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안 나이트 #20-우연은 없다(완)
자살하려던 남자. 그는 새로운 길을 걷게된다.
파란 하늘.
그리고 햐안 구름.
녹색의 넓은 평원.
그리고 꽃이 피어 있는 아름다운 정원.
거대한 분수가 중앙에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엄마. 저 사람은 죽지 않은 것 같은데..."
지나가는 아이가 나를 보고 멍하니 쳐다본다.
그 아이의 엄마가 아이의 손을 끌고 반대쪽으로 뛰어간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 거리며 지나간다.
마치 내가 없는 사람처럼.
"시발. 뭐지... 왜 날 힐끗거리지."
난 멍한 표정으로 분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분수를 보고 있는 지는 나도 모른다.
어쩌면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기 두려운건가.
그렇다 보니 내가 볼 수 있는 곳은 거대한 분수였나.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대체 여긴 어디인건지.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나를 피하고 있으니까.
"어..뭐야..."
내 몸이 갑자기 아래 쪽으로 쑥 꺼진다.
붉은 색 장미가 가득한 정원이 보인다.
그 아름다운 꽃들은...
****
"깨어났어요? 괜찮아요?"
눈을 떠서 제일 처음 본 얼굴.
안경너머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울.
(뭐야...왜 굳이 사울이지...)
사울이 눈을 뜬 날 보며 기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어. 난 앙그라 마이뉴와 싸우고 있었는데..."
"아저씨. 양 손에서 빛이 번쩍하고 한번 크게 나고 나서 아저씨가 튕겨져서 쓰러졌어요."
사울의 소리를 듣고 내 얼굴 쪽으로 나타난 연희가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 보며 말한다.
왠지 연희를 보니 다행스럽다.
"귀신의 결계도 유리 깨지 듯이 깨져버렸어요."
이제 다시 정신을 차려 둘러본다.
내가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
링겔이나 이런 게 꽂혀지 있진 않지만.
난 병원의 침대에서 깨어난 것이다.
"왜..병원이지?"
난 말하면서 누군가를 발견했다.
공기 호흡기를 끼고...
여기저기 붕대를 감고 있는 이란의 대통령.
바인이 누워 있었다.
"바인은 살아있는거야?"
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인쪽으로 다가갔다.
"아니 이렇게 때려서 반쯤 죽인 사람이 누군데...누가 누굴 걱정하시는거에요?"
"아까까지는 말 한마디 없이 안절부절하더니.."
"아니 그거야 뭐."
연희가 다행스런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사울이 연희를 쳐다보며 살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바인. 다행이네. 그래도 분리되어 살아날 수 있어서."
"덕분에 선거하게 생겼네요."
사울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예 죽었으면 쉽게 팔라비가 대통령 자리에 앉을텐데라는 뉘앙스였다.
고도리 선생은 사울을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그래도 공정하게 이겨서 대통령이 되어야지. 그냥 죽어서 그 자리를 이어받는 건 아마 팔라비가 좋아하는 방식이 아닐거야. 명분이 필요한 사람이잖아. "
사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니까.
사울은 안경을 손으로 들어올리며 고도리를 쳐다본다.
고도리 선생은 의외로 냉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열정과 냉정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진 않다는 걸 그는 알고 있다.
사실 사울 자신이 가장 되고 싶은 롤모델이기도 했다.
연희는 이제서야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그래서 귀신과 바인 씨를 분리시켰군."
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말했잖아. 우리는 팔라비를 도와줄거라고. 이왕이면 팔라비에게 가장 좋은 방향으로 도와줘야 하니까."
"음... 앙그라 마이뉴를 박살낼 때는 엄청 즐거워보시더니...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연희가 입이 삐죽 나와서 말한다.
사실 그 말이 맞다.
어느 순간 그 쾌감에 몸을 맡기기도 한다.
그래도 머리 속은 언제나 차갑게.
해야할 일은 철저하게 선두에 세운다.
연희에게 미안하지만.
연희를 이용하여 귀신과 인간을 분리시키는 타이밍을 잡은 것은.
좀 위험한 방식이었다고는 생각했다.
찌잉.
살짝 머리가 아파왔다.
눈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순간 화면이 일그러지듯이 고도리 선생의 몸이 보였다 안 보였다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어. 고도리 선생님이 켜졌다 꺼졌다하는데..."
사울이 황당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그..그 능력이 진짜 들어온 거군요."
"그런것 같아. 한국으로 돌아가면 치료 좀 받아야 할거같아."
"그래요. 달걀 동자에게 가보죠. 할머니는 이런 것은 잘 몰라요. 정통파시라서..."
고도리 선생은 연희의 말에 피식 웃었다.
"무당 세계에도 정통파와 사파가 있군."
"연희야. 담배나 한대 피우고 올까?"
"그러시죠."
"혹시 바인이 깨어나면 연락 부탁 해. 사울."
"시원하게 한 대 태우고 오세요. 진짜 고생하셨으니까."
사울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인사였다.
****
"팔라비는 어떻게 된거야?"
후우.
에어컨과 에어필터가 잘 가춰진 병원 흡연실.
역시 돈 많은 나라답다.
이 정도 흡연실이면 지하철에 있어도 될것 같다.
연기는 그대로 필터로 강하게 빨려든다.
마치 나에게 그 앙그라 마이뉴가 빨려들듯이.
"팔라비는 지금 이란의 장관들과 국회의원들과 이야기중이에요. 우리가 병원으로 오는 동안 그는 자신의 일을 하러 갔어요."
"특별한 상황이니 그럴만하겠네."
