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전설 #03-오랜만에 의뢰
자살하려던 남자. 그는 새로운 길을 걷게된다.
투덜 거리면서 오르막을 오른다.
고도리 선생은 몸이 훨씬 좋아졌음을 느낀다.
그런데도 이놈의 오르막은 투덜 안 댈 수가 없다.
어찌나 그 대각의 각이 높은지.
무릎이 휘청거릴 만큼 높은 오르막길.
"아놔. 그냥 택시 탈걸."
택시를 타지 않은 자신을 욕한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늦을 수 있고 힘들 수 있지만.
정확한 방향으로 가기만 하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인생.
그래도 그는 욕쟁이 할머니 점 집 앞에 섰다.
***
"어딜 쏘다닌 거야! 혼자 치료 잘 받고 온겨?"
"네. 달걀 동자가 어깨랑 팔 치료 해줬죠."
"뭐 거기가 동네 한의원도 아니고 거길 다니냐?"
"에이. 이 정도 나은 것도 달걀 동자 덕분이죠."
"하긴 그려. 좋은 게 있으면 써먹어야지."
욕쟁이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웬일인지 이야기하다 보니 내 말에 수긍하는 느낌.
"아까 오신 분은 대만에서 오신 분들이에요."
연희가 커피를 타면서 이야기했다.
달곰한 커피 믹스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건 그런 웬일이세요? 우리 연희 양이 맛있는 커피도 타 주시고."
"맛있는 드립 커피를 못 만들어드려 죄송합니다."
"아냐. 이렇게 머리 아플 때는 달곰한 혼합이 짱이지."
"담에는 드립 커피 해드립죠."
연희도 의외로 고분고분하다.
은근히 신경 쓰이는 기분이다.
연희가 맛있는 커피를 한 잔 내면서 자리에 앉았다.
"고마워. 잘 마실게."
"네. 그러시죠."
"아따. 둘이 사이가 참 좋구먼."
욕쟁이 할머니가 날 노려본다.
"아이고.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난 아기들 별로니까."
"그래서 본거 아녀. 어디 찔리나보네? 고선생?"
할머니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찔러 들어온다.
내 마음은 그 말에 가슴이 콕 하고 찍힌 기분이다.
"뭐. 연희 씨가 예쁘긴 하니 좋긴 하죠. 귀엽고···."
어차피 들킬 거 그냥 좋게 말하자 싶다.
"그딴 소리 말고. 왜 큰 손님의 힘을 맘대로 쓴 거야?"
"달걀 동자가 죽을 뻔한 거 구해준 게 잘못인가?"
할머니의 윽박지름에 연희가 대답했다.
"너에게 물어본 거 아녀. 저 쓰벌넘한테 물어본 거야."
"그러게요.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도와주고 싶었어요. 다 설명할 순 없는데 약간 우쭐한 기분도 있었고···. 후회하고 있어요. 담부터는 안 그러려고."
고도리 선생은 커피를 살짝 마시며 조용히 답했다.
차분한 목소리였다.
욕쟁이 할머니도 말문이 막혔다.
"담부터 조심혀. 그 귀신 잡는 힘을 마음대로 쓰다간 큰 코 다칠겨."
"네. 알겠어요.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고도리 선생의 정확한 답변에 욕쟁이 할머니도 커피를 마신다.
달콤하고 따뜻한 커피는 왠지 서로 편안해지는 기분.
"근데 최근 대만에서 일이 난 사건에 대해 아시죠?"
연희가 나를 보며 물었다.
"응. 이번에 좀 핫 했잖아. 알고 있어. 그 머리 먹는 귀신."
난 커피를 조금 더 마셨다.
속이 풀리는 기분이다.
"놀라지도 않으시네. 이제 어느 정도 파악하셨나 봐요. 패턴을···."
"응. 이렇게 불려와서 앉으면 대만 이야기할 거 같았어. 패턴을 파악한 건 아냐."
"네네. 고도리 선생님."
