12.15 187 7 9쪽
44 후보자 토론회 +2 19.12.14 176 7 9쪽
43 영혼 분리 +2 19.12.13 181 7 9쪽
42 공약 +3 19.12.12 220 6 9쪽
41 출마 선언 +2 19.12.11 187 6 9쪽
40 차별에 관하여 +2 19.12.10 221 7 9쪽
39 빙의가 준 계시 +2 19.12.09 268 7 9쪽
38 세 번째 빙의 +2 19.12.08 216 7 9쪽
37 탄핵 +2 19.12.07 202 10 9쪽
36 프리즌 브레이크 +4 19.12.06 219 8 9쪽
35 공청석유 +4 19.12.05 259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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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문신 법술 +3 19.12.03 226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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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범인 검거 +2 19.12.01 213 7 9쪽
30 두 번째 빙의 +3 19.11.30 250 6 9쪽
29 대호법의 활약 +3 19.11.29 252 5 9쪽
28 상거지 만수로 +2 19.11.28 286 8 9쪽
27 첩자 이야기 +2 19.11.27 283 8 9쪽
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40 7 9쪽
25 민폐 천마 +2 19.11.25 283 6 9쪽
24 망나니 천마 +2 19.11.24 308 9 9쪽
23 최악의 16팀 +3 19.11.23 301 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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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무림맹의 재도발 +5 19.11.21 361 8 9쪽
20 배움은 끝이 없다 +2 19.11.20 375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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