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안 나이트 #17-엉킨 실타래
자살하려던 남자. 그는 새로운 길을 걷게된다.
"바인! 멈춰. 아무 생각하지마! 제발!"
돌아온 고도리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앙그라 마이뉴에게 넘어가기 직전의 이란 대통령을 멈춰 세운 것이다.
"바···. 바인이라고? 죽은 거로 알고 있었는데···. 설마 당신이 바인 형이었던 거야?"
팔라비는 깜짝 놀라 아픈 발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이···. 어떻게 어릴 때 내 이름···. 아니 죽어버린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이란의 대통령은 고도리를 쳐다보며 놀란 표정이다.
"저 악마 녀석에게 마음을 넘기면 안 돼. 바인!"
이란의 대통령이자 어릴 적 이름이 바인인 남자.
그는 앙그라 마이뉴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팔라비 녀석이 우리를 버리고 간 후 내려앉은 건물 속에서 죽기 직전, 날 살려준 것이 저 앙그라 마이뉴였다. 깨어보니 난 조로아스터교의 어둠의 성전에 있었지. 아무도 없는 그 어둠의 성전의 주인이 날 살려준 것이다."
"아냐. 난 바인 형과 친구들을 살리고 싶었어···."
팔라비는 주먹을 꽉 쥐고 소리쳤다.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 순간 난 결심했어. 날 따르던 아이들이 무너지는 건물 속에서 죽어갈 때 너희 팔라비 왕조를 내 손으로 처단하겠다고···. 그리고 이렇게 약해빠진 이란을 만들어 미국에 이런 치욕을 당하는 것을 내 손으로 끊어내겠다고 말이야."
바인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지가 그에서 떨어진다···.
"그리고 우리 이란의 민중에게 첫 번째 적은 미국이나 외부의 적이 아니야. 바로 썩어빠진 너희 팔라비 왕조라고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팔라비. 나 너희 왕조를 모조리 잘라버리겠다. 아주 작은 싹까지. 다시는 이렇게 뒤에 숨어서 이란을 망가뜨리지 않게···."
앙구라 마이뉴가 그의 뒤에 늠름하게 웃음 짓고 있다.
"바..바인 형. 그...그런 생각을..."
"너희 왕조를 지켜주던 귀신은 이미 앙그라 마이뉴가 먹어버렸지. 네 녀석이 병에 걸려 약해진 틈을 타서···. 그것까지는 그 할망구가 막지 못했다. 막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 할망구가 당했지. 겨우 너 하나 살리고 그 할망구는 아마 지금은 겨우겨우 살아남은 상태일 것이다."
"우리 할머니를 괴롭힌 것도 네 녀석이었군!"
연희가 두 눈을 치켜뜨고 소리쳤다.
"그렇군. 그 할망구의 손녀. 그 손녀가 네년이구나. 웃기는 일이네. 큰 손님을 받는다는 전설이 있더니 아직 못 받은 건가? 아니면 저놈에게 그 역할을 넘겨준 건가? 하긴 여자 따위가 어떻게 큰 손님을 받아들이겠어···."
바인은 나와 연희를 번갈아 보며 조롱했다.
"할머니는 지금도 괴로워하고 계셔. 그때 너에게 당했던 것이 회복되지 않아서."
"그건 그 할망구의 잘못이지. 왜 여기까지 와서 역병을 막아내느라, 저 병신 같은 팔라비 녀석을 살려내느라 우리 앙그라 마이뉴에게 덤벼들었던 거냐. 그게 잘못이지···.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일이 꼬이고 꼬여서 이곳에 모였다.
다행이다.
뭔가 꼬인 실타래가 한군데 모여있으면.
정확히 잘라내면 된다.
"알았어. 이건 말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네. 어차피 바인은 팔라비 왕조를 결딴내야 하는 사명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고, 팔라비는 이란의 대통령을 몰아내고 스스로 다시 페르시아를 재건하는 게 목표이고···. 사울은 그 팔라비를 돕겠다는 거잖아. 연희량 우리는 제외하더라도···."
"제외하지 마시죠. 저 악마 새끼 우리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그건 빼자. 어찌 되었건 끼어든 건 우리 쪽이었으니···."
"그래도···. 고도리 선생님!"
연희는 눈물이라도 흘릴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아. 그렇게 쳐다보지 마.
우리까지 끼어들면 여기 너무 복잡하다···. 연희야.
****
"앙그라 마이뉴! 당신에게 나를 바친다."
"받아들이마."
잠시의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을 앙그라 마이뉴에게 바쳐버렸다.
"휴우. 이렇게 되는구나. 결국은."
"고···. 고도리 선생님···."
연희가 멍하게 나를 불렀다.
"연희야. 어쩔 수 없어. 각자의 사정이란 게 있잖아. 여기까지 온 이상 둘 중 하나의 문제야. 우린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정했잖아. 그럼 이제부터는 최선을 다해서 그편을 들어주자고. 지금부터는 망설이지 않을 거야."
난 앙그라 마이뉴에게 다가섰다.
이미 앙그라 마이뉴와 바인은 완전하게 합쳐져서 바인의 모습으로 서 있다.
"바..바인형. 난···. 그럴 마음이 아닌데···."
"징징대지 마. 팔라비. "
짝!
