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달걀동자 아저씨 #01. 괴물
자살하려던 남자. 그는 새로운 길을 걷게된다.
#01. 괴물
1989년.
부산의 영도.
당시의 영도는 마약과 부산 조직 폭력배들의 본부 같은 곳이었다.
부산과 따로 떨어진 섬인 이유이기도 하자만.
부산의 본토와 이어지는 다리는 하나인 데다가 그 다리 사이의 바다는 몰래 건너기도 쉽고, 뭔가를 버리기도 쉽다.
영도의 학교는 부산과 달리.
그곳의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오자마자 싸움을 많이 하고 지냈다.
가난한 아이들의 영도 전체의 90%를 차지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원래 조직 폭력배와 배를 타는 선원의 아들이 많다 보니.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라는 아이들.
홀아버지 아래에서 자라는 아이들.
심지어 부모가 다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 아이들이 부산에서 가장 많았다.
흔히들 부르는.
“꼴통”들이 모여 사는 그런 곳.
영도 중학교는 그런 중학생들이 모여있다.
공부를 잘하면 좋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하여 중3 때 부산 본토로 이사를 가버리기 때문에.
영도 중학교 3학년들은.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시대를 살게 된다.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 자체가.
‘조직 폭력배’가 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고.
‘양아치’의 길을 걷는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는 그런 곳이었다.
적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
‘영도’라는 곳은 부산에서는 그런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
중학교 뒤쪽 쓰레기 소각장.
세 명의 아이들이 한 명을 둘러싸고 괴롭히고 있다.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는 이미 흠씬 두들겨 맞아서인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올림픽 우표. 갖고 있다메?”
“가지고 있어.”
“내한테 바치라. 그 우표 세트.”
“서울에서 온 아버지가 사준 거야. 못 줘.”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는 기를 쓰고 소리친다.
“하. 이 서울 새끼 봐라?”
세 명 중 몸집이 좀 큰 녀석.
머리를 완전히 밀어버린 상태.
당시 부산의 학생들 사이에선 그런 머리를 ‘백구(백구)’라고 불렀다.
“야. 빽꾸. 그만해라. 점마 저라다 뒤지겠다.”
세 명 중 한 명이 그 빡빡머리를 한 녀석을 말리고 나선다.
“뭐꼬? 니 지금 점마 팬들고 내한테 개기나?”
“아이다. 그거는 아이다...”
빠악.
빽구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몸집 큰 녀석이 말리는 친구를 때렸다.
“크윽.”
배에 한 대 맞은 친구는 뒤로 물러섰다.
손을 앞으로 내밀고 흔들었다.
“아이다. 미안하다. 내가 잘 못 했다.”
사과를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의 빽꾸.
빽꾸는 다시 주먹을 들었다.
빠악-
방해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친구는 다시 한번 배에 주먹을 맞았다.
“크으윽.”
“개눈까리! 내한테 토 달지 마라. 이 X새끼야.”
“미안하다. 내가 잘 몬 했다.”
빽꾸에게 괜히 맞은 개눈까리는 아주 어릴 때.
마약에 취한 아버지에게 맞아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그러다 보니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아서.
한쪽 눈을 계속 사용하지 못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눈은 다른 눈과 다른 초점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 같으면 수술로 금방 고칠 수 있었겠지만.
당시는 돈도 없었고, 기술도 없었던 시대라 많은 불쌍한 집 아이들이 눈이 엉망이었다.
그걸 또 친구들은 놀리곤 했다.
“개눈까리! 저기 소각장에 쓰레기 좀 태우자.”
빽꾸는 개눈까리를 노려보며 흐흐하고 웃었다.
“어이. 옥수수! 너거 둘이서 불 좀 붙이라.”
“불을 붙이라고?”
놀란 또 하나의 친구가 다시 물어본다.
빽꾸는 또 화가 났다.
“옥수수 이 새끼 남아있는 강냉이 다 털어주까?”
중학교 들어올 때 쇠파이프로 얼굴을 맞아서.
앞니가 3개 부서진 또 하나의 학생.
그날부터 앞니가 부서진 상태로 다니다 보니, ‘옥수수’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미 작년에 졸업해서 서면에서 양아치로 지내는 ‘강냉이‘라는 선배가 이미 있기에 헛갈리지 않기 위해 선배들이 ’옥수수‘로 부르고 있던 것이다.
