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문#06 불가사리 사냥기
자살하려던 남자. 그는 새로운 길을 걷게된다.
"아저씨. 같이 청소나 해요."
아침 일찍 부터 연희가 찾아왔다.
이 자식.
나 혼자 청소할 때는 한 번도 안 나오더니..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청소나 하자고 나오라니...
"알았어. 지금 나가."
하지만 그 녀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대지주의 딸처럼.
내가 청소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눈치 빠른 나로서는 주인집 손녀인 그 녀의 마음을 살핀다.
뭔가 화가 조금 나 있는 눈치다.
마당을 다 쓸고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문의 문고리를 닦고 있었다.
"뭘 그리 눈치를 살살 보시나요? 뭔가 속이는게 있나요?"
"뭘 속인다고 그래."
"그런거 같은데...눈치 살살 보시는거보니."
주인집 손녀는 계속 날 노려본다.
문고리를 깨끗히 닦고 마지막으로 문 앞을 쓸었다.
끝났다.
청소 완료.
"할머니가 이거 주래요."
연희는 나에게 하얀 봉투를 주었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급여다.
"500만원이 넘는거 같던데..."
"그러네. 요즘 통 돈을 안 주시더니...역시 통큰 할머니셔."
난 기분좋게 돈을 받아 챙겼다.
"그럼 출발하시죠. 거북이 잡으러."
연희가 나를 노려보며 이야기했다.
"응? 거..거북이라니?"
"뭐 들리는 소문에 수정산 기슭에 엄청 귀여운 거북이가 나왔다면서요?"
"아...거북이..."
"저랑 같이 잡으러 가시죠. 거북이."
"그..그럴까? 난 가재 잡는것도 좋아하는데.."
"무슨 개소리세요. 가재 잡는 건 고도리 님 혼자 하시구요."
(화가 나 있는) 연희와 나는 문 밖을 나섰다.
무슨 드래곤 볼 스카우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거북이가 어디 있는 줄 알고 이렇게 찾으러간단 말이지?
그것도 존나 빠른 거북이인데...
"짜잔. 제가 그래서 여기 거북이 모이를 준비했어요."
"역시 오랜만이네..내 마음을 읽어버리기는..."
"그래도 저 무당계의 대모.. 그 분의 손녀라니까요."
연희는 한 손 가득 쇠로 만들어진 못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산 쪽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근데 그 손에 든 건 지렁이인가?"
"아뇨. 우리 집에 있는 쇠 못을 잔뜩 긁어왔죠."
수정산을 올라가는 곳은 언제나 햇살이 예쁘게 비친다.
나뭇잎 사이로 흘러나와서 작은 개울을 흔든다.
개울은 졸졸졸 소리를 내며 여름으로 넘어감을 느끼게 해준다.
살랑 바람이 불어와서 청소하느라 흘린 땀을 씻겨준다.
"아니 거북이를 잡으러가자면서..못으로 박아서 거북이를 박제할라고?"
"아뇨. 아저씨가 발견한 그 거북이가..제 생각엔 불가사리 같아요."
연희는 흥얼거리면서 산을 올라간다.
난 멍하니 서서 그 녀의 뒷 모습을 바라본다.
반바지를 짧게 입고 있어서 예쁜 다리.
잘록한 허리 라인에 잘 걸친 반팔 티셔츠.
"역시 몸매는 정말 예쁘네."
난 혼자 중얼거렸다.
불가사리를 잡으러 가자는 연희의 말.
그리고 나에게 엄청난 방어망을 펼친 그 거북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뇌 회로가 작동한 것이다.
"아저씨. 내 뒷 모습 보고 얼평하지 마시고. 얼른 와요. 변태 같이 뒤에서 여자 다리나 보고 침흘리지 마시고."
"침 흘린 적없어."
"뒷 모습을 본 건 맞나보네요? 으이구."
"그건 인정할게. 이렇게 예쁜 다리를 안 볼 수가 없잖아."
"칭찬 그만하시고 얼른 올라와요."
연희의 다리는 정말 하얗고 너무 예뻤다.
잠시라도 뭔가를 잊기 딱 좋은 아름다움이다.
****
"자. 여기 저기 못을 좀 뿌려놓고... 초딩때 가져 놀던 쇳가루를 좀 뿌리면..."
연희는 못을 근처에 몇 개씩 두고, 그 사이에 검은 색 쇳가루를 뿌렸다.
그리고 나무 뒤에 우리는 숨었다.
"불가사리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그 모든 것의 중심은 쇠를 먹고 커진다는거죠."
"승려였던 신돈이 먹던 밥알을 뭉쳐서 만들었다고 하던데..."
"그런 설도 있죠. 어떻게 만들어졌던간에. 결국 그 녀석도 귀신의 일종이고 악귀는 아니지만 쇠를 먹고 커진다는 건 결국 쇠로 만들어진 귀신이라는거죠. 좀 묘한 귀신이에요. 보통 생물을 잡아먹거나 기를 빨아먹는데 쇠를 먹는 귀신은 독특하긴 해요."
연희는 조용히 숨어서 속삭였다.
"그리고 전기를 이용한 방어막을 펼치는 것 같아."
"아이고. 그거에 당하셨구나. 지난 밤에.. 그 엄청난 고도리 선생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면서요? 손도 시커멓게 타시고."
