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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쇠의 서재입니다.

천마에 빙의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글쇠
작품등록일 :
2019.11.01 10:16
최근연재일 :
2020.01.06 18:00
연재수 :
89 회
조회수 :
41,977
추천수 :
885
글자수 :
363,122

작성
19.11.24 18:00
조회
308
추천
9
글자
9쪽

망나니 천마

DUMMY

- 야.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천마는 내 말을 씹었다. 양손을 허리에 올리며 상큼한 표정과 함께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말을 무자비하게 뱉는다.


"흥! 칫! 뿡!"


흥에서 고개를 왼쪽으로 홱 돌리고 칫에서 양손을 허리에서 떼며 주먹을 앙증맞게 그러쥐었고 뿡에선 발을 콩 굴렀다. 그새 수리를 마친 지하 연무장 바닥과 벽이 살짝 출렁였다.


천마 흰자에 먹물이 퍼지고 검은자가 하얗게 탈색한다.


- 천동출. 너만 믿는다. 사고 안 치게 잘 설득해.


뭔 개소리냐고 물으려는 순간 세상이 지워졌다.


- 후아. 오랜만에 하는 나들이구나. 어이, 기생충. 설명 좀 부탁해.

- 너 누군데?

- 나? 망나니 천서출이야. 평소 너랑 대화하는 건 모범생 천서출이고.


###


박순녀가 건들거리며 무대 감독을 찾아갔다.


- 야, 너 제발 사고 좀 치지 마.

- 빙의를 통해 성장하는 건 범생뿐이 아니야. 내게도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안 망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이 망나니야. 내가 걱정 안 하게 생겼어? 눈알이 뒤집힌다는 말이 그냥 표현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흰자가 까매지고 검은자가 하얘지는 걸 내가 네 눈으로 똑똑히 봤거든.


"감독님, 부탁 하나 있어요."


다른 의미로 미치겠다. 박순녀가 순진한 표정으로 몸을 배배 꼬면서 감독한테 애교를 떤다.


"응? 무슨 부탁인데?"

"저희 안무에 변화가 생겼거든요. 제가 발 구를 때마다 조명 2초씩만 꺼주시면 안 돼요? 어두워야 제대로 효과 나오거든요."

"PD나 작가랑 얘기된 거야?"

"에이. 이런 사소한 부분은 감독님 재량이잖아요. 솔직히 PD나 작가들이 하는 게 뭐 있어요. 시청률 나오는 거 다 감독님이 무대연출 잘해주신 덕분인데."


무대 감독이 헤벌쭉 웃는다. 이런 순진한 양반이 어떻게 무대 총괄 맡았나 몰라.


"알았어. 너희 팀 첫 무대지? 내가 특별히 신경 써줄게."


- 미혼술 효과 있네.

- 미혼술?

- 미혼인 여자만 부릴 수 있는 술수지. 간통죄는 무겁거든.


미혼술(未婚術).

여자가 남자한테 애교를 부려 홀리는 술수. 간통죄가 들키면 나무에 거꾸로 매달고 돌팔매로 죽이는 무림이기에 혼인한 여자는 감히 사용할 엄두도 못 낸다.


- 여긴 간통죄 폐지됐어.

- 그런데도 나라가 안 망해?


망나니도 범생이랑 똑같은 말 하네. 나라가 그렇게 쉽게 망해?


박순녀는 의상팀에 가서도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여자끼리는 아무 효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박순녀는 무대 화장을 돕는 분장팀에도 토 나올 정도로 애교를 부렸다.


- 야. 애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 어차피 토막 세상이야. 빙의 끝나면 다신 안 볼 사이라고. 내 목적만 이루면 돼.


"유일, 아현, 유아이."

동문탁 목소리가 들려온다. 박순녀 빼고 넷만 모였다. 뭐, 안 봐도 동영상이다.


박순녀를 광년이라고 욕하겠지?


"언니는 최선을 다하는데 우린 뭐야? 우리도 언니처럼 모든 걸 해보자."


제길. 감동 먹은 거였어?


