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귀신의 결합에 대한 보고서
자살하려던 남자. 그는 새로운 길을 걷게된다.
헬기가 멀리 날아간다.
담배를 입에 문 연희와 고도리 선생은 멍하니 헬기를 바라본다.
"와. 냉정하게 날아가 버리네."
"우리를 위한 거잖아. 알면서 왜 투덜대냐?"
"뭐. 알긴 하지만 그래도 좀 기분이 그래요."
"김준철 씨는 공무원이니까. 우릴 빼준 것만 해도 고마운 거지. 안 그럼 우리 여기서 철창에 갇혀서 며칠을 보내야 했을 거야."
후우.
담배 연기는 확 하고 뿌려진다.
뒤로 돌아보니 저기 날아가서 자빠져 있는 트럭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황당한 표정의 아저씨가 보인다.
"저기. 연희야. 일단 우리도 여기서 벗어나자."
"아. 왜요?"
"저기 봐. 저 아저씨가 경찰에 신고하면 우리 여기 있다가 덮어쓰는 거야."
"덮어쓰다뇨. 아저씨가 저렇게 만든···."
연희가 이야기하는 동안 난 연희의 손을 잡고 거기서 빠져나왔다.
부드럽네. 연희의 손.
"내 차!! 내 차가 왜 박살 나 있는 거야? 비 안 맞으려고 방수포까지 씌워두었는데? 으악! 이건 뭐야···. 왜 피가 막 묻어 있어!! 으아!!!"
트럭 쪽을 살펴보던 아저씨의 고함이 들려온다.
"미안.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지우펀 쪽으로 돌아왔다.
붉은빛은 여기저기 꺼지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관광지라고 해도 어느새 시간이 12시가 되어 가면서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바다 참 예쁘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지우펀의 바다는 너무 아름답다.
"꼭 우리를 막았어야 했는가···."
꿈에서 봤던 바다 위를 날아가던 용이 나에게 말했던 기억이 다시 났다.
마치 진짜 지금 내 귀에다 대고 말하는 기분이다.
"미안한데···. 내가 막은 게 아니야. 큰 손님이 막길 원했던 거니까."
****
타이치의 귓속에 불꽃을 넣을 때.
100%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건 아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속삭였다.
"귀속이 약점이야. 그리고 뇌랑 가까운 곳이니 지금 집어넣어."
그 순간 시간이 멈추면서 나에게 귓속에 불꽃을 넣을 시간이 생긴 것이다.
아무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자살할 때 시간이 멈춘 것처럼···.
이무기에게서 물 냄새가 내 코에 닿는 그 순간.
이무기의 얼굴이 내 얼굴 앞에 온 그 순간.
시간이 멈췄던 거니까.
나만이 그 멈춰진 시간 속에 있었다.
그것은 내가 멈춘 게 아니었다.
큰 손님의 능력이 직접 발동한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결계도 아니었다.
그냥 이무기가 만든 결계 속에서.
다른 귀신이 만든 결계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동시켰다.
난 잘 모르지만.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멈춘 시간 안에서,
난 그 귀속으로 내 불꽃들을 편안하게 집어넣을 수 있었다.
나 혼자 등골이 오싹했다.
그 이후 시간은 원래 시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빨리 흘러갔다.
물론 그것도 나만 느낀 것이다.
모두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단지 3초 정도의 시간 멈춤이지만.
그 3초는 이렇게나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사실 어쩌면.
이무기의 최대 힘을 발동한 순간.
내가 당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한 방은 나에게 아주 강렬했으니까.
지금까지의 느낌보다 더욱 강렬했다.
나에게 피가 나게 만든 공격이었다.
근데 지금의 나에게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이 상황에서도 나는 아프지 않다는 점이다.
아프지 않은 것은 이상한 것이다.
분명 정확히 한 방 맞았다.
그리고 피까지 터졌다.
지금까지 난 "달걀 동자"에게 고마워했다.
내 몸이 아프고 괴로워도 어느 순간 낫게 된다.
