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안 나이트 #09-퍼즐 조각
자살하려던 남자. 그는 새로운 길을 걷게된다.
"여기까지가 이란 쪽에서 이야기하는 쿠쉬나메와 신라의 이야기 간략 요약입니다."
보경은 이야기를 마치고 물을 한 잔 마셨다.
그리고 다시 파워포인트의 화면을 넘겼다.
거기에는 중국어로 된 책의 내용이 보였다.
약 2페이지에 걸쳐 적혀져 있다.
"그리고 이쯤이면 마음속 깊은 곳에 한 가지의 의문이 생길 거에요."
보경은 다시 고도리 선생 외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며 웃음 지었다.
그렇다. 나도 의문이 하나 생긴다···.
아마도 다들 생기는 의문일 것이다.
"그래 네 말은 다 알겠는데···. 그게 진짜라는 걸 어떻게 증명하지?"
보경은 책상을 다시 한번 탕하고 쳤다.
그렇다. 가장 궁금한 마음속의 의문.
쿠쉬나메의 이야기.
페르시아와 신라와의 관계.
그리고 신기한 이야기 속의 신라와 페르시아···. 아니 이란과의 관계.
그런 것들이 머리에는 들어오지만.
그렇다면 제삼자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냐는 점이다.
"좋아요. 그럼 좀 더 살펴볼까요? 그 의문을 다시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가설의 증명이 필요할 테니까."
가설의 증명.
그건 나의 삶의 방식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처용이 신라에 나타난 시기(879년)가 흥미롭습니다. 이 시기는 당나라 황소의 난(875~884)이 한창이던 때인 거죠. 특히 879년엔 황소가 이끄는 반란군이 최대 무역도시 광저우를 점령해 약탈과 살육을 벌였습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광저우에서 10만 명의 외국인이 살해됐는데 이곳에 집단 공동체를 형성한 아랍-페르시아계 무슬림들이 대거 희생됐다고 합니다. 그 역사 기록이 바로 지금 보고 있는 이 중국어로 적힌 기록입니다."
아까의 이야기와 맥락이 닿아있다.
"그렇다면 저 시기에 쿠쉬나메에서 말하는 페르시아 인이 신라로 넘어오는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되네요."
사울이 역시 똘똘이답게 질문을 던졌다.
질문이자 확인이라는 게 맞겠지.
"맞아요. 『쿠쉬나메』에서 페르시아 왕자 아비팀 일행이 신라로 피신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입니다."
팔라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렇군요. 그렇게 맞아떨어지는 역사적인 사실을 중국이 증명하네요."
"이란 아저씨는 일단 좀 앉아 주세요. 여기서 한 가지 더 신라의 역사와도 결이 맞아야 이 모든 것이 증명되겠죠?"
팔라비가 자리에 앉았다.
거만해 보이는 눈빛이 약간 젖어 있었다.
그들의 팔라비 왕조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들.
그리고 이란인들의 마음속에 있는 고전 설화.
역사적 사실과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것에 그는 뭔가 마음이 동한 것 같았다.
" 자 그럼. 이렇게 바라보도록 하죠. 『삼국유사』에서 “왕은 (처용에게) 예쁜 여성을 아내로 삼게 하고, 급간(級干) 관직도 주었다”고 하는데 급간은 신라에서 성골·진골 다음으로 높은 계급인 6두품만이 받을 수 있는 관직입니다."
보경은 이야기를 끝내면서 삼다수를 마셨다.
"처용이 그 이야기 속에 나오는 왕자라는 것이 맞는다면 이건 진짜 대단한 일이네. 삼국유사는 그래도 삼국지처럼 구전이긴 하지만 삼국사기와 유사 중 무엇이 옳은지를 보자면 오히려 유사 쪽이라는 역사학자들도 많잖아."
고도리 선생은 역시 아저씨답게 이야기했다.
연희와 팔라비는 그 말에 더 귀가 쫑긋해졌다.
