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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조회수 :
41,956
추천수 :
885
글자수 :
363,122

작성
19.12.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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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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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전학생

DUMMY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그저 그래서.


난 우울했다.


"야, 저기 니 남친."


악의 없는 말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심장을 찌른다. 그러나 이미 강철처럼 단련된 내 심장은 스크래치 하나 안 났다.


"근데 동출 정도면 괜찮지 않아?"


쫑긋.


"뭐가?"


그래, 잘 물었다. 나도 궁금했던 참이야.


"엄마가 그랬어. 남자는 능력이 전부라고. 얼굴 보고 사는 건 끽해야 3년이래."


"어머, 기집애. 이제 고1인데 벌써 결혼 생각이야?"

"앙큼한 년."


서로 꼬집고 간지럽히며 깔깔댄다.


'그래. 판검사 되면 마누라 생기겠지. 판검사 되면 얼굴이 대수야?'


"그렇게 능력 있는 남자 좋으면 가서 동출이한테 고백해. 미래의 판검사잖아."


걸음을 늦췄다. 깨 발랄한 고1 여학생의 걸음으로 20초면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로.


"고백? 고백받으면 그때 고민해 볼 정도지 먼저 고백은 네버야. 이왕이면 능력도 있고 잘생긴 남자가 좋잖아."

"이 잡것아. 넌 거울도 안 보니?"

"거울 보면 자신감 사라지는데, 네년들 보면 자신감이 막 차오른다. 왜."

"와, 이런 천하의 잡년 보소. 야, 팔 잡아."


그래. 내가 먼저 고백하는 방법도 있지.


하지만, 첫 고백에 실패해서 소문나면 그 뒤로는 말짱 황이다. 누가 찬 애랑 사귄다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니까. 갑순이가 찬 갑돌이랑 사귀면 내가 갑순이보다 모자라게 느껴지는 건 인지상정.


그러니 첫 사냥감을 정확히 타게팅해야 한다. 아주 계획적인 플랜을 세워야 한다.


우울하던 내 마음에 작은 불씨가 튀더니 급기야 산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


우울함이 많이 가시니 콧노래가 나온다. 그런데 들뜬 건 나 하나뿐이 아니었다. 방학이 되려면 한 달도 더 남았는데, 애들 모두 엄청나게 들떴다.


"우리 반에 전학생 온대. 연예인 아니면 아이돌이라던데."

"나도 들었어. 전학 수속 밟으러 왔을 때 누가 봤대."

"아이돌 하기엔 아까운 외모라던데."


"야, 남자야 여자야?"

"이쁘다고 했으니 여자겠지."

"요즘 이쁜 남자 유행이잖아. 남자야."


나랑 상관없는 일이네. 전학생이 여자라고 해도 얼굴이 이쁘니 내 타깃으로 삼기엔 부적합하다. 내 능력과 성격에서 외모를 덜어낸 다음, 점수가 비슷한 여자를 목표로 해야 한다.


또각또각.


담임 선생님 구두 소리다. 난 평소와 마찬가지로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우연히 선생들끼리 대화하는 걸 들었는데, 어떤 일이 있어도 책에만 집중하는 학생이 제일 기특하다고 했다.


담임이 내 쪽으로 눈길을 주고 만족스럽게 웃는 모습이 감지되었다. 일반적인 감각을 벗어난 제6의 감각으로, 개세가 10성에 이르면서 직접 눈으로 보는 것처럼 주변 상황을 느낄 수 있다.


"다들 주목. 이미 아는 사람이 있겠지만, 우리 반에 전학생이 오게 되었다. 서울 명문고에서 전교 1등 하던 친군데, 개인 사정으로 우리 학교로 온 거다. 사고 치고 쫓겨난 거 아니니까 괜히 벽 쌓지 말고 이상한 소문 만들지 말아야 해."


"선생님. 전학생의 적응은 제가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그 역할을 신이 감당하겠나이다."


휙 소리와 함께 분필이 날아온다. 하나는 명중, 하나는 빗나가서 내 머리로 향한다.


고개도 들지 않고 검지를 세워 분필이 날아오는 경로에 댔다. 정확히 내 손가락에 맞은 분필은 운동에너지를 전부 상실한 후 중력의 법칙에 충실했다.


그 와중에 왼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멋진 모습을 연출했다. 얼굴만 받쳐주면 정말 좋은 그림인데.