이전까지는 달걀 동자의 능력이 나에게 어느 정도 붙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무기와 타이치가 합쳐진 귀신과 싸우는 동안.
난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나도 그들처럼 내 몸 어딘가 깊숙이 큰 손님이 들어와 있는 건 아닐까.
그렇기에 아무도 큰 손님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미 그 계약 자체가 우리 둘을 합쳐버리는 계약이 아니었을까.
심지어 할머니나 연희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큰 손님이 내 속에 어딘가 세포처럼 붙어 있는 건 아닐까···.
"아저씨.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해요? 여기 불 다 꺼졌어요."
"아! 응? 우리 어떻게 하지?"
"뭘 어떻게 해요. 여기서 택시 타고 호텔로 가야죠."
이 여자 멍청한 건가?
아니면 알고 있지만, 그냥 갈려고 결심한 건가?
아까 헬기를 타고 온 시간을 대충 계산해봐도.
한국으로 보자면 우리 호텔은 서울이고, 여기는 대전 정도 되는 거 같은데?
****
역시 난 가난한 한국 남자 같은 생각을 했던 거다.
그냥 돈 내고 택시 타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택시는 즐거운 음악을 흩뿌리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생각보다 멀진 않구나. 택시 타고 한 시간 20분 정도 걸리네."
"그렇죠···. 이 시간이면 좀 더 빠를 거니까."
택시 기사님은 손으로 오케이 표시를 하신다···.
"걱정하지 마세요. 한국에서 오신 분들! 1시간 정도면 송산역 갈 수 있어요."
기사는 대만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운전에 집중했다.
거참 흥 많은 기사님이시네.
"대만분치고는 참 흥이 넘치시는구나."
"그러게요. 대만 사람들 좀 어두워 보였는데."
"사람마다 다르고 지역마다 다르지."
당연히 4~5만 원 정도 택시비를 벌 생각에 그는 기뻐하는 것 같았다.
택시비를 5만 원이나 내다니.
술이 떡이 된 순간이 아니면 남자는 절대 선택하지 못한다.
"인간이 귀신을 모시게 되면 보통 무당이 되는 거잖아."
"네. 그렇죠. 일반적인 무당들은 그렇죠. 물론 귀신을 모시지 않고 사주팔자 공부하고 관상 보면서 무당으로 사시는 분도 있어요."
연희도 내가 오랜만에 질문을 해서인지 신나 보였다.
요즘 계속 나에게 끌려다니는 느낌이었을 텐데···.
"근데 그냥 인간이 귀신을 따르는 예도 있지 않나? 예를 들어 살인귀 사건 때처럼. 내가 볼 때는 그 나쁜 새끼는 살인귀를 모신 건 아닌 거 같아."
"음. 그런 경우도 있어요. 어쩌면 나랑 고도리 선생도 큰 손님을 따르고 있는 거죠. 우린 아직 신내림이 없었으니. 그런데도 귀신의 힘에 따라가고 있잖아요."
연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야기했다.
그녀는 그렇게 정리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걸 테니.
"왜 이런 걸 물어봐요?"
"응. 내 머릿속에서 뭔가 관계를 좀 정리하고 싶어. 어차피 가는 동안 심심하니 오랜만에 대화도 좀 하고···."
"이런 대화 말고는 저랑 할 이야기도 없으시군. 이무기를 때려잡은 고도리 선생은."
연희는 입이 삐죽 나와 투덜댄다..
그래 넌 투덜대십시오. 전 물어볼 거 물어볼게요.
"그럼 인간이 귀신을 따를 수도 있잖아. 지난번 개 쥐새끼가 말한 적 있는 큰 손님을 따랐다가 그의 기에 휩쓸려 버렸던 그 사람처럼."
"그럴 수도 있겠죠···. 음. 그러네요. 어쩌면 엔젤라가 그런 경우일 수 있겠다. 이무기를 따라다닌 거니까."
오. 그렇군.
엔젤라가 그런 타잎이라고 볼 수 있구나.