"맞아요. 아저씨답게 역사를 좀 아시네요. 요즘 애들은 역사를 몰라요."
보경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가기 위해 특유의 안경 위로 올리기를 한 번 했다.
저 신호는 이제부터 더 재밌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거겠지.
"처용은 훗날 서라벌에 전염병을 퍼뜨린 ‘역신’ 처치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것은 아마도 당대 최고 수준이었던 중앙아시아의 의학 지식 덕분으로 보입니다. 이래저래 처용의 신분이 범상치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실제 왕실의 후예였던 건 아닐까 하는 것이 요즘 우리 신라 연구가들의 연구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처용가·처용무에 대해서 저들이 보고 싶어 했구나.
그 이야기 속의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하나 더 아랍의 다른 문헌들을 보면 ‘al-Silla’ 또는 ‘al-Sila’가 등장하는데, 이슬람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를 우리 한반도의 ‘신라’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게 정설이고요···. 한국외국어대 교수도 ‘al’은 관사이므로 Sila는 ‘신라’의 음역임이 명백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거죠."
팔라비와 사울은 인제야 그들이 여길 찾아오기를 잘했다는 확신했다.
그리고 고도리 선생은 이제 그것이 어떻게 [경주 보검]과 이어지는 지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 사진을 보세요. 이건 페르시아 왕조의 왕관입니다. 이 왕관은 40여 년 전에 아프간에서 발견되었죠."
사진을 보면서 연희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아니 이건 그냥 신라의 왕관이잖아요."
팔라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눈은 여전치 촉촉한 상태였다.
뭔가 그만이 가진 감정이 있겠지.
"아뇨. 우리 페르시아 왕조가 사용한 왕관입니다. 우리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분이 직접 가져오신 신라의 왕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알려진 저 사진은 가짜입니다. 이미 우리 팔라비 왕조가 저 왕관은 입수한 상태입니다. 우리 팔라비 왕조의 숨겨진 보물 중 하나이거든요."
사울도 놀라면서 팔라비에게 물었다.
"그 신···. 신라에서 오셨던 페르시아의 이야기 속 그 공주님이 직접 가져오신 왕관인데 이미 그걸 훔치고 가짜를 박물관에 넣어두었다는 거야?"
팔라비는 다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사울의 손을 잡고 이야기했다.
그의 손은 따뜻하고 떨리고 있었다.
"응, 사울. 우리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그분이 가져온 왕관이야."
그 이야기를 알고 다시 보면 누가 봐도 신라의 왕관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숨겨진 이야기를 알게 된 보경의 눈은 흥분으로 불타올랐다.
이제 더 증명하거나 다른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게 진실이건 아니건.
이란에서 믿고 있다면 그건 이미 그들에겐 진실이니까.
종교 같은 것이다.
실제 존재하냐 존재하지 않냐는 어느 정도의 가설과 증명이면 끝난다.
그것이 진실이냐 아니냐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언젠가 한 번 생각한 것처럼.
사실과 진실의 차이.
사실에 믿음이 들어가면 그들이 믿는 진실이 된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고도리 선생은 그 가설과 증명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믿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그들이 그 경주 보검을 왜 노리고 있을까.
그리고 팔라비의 뒤를 떠받치는 저승사자 같은 귀신은 왜 지금 보이지 않을까.
어느 순간 고도리 선생의 관심은 거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
광진 경찰서 악마 형사 도진우가 흡연 장소에서 담배를 물고 소리치고 있다.
그는 조금 황당한 표정이었다.
"뭐라고? 그걸 왜 나에게 알아봐 달라는 거야?"
전화기 속에서는 구수한 부산 사투리가 들려온다.
"아. 행님. 화부터 내지말고 내 말 좀 들어보소."
부산에서 실종된 게임 회사 사장을 찾다가 이제는 실종사건이 아닌 형사사건으로 변한 사건을 처리 중인 부산 경찰서의 형사였다.
