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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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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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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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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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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천동출

DUMMY

몸이 허공을 난다. 브레이크 밟는 끽소리가 귀를 때린다. 행인이 악하고 지르는 비명도 고막을 통해 뇌에 전달되었다.

입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코로 쉬는 게 좋은데, 지금은 피로 막혔다. 입으로 들이켜는 숨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살짝 섞였다.


급정거한 트럭에서 오십 대로 보이는 남자가 뛰쳐나온다. 두 번이나 넘어지며 허겁지겁 달려 온 남자는 감히 내 몸에 손을 못 대고 허둥대기만 했다.


'천마신공?'


온몸으로 자연의 기가 흘러들어와 곤죽이 된 내장을 회복하고 파열된 혈관을 치료했다.


울컥. 입으로 붉은 피를 한 움큼 토해내자 트럭을 운전하던 남자가 무릎을 꿇는다. 손을 부르르 떨며 초점 잃은 눈으로 나를 보다 바닥의 피를 보다 주변을 살피기도 한다.


"흥!"


코를 막은 피를 콧김으로 풀어낸 후 찬 바닥에서 일어섰다.


"아저씨, 괜찮아요? 많이 놀라셨죠?"

"아, 아니, 네, 어떻게."

"많이 놀라셨네. 따뜻한 거 마시면서 속 좀 달래세요."

"왜, 아니, 어째서, 그러니까."


나는 다리가 풀린 아저씨를 부축해서 근처 편의점으로 갔다. 따뜻하게 데운 코코아 음료 하나씩 마시며 놀란 속을 달랬다.


"아저씨. 졸음운전이에요?"

"뭔 소리요. 청년이 무단 횡단한 거요."

"저는 파란 불 보고 건넜는데요."

"나도 파란 불이었어."


신호등에 문제 생긴 게 아니라면 둘 중 하나가 잘못 본 건데. 결국, 운명의 안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청년. 내가 아는 병원 있는데 가서 그거 찍어. CT인지 뭔지 하는 거."

혼자 병원에 가서 검사하고 온갖 병을 만들까 봐 걱정하는 게 눈에 보인다.

"아니요. 합의서 써드릴 테니까 세탁비로 만 원만 주세요."


아저씨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합의서를 쓰고 지장까지 찍은 후에야 안도한 얼굴로 만 원 한 장 건네고 떠났다.


진짜로 내가 무단으로 횡단한 거면 아저씨는 책임이 없어야 하는데. 하지만, 법은 상대적 약자를 보살피게 되어 있다. 운전자와 보행자 중, 당연히 보행자를 약자로 여긴다.


'법은 개개인이 아닌 사회 질서를 더 중요시하지. 보행자 100% 책임으로 법이 바뀌는 순간, 분명히 무단으로 횡단하는 사람을 일부러 치는 사이코패스가 나올 거야.'


원래 계획과 달리 택시를 탔다. 택시에서 내려 집에 들어오자마자 컴퓨터부터 켰다. 그리고 하드에 있는 야동을 전부 삭제했다.


조각 모음까지 해서 복구 여지도 깡그리 없앴다.


큰 짐을 던 홀가분한 마음으로 검색창에 '검사 되는 법'을 치고 검색 버튼을 눌렀다.


사법고시가 폐지되었다. 스타 검사 천동출로 살 때 이미 경험했지만, 혹시나 토막 세상이어서 그런 거겠지 했는데.

그럼 일단 변호사 되고, 그다음에 검사가 되는 거구나.


'변호사 빠르게 되는 법'을 검색했다. 딱 봐도 광고 혹은 사기인 것들을 배제하고 신빙성 높은 글 위주로 읽었다.


궁금한 것들을 검색으로 찾아 읽다 보니 어느새 11시가 되었다. 찬물에 담갔던 피 묻은 옷을 손빨래한 후 화장실에 널었다. 물이 다 흘러내리면 베란다에 걸 생각이다.


'아, 야구.'


그제야 생각나서 주머니를 뒤졌더니 폭 젖은 티켓이 나왔다.


'방수되는 종이로 만들지. 돈 그거 아껴서 뭐 하려고.'

지갑이 아닌 주머니에 넣은 내 잘못도 있지만, 이런 상황을 대비하지 못한 야구 연맹의 죄가 더 크다는 내 개인적 소견이다.


[천 대리입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내일 야구장에 못 갈 거 같네요.]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다. 10분 정도 기다리다가 소파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


###


아침 10시에 잠에서 깼다. 소파에서 엎드려 잤는데도 몸이 전혀 찌뿌둥하지 않다. 오히려 자는 사이 천마신공으로 기를 많이 모았는지 머리가 맑고 힘이 넘친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여전히 답장이 없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대충 씻고 옷 갈아입은 다음 차를 몰고 고향으로 갔다. 남들보다 몇 년 일찍 퇴직한 아버지는 어머니를 도와 작은 분식집을 차렸다. 음식 솜씨는 평범하지만, 고등학교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 장사는 그럭저럭 된다.