사울이 팔라비의 뺨을 때렸다.
팔라비는 사울에게 뺨을 맞고 비틀거리다 쓰러졌다.
"징징대지 마. 이 정도···. 아니 이 이상의 일을 생각했어야지. 그냥 언제까지 그렇게 팔라비 왕조의 적통이라는 것만으로 혼자 짐을 다 껴안은 듯이 살아갈 거야."
사울은 팔라비를 노려보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따뜻하다.
"혼자 다 짊어진 척하지 마. 지금은 고도리 선생에게 맡겨. 이후에도 혼자 모든 것을 할 필요 없어. 이후에는 나에게 맡겨. 넌 그냥 팔라비 왕조의 적통으로 새로운 페르시아를 이끄는 남자의 역할로 충분해. 그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하기엔 넌 부족하니까. 더 노력해야 할 거야. 다 하려고 하지 마. 절대로."
사울은 폭발하듯이 그에게 퍼부었다.
"팔라비! 무언가 필요할 때는 그것을 얻기 위해 자신을 버려야 할 때가 있어. 그것이 정치인···. 아니 누군가를 이끄는 리더의 자세야. 그렇지 않으면 넌 또 다른 악마가 될 거야. 그렇게 되진 않아야지."
사울은 손을 내밀었다.
팔라비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서로 힘을 주며 팔라비를 일으켰다.
"알았어. 사울. 징징대지 않을게. 이 정도로 징징대선 이 험한 세상에서 이란을 일으킬 수 없겠지?"
사울은 팔라비를 보며 웃었다.
다시 원래의 그의 얼굴이 되었다.
"그래···. 아플 때는 누군가에게 기대기도 하고, 건강할 때는 누군가를 도우려고 손을 내밀 줄도 아는 그런 왕이 되어야지. 팔라비."
난 그들을 바라봤다.
그래 이 정도면 된 것 같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난 저들을 지키면서 앙그라 마이뉴를 잡아야 한다···.
바인.
당신이 선택한 것이 앙그라 마이뉴와 함께 악마가 되어 시대를 지배하고 싶다면.
난 그것을 막아낼 거야.
위···. 잉.
귀신의 결계가 만들어졌다.
푸른색의 결계.
에메랄드처럼 아름다운 결계가 만들어졌다.
"뭐···. 뭐야. 인간이 결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거냐?"
그 결계는 지금까지 다른 귀신들이 만들어낸 그것보다 아름답다.
푸른 빛이 감도는 결계.
"아···. 아름다워. 이것이 큰 손님이 결계?"
연희는 결게를 둘러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후유. 앙그라 마이뉴. 네가 얼마나 오랫동안 조로아스터교의 악마로 살아왔는지 모르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제부터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될 거야. 시작할까?"
귀신의 결계.
그것인 인간의 세계와 별개의 공간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고도리 선생이 만든 적은 없다.
자신의 결계 속에서 얼마나 더 강해질지도 경험해본 적이 없다.
다른 귀신의 결계 속에서도 그는 두려움을 느낀 적은 없다.
하지만 앙그라 마이뉴조차 두려움을 느끼는 거로 봐서.
귀신의 결계는 만든 쪽에 유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될지 안 될지 몰라도.
그냥 지금까지 고도리 선생은 자신이 머릿속에 그린 그림이 안 된 적은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이왕에 작살 내야 한다면 앙그라 마이뉴가 만든 결계 속에서 더 내가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내가 그렸던 결계의 이미지와 거의 비슷하게 만들어졌다.
"역시···. 내 몸속에 있었군. 당신은···. 처음 그 순간부터···."
씨익.
고도리 선생은 자신의 가슴을 한 번 치면서 이야기했다.
물론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앙그라 마이뉴도 아차 싶었다.
한발 늦어버렸다.
바인은 뒤로 약간 물러섰다.
본능적으로 물러선 것이다.
"그렇군. 먼저 결계를 만들면 겹쳐질 수 없는 거구나. 그래서 그 전에 적들이 먼저 결계를 만든 거군. 자신들이 유리한 조건을 먼저 만들기 위해서···."
고도리 선생은 팔라비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곁에 있는 경주의 보검이 든 상자를 열었다.
반짝이는 경주의 보검.
이전과 달리 유난히 반짝이는 빛을 내고 있었다.
고도리 선생은 그 보검을 오른손에 쥐었다.
보검은 밝은 빛을 냈다가 그 빛이 모이면서 보검의 푸른색 불꽃을 만들었다.
"전·전설의 보검이 빛을 내고 있어. 진짜 전설이 사실···. 이었어."
팔라비는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사울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지켜보자. 팔라비. 그 전설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말이야."
팔라비도 사울의 손을 꼭 잡았다.
"앙그라 마이뉴. 페르시아의 전설과 너희 조로아스터 교의 전설을 오늘 이루어 줄게. 미안하지만 여기서 넌 끝이야."
고도리 선생은 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바인은 입술을 꽉 깨물고 주먹을 쥐었다.
"... 이 새끼. 이미 다 알고 있었군."
댓글과 추천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추천이 많아야 글이 잘 써져요..
- 작가의말
오랜 시간의 오해.
그런건 풀리지 않아요.
그냥 이겨서 뭉개야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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