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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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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15
추천수 :
885
글자수 :
36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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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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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이호법

DUMMY

제길. 용답답이 난순이를 목욕탕에서 쫓아냈다. 무공을 수련할 땐 믿을 만한 사람만 있어야 한다며.


용답답을 영입하고 좋아졌던 기분이 다시 꿀꿀해졌다.


"교주. 무림맹 타격대가 도발합니다."


청룡대 차례 아닌가?


"청룡대의 종적은?"

"청룡대는 영화제 때문에 아예 출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청룡영화제(靑龍榮華祭).


있는 놈들이 부귀영화를 내려달라고 하늘에 올리는 무림 최대 규모의 제사다. 라이벌로는 황궁 수비대 중 하나인 백상대가 자기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백상무술대상(白象武術大賞)이 있다.


"도끼산이 시끌벅적하겠구나."


"교주. 내가 한다 싸움."


귓불에 물린 자국이 선명한 남자. 딱 봐도 천축인이다. 키는 작은 편인데 등빨이 장난 아니다. 얼굴엔 흉터가 어림짐작만으로도 서른 개 넘는다. 입술도 갓 터졌는지 부기가 빠지지 않았다.


가슴과 배에 갑옷을 연상케 하는 큼직한 근육이 가득하고 이두와 삼두가 마구 으르렁거린다. 구릿빛 상체를 그대로 드러낸 이호법은 아래에 무릎까지 오는 푸른 비단으로 만든 짧은 바지를 입었다.


"허락한다."


이호법은 공손한 태도로 인사하고 몸을 돌려 교주전을 벗어났다.


"매위덕. 나와라."

무림맹 측에서 몸이 새까맣게 탄 남자가 나왔다. 차림새는 이호법과 비슷하고 반바지가 붉은 비단으로 만든 것만 달랐다.


"파큐유. 그렇게 지고도 인정 안 하는 거냐?"

"너 먹칠했다."


난 매위덕이 햇볕에 탄 줄 알았는데, 몸에 먹칠한 거였다.


"무림 여자들은 먹물 먹은 남자 좋아한다니까."


말하는 사이 매위덕 수하들이 나무 기둥 네 개를 박은 다음 탄성이 강한 밧줄로 감았다. 매위덕이 먼저 두툼한벙어리 장갑을 끼고 안으로 들어갔다.

파큐유 역시 벙어리장갑을 낀 다음 입으로 손목 부위를 조인 가죽끈을 물고 힘껏 당겼다.


어느새 두 사람 모두 비무장 안에 들어갔다. 땡 울리는 종과 함께 파큐유가 매위덕을 덮쳤다. 매위덕은 빠른 발놀림으로 비무장을 빙빙 돌면서 파큐유의 돌진을 일일이 피했다.


"삼호법. 저 둘의 싸움은 처음 구경하시죠?"

왕간지가 심심했는지 밀덕에게 말을 건다.

"그렇소. 저 둘이 동문 사형제로 장문 자리를 두고 자주 다툰다는 말은 들었지만, 싸우는 걸 보는 건 처음이오."


"그럼 제가 도움 드리겠습니다. 저 둘은 권투(拳鬪)파의 제자입니다. 개파조사는 알리(閼狸)라는 자로 두 주먹으로만 천하를 횡행했습니다. 그러다 전대 장문인 타이승(打以勝)이 갑자기 은퇴하고 사라지면서 저 둘이 장문인이 되려고 십여 년 싸우는 중입니다."


타이승. 때려서 이긴다는 단순한 이름.

그러나 나만 여기 숨겨진 비밀을 알아챘다. 비긴다는 타이(tie)와 이긴다는 승. 즉 평생 진 적이 없다는 뜻이다. 대놓고 자랑하기 싫어서 천축어를 섞은 거다.


타이승은 속이 깊고 겸손한 사람인 것 같다.


"지금 매위덕이 주먹을 가볍게 끊임없이 내지릅니다. 저건 타격이 목적이 아니라 상대를 현혹하여 틈을 만드는 기술입니다. 잡스러운 기술이라고 해서 잡(雜)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왜 하나는 쫓기만 하고 하나는 도망치기만 하는 거요?"


"파큐유는 인파(忍派)입니다. 아픔을 꾹 참고 주먹을 주고받으며 싸우는 쪽이죠. 타이승도 그렇고 개파 조사인 알리도 그렇고. 모두 인파입니다. 그래서 매위덕이 대사형임에도 파큐유가 더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지지와 명분의 싸움인가 보오."

"그렇습니다. 매위덕은 아파(雅派)입니다. 싸움은 우아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죠. 굳이 아픔을 참아가며 싸워야 하냐는 입장입니다. 저렇게 회피하면서 작은 타격을 누적하여 상대를 쓰러뜨립니다. 가끔은 동시 반격으로 상대를 해치우기도 하죠."


인파와 아파의 싸움이다. 인파는 우직하게 들러붙으려 하고 아파는 잡힐세라 발을 멈추지 않는다. 두 사형제는 잡을 주고받으며 눈치 싸움을 열심히 벌였다.


"후욱(厚旭)이라는 기술이 있습니다. 그거 한 방 제대로 때리면 바로 싸움이 끝납니다. 모든 걸 내던지는 기술이어서 상대가 피하고 반격하면 속절없이 당합니다. 그래서 저렇게 잡만 주고받는 겁니다."

"그런데 두 사람 지금까지 결판 안 난 건가? 매위덕이 계속 이겼다는 것처럼 들리던데."

"시간을 정해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면서 총 12번 싸웁니다. 싸움이 끝날 때까지 파큐유는 매위덕을 한 번도 이긴 적 없습니다. 때린 횟수가 훨씬 많기에 매위덕의 승리라고들 합니다만, 파큐유는 비긴 거라고 여기죠."


