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안 나이트 #07-보경의 수업 1교시.
자살하려던 남자. 그는 새로운 길을 걷게된다.
확실히 대학교가 좋은 점이 있다.
차를 몰고 들어가면 적절하게 차를 세울 곳도 언제나 있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어딘가를 찾아갈 때 심심하지 않다.
어딘가를 찾아가기도 굉장히 쉽다는 장점.
그리고 잘 못 찾아도 어차피 돌고 돌아 다시 오기도 쉽다.
단 서울 대학교만 뺀다면.
거긴 길 한번 잘 못 들면 반대로 빠져나와 버린다.
산을 하나 넘어버리는 묘한 상황이 된다.
"저기네요. 경주대학교 미래 창조관."
연희가 손가락으로 건물을 알려준다.
"오케이. 근처에 주차할게."
"전 전화 한 번 할게요."
차가 주차되는 동안 연희는 김 보경이라는 분과 통화를 시작했다.
"네. 알겠어요. 그러면 거기로 찾아갈게요. 4층 412호 강사 준비실이라는 거죠?"
연희는 전화를 끊었다.
차는 주차가 완료되었고, 우리와 팔라비 들은 차에서 내렸다.
"수고하셨습니다. 고도리 선생님."
팔라비가 도착하자 인사한다···.
"아···. 네. 굳이 뭐 이런 거로···."
"그래도 왕족이신데 이렇게 인사까지 깍듯하게."
내가 당황하자 연희가 말을 덧붙인다..
팔라비와 사울은 살짝 웃었다.
"조심하면서 살고 있어요. 이제 세상은 평등한 시대잖아요."
"기존의 왕족들에 비해 이런 점이 바로 제가 팔라비를 좋아한 이유이기도 하구요."
팔라비와 사울도 말을 덧붙인다..
참 말이 많은 자들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아. 이란과 신라의 관계를 한 번 같이 정립 해보려고요."
"그래야. 당신들이 여기까지 와서 찾고 있는 것들을 우리도 이해할 수 있죠."
팔라비와 연희가 이야기를 나눈다···.
"저도 궁금해요. 팔라비에게 이야기는 들었지만, 너무 이상한 이야기라서."
사울도 끼어든다.
이 세 명과 다니고 난 이후 난 말을 할 기회가 없었다.
보통 여태껏 내가 말을 제일 많이 했는데···.
수다스러운 사람들이 있으니 타이밍을 못 잡는 경우가 많다.
"당신들이 찾고 있는 보물. 그리고 그것이 왜 필요한지 어느 정도 이해는 되는데 정확히 확증을 가져야 우리도 돕거나 할 수 있으니까."
오랜만에 말이 끊어진 틈에 내가 끼어들었다.
"그렇군요. 저도 이란의 팔라비 왕조 측 이야기만 들었네요. 그러고 보니···."
팔라비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한다···.
4층에 도착하자 왼쪽에 바로 보였다.
412호 강사 준비실.
"아! 저기네요. 아까 보경 씨가 이야기했던 곳."
우리는 412호의 문 앞에서 노크했다.
"네. 들어오세요."
생각보다 어린 목소리였다.
뭐 오래 연구한 학자라서 아주머니 스타일이려니 했는데.
역시 직접 만나봐야 알 수 있는 게 세상이라더니.
연희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책상 2개에는 자료가 잔뜩 있었는데 정갈하게 쌓여 있었다.
2부가 프린트 돼 있는 거로 봐서는 우리를 위해 준비한 것 같았다.
두꺼운 검은 안경을 끼고 머리를 뒤로 묶은 여자.
그리고 화장을 거의 하진 않았지만 하얀 얼굴.
보통 이런 스타일의 여자들은 학자 유형의 여자들이다..
학자들의 고지식한 세계 안에서 언제나 치이는 사람들.
그리고 그녀들의 공식적인 연구결과는 언제나 빼앗긴다.
그것이 옳다면 더욱 그러하다.
반골 기질이 가득할 그것으로 예상하는 스타일.
"오셨네요. 어머!! 이란분이 오셨네. 이런 조합 신선하네요."
그녀는 우리를 보고 인사하다가 팔라비를 보고 놀랐다.
하지만 미소를 잃진 않았다.
그녀는 이란 사람이같이 온 사실에 기쁜 모양이다.
"아까 전화로 말씀드렸듯이 경주 보검과 이란의 관계가 궁금해서요. 처용무라던지 그런 것도···."
"네. 알겠어요. 그런 거라면 제가 전문가니까. 잘 오셨습니다. 아 저는 김 보경이라고 합니다. 예전엔 쿠쉬나메 연구 전문가로 서울에 있었는데 이번 학기부터는 신라의 역사 전문으로 경주대학교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김 보경 교수님과 우리는 서로 인사했다.
저 나이에 그래도 전문 수업을 하는 교수님이라니.
좀 놀랐지만 그래도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나이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모두 자리에 앉아 김 보경 씨가 2팀에 각자 프린트물을 나눠준다···.
그리고 가운데 앞자리에 서서 PT를 진행하려고 준비를 한다.
첫 번째 프린트물에는 "쿠쉬나메"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그리고 첫 화면이 켜졌다.
그 화면에는 우리가 익히 봤던 그 물건의 사진이 크게 있다.
여러 각도로 찍은 사진들.
그것은 바로 아까 박물관에서 봤던 "보검"(박 보검 아님) 사진이었다.
슬쩍 보니 이란의 팔라비 왕조의 적통의 동공 지진이 보였다.
분명 가장 궁금한 것을 긁어주는 것이리라.
"이것 때문에 모두 이 자리에 오신 거로 알고 있어요."
김 보경 씨는 시작을 간단명료하게 하였다.