"아저씨를 엄청 걱정하면서 갔어요. 아마 사울이 알려주겠죠. 괜찮다고..."
연희도 담배를 맛있게 태우며 이야기했다.
오랜만에 같이 담배를 태우는 시간이다.
"근데 어떻게 알았어요? 흡수하는 방법은?"
"몰랐어. 나로서는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야."
"우연이라는게 어딨어요. 우리 무당의 세계에선 우연은 없어요. 우연 같아 보이는 필연인거죠."
"하긴 그 세계에선 우연도 귀신의 힘이겠군."
"뭐 대충 그래요."
"만약 그렇다면....이건 내가 한게 아니라 큰 손님이 한거야."
후우.
담배연기가 다시 공기 필터로 강하게 빨려 들었다.
"큰 손님이 하신거라면 이해가 되네요. 능력이 하나 더 생겨났군요."
"음. 시간의 이동도 결국 공간의 이동이니 별차이 없긴한데..."
"그래도 뭐랄까. 필요한 능력이니까."
"응. 그렇겠지. 우리가 앞으로 할 일에 필요한 능력이겠지."
후우.
연희의 담배 연기도 필터로 강하게 빨려 들어간다.
"큰 손님이 가진 능력은 그렇게 귀신들을 죽여가면서 얻은 것들일까요?"
"그런 것도 있겠지. "
"그 많은 귀신들을 어떻게 먹어 치운걸까요..."
"빨려들어오지 않았을까. 태풍처럼."
"그것도 한계가 있겠죠. 귀신들도 알아요. 안 빨려들려고 도망다녔을텐데... 기억 나시죠? 달걀동자 아저씨의 이야기들..."
"하긴 지난 번 이무기와 싸움에선 굳이 그 능력을 빨아들이지 않았어."
"선생님보다 더 하위 버젼이었으니."
"그렇지. 대신 그의 무술 능력이 나에게 붙어버린것 같아."
"그건 큰 손님의 능력이라기보다 고도리 선생의..."
"아냐. 내가 그런 능력이 있을리 없잖아. 그냥 자연스럽게 달라 붙은 느낌?"
후우.
나의 마지막 담배연기가 필터로 들어갔다.
치익.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끄는 그 작은 불꽃이 재떨이에 피어난다.
"난 지금 뭘 하고 있는걸까..."
고도리 선생은 조용히 혼자 중얼거렸다.
연희도 들었지만 딱히 대꾸할 맘이 안 생겼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근데 말야. 앙그라 마이뉴가 지옥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한 게 걸려."
"지옥의 문이 열린다구요?"
"그때까지 버티기만하면 된다고 했거든."
"지옥의 문이 열린다는 건..."
연희가 골똘하게 뭔가 생각했다.
"연희는 아는 게 있는거야?"
"어릴 때 할머니에게 들은 적이 있는데 인간의 세계에서 힘의 균형이 깨어질 때 지욱의 문이 열려서 악귀들이 몰려들어올 수 있다는거였어요."
"뭐야. 그게...만화같은 소리잖아."
"지금 아저씨는 만화같은 소리 아니고?"
"그..그렇긴 하네.시발."
귀신의 문이 열린다는 것.
갑작스럽게 이무기의 사건이라던지.
앙그라 마이뉴라던지.
기존의 일들과 다른 것들이 생겨나는 것이 단지 그냥 그런게 아닌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급작스레 이런 일들이 연달아 생긴다는 것도 필연이라는 그림 안에 들어가겠지.
그건 다 이유란게 있을거야.
사필귀정(事必歸正).
어떤 이유에서든 무엇인가 생기면 결국 옳은 방향으로 돌아가는 거다.
그렇기에 작용과 반작용이 필요한거고.
귀신의 문이 열리는게 필연적인 일이었다면.
그 일을 막기 위한 반대로의 필연적인 일이 생겨야 이치에 맞다.
물리적인 세상의 이론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확인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물리학이라는 게.
세상에 있는 것은 과학 때문이 아니다.
세상의 이치가 바로 물리학의 근본.
작용과 반 작용.
에너지 보존 법칙 등등...
과학이 아닌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근원의 학문이다.
심리학 같은 게 아니라 물리학이라는 것이다.
귀신의 문이 열린다는 이야기.
큰 손님이 마치 세포처럼 내 몸에 녹아 있는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손님이 마침 그 시간에 연희를 만나기위해 나타난 것.
하필이면 귀신의 문이 열린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된 것.
그리고 지금까지 나에게 이런 임무들을 부여한 것.
연희와 나 , 할머니의 관계를 만들어 둔 것.
그리고...
내 기억 속에 어떤 부분을 막아둔 것.
그 기억 속 부분이 나에게 어느 순간 방해물이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즉. 우연이란 없다는 것이다.
멍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연희가 말했다.
"고민하지 말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확인해봐요."
아까 본 아름다운 정원 이야기를 할까하는 순간.
흡연실의 문이 열렸다.
그것도 아주 급박하게 열렸다.
그리고 문을 열고 사울이 뛰어 들어왔다.
"팔라비..팔라비가 지금 공식 발표를 하고 있어요. 같이 가서 보시죠!"
그는 웃고 있었다.
진정한 미소.
난 처음으로 사울에게서 그 미소를 본 기분이었다.
아름다운 정원..이 소설에서의 정원은 이 영화에서 만든 이미지입니다.
오래된 영화지만. 정말 강려크 추천합니다.
댓글과 추천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추천이 많아야 글이 잘 써져요..
- 작가의말
으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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