별명도 그 나름대로 선후배가 있다.
“아이다. 알았다. 불붙일게.”
빽구의 명령에 옥수수와 개눈까리는 작은 창고처럼 생긴 쓰레기 소각장에 쓰레기들을 모아서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태우는 소각장이 있었다.
반에서 제일 잘 싸우는 학생들이 그곳을 관리한다.
가끔 종이 쓰레기 중에 ’선데이 서울‘이나 야한 사진 같은 게 발견되기 때문에 이곳은 양아치들의 집합장소가 된 것이다.
숨기도 편하고.
무엇보다 가장 좋은 이유는.
어차피 불을 쓰는 곳이기에 담배를 피우기 좋다는 것이다.
불냄새 때문에 담배 냄새가 옷에서 사라져버린다.
더 센 불 냄새가 담배 냄새를 삼켜버리기 때문이다.
“야이. 새끼야. 니 서울에서 전학 와서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빽꾸는 바닥에 쓰러진 친구의 머리를 잡았다.
영도의 애들에 비해서 하얗게 잘생긴 얼굴.다른 애들보다 조금 긴 머리.
“이 XX새끼가 지금 내 째려보나?”
“너 내 이름도 모르지?”
“뭐라꼬? 이 또라이 새끼가.”
바닥에 누워있던 학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빽꾸보다 더 큰 키.
얼굴을 몇 대 맞아서 붉게 멍이 들어있지만.
어디서 피가 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내 이름은 고지안. 5일 전에 전학 왔을 때 이름을 말해줬잖아.”
고지안은 빽꾸에게 다가왔다.
빽꾸는 순간 뒤로 물러섰다.
“너거 할매가 무당이라매?”
“응, 무당이야.”
“그래서 그런가? 눈깔이 뒤집히니까 좀 무섭네.”
고지안은 지금까지와 달리 빙긋 웃었다.
“응. 나 좀 무서운 놈인데.”
“이 XX새끼. 지금까지 일부러 내를 놀린기가?”
고지안은 빽꾸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면서 대답한다.
“아니. 그냥 몇 대 맞고 봐주려고 했거든. 너 존나 약해 보여서. 불쌍해서···. 머리도 대머리고 그래서 말이야.”
“이 시X새끼가!”
화가 난 빽꾸는 다시 고지안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빠악-
고지안의 얼굴에 주먹이 작렬!
처음으로 고지안의 코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고지안은 아까와 달리 쓰러지거나 하지 않았다.
서울 스타일의 하얀 얼굴이라 붉은 피가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왠지 모를 대비를 이루었다.
*****
화악-
바깥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쓰레기 소각장 안의 아이들은 드디어 불을 내는 것에 성공했다.
“어. 됐다. 불났다!”
“이라믄 되겠네.”
불이 붙은 소각장의 쓰레기 더미에서는 비닐이 타는 매캐한 검은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과 후 쓰레기 소각장에선 당연히 나는 냄새이기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둘은 담배를 하나 꺼내서 나눠 피우기로 했다.
“빽꾸는 지금 신경 안 쓰니까. 우리끼리 한 대 나눠서 피우자.”
“그라까?”
둘은 쓰레기 소각장에 붙은 불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
“우표는 못 주니까. 포기해.”
고지안은 나오는 코피를 오른손으로 쓱 하고 닦았다.
검붉은 피가 오른손에 묻어 나온다.
“아. 시X새끼. 함 뒤지볼래?”
고지안의 피를 본 빽꾸는 흥분했다.
발을 들어 고지안의 배를 노리고 찼다.
턱-
이번엔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고지안은 빽꾸의 발차기를 피하지 않고 두 손으로 잡았다.
“우표는 못 준다고 했잖아.”
그는 빽꾸의 발을 잡았던 손을 움직여서 발목을 잡았다.
“어어···. 어···. 이 새끼가!”
빽꾸는 남은 발로 깡충깡충 뛰면서 잡힌 발을 풀려고 하지만 풀리지 않는다.
“너 왜 내가 부산까지 전학 왔는지 모르는구나.”
고지안은 싱긋 웃었다.
