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달걀동자 아저씨 #03. 친구
자살하려던 남자. 그는 새로운 길을 걷게된다.
#03. 친구
--- 지난 이야기 세줄 요약 ---
서울에서 전학 온 주인공이 양아치들
그 중 빽꾸를 작살내고. 주변의 중학교로 전학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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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한 주가 지난 월요일.
주말 동안 잘 쉰 탓인지 학교를 향하는 지안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금요일에 전학 수속을 밟았다.
오늘은 처음으로 학교에 가는 날.
‘2학년 3반이라고 했지?’
중학교 2학년.
세상을 다 가질 것 같은 나이.
남들보다 30여 분 먼저 도착하니.
교실에는 4명 정도만 앉아있다.
“니 전학생이가?”
“응. 안녕. 나 고지은이라고 해.”
“어. 그래. 반갑다.”
공부하고 있던 4명의 친구 중 한 명이 지안이에게 간단히 인사하더니 다시 공부한다.
두꺼운 수학 정석을 풀고 있다.
‘뭐야. 저건 고등학생들이 푸는 수학책인데?’
지안이는 서울에서 공부할 때 본 적이 있는 책이었다.
치맛바람 날리던 엄마가 사준 거라며 투덜거리며 풀고 있던 친구들이 있었으니까.
‘저 녀석. 공부 좀 하나 보네.’
“우리 선생님은 교무실에 있거든. 차라리 그 가봐라.”
“아. 그래. 고마워.”
지안이는 복도를 지나 밑으로 내려가서 2층 가운데 있는 교무실로 들어갔다.
“어. 지안이제?”
“네. 선생님.”
“이리 와바라.”
지안이는 자신을 부르는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그는 자기 옆에 작은 의자를 당기며 앉으라고 했다.
지안이는 앉아서 선생님을 바라본다.
“니 서울에서 보니까 공부도 좀 했네 전교에서 20등 정도 했네. 와···.”
“운이 좋았습니다.”
“머라카노. 여기 강남이잖아. 역삼동. 여기서 전교 20등이면 장난아인데.”
“아닙니다.”
선생님은 그제야 지안이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그리고는 싱긋 웃었다.
“이 새끼. 진국이네.”
“아닙니다. 전 고지안입니다.”
“뭐라고? 푸하하하.”
선생님은 지안의 어깨를 잡고 빵 터졌다.
“그래. 지안아. 고지안이.”
“네. 선생님.”
“한번 열심히 해봐라. 영도 중학교 사고는 들어서 알고 있는데 남자 새끼가 그랄 수도 있지.”
“제가 좀 심했습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그기처럼 깡패 새끼들만 다니는 곳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공부해라.”
“네. 알겠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시간은 흘러 아침 조회시간 10분 전이 되었다.
“지금 올라가자. 애들 다 왔을 거니까. 미리 인사하고 자리에 앉아서 준비해라.”
선생님은 오른손에 당구 큐대를 반으로 자른 몽둥이를 들고 출석부를 옆에 낀 채 지안이를 일으켰다.
지안이는 그를 따라 고실로 다시 돌아간다.
“이 새끼! 빨리 안 드가고 복도에서 뭐하노!”
“아직 조회시간 아닌데예.”
“머라카노! 대가리를 쪼사뿐다이!”
“아···. 알겠습니다. 선생님.”
후다닥거리면서 복도에 있던 중학생들이 자신의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2학년 3반.
당시 중학교는 60여 명이 한 반이었다.
교실을 가득 메운 아이들.
“인사해라. 새로 전학 온 친구다.”
“안녕하세요. 고지안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인사하는 내 말투에 놀랐다.
웅성거리기 시착했다.
“점마. 서울말한다.”
“키도 크고.. 고지라라고 했다.”
“아이다. 고지안이다.”
“X지안 아이가?”
야한 농담을 하며 킥킥대는 맨 뒤에 앉은 녀석.
난 그 녀석에게 눈이 갔다.
“김도희. 니 이리 나온다.”
“아.”
그 녀석은 생긴 거 답지 않게 이름은 예쁘다.
김도희는 선생님의 당구 큐대로 머리를 한 대 맞았다.
“아야.”
“들어가라. 어디서 X지 이야기를 하노. 니 돌았나?”
선생님이 야단치자.
도희는 혀를 쏙 내밀며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반 친구들은 킥킥대며 웃고 있었다.
“저기 뒤에 빈자리 보이제?”
“네.”
“저기 가서 앉아라.”