전충 매위덕(梅偉德). 무림맹 타격대 대주로 치고 빠지기의 달인이다. 그리고 내게도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내가 신참일 때 중국 바이어 모시고 술 마신 적 있다. 그때 중국 바이어 이름이 바로 매위덕이었다. 중국어로 읽으면 메이웨더.


그때 종이 땡 울렸다. 두 사람은 각자 모퉁이에 가서 휴식하며 수건으로 땀을 닦고 물을 마시기도 했다. 매위덕 곁에는 뱃살이 축 늘어진 노인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뭐라 뭐라 계속 말한다.


다시 종소리가 울리자 둘은 비무대 중앙에서 주먹을 툭 부딪친 후 싸움을 시작했다. 파큐유는 무작정 돌진하는 걸 자제하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매위덕을 구석으로 몰아가려 했다.

매위덕 얼굴엔 낭패한 기색이 가득했다. 쉬는 시간에 파큐유를 상대할 수를 준비해 왔는데, 파큐유가 갑자기 스타일을 바꿔버리니 당황한 탓이었다.


"저게 바로 무초승유초라는 겁니다."


용답답이 인마에게 속삭였다.


고작 세 살배기가 이해하기엔 너무 고급 지식 아닌가?


"벗어나려면 먼저 따라야 한다는 말이지?"

"초식을 열심히 익혀야 그것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초식을 벗어난다는 건 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초월하고 진화한다는 뜻입니다."


제길. 인마는 출생신고 늦게 한 게 아닐까. 한 30년?


파큐유는 잡을 계속 날리면서도 상체를 흔드는 걸 잊지 않았다. 게다가 가끔 어깨를 움찔거리며 후욱을 날릴 것처럼 매위덕을 속였다.

그러나 매위덕 역시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상대의 공격이 진짠지 가짠지 끝까지 지켜봤다. 그렇게 열 번째 휴식이 끝나고 열한 번째 싸움이 시작됐다.


"매위덕. 네가 해라 장문인 권투파."


파큐유의 말에 매위덕이 이마를 찌푸렸다.


"뭔 수작이야? 어차피 널 쓰러뜨리지 못하면 난 문파에서 제대로 된 지지를 얻지 못한다."

"내가 포기다. 막 싸운다 이제."


파큐유가 장갑을 벗어 던졌다. 등진 탓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등만 보이지만, 분명히 파큐유의 눈은 숯덩이보다 더 빨갛게 불타고 있으리라.


"제기랄."

매위덕이 황급히 밧줄을 뛰어넘어 도망친다. 그러나 파큐유가 빨랐다.


"마덕확허(魔悳攫墟)."


파큐유가 주먹 쥔 손에서 가운뎃손가락만 세웠다. 세운 손가락에 영롱한 기가 맺히더니 돌 던진 호수에 인 파문처럼 사방으로 확산했다.

확허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멀쩡하던 주변 땅이 폐허처럼 처참하게 뒤집어졌다. 그리고 손가락을 중심으로 폐허가 점점 확장했다.


"피해가 광명정으로 안 미치게 막아라."

"분부 받들겠습니다."


허수아비가 허리를 숙인 후 경공을 펼쳐 밖으로 나갔다. 공격력은 없다시피 하지만, 수비력은 꽤 강한 편이다.


"호가호위(互假護衛)."

여우가 호랑이 위세를 빌려 우쭐댔다는 그 호가호위가 아니다. 서로 힘을 빌려 쓰는 호위라는 뜻으로, 호위대 대주인 허수아비가 호위대 대원들의 내공을 모조리 끌어왔다.


"허장성세(虛張聲勢)."


허수아비가 나타났다. 처음엔 수십 개였는데 순식간에 수백 수천이 되었다. 숫자만 많고 얄팍해 보이는 허수아비가 이룬 벽은 언뜻 허술해 보였다.


그러나 파큐유의 마덕확허는 허장성세를 만나자 주춤했다.


"동문의 정이 남은 것 같습니다."

왕간지의 말에 밀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손만 쓴 걸 보면 확실히 그런 것 같소. 왼손까지 썼으면 매위덕이 도망치지 못했을 거요."


두번머겅 했으면 매위덕이 죽었을 거란 말이네.


"저거 무슨 원리야?"

"내공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원래는 선천지기를 최고로 쳐줬는데 지금은 천마지기를 최고로 칩니다. 허 대주의 허장성세는 선천지기를 흉내 내어 웬만한 기운은 알아서 물러나게 하는 환(幻)계열 기술입니다."


용답답의 대답을 들은 인마가 고개를 끄덕인다.


"교주. 죽이지 못했다. 마음 약해서."

"잘했다. 굳이 무림맹과 원한을 더 쌓을 필욘 없지. 저쪽이 여론에 말려서 대규모로 침공하면 내가 나서야 하니까."


내 말을 들은 마교 고수들이 몸서리친다. 아직 천마의 위엄이 남아있고, 용답답도 영입했고, 이호법까지 돌아왔으니 이제부터 다리 뻗고 자도 되겠지?


[교주. 방금 들어온 정봅니다. 장로회에서 탄핵을 준비합니다. 실패하면 무림맹과 손잡고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답니다.]


작가의말

매위덕의 정확한 발음은 ‘메이웨이더’입니다. 글의 재미를 위해 발치했습니다.

타이승 - 때릴 타에 수단 이에 이길 승. 때려서 이긴다는 좋은 뜻이죠. 그리고 굉장히 겸손하고 속이 깊은 분이고요.

마덕확허 - 넓힐 확에 폐허 허. 주변을 넓게 뒤집는 무공입니다. 마덕은 딱히 갖다 붙일 데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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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배움은 끝이 없다 +2 19.11.20 375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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