"자, 그럼 전학생 자소 타임."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온 고난순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읭? 꾀꼬리 목청, 이름은 난순?


호기심을 못 참고 고개를 든 나는, 끝내 몸을 제어하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무림에, 그것도 마교에 있어야 할 난순이가 여긴 어떻게? 그리고 왜?


"동출이 안녕. 여기서 또 보네."


반이 뒤집혔다. 전교 1등끼리 단톡방이 있냐는 둥, 미녀와 야수라는 둥, 둘이 결혼하면 아기 얼굴이 궁금하다는 둥.


'설마 난순이가 날 따라서 여기까지? 그런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선생님, 제가 낯가림이 심한데, 동출이랑 짝궁 해도 될까요?"


###


"형님, 감축드립니다."


점심시간. 심란해서 조용한 곳을 찾았다. 그런데 조용한 곳마다 선객이 있었고, 날 본 애들은 담배를 부랴부랴 끄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심지어 2학년마저 형님이라고 부르며 허리를 숙여서 난 쫓기다시피 떠나야 했다.


이미 학교에는 60억분의 1의 미모를 갖춘 전학생이 가을 남자 천동출을 '점지'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가는 귀가 먹은 수위 아저씨까지 알 정도이고, 학교 정문에서 백 미터나 떨어진 분식집 아줌마도 알고 있다.


"동출이 좋겠다."


플라워 3으로 불리는 종철과 민 그리고 영길이가 부러운 눈으로 날 쳐다본다. 남자는 좋은 차, 여자는 명품 가방. 자신을 과시할 수단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난순은 우주 비행선에 용 가죽으로 만든 가방으로 볼 수 있다. 사귀는 게 아니라 그저 아는 사이라는 것만으로도 저 꽃미남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다.


"우리도 공부 열심히 하자. 얼굴 믿고 지금처럼 지내다간 앞날이 어두워."


평소엔 몰랐는데, 학교 어디로 가도 사람이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날 주시하고 날 화제로 삼으며 날 주인공 삼아 소설을 썼다.


"동출아, 막 가슴이 벌렁해서 공부가 안돼? 그럼 기말고사 전교 1등은 내게 양보하겠네?"


전교 2등 허간죽이 내 부아를 슬슬 긁어댔다. 어린놈이 발랑 까져서는. 본인이 열심히 해서 이길 생각은 안 하고 어떻게든 내 멘탈을 흔들어 끌어내리려고 한다.

본인의 학업적 성취나 지식의 섭취보단 등수에 매달리는 어리석은 중생아. 기말고사도 내가 1등 할 거니까 넌 꺼지세요.


교실과 가까울수록 얼굴이 점점 굳어진다.


"동출아, 어서 와."


낯가림이 심하기는 개뿔. 난순은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반 애들 전부와 친해졌다. 날 빼고.


"끝나고 일없지? 나랑 같이 공부하자."


애들이 술렁인다. 난 난순이한테 캐묻고 싶은 게 많지만, 보는 눈도 많고 듣는 귀도 많아서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필담해서 흔적을 남기는 아마추어 같은 짓도 삼가야 하고.


"그래."


애들이 날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평소엔 열심히 사는 흙수저를 바라보는 금수저의 눈빛이었다면, 지금은 반물질수저를 우러러보는 흙수저의 눈빛이다.


'전 과목 백 점으로도 받아내지 못한 우러름을 이런 식으로 받다니. 역시 노력보단 환경이 훨씬 중요한 건가?'


내가 이대로 쭉 잘돼서 판검사가 된다고 해도, 애들한테는 개그맨 될 끼가 없어서 공부로 성공한 못생긴 놈으로 기억되겠지.

그러나 난순이가 알은체를 해줬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사회적 지위가 달라졌다.


이 빌어먹을 세상아.


아침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조미료가 두껍게 쳐진 소설들이 창작되었다. 설마 난순이도 나처럼 저들이 소곤거리는 소릴 다 듣는 건 아니겠지?


'그보다 내가 아는 그 난순이가 맞는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지.'


내가 무림으로 간 일, 천마와 함께 현대 사회로 빙의된 일, 천마 빼고 나만 빙의된 일, 염두에 둔 적도 없던 난순이가 여기에 나타난 일.