"알았어. 말해봐. 네가 전화할 정도면 들어줄 맘은 있어."
"행님. 그라니까요. 여기 부산에 중소 게임업체 사장님이 있는데 보니까 완전 적자에 허덕이다가 회사 말아먹고 사무실에서 혼자 지냈나봐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이 자기 고향 마을 뒷 산에서 뛰어내린거같아요."
전화기 속의 목소리를 그리 흥분하고 있지는 않았다.
뭐 조사해보니 그렇다는 정도의 이야기겠지.
"근데 그 아저씨가 10m가 가까이 되는 절벽에서 살아난 거예요. 머리 좀 다치고···. 더군다나 약간 정신이 이상해져서 여기 미친 의사 하나를 때려잡았는데···."
"아. 거기 미친 그 변태 새끼 엑스레이 의사?"
"아 행님. 거기서도 그 사건을 압니까?"
"당연하지. 그 미친 변태 새끼 잡은 거 여기 동부지검 검찰이잖아. 난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 굳이 부산까지 내려가서 그 새끼를 서울에 중앙지검 검찰 라인에서 유명한 검사가 잡아 왔던 거든."
생각해보니 도진우도 그 사건을 이상하게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런데 제가 그 의사 새끼를 감옥에서 만났거든요."
"응. 그런데?"
"그 새끼가 이상한 말을 하데요. 자기를 때린 놈은 그 사장이고···. 그 사장이 자기를 때릴 때 힘이 인간의 힘이 아니었데요. 완전 헤라클래스라 안 합니까."
"머리를 다쳐서 힘이 세진 건가?"
도진우의 중얼거림을 들은 부산의 형사는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아. 행님. 요즘 어디 안 좋습니까? 어디 아픕니까?"
"아···. 아냐. 그래서 그 사건을 왜 나에게 말하는 건데?"
"그라니까.. 행님. 그 뒤로 이 사장님 뒤를 밟고 있는데 뭔가 좀 이상해요.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가면 그냥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데이터가 없어요. 아예 없던 사람처럼. 분명 실종 신고된 그 사장이 맞는 거 같은데···."
"전화나 주민증은?"
"이상하게 그런 게 안 잡혀요. 뭔가 누군가가 숨기고 있는 거 같아요."
"시발. 대한민국 경찰이 찾는데 숨겨 준다고.?"
도진우가 흥분해서 말했다.
부산 형사의 목소리가 그제야 힘이 빡 들어갔다.
"그러니까. 행님이 좀 알아봐주소. 거기 광진구 쪽이 그 사장님의 집이 있나봐요. 거기 어린이 대공원 근처에."
도진우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불을 다시 붙였다.
방금 피고 끊었지만, 또 피우고 싶어졌다.
"알겠어. 카톡으로 정보 던져. 일단 몰래 알아볼게."
"행님. 감사합니데이. 다음 주에 술 한번 살께예,"
도진우는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그리고 이번에 이사한 광진 경찰서 옆에 큰 건물을 보았다.
그 옥상을 머리를 들고 쳐다보았다.
아주 높은 옥상에 예쁜 파란 하늘이 걸려있다.
"10m 정도면 저 건물보다 더 높은 곳인데···. 뛰었는데 머리를 다쳤다고? 뒤지지도 않고···. 그냥 뒤질 높이 같은데···. 그리고 살아서 엑스레이 변태 의사를 헤라클래스 같은 힘으로 때려잡았다는 거야? 이게 말이야?"
[까톡 왔어요.]
도진우는 카톡으로 정보를 보내준 걸 알았다..
"뭐야. 이거 왠지 필이 확 오는데?"
1978년 아프간 북부 틸리야 테페의 무덤에서 출토된 금관
댓글과 추천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추천이 많아야 글이 잘 써져요..
- 작가의말
조금 길지만.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주제라서..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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