"아버지, 어머니. 저 놀러 왔어요."

"에구. 회사 다니느라 바쁠 텐데. 주말엔 그냥 쉬지 왜 피곤하게 운전하고 그래."

"회사 다니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외동아들이라는 놈이 일 년에 두어 번 내려오고, 평소 전화도 자주 안 하고."


어머니는 반가움을 그대로 표현하고 아버지는 어설프게 감춘다. 그래. 이게 사람 사는 모습이지. 따뜻해지는 마음과 몰려오는 행복감에 돌아오기로 한 게 정확한 결정이었음을 다시 실감한다.


"제가 좀 도울까요?"

"네가 뭘 도와. 집에 가서 쉬든가 친구들 만나든가 해."

"아니요. 제가 도울게요."


어머니가 잡은 식칼을 빼앗았다. 그리고 음식 재료를 다듬었다.


"줄기는요 이렇게 사선으로 써는 게 좋아요. 줄기엔 양념이 잘 안 배거든요. 양념을 묻힌다는 개념인데, 사선으로 썰면 단면이 커지면서 양념이 많이 묻잖아요. 근데 너무 자잘하게 썰면 씹는 맛이 사라지거든요. 그래서 적당한 길이와 적당한 각도가 중요해요."


내가 썬 채소를 양념에 버무린 후 맛을 보던 어머니가 깜짝 놀란다.


"어머. 진짜 맛있어. 어쩜 수십 년 음식을 만든 나보다 훨씬 낫니."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니까 쓸데없이 음식 솜씨만 늘지. 거참, 혼자 먹지 말고 나도 좀 줘. 그러다가 손님한테 내놓을 몫도 없겠어."


결국, 점심을 대충 드시고 일하던 두 분은 밥까지 퍼서 무침을 반찬으로 다 드셨다.


고기 고르는 법, 고깃결 찾는 법, 고기 써는 법, 최대한 손실 없이 힘줄 제거하는 법. 나는 배우지 않았는데도 계속 떠오르는 지식을 주체하지 못하고 어머니와 아버지 앞에서 자랑했다.


오후 5시. 분식집 문을 닫고 우리 세 식구는 집으로 돌아갔다.


집밥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운 후, 어머니가 담근 식혜로 입가심을 했다.


"여보. 동출이 먹이게 과일 좀 싱싱한 거로 사 와."

"어머, 내 정신 좀 봐. 토요일이면 마트에 과일 들어오는 날이잖아. 내가 얼른 가서 사 올게요."


어머니는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갔다. 삼 년 전에도 봤던 것 같은 옷차림에 괜히 콧마루가 시큰하다.


"동출아. 네 어미도 나갔으니 솔직히 말해. 회사에 무슨 일 있는 거지?"


회사의 은근한 압박을 못 이겨 남들보다 일찍 퇴직한 아버지. 그게 한이 되어서인지 평소랑 다른 내 언행에 불안을 느끼신 듯하다.


"아니요. 회사엔 문제없어요. 그냥 내가 회사 그만둘까 고민하는 거죠."

"후배들이 과장 달고 그러니까 많이 괴롭지?"


그런 건 아니다. 난 그 정도 밸도 없는 놈이었으니까.


"아니요. 공부 좀 더 해서 자격증 딸 생각이에요. 더 늦기 전에."


그 자격증이 변호사 자격증이고, 변호사가 목표 아니라 검사가 되기 위한 징검다리라는 건 비밀로 하자.


"그래. 잘 생각했다. 회사에 평생 충성해야 돌아오는 건 없어. 그러니 어서 네 살길을 찾아."

"걱정 마세요. 알아서 잘할 거에요.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한테도 효도 많이 할 거고요."

"이눔이, 말은 항상 번지르르하지. 우린 네가 뭐 대단한 인물이 되길 바라는 게 아니야. 참한 여자 만나서 행복한 가정 꾸리면 그게 다야."


"근데요. 혹시 저 어릴 때 큰 사고 겪거나 한 적 있나요?"


아버지가 갑자기 당황하신다.


"그쵸. 뭔가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하고."


"너, 누구한테서 들은 거야? 혹시 그 무당 할매? 아니지, 그 할매는 죽은 지 20년 되는데."


뭔가 있다.


사실 난 트럭에 치인 충격으로 내가 삼류 소설 하나 썼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했다. 천마신공이 치료해준 건 내 착각일 수도 있으니까. 빨래하면서 개세를 시도했는데 번번이 실패하며 의심이 더욱 커졌다.


그래서 내가 무림에서 소멸을 피해 도망친 아기 천마가 맞는지 확인하러 온 거다.


"말씀해 주세요. 저한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에요."


아버지 안색이 검다가 붉다가 하얗다가 변화가 다채롭다.