연희도 살짝 웃으면서 날 놀린다.
"대만에 머리 먹는 귀신이 나타났어. 거의 30년 만에 나타난 거 같아. 한국에 안 나타나서 다행인 거야. 그 제기랄 귀신 너무."
"머리 먹는 귀신은 역사와 전통이 있나 보네."
난 슬쩍 할머니를 보며 이야기했다.
욕쟁이 할머니는 좀 흥분하고 있다.
그럼 그쪽을 질러야 제일 많은 정보가 흘러나올 테니.
"그놈은 악귀 중 악귀여. 사람의 머리를 뜯어 먹어 그 사람의 지식을 삼키지."
"그 사람의 능력은 아니고요?"
내가 슬쩍 던진 말에 할머니가 흥분했다.
"뭐여. 이 쓰벌넘이 아는 척을 하고 그려!"
"할머니. 흥분하지 마세요. 그럴 일도 아니고."
연희가 할머니를 말렸다.
아니 말렸다기보다 말을 끊었다.
"그래그래. 능력을 훔치진 못 해. 인간에게서 능력을 빼앗진 못 해. 그건 귀신끼리 하는 거지."
"하긴 그 뜯어 먹힌 사람이 라멘 만드는 사람이라면서요? 그런 사람이 능력이 있을까···."
"그냥 재미로 뜯어먹는 거 같아. 그 머리 먹는 악귀 놈이 말이야."
후루룩.
난 커피를 좀 더 길게 마셨다.
"저번에 살인귀도 사람 죽이는 거 자체를 즐기는 거잖아요. 이놈은 인간의 머리를 먹는 거 자체를 즐기는 건가?"
"너. 닭 머리 먹어본 적 있어?"
욕쟁이 할머니가 뜬금포를 날린다.
닭 머리를 먹어본 적이 있냐는 질문.
"아뇨. 그걸 왜 먹어요? 맛대가리 없고 딱딱해서 먹기 어려운데···."
욕쟁이 할머니의 질문에 답하다 보니 묘한 기분이 드는 거 선생.
하긴 그 맛없는 머리를 굳이 왜 먹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신 중에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이 있어. 그 들은 다리를 뜯어먹거나, 어린아이들을 잡아먹지. 머리를 뜯어먹진 않아. 네 말대로 맛이 없는 부위이고, 되게 딱딱해서 별로니까."
욕쟁이 할머니는 나를 노려보며 이야기했다.
"근데 딱 하나 장점이 있지."
욕쟁이 할머니는 커피를 입으로 가져가면서 소리를 높였다.
"고도리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는감?"
"무조건 죽죠. 사람은 머리를 먹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확실히 인간을 죽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머리를 먹는다는 건."
난 처음부터 했던 생각을 이야기했다.
"어따. 이놈 생각보다 똑독허네. 맞어. 만약 그 악귀가 그걸 노리고 있다면, 예전 악귀에서 한 단계 진화한거여. 세상에 맞게 변해가고 있는거여. "
이미 달걀 동자 아저씨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지금 같이 모두가 똑똑한 시대에서 그 머리 지식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나.
그것도 학자 머리도 아니고 라멘 만드는 사람의 머리라니.
"그럼. 살인귀처럼 죽이는 거 자체에 쾌감을 느낀다는 건가요?"
"아니. 그걸 모르겠어요. 대만 쪽 이야기도 그래요. 이번 5명이 머리를 먹혔는데 모두 일본 유학 갔다 온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도 깨져버려서 현재는 공통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해요."
연희가 끼어들었다.
"만약 말이여. 죽이는 거 자체에 쾌감을 느낀다면, 좀 더 젊고 맛있는 머리를 먹었을 거야. 굳이 저런 늙은 아저씨 머리를 먹을 리 없어. 이왕이면 젊고 어린 여자 머리가 좋았을 거야. 그 쓰벌넘은 너처럼 말여."
뭐 틀린 말은 아니네.
이왕이면 젊고 예쁜 여자를 먹지.