"비밀로 하자더니..."
"그럴리가 있나요. 새벽부터 전화해서 다 꼰질러 주신던데? 달걀 동자 아저씨가?"
뭐가 조폭의 2인자란 말야.
그 놈의 입방정.
"달걀 동자 아저씨가 고도리님이 걱정되시나봐요. 혼자 일처리하시다가 문제 생길까봐. 나에게 같이 나가달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할머니랑도 이야기 좀 해보니 불가사리인것 같아요."
"근데 전설 속의 불가사리가 왜 갑자기 이 수정산에 생긴거야?"
난 연희에게 물었다.
연희는 나를 반대로 바라본다.
"아니. 이 천하제일 똑똑이 아저씨가 뭔 그런 질문을?"
"아...혹시 그럼 지옥의 문이 열리는 과정에서 어딘가가 약해진 틈으로 빠져나온건가?"
"그렇죠. 불가사리는 이미 전설에 의하면 홍건적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왔을 때 그들을 물리치고 이성계와 고승에게 제압당해서 사라진 걸로 되어있죠. 그럼 어디로 갔겠어요?"
"중간계로 갔겠군. 제압당했다는 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는거잖아."
"그가 먹은 모든 쇠붙이를 토해내고 사라졌어요."
"그럼 원래의 작은 모습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네."
"그 쇠붙이가 집 하나 만큼이나 거대했다고 하네요."
"그거야 뭐 그 당시의 기록이니 신뢰하긴 힘들겠지만 암튼 먹었던 쇠붙이를 다 토하고 죽었다는 거잖아. 중간계로 이 세계의 물건을 가지고 돌아갈 순 없나보네."
"뭐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다들 그냥 검은 재로 부서져 사라지는 것만 봤으니 알 수가 없을거같아요."
연희가 갸우뚱하면서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응. 나도 그런 모습만 봐서...알 수 가 없을 것 같네."
나는 곰곰히 생각해봤다.
"뭐 어찌 되었건 이 녀석을 일단 잡아보자는거지?"
연희는 웃으면서 손가락을 원 모양으로 만들었다.
"빙고. 그렇다는 이야기죠."
"만약 불가사리라면...그냥 두면 현 시대에서는 난리 나겠군. 그 당시의 쇠와 현재의 쇠는 차원이 다른 양일테니..."
"아직 근처에 있을겁니다. 제대로 된 쇠를 못 먹었을테니.."
그렇다.
당시의 검은 거북이. 아니 불가사리는 아주 작은 모습이었다.
스슥.
생각하는 사이 작은 풀 숲이 흔들린다.
아주 미세하지만.
바람이 아니다.
작은 생물이 움직이는 현상이다.
진짜 그 녀석이 나타났다.
쇠의 냄새를 맡고 나타났다!
****
여전히 작은 거북이의 모습.
다행히 산에 떨어져서 인지 쇠붙이를 못 먹은 모양이다.
그리고 더군다나 나에게 강력한 방어막을 펼쳐서인지..
원래 봤던 모습보다 오히려 더 작아진 느낌이다.
청거북 새끼를 살 때 정도의 귀여운 크기.
낮에 보니 좀 귀여운 것 같기도 하다.
그때와 달리 존나 빠르지 않게 조심스레 다가온다.
바닥을 핥고 있다.
아마도 쇠가루를 빨아먹고 있나보다.
바닥에 얼굴을 박은채 조금씩 움직인다.
처음과 달리 경계심이 좀 풀리는 듯이 주변을 보지도 않고 머리를 쳐 박고 있다.
슬슬 걸어오더니 바닥에 있는 쇠못을 하나 덥썩 물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자세히 보니 입에 닿는 순간 쇠 못이 녹아내린다.
그리고 입에 쏙 집어 넣는다.
그냥 삼키는게 아니라 입에서 녹여서 내리는 것 같았다.
못이 크지 않아서 그 거북이가 커지는건 아니겠지만.
저런 식이라면 질량 보존의 법칙에 의하여 저 못 만큼의 질량은 저 거북이에게..아니 불가사리에게 축적될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먹는 만큼 살이 찐다는 이야기다.
"이 녀석. 옛 이야기에 나오 듯 쇠를 먹으면서 커지는 것 맞는 거 같네."
"그래도 저 정도 쇠 못 몇 개 먹어 봤자 거북이는 거북이겠죠."
"존나 빠르고 쎈 거북이겠지..."
하나의 쇠 못을 먹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코를 킁킁 거리더니 다시 쇳가루를 먹는다.
그리고 스스슥 하고 움직이더니 쇠 못을 하나 더 발견한 모양이다.
저 녀석.
지금 딱 잡기 좋은 타이밍인데?
불가사리.
그 검고 작은 거북이 녀석.
슬슬 내 앞으로 다가온다.
이미 그 녀석은 경계심을 풀었다.
쇠 못을 하나씩 먹느라 정신 없는 상태였다.
바로 내 발 앞의 쇠 못을 먹기 시작한 그 순간.
난 귀신의 결계를 만들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쇠를 먹는 불가사리. 전설은 알아서 검색해보세욧! ^^
댓글과 추천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추천이 많아야 글이 잘 써져요..
- 작가의말
거북이를 기를려면.
물을 담을 수있는 수조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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