"언니. 나 결심했어. 가슴 파인 옷 입을 거야."

미래의 청순여신 아현이 폭탄발언을 한다. 40도 무더위에도 긴소매에 바지를 고집하던 아인데.


"녹화까지 두 시간 남았잖아. 난 삼단고음 연습해 올게."

섹시댄스밖에 모르던 유아이가 주먹을 꼭 쥐고 입을 앙다문다. 넌 가수보다 배우가 적성에 맞아. 그러니까 목 아프게 삼단고음 연습하지 마.


"언니. 난 허벅지에 꿀 바르겠어."

아현 정도는 아니어도 노출을 꺼리는 편이던 유일 역시 결단을 내렸다.


"나도 치마 입겠다."

로커의 자존심이라며 가죽 바지만 고집하던 동문탁 역시 타협했다.


- 지랄들 하네. 어차피 나 혼자여도 우리 팀 우승이야.

- 그건 아니야. 팀 화합도 보는 거여서 너만 튀면 결국 팀 전체가 탈락이야.

- 제길. 그걸 왜 이제야 말해?


혼자서 무대를 다 부숴버릴 생각이던 망나니 천마가 화낸다. 네가 묻기라도 했냐?


- 조명 꺼달라고 한 건 왜 그런 건데?

- 내공으로 빛을 내려고 했지. 그럼 나만 돋보일 거잖아.

- 사람이 빛을 내면 끌려가서 해부당해.

- 어차피 토막 세상인데 뭘.


부처님. 이 또라이 제발 좀 어떻게 해주세요.


- 범생은 뭘 준비했는데?

- 건곤대나이, 이화접목, 두전성이, 사량발천근, 십자오행.

- 연습 어떻게 했는지 자세히 말해.

- 연습은 저 넷이 하고 박순녀는 내공만 모았다.


눈이 감겼다가 한참 후 떠졌다.


- 알았어. 이걸 하려던 거였구나. 자기는 실수할 가능성이 있으니 날 불러낸 거였군.

- 인격에 따라 능력도 달라져?

- 범생은 힘 조절이 미숙해. 실수해서 팀원이 다치면 미션을 망치니까 날 불러낸 거야.


그냥 팀원 다치는 게 걱정되어 널 불러낸 것 같은데. 뭐 눈엔 뭐만 보인다더니.


###


"야, 16팀 드디어 단체로 미친 거야?"


PD 양반. 다 들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고 씹는 말은 내가 들어.


"이러다 이변 생기는 거 아닐까요?"

조연출 눈이 아현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핫팬츠에 가슴 파인 빨간 가죽옷을 입은 아현에게 대부분 눈길이 집중됐다.


"아직 문자 투표가 50%밖에 안 돼서 어려울걸. 저긴 화력이 강한 기획사도 없잖아. 심사위원 점수가 높을 수 없으니 생존은 힘들어. 그래도 다른 팀에서 위기감을 느껴 투표 열심히 하면 참여율은 높겠다."


"문탁이 쟤 다리 은근히 이쁜데요."

"계속 바지만 입었으니 다리가 유달리 하얗잖아. 지금까지 보여줬던 강한 인상 때문에 저런 여린 모습이 훨씬 와닿지."


"근데 유아이는 평소보다 볼륨감이 많이 죽었는데요."


"으이그. 그거 성희롱인 거 아시죠?"


왕언니 작가가 불쑥 끼어들었다.


"작가 언니. 난 아니야. 집에 저만한 딸아이 있어. 미혼인 얘면 몰라도."

"PD님. 저도 이쁜 여자친구 있습니다."


"유아이가 삼단고음 하겠다고 복대랑 스포츠 브라 착용했어요. 그래서 저런 초딩 몸매가 나온 거예요. 섹시 컨셉은 완전히 버리고 노래에 집중하겠대요."


PD와 조연출은 유일의 다리를 보며 눈빛으로 대화했다.

'PD님, 꿀벅지, 꿀벅지예요.'

'와, 이 팀 대박이다.'

대충 이런 말이 소리 없이 오가지 않았나 짐작한다.