굳이 라멘집 주인아저씨를 먹는 건 좀 그렇다.
"그래서요? 우리가 뭘 확인하고 막아야 하는 거죠?"
"그거여. 딱 그거. 왜 머리를 먹는 악귀가 나타났는지 하는 거고, 그걸 굳이 모르더라 다도 그 녀석을 죽여주면 좋겠어. 고도리 선생."
욕쟁이 할머니의 말이 굉장히 차갑다.
차가운 얼음을 내 몸에 집어넣는 것 같다.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을 할 때 일대일로 만나서 하는 이야기같이.
냉정하고 차갑다.
근데 마음을 파고든다..
그 일을 해야만 할 것 같다는 기분이 생긴다.
"음. 그러네요. 이유를 알아내고 죽여야 하는데, 만약 이유를 못 알아낼 것 같으면 그냥 죽여도 된다는 거네요."
난 욕쟁이 할머니를 노려보고 말했다.
끄덕.
욕쟁이 할머니는 커피를 마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로 저랑 같이 대만으로 넘어가시죠."
"다음 표적은 알고 있나? 안 그러면 찾으러 가야 하는 거야?"
연희는 지도 모양의 종이를 꺼냈다.
대만 타이베이의 지도.
그리고 죽은 사람의 위치가 붉은 점으로 찍혀있다.
그 점들을 빨간색 선으로 연결해둔 지도였다.
FBI들이 보는 것 같은 지도.
"5명이 죽은 곳은 한 군데입니다. 101타워 주변으로 별 모양을 그리고 있어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보니 연희가 꺼낸 지도에서 붉은 별 모양의 그림이 나왔다.
그리고 빨간색으로 아주 크게 그 별의 가운데에 점이 찍혀있다.
그곳이 바로 다음 표적 지점이라는 뜻이었다.
대만에서 가장 유명한 101빌딩이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 명. 오늘이 일요일이고 내일 출발하면 월요일이니···."
"4일 뒤에 누군가가 101빌딩에서 죽는다는 거네. 이 별 모양은 동양적인 느낌이 아니잖아? 이건 마치 적 그리스도의 느낌인데···."
고도리 선생은 그 그림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뭐야. 동양의 귀신인데 왜 적그리스도의 그림을 그리며 살육을 하는 거지?"
고 선생의 질문에 모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고 있던가.
아니면 아는데 말할 수 없는 상황인듯하다.
"그러니까. 그런 패턴이 만들어진다는 게 이상한 거야. 그래서 막아야 하는 거야. 이상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걸 큰 손님이 걱정하시는거여."
잠시 후 욕쟁이 할머니가 이야기했다.
아마 그들은 아직 그 상황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다른 이상한 일이 생긴다는 건 고도리 선생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 다른 일이 뭔지 몰라도 큰 손님은 그걸 두려워한다.···.
왜 그 큰 힘을 가진 존재가 뭔가를 두려워할까.
딱 하나의 이유뿐이다.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것.
고도리 선생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약간의 웃음과 약간의 두려움이 교차한다.
마지막 남은 커피를 마셨다.
"저 담배 한 대 피우고 잘 개요."
자리에서 일어나자 연희가 따라나선다.···.
"내일 9시 비행기입니다.다 준비해두었어요."
"응. 당연하겠지."
나와 연희가 문을 열고 나오려고 할 때 등 뒤에서 할머니가 이야기하셨다.
"도착하면 사람들이 마중 나올 거야. 잘 따라다니기만 혀. 이 쓰벌 넘아. 잘 해결하고 돌아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난 뒤로 돌아보며 살짝 웃었다.
"네. 쓸데없는 짓은 안 할거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가 말하는 그 쓸데없는 짓과 고도리 선생이 생각하는 그 짓이 같은 건지 다른 것인지는 모르지만···.
뭐 그래요. 닭벼슬...
댓글과 추천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추천이 많아야 글이 잘 써져요..
- 작가의말
대만으로 출발합니다.
아 대만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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