"역시 젊은 여자라 그런지 머리가 잘 돌아가네."
"역시 늙은 아저씨라 그런지 슬슬 잘 정보를 뜯어가시네요."
"생각 충이잖아. 내가."
"그렇더라고요. 아저씨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과도 적절히 손해 보지 않고 내는 편이지."
연희는 내 어깨를 손으로 툭 쳤다.
그리고 나를 보고 싱긋 웃으며 이야기했다.
"어휴. 음흉해 보이는 아저씨야. 아니 음흉한 아저씨지. 이 여자 저 여자에 신경 쓰고 심지어 중국에선···. 밤에···. 술을 먹은 젊은 여자랑···."
"그만해. 그 이야기는···."
"요즘 연락하세요? 심우랑?"
"아니. 연락 안 하는데?"
"심우가 아저씨 되게 보고 싶어 하던데···. 한 번 놀러 오라고 난리길래. 안 간다고 했어요. 아저씨가 한국 과부 하나 만나고 있다고···."
"아···. 한국 과부를 만나고 있구나. 내가."
"네. 이미 심우는 그렇게 알고 있어요. 애 둘 딸린 여자랑 만난다고."
"그만···. 그만해. 연희야."
난 머리를 감싸고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하하. 진짜 이런 아저씨한테 왜 다들 픽픽 당하는 걸까요?"
"나한테 당한 게 아니지. 큰 손님에게 당한 거지."
"진짜? 그렇게 생각하세요? 전 좀 다른 거 같은데···."
그만.
더 깊이 나에게 물어보기 전에 난 얼른 말을 돌렸다.
"대충 그런 인간은 우리 식으로 부하라도 부르면 되겠네."
"부하? 킥킥킥. 좀 웃기네요. 부하라니 완전히 잊어버린 단어네."
"그럼 뭐라고 부를까?"
연희는 다시 골똘히 생각한다.
다행이다. 말 돌리기 성공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고도리였다.
"음. 똘마니? 똘마니 어때요? 부하보다는 좀 더 좋은 그거 같다."
똘마니라.
그래 부하보다 입에 잘 붙는다는 건 인정.
"그래. 똘마니들도 이 세상에 여기저기 숨어서 악귀들에게 정보를 주거나, 대신 일을 해주고 있겠지?"
"엔젤라가 그랬잖아요.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서 그를 용으로 만들려고 했잖아요."
"아버지니까. 그녀와 그 아내를 위해서 자신을 이무기에 바쳤던 타이치니까. 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럼 그 이무기가 먹은 첫 번째 인간이 자신을 신으로 모시던 무당 타이치였다는 거네요."
"먹었다기보다 처음으로 생명력을 채웠겠지. 서로의 계약을 수정하면서 한 몸이 되어버린 거 같아. 이무기가 그 기반이 되면서 말이야."
택시는 이제 도시로 접어들었다.
기나긴 고속도로를 넘어서면서.
"그럼 난 엔젤라가 될까요? 아니면 무당이 될까요?"
"똘마니가 되느냐, 무당이 되느냐의 이야기를 물어보는 건가?"
연희는 약간 우울해지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녀를 보고 웃어주었다.
"후후. 연희야. 그 질문은 다르게 해야지. 너는 큰 손님을 맞이하고 싶은 거니? 아니면 큰 손님을 그냥 따르고 싶은 거니?"
연희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
그리고 창문을 열었다.
따뜻하면서도 습기가 가득한 대만의 바람이 택시로 밀려들어 왔다.
연희의 예쁜 머릿결이 바람에 날렸다.
"글쎄요. 난 대체 뭐가 되고 싶은 걸까요? 지금은?"
이것이 진정 TMI다!
댓글과 추천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추천이 많아야 글이 잘 써져요..
- 작가의말
인간이 귀신을 모시면 무당 = 계약
귀신이 인간을 따르면 친구 = 계약X
인간이 귀신을 따르면 부하 = 계약X인간과 귀신이 합쳐지만 동체 = 계약 수정
뭐 이런 개념입니다.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