"PD님. 그런데 박순녀 쟤 갑자기 너무 달라지지 않았어요?"

작가가 갑자기 찾아온 이유는 박순녀였다.


"잘 웃고 말도 이쁘게 하고 애교도 넘치고. 이대로 방송에 나가면 일부러 편집을 이상하게 했다고 항의받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녹화 끝나고 인터뷰 따.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 갑자기 사람이 달라 보이는지 질문해서 방송에 내보내. 슈퍼에서 가수 뽑는 그 오디션처럼 악마의 편집이니 뭐니 소리 안 나오게 말이야."


"스탠바이. 녹화 1분 전입니다."


녹화장이 분주하게 돌아간다. 박순녀는 팀원에게 신신당부했다.


"중간에 가끔 조명이 꺼질 거야. 그때마다 무대 장치로 너희 위치 옮길 거니까 당황하지 말고 연습 때처럼 해."

"알았어요. 언니. 우리 꼭 일등 해요."


박순녀가 중간에 서고 유아이와 유일이 앞에 섰다. 춤이 별로인 동문탁과 아현은 뒤에 세웠다.


지이잉.

강렬한 전자음이 심장을 흔든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 난도의 헤비메탈 '제주도 푸른 밤'의 전주가 무대를 꽉 채운다.

미국 록 밴드 강철심장의 보컬이 도전했다가 피 한 사발 토하고 구급차에 실려 간 노래.


"미쳤어. 리허설 때는 키 세 개 낮췄었잖아."

"그리고 무대가 밋밋하다고 혹평을 받았죠. 키 좀 올리는 게 어떻겠냐는 건의도 있었고요."

"그래도 한 개나 한 개 반 정도 올리라는 뜻이었지."

"무난하게 가면 탈락이 빤한 애들이잖아요. 모 아니면 도가 낫죠."


도입부는 유아이가 맡았다.


제주도의 어떤 민박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받았던 불공정 대우를 가사로 풀었다. 사장 부부가 어떤 식으로 자신을 착취했는지 낱낱이 밝혔다.

이거 실제 사실이라면 방송 나가고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텐데. 사장 부부가 십분 당황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녹화 끝나고 쟤 도핑해 봐. 방금 삼단고음 나왔잖아."

솔로 여가수의 워너비로 불리는 신여포만 가능하다는 삼단고음. 그게 유아이 입에서 터졌다.


"PD님. 그러고 보니 유아이랑 신여포 조금 닮지 않았어요?"

"주둥이 조심해. 그러다 신여포 팬들이 널 고소한다. 신여포 삼촌팬 엄청 많아. 삼촌팬들 남는 게 돈이랑 시간인 건 알지?"


이어서 유일이 랩을 했다. 한 글자씩 또박또박 뱉어내는 랩에 샤우팅 기법을 살짝 섞어 곧 이어질 클라이맥스를 기대케 했다.


유일의 랩이 끝날 무렵, 박순녀가 손을 허리에 올리더니 고개를 홱 돌리며 발을 쿵 굴렀다. 무대 조명이 꺼졌다.


2초 후, 조명이 켜졌다. 어느새 유아이와 유일이 뒤로 갔고 동문탁과 아현이 앞줄로 왔다. 그리고 녹화장을 찢어발길 듯한 기세가 박순녀 몸에 넘실거렸다.


작가의말

모범생 천마가 망나니한테 바통을 넘겼습니다. 반드시 일등 해야 하니깐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99 DarkCull..
    작성일
    19.11.24 18:28
    No. 1

    이런.
    멤버들 이름이... 글쿤요.이제서야 알았네요.
    저 조합이 제주도 푸른밤 데쓰락으로 부르고 춤 추는거 상상함 ㅎㅎ
    의외로 재미있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8 글쇠
    작성일
    19.11.25 09:01
    No. 2

    드라마 좀 보신 분이라면 모텔 벨루다, 최고다 원균에서 바로 감이 오셨을 텐데.

    - by 두 드라마 다 안 본 글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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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동맹주 19.12.28 124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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