그러면서 두 손에 힘을 주었다.
두두둑-
잡혀있던 빽꾸의 발목에서는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으아아아악!”
빽꾸는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타닥거리며 불붙기 시작한 소각장의 소리에 묻혀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다.
빽꾸의 돌아간 발목은 여전히 고지안의 손에 잡혀있다.
“내 피를 봤으니 피 값을 받아야겠다. 이 대머리 새끼야.”
고지안은 다시 빙긋 웃더니.
있는 힘을 다해 반대로 발목을 돌렸다.
아까보다 소리는 작았지만.
이미 인대까지 끊어져 버린 발목이 반대로 돌아가는 것은 처음 돌아갈 때보다 더 괴로운 고통이었다.
“으아아악!”
그제야 고지안은 그 발목을 놓아준다.
빽꾸는 한발로 깡총 거리며 고지안에게 소리쳤다.
“니는 지기뿐다!”
죽이겠다는 그의 외침과 달리.
이후 얼굴에 제대로 박힌 오른쪽 스트레이트.
뻑-
고지안은 앞으로 몸을 빠르게 움직이면서.
왼발 끝으로 지면을 고정하며 오른팔을 쭉 뻗어서 정확하게 빽꾸의 왼쪽 안면을 주먹으로 찔렀다.
너무 순식간에 날아온 주먹인 데다가.
빽꾸는 이제 기동성이 없었다.
빽꾸의 머릿속에서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끄윽.”
막상 정신없는 고통은 큰 소리를 내지 못했다.
고지안의 오른발이 왼발 옆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다시 오른발이 땅에 고정된다.
발끝으로 살짝 몸을 비튼다.
왼쪽 주먹이 빠르게 날아온다.
빠각-
빽꾸의 오른쪽 턱에 왼쪽 주먹이 훅으로 꽂혔다.
마치 거대한 해머를 휘두르는 모습으로 정확하게 빽꾸의 오른쪽 턱을 박살 냈다.
딩-
빽꾸의 머리에선 종소리가 울린다.
고지안은 복도로 통하는 창문을 열었다.
창문을 통해 넘어가서 복도를 지나 화장실로 갔다.
물을 틀어 얼굴을 씻으며 코를 몇 번 풀었다.
기침할 때 나오는 가래 같은 핏덩어리가 몇 번 나오더니 이내 묽은 피가 코에서 잠시 흘렀다.
푸후-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고 잠시 코의 위쪽을 눌러 지혈했다.
거울을 보면서 그는 속삭인다.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네. 다 잡아 죽이는 길로 가야 하는구나.”
피식.
그는 거울을 보며 잔인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부산 녀석들은 생각보단 강단 있네. 저리 맞고도 울고불고 안 하는 거 보니.”
그는 하얀 운동화에 묻은 흙먼지를 털고 집으로 돌아갔다.
**********
쓰레기 소각장에서 뛰어나온 그 두 시다바리들은 빽꾸와 지안이가 있던 자리로 뛰어왔다.
“빽꾸야! 우리 붙 붙있다 아이가!”
“바바라. 억수로 잘 붙었다.”
신나게 소리치며 빽꾸를 찾던 그들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빽꾸는 소각장 뒤 쪽 그늘 아래.
완전히 기절해있었다.
두 손을 옆으로 벌린 채.
완벽하게 대(大)자로 뻗어있었다.
“점마. 저거 죽은거 아이가?”
“근데 저 발목은 왜 거꾸로 돌아가있노?”
빽꾸의 발목이 둘다 같은 방향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으아. 시X. 이거 뭔일이고!”
“교무실가서 말하자.”
“일단 화장실가서 입 좀 헹구고 가자. 담배 핀 거 들키면 안된다 아이가.”
둘은 화장실로 뛰어갔다.
기절한 빽구는 세상 없이 편안한 얼굴이었다.
발목이 돌아가고.
턱이 돌아가서 말을 못하는거 빼고는.
댓글과 추천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추천이 많아야 글이 잘 써져요..
- 작가의말
시간 날때마다 좀 쓰려구요.
이거 쓰고 싶었던 건데.
그 때는 정리가 안되어서...
그럼 틈날때마다 올릴테니.
보고 싶으신 분들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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