가장 중요한 건, 트럭에 치인 내가 살아있는지 여부다. 시간과 공간이 단일하지 않아 뭐가 뭔지 엄청나게 헷갈리지만, 내가 다시 34살 회사원 천동출로 돌아갈 수 있는지가 내겐 매우 중요하다.


지금 삶에 아주 흡족하지만, 가짜 같다. 만약 천마의 몸에서 수많은 걸 보고 겪고 느끼지 않고 바로 고1 시절로 보내졌다면, 난 기꺼이 이 삶을 더 좋아하고 돌아가지 않으려고 애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간 내적인 성장을 조금이라도 이뤘는지, 만약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주저 없이 돌아갈 것이다. 평범 혹은 평범에도 못 미치는 삶이라고 해도, 그건 '진짜'니까.


오후 시간은 빠르게 지났다.


선생님들이 평소보다 더 열정적으로 강의했다. 난순이 외모 때문인지. 아니면 서울에서 수위로 꼽히는 명문고 전교 1등이라는 타이들 때문인지.


강의가 끝나자 애들이 평소와 달리 미적거린다. 이미 몇 분 전부터 가방 싸고 학원 혹은 피시방으로 달릴 준비를 해야 하는데 말이지.


난 평소랑 똑같은 속도로 가방을 쌌다.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난순이가 내 팔을 덥석 잡는다.


"동출아, 너네 집 가자."


아수라장이 된 교실을 재빨리 탈출해 교문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난순이도 보폭이 작지 않아 나랑 어깨 나란히 하고 걸었다.


그 뒤로는 설탕물 본 개미 떼처럼 전교생이 슬금슬금 따른다.


"아가씨, 어디로 모실까요."


10억을 호가하는 비싼 외제 차가 열리며 이탈리아 정장을 차려입은 비서인지 기사인지 모를 잘생긴 남자가 난순이한테 허리 숙여 인사한다.


작가의말

슬슬 진실을 조금씩 밝혀야겠군요.

장난스러운 글은 맞지만, 개연성과 설정은 꼼꼼히 챙겼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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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견제 20.01.05 173 5 9쪽
84 생방송 20.01.05 173 5 9쪽
83 자충수 20.01.04 154 6 9쪽
82 민중의 칼 20.01.04 156 4 9쪽
81 지뢰밭길 20.01.04 140 4 9쪽
80 가시밭길 20.01.03 142 8 9쪽
79 천동출 20.01.03 152 4 9쪽
78 진상 20.01.03 140 5 9쪽
77 성화신의 정체 +2 20.01.02 162 7 9쪽
76 합체와 분리 20.01.02 140 5 9쪽
75 전쟁 20.01.02 153 5 9쪽
74 저지르고 보자 20.01.01 176 4 9쪽
73 정조를 지켜라 20.01.01 200 4 9쪽
72 검사 천동출 20.01.01 155 4 9쪽
71 청천벽력 +2 19.12.31 163 7 9쪽
» 전학생 19.12.31 190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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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나는 강하다 19.12.30 127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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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의욕 잃은 망나니 19.12.28 152 8 9쪽
61 말종의 반격 19.12.28 126 6 9쪽
60 동맹주 19.12.28 124 5 9쪽
59 무마동맹 19.12.27 142 4 9쪽
58 천마신공 19.12.27 144 4 9쪽
57 아비수의 마왕들 19.12.27 149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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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애송이들아 +2 19.12.23 157 8 9쪽
52 대기업 회유 +2 19.12.22 181 7 9쪽
51 독점금지법 +2 19.12.21 179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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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청문회 +2 19.12.18 173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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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비무 대회 +2 19.12.16 187 7 9쪽
45 천마의 대응 +4 19.12.15 187 7 9쪽
44 후보자 토론회 +2 19.12.14 176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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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첩자 이야기 +2 19.11.27 283 8 9쪽
26 유치원 삼법 +2 19.11.26 340 7 9쪽
25 민폐 천마 +2 19.11.25 283 6 9쪽
24 망나니 천마 +2 19.11.24 308 9 9쪽
23 최악의 16팀 +3 19.11.23 301 9 9쪽
22 노력하는 천마 +2 19.11.22 384 7 9쪽
21 무림맹의 재도발 +5 19.11.21 361 8 9쪽
20 배움은 끝이 없다 +2 19.11.20 375 8 9쪽
19 영혼과 육신 +1 19.11.19 412 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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