난 선생님께 인사하고 그 자리로 가서 앉았다.
검은 안경을 끼고 여드름이 있는 짝이다.
“반갑다. 난 진태야. 오진태.”
“어·반가워.”
난 가방을 옆에 걸고.
짝과 인사를 했다.
아침 조회의 내용은 간단했다.
까불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
어제 청소한 애들이 나와서 엉덩이를 2대씩 맞았다.
빡-
빡-
“들어가.”
그 시절.
학교는 선생님들의 폭력이 기승을 부렸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배운 대로 하는 게 학생이니까.
그래서 더 치열하게 싸움과 폭력으로 학교가 돌아갔다.
그 세상도 그렇게 돌아갔다.
집에 가면 부모님께 맞고.
학교 오면 선생님께 맞고.
밖에서는 옳은 말 하면 처맞고.
이렇게 쌓여간 분노와 모욕감.
그것들이 다시 자기들 또래들과 터지는 시대.
그 시대는 그랬다.
짐승들이 돌보는.
짐승들의 시대였다.
수업을 들으면서 하루가 잘 지나갔다.
*****
“도시락같이 묵자.”
점심시간이 되었다.
할머니 싸주신 도시락을 꺼내자 짝인 오진태와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이거 좀 묵으라. 짝지야.”
진태는 소시지를 하나 고지안의 밥에 놓아준다.
커다란 진주햄 소시지에 달걀을 싸서 만든 반찬.
“짝지가 뭐야?”
“아. 서울에서는 짝꿍이라고 하나?”
“아. 그거.”
피식.
고지안은 진태의 말에 피식 웃었다.
영도 중학교의 지옥 같은 점심시간.
아니 점심시간에 밥 먹는 애들도 거의 없었다.
쉬는 시간에 다 까먹어버려서.
그나마 공부 좀 하고 착한 애들의 도시락도 다 빼앗아 먹어버리니까.
“지안이라고 했나?”
“응. 진태야.”
“니 고등학교 어디 갈건데?”
“나? 저기 밑에 부산고등학교.”
“아. 글나. 나도...”
그렇게 짝과의 첫 점심을 먹었다.
*****
집에 돌아와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갔다.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책들.
아침에 아이들이 공부하던 두꺼운 수학책도 하나 샀다.
할머니가 필요하건 사라고 돈을 주셨기에.
그냥 편하게 필요한 것들을 샀다.
‘영어책도 하나사자.’
서점을 뒤지다 보니 ‘맨투맨 종합영어’가 보였다.
‘저거다.’
손을 뻗어 잡으려는 순간.
고지안은 누군가와 손과 부딪혔다.
“이거 내가 살 건데?”
여자의 목소리다.
고지안은 그 아이를 쳐다봤다.
긴 머리.
동그란 눈.
그녀의 첫인상은 그랬다.
“이거 내가 먼저 살려고 한 거야.”
목소리도 예쁘고.
무엇보다도 고지안의 마음을 흔든 건.
그녀가 사용하는 ‘서울말’이었다.
“내가 먼저 잡았어. 이 책.”
“하나밖에 없으니 내가 살 거야.”
그녀는 손에 책을 쥔 채 놓지 않는다.
맨투맨 종합영어는 2권이 세트.
고지안은 두 번째 책을 잡고 들었다.
“그럼 난. 이거 살게.”
“하아. 성격 더럽네. 키도 큰 주제에.”
“너도 키는 크잖아.”
고지안은 그녀를 보면서.
무뚝뚝하게 이야기했다.
“너 서울에서 왔어?”
“응.”
“와. 신기하네. 부산말만 듣다가 서울말 들으니 눈물 날 것 같네.”
고지안에게 손을 내미는 그 아이.
“나랑 친구 하자. 나도 부산 온 지 한 달밖에 안 되었는데.”
“친구는 무슨. 책이나 줘.”
고지안은 특유의 무뚝뚝함을 발휘했다.
예쁜 아이라는 생각은 했다.
“음. 그럼 이렇게 하자.”
“어떻게?”
“내가 책을 살 테니, 니가 빵을 사.”
고지안은 입에서 나오는 욕을 삼켰다.
여기서 욕을 하면 난 깡패가 되는 거다.
귀엽다.
고지안은 그냥 눈을 감았다.
“알았어. 그러자.”
“오. 쿨하네.”
다시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나 이욱승이야. 선화여중 3학년.”
고지안은 당황스러웠다.
한 살 많은 누나라니.
고민하던 고지안은 악수를 했다.