****
"일단 이란 신혼부부들의 혼수품 중 80%가 한국제 제품을 사용하고 있어요. 이건 굉장히 이란인들의 한국 사랑이 짙다는 증거이기도 하죠."
김 보경 씨의 설명은 뜬금없이 시작되었다.
"한국은 전체 원유 수입의 15% 정도를 이란에 의존하고 있어요. 왜 그러냐면 이란이 원유가격을 가장 싸게 주고 있기 때문이죠. 이건 우리나라 정부가 잘해서가 아니라 단지 이란이 우리에게 공급을 잘해주고 있는 거입니다."
김 보경 씨의 이야기는 보검과 관계없이 흘러간다···.
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다.
"이런 한국과 이란의 교역은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당시 이란은 페르시아로 불리고 있던 시절이었어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요. 그 페르시아의 가장 뛰어난 왕조는 팔라비 왕조라고 불리는 왕조이고 이들이 이란의 뿌리라고 볼 수 있어요."
나와 연희는 거의 동시에 팔라비를 쳐다봤다.
팔라비는 왜인지 모르게 거만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사울도 그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응? 왜 그러시죠? 갑자기 왜 저 사람을 쳐다보나요?"
한참 설명하던 보경 씨는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에요. 계속 설명해주시죠."
팔라비가 말하는데 어찌 그리 느끼하게 느껴지는지.
내가 바로 그 팔라비 왕조의 숨겨진 적통 왕자 다라고 하는 느낌.
조금 부러운 기분이 들었다.
"신라 시대의 유물 중 유난히 많은 유리가 발견되고 있어요. 그 유리는 제주도에서 만들거나 신라에서 만든 게 아니에요. 바로 페르시아로부터 넘어온 물건 들이란 증거죠. 당시에는 페르시아가 유리 세공을 가장 잘했거든요."
음. 왠지 필기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다.
"신라 왕릉의 석상도 우리 신라인의 모습이 아닌 바로 페르시아인의 모습인 석상들이 발견되고 있어요. 이건 그냥 무역했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김 보경 씨는 앞에 있는 책상을 한 번 '탁' 치면서 이야기했다.
발표를 할 때 저런 건 이제부터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신호.
"단지 무역을 한다고 석상을 세워줄 리가 없어요. 석상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중요한 예술품이거든요. 무엇인가 페르시아 인들과 우리 신라는 다른 관계가 엮여있다고 보는 게 맞을 거예요. 적어도 중국인이나 일본인 석상 같은 걸 신라가 만든 적은 없거든요."
연희가 눈이 동그래지면서 물었다.
"그렇군요. 석상까지 만들 정도면···."
"더군다나 혹시 석굴암에 가 보신 분은 알겠지만, 그 속에 보시고 있는 불상은 기존의 불상과 다른 모습이거든요. 불상이라기보다는 페르시아 인들이 그리는 유럽형 살이 통통한 그림의 모습과 유사해요. 더군다나 그 주변의 석상은 페르시아 느낌으로 만들어져 있답니다."
"이미 보고 왔어요. 석굴암에서는."
사울이 질문에 대답하는 대학생 같은 말을 했다.
아까 석굴암에서 나오며 우리가 만났던 그 이유가 그것이었다고 생각한 고도리 선생.
"처용무의 이야기와 비슷할 이란의 전통 이야기 중 일부 그림이 있는데······."
보경 씨는 다음 화면으로 그림을 넘겼다.
어떤 그림 중 일부가 나타났다.
아마도 쿠쉬나메라는 설화의 장면인 것 같았다.
"저기 동그라미를 보시면 한 쪽은 페르시아인 이 있는 곳에 다른 인종이 서 있어요. 그 인종은 분명 동양인입니다. 그리고 그 동양인의 옷이나 모습이 당시의 우리나라 신라 시대의 그림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어요. 이 이란의 오랜 이야기는 페르시아 시절의 이야기인데 그 속의 삽화가 바로 지금의 이란인 페르시아와 신라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어요."
김 보경 씨는 침을 꿀꺽 삼기며 앞에 있는 삼다수를 까서 마셨다.
"그리고 저 남자가 처용무의 주인공 처용이 아니냐는 학설이 제기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역사적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와 관계없이 오랜 시간 우리는 그 이야기를 믿고 있는 역사학자들과 아닌 역사학자들이 부딪히고 있어요."
"왜 부딪히고 있는 거죠?"
"좋은 질문입니다."
연희의 질문에 보경 씨는 안경을 한번 들어 올리며 교수처럼 웃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 때문이죠. 미국은 우리가 이란과 더 친해지는 것을 막으려고 했고 친미주의자이던 예전 역사학자들은 그 친미적인 관점으로는 도저히 그것을 인정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죠."
보경은 화가 난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수하들인 친일 역사학자들은 이란과 일본의 이야기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있어요. 이란 쪽에서는 절대 일본과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라가 아니라 일본 즉 지팡구라고 주장하고 있죠. 이런 친일, 친미의 역사학자들이 끝까지 신라와 이란의 관계를 거짓말로 주장하는 만큼 그 관계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랍니다."
보경은 한숨에 이야기를 끌고 간 다음 다시 물을 마셨다.
"도대체 어떤 관계이길래···."
연희도 목이 말라서 침을 꿀꺽 삼키며 궁금해했다.
페르시아와 신라이야기 - 페르시아 -> 이란?
댓글과 추천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추천이 많아야 글이 잘 써져요..
- 작가의말
세상엔 참 재밌는 이야기가 많죠?
대부분 예전엔 쉬쉬하고 숨겼어요.이 이야기를 보면 미국과 한국보다 이란과 한국이 더 어울리게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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