"네 살 때야. 네가 오토바이에 치여서 인사불성이 됐어. 누구 짓인지는 모르고, 그때 네 옷에 오토바이 자국으로 경찰이 판단한 거다."


그때는 의사보다는 스님이나 무당을 더 믿을 때였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뇌사 판정을 내렸고,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 어머니와 아버지는 영험하다는 무당을 불렀다.


무당은 내가 깨어나지 못하는 게 혼이 나가서 그렇다며 굿을 했다. 병원에 돈 30만 원 주고 사흘 동안 굿판을 벌였고, 사흘 만에 내가 깨어났다고 한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채.


"너 원래 엄청 똑똑했어. 셈도 백까지 세고 어머니가 식당 나갈 때 노인정에 두면 동네 할아버지들하고 화투도 치고. 점수 계산도 네가 다 했어. 그때 오토바이에 치이고 나서 지금 꼴이 된 거야."


그래. 천동출은 천마다. 평범한 삶이 오히려 치욕인,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작가의말

자신이 천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천동출, 과연 그는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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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사필귀정 20.01.06 268 6 9쪽
87 저승사자의 손짓 20.01.06 182 5 10쪽
86 경지 상승 20.01.05 163 5 9쪽
85 견제 20.01.05 173 5 9쪽
84 생방송 20.01.05 172 5 9쪽
83 자충수 20.01.04 154 6 9쪽
82 민중의 칼 20.01.04 156 4 9쪽
81 지뢰밭길 20.01.04 140 4 9쪽
80 가시밭길 20.01.03 142 8 9쪽
» 천동출 20.01.03 152 4 9쪽
78 진상 20.01.03 139 5 9쪽
77 성화신의 정체 +2 20.01.02 161 7 9쪽
76 합체와 분리 20.01.02 139 5 9쪽
75 전쟁 20.01.02 153 5 9쪽
74 저지르고 보자 20.01.01 176 4 9쪽
73 정조를 지켜라 20.01.01 198 4 9쪽
72 검사 천동출 20.01.01 154 4 9쪽
71 청천벽력 +2 19.12.31 163 7 9쪽
70 전학생 19.12.31 189 4 9쪽
69 세상이 너무 쉬워 19.12.31 129 6 9쪽
68 생김에 관한 고찰 19.12.30 152 7 9쪽
67 나는 강하다 19.12.30 127 6 9쪽
66 처형식 19.12.30 124 6 9쪽
65 양아치 19.12.29 122 6 9쪽
64 간타자 +1 19.12.29 137 6 9쪽
63 내가 내게? 19.12.29 137 5 9쪽
62 의욕 잃은 망나니 19.12.28 152 8 9쪽
61 말종의 반격 19.12.28 125 6 9쪽
60 동맹주 19.12.28 124 5 9쪽
59 무마동맹 19.12.27 141 4 9쪽
58 천마신공 19.12.27 143 4 9쪽
57 아비수의 마왕들 19.12.27 149 6 9쪽
56 망나니 강림 +3 19.12.26 144 8 9쪽
55 어마어마한 지원군 +1 19.12.25 154 6 9쪽
54 마교와 전쟁 19.12.24 142 7 9쪽
53 애송이들아 +2 19.12.23 156 8 9쪽
52 대기업 회유 +2 19.12.22 181 7 9쪽
51 독점금지법 +2 19.12.21 179 5 9쪽
50 후원금 +5 19.12.20 171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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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청문회 +2 19.12.18 172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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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비무 대회 +2 19.12.16 187 7 9쪽
45 천마의 대응 +4 19.12.15 187 7 9쪽
44 후보자 토론회 +2 19.12.14 176 7 9쪽
43 영혼 분리 +2 19.12.13 181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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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출마 선언 +2 19.12.11 187 6 9쪽
40 차별에 관하여 +2 19.12.10 219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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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세 번째 빙의 +2 19.12.08 215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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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십색기 +2 19.12.04 232 9 9쪽
33 문신 법술 +3 19.12.03 226 5 9쪽
32 천마 감옥에 갇히다 +2 19.12.02 240 5 9쪽
31 범인 검거 +2 19.12.01 213 7 9쪽
30 두 번째 빙의 +3 19.11.30 250 6 9쪽
29 대호법의 활약 +3 19.11.29 252 5 9쪽
28 상거지 만수로 +2 19.11.28 286 8 9쪽
27 첩자 이야기 +2 19.11.27 282 8 9쪽
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39 7 9쪽
25 민폐 천마 +2 19.11.25 282 6 9쪽
24 망나니 천마 +2 19.11.24 308 9 9쪽
23 최악의 16팀 +3 19.11.23 300 9 9쪽
22 노력하는 천마 +2 19.11.22 384 7 9쪽
21 무림맹의 재도발 +5 19.11.21 361 8 9쪽
20 배움은 끝이 없다 +2 19.11.20 375 8 9쪽
19 영혼과 육신 +1 19.11.19 412 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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