“난 서중학교 3학년 고지안.”
“서중이라고?”
“오늘 전학 왔어.”
“그렇구나.”
이욱승?
여자 이름치고는 어려운 이름이네.
고지안이 생각하는 동안.
욱승이는 책을 계산한다.
“원래 만 3천원인데. 만원만 도.”
“사장님. 저 여기서 책 많이 사는데...”
“하기야. 니 예쁘니까 아저씨가 만 원 받고, 볼펜 2개 주께.”
적당한 선의 합의였다.
‘뭐야. 저 아이. 아저씨랑 저런 이야기를 하네.’
아마 고지안이었다면.
그냥 만원 내고 나왔을 것이다.
쭈뼛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안녕히 계세요 ’ 하면서.
서점을 나가서 초량 사거리에 있는 빵집으로 향했다.
욱승이가 앞장서고 뒤를 따라가는 지안.
딸랑-
빵집은 맛있는 빵이 있다.
5개 정도의 테이블 중 2개는 차 있었다.
고교생들이 앉아서 미팅 중이다.
“주말에 영화 보러 갈래요?”
“엄마때매 안 돼요.”
“도서관 간다고 하고 나와요.”
“안된다니까요.”
교복 자율화 이후 미팅도 많아지고.
빵집도 그 미팅 때문에 장사가 잘되었다.
다음 해부터 교복으로 다시 바뀌었지만.
단팥빵 2개.
소보루 2개.
따뜻한 우유 2잔.
“서울은 어디서 살았어?”
“역삼.”
“난 용산에서 살았어.”
“그랬구나.”
고지안은 소보루 빵을 먹으며 우유를 마셨다.
이렇게 빵을 먹는 것도.
엄마가 죽고 아버지가 죽은 이후 처음이다···.
엄마는 빵을 많이 사줬다.
케이크도 많이 먹었고.
당시에는 역삼동에서 제일 큰 집 중 하나였으니.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멀리까지 가서 유명한 빵을 사주었다.
“곰보빵 말고 맛있는 거 먹어.”
“그렇게 손으로 들고 먹지 마.”
“포크와 나이프로 먹어야지.”
“빵은 손으로 먹는 거 아냐.”
엄마가 언제나 잔소리하던 목소리.
“사장님. 나이프랑 포크 주세요.”
“뭐라고예?”
“칼이랑 포크 주세요.”
사장님은 뭔 미친 놈인가 하는 표정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가져와서 놓아준다.
“포크는 달라는 애들이 있는데, 나이프는 처음이네.”
고지안은 소보루와 팥빵을 칼로 잘라서 포크로 찍어 먹었다.
“와. 너 부잣집 도련님이었구나.”
“부잣집은 맞는데 도련님은 아니야.”
그 빵이 입에 들어오니.
갑자기 눈에서 슬픔이 핑 돌았다.
‘시발. 울면 안 되는데···.’
고지안도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감정이 흔들려버린 것이다.
‘맛과 향.’
그런 것이 가끔은 기억의 깊은 곳을 끄집어내서 감정으로 만들어버린다.
“뭐야? 너 지금 우는 거야?”
“나 보지마.”
고지안은 머리를 숙이고 주먹을 쥔 채.
어머니의 추억들이 사라질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우걱우걱 빵과 우유를 먹었다.
두 번 다시.
생각하지 않기 위해.
더 우걱우걱 소리를 내며 빵을 입으로 쑤셔 넣었다.
“우유 마시면서 먹어. 체할라.”
욱승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자신이 좋아하는 팥빵을 나이프로 잘라 먹어본다.
“음. 잘라 먹으니 훨씬 맛있네.”
욱승이는 고지안을 보면서.
조용히 이야기했다.
“응. 그렇지.”
고지안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는 고개를 들어 이욱승을 바라봤다.
“우리 친구 하자. 이욱승.”
“그러자. 고지안.”
고지안은 눈물 젖은 빵은 이후 먹은 적이 없다.
“여기 전화번호. 우리 엄마가 받아도 말해도 되거든. 우리 엄마는 내 편이니까.”
“알았다.”
“근데 다른 사람이 받으면 끊어.”
“응. 알았다.”
그녀가 적어준 쪽지에는 전화번호가 있었다.
조심스레 그 쪽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렇게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댓글과 추천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추천이 많아야 글이 잘 써져요..
- 작가의말
오늘도 하나 올립니다.
어려운 사투리는 댓글로 물어보시면 답해드릴께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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