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고양이들의 비밀
자살하려던 남자. 그는 새로운 길을 걷게된다.
짹짹거리는 새소리와 시작하는 아침.
봄과 여름 사이 그사이의 어떤 날.
하품을 크게 한 고도리 선생은 언제나처럼 일어나자마자 물 한잔.
그리고 작은 그만의 냉장고를 열어 커피 한 캔.
문을 열고 나와 기지개를 길게 켠다.
"으아아아아아아암!!"
담배를 한 대 꺼내물고 커피 캔을 깐다.
시간은 8시와 9시 사이.
맛있게 커피를 마시면서 담배를 한 대 피우며 휴대전화를 열어 어젯밤 동안의 뉴스를 살펴본다···.
"응? 대만의 머리 잡아먹는 귀신 사건은 사실 칼로 베어 죽인 사건이라고?"
후우.
담배 연기는 상쾌한 공기 속으로 사라져간다.
[일본 닌자녀 목을 잘랐네···. 후들후들]
[일본 닌자녀 변태 대만 남자 참교육했구먼.]
[남자만 골라가며 죽인 일본 닌자 류호정]
[남자만 죽이는 페미니스트들의 대장 일본 닌자]
네이버의 댓글은 진짜 뭐랄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댓글의 흐름은 왠지 시대의 흐름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굉장히 감각이 넘치는 짧은 글이 댓글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고도리.
"음. 지우펀 절벽에서 경찰의 총에 맞고 사망했다···."
마지막은 여자와 함께 다니던 진범은 경찰의 총에 맞고 사망했다고 한다.
아마 한국 네이버에서 이 정도 기사라면 대만에서는 김준철 아저씨의 사진이 나오고 헬기에서 내리는 엔젤라가 나오고, 난리였겠구나 싶었다.
커피를 길게 한 번 더 마셨다.
후우.
마지막 담배 연기가 또 이렇게 멀리 날아가 사라진다.
한 번 더 길게 두 손을 높이 들어 기지개를 켠다.
"준철 아저씨 일 계급 특진 정도 하셨으려나?"
난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청소하고 할머니께 인사하고 나면.
나의 하루 할 일은 끝난다.
대만에서 돌아온지도 이틀이 지났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내 손의 감각.
그리고 한 대 맞았을 때의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
그런 것은 다시 과거가 되었다.
오늘은 열심히 청소하고.
할머니에게 10만 원 받아서 동네 마실이나 좀 다니느냐고 생각했다.
골목을 구경하러 다니던 고도리 선생.
어릴 때 자신이 좋아하든 여자애가 살든 오래된 아파트 앞에 섰다.
"아놔. 그 아이가 살던 곳이네. 참 예뻤는데···."
30년 전 처음 이 동네에 만들어진 아파트.
그 당시만 해도 동네 아이 중 부자 애들만 사는 곳이라.
모두 구경 와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놀았다.
산 위 말고는 그렇게 높은 곳에서 아래를 보기 어려웠던 시절.
"비행기 타고 가는 게 이런 기분 아이가?"
"맞다. 비행기 타면 그런 기분이다."
"네 비행기 타봤나?"
"그래. 나는 비행기 타봤다. 아빠가 일본에서 일하시거든."
그 아이와 옥상에 올라가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던 기억이 났다.
"여기 참 오래되었구나."
당시의 새 건물이었던 기억과 달리 완전 허름해진 아파트.
그래도 아직 그 시절의 위용이 살아있었다.
완전 다 부서지기 전의 허름한 가게로 들었다.
"아줌마. 여기 커피랑 말보로 한 갑 주세요."
"니 써울에서 왔나? 말투가 와 글노?"
"저 부산사람인데요. 얼른 담배랑 커피캔 하나 주소."
"어설프네. 써울 사람인지 부산 놈인지 모르겠네."
"아놔. 서울 살면 사람이고 부산 살면 놈입니까?"
60이 훌쩍 넘은 듯한 작은 체구의 할머니는 커피 캔과 말보로를 꺼내준다.
"말보로가 뭐꼬? 마 한국 담배 피라."
"아···. 알았어요. 여기 6천 원요."
"주리 받아가소!"
"아···. 할매요. 주리라는 말은 진짜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그냥 할머니가 가지세요. 주리라는 말들어서 재밌어서 드리는 팁입니다."
"여윽시. 화끈하네. 서울양반."
아닙니다. 나 부산사람이라니까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냥 그만뒀다.
그러면 어떡하고 저러면 어찌하겠는가.
정겨운 사투리를 들으면 웃음이 나온다.
내가 아주 어려진 기분이 들어서 좋다.
딸깍.
캔 커피를 따서 마시면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다.
따스한 햇볕이 너무 좋다.
그리고 오래된 나의 기억이 가득한 이 아파트를 보면서 추억을 떠올려본다.
담배와 커피.
그리고 어릴 적의 추억.
그만한 한낮의 소일거리가 어디 있을까?
****
"으악. 화이트 화이트 키티!! 화이트 키티!!"
멍하게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다가 아이들 소리에 담배를 급히 껐다.
나의 이 즐거운 소일거리를 방해하는 아이들이 싫었다.
그래도 일단은 아이들 소리는 나에게 왠지 긴장을 바짝 하게 만든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저씨. 여기 화이트 키티 못 봤어요?"
"나는 헬로 키티만 아는데."
"에이. 아저씨 일본 거는 나쁜 거예요."
"아···. 그래 미안하다."
아이들은 나를 노려보고 다시 주변을 뒤지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위로도 살펴보고.
아래로도 살펴보고.
뭘 열심히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너희 뭐 찾아? 숨겨둔 초콜릿이라도 찾니?"
"아뇨. 우리가 맨날 밥 주던 고양이가 있었는데···."
그러고 보네 아이들의 손에 소시지와 참치통조림이 들려있다.
도둑고양이들에게 밥을 줘왔던 모양이다.
"고양이는 내가 여기 올 때부터 없었는데?"
"아저씨가 와서 도망갔나?"
"그럴 수도 있어. 저 아저씨 담배도 막 피웠잖아."
"미세먼지보다 나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야."
"우리 엄마가 담배를 피우면 깡패랬어."
난 순간 발끈하는 기분이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깡패라니.
내가 묻고 더불로 가는 그런 스타일은 또 아니다.
"얌마. 다 들리거든. 그만하지."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같이 찾아볼까?"
"와. 아저씨 고마워요."
:어른이 있어야 갈 수 있는 곳도 있거든요."
"저 아파트 안에 지하로 고양이들이 들어가거든요."
"거긴 어른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어요."
아이들은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난 담배꽁초와 커피 캔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아이고. 써울 양반. 그 아들하고 고양이 찾으러 가능교?"
할머니는 또 그새 어떻게 아셨는지.
이 세상의 할머니들은 어찌 그리 귀가 밝은지.
소리가 안 들린다고 TV 소리는 엄청나게 크게 들으면서.
남들 조용히 하는 이야기는 너무 잘 듣는다.
장담하건대 모든 할머니는 그러할 것이다.
"그래. 맞아. 이 동네 고양이들이 저기 아파트 지하로 많이 내려갔다 왔다 하지."
할머니는 아이들의 말에 수긍했다.
"얼른 가서 고양이 밥 주고 와. 내일도 밥 주고 말이야."
필시 저 소시지와 참치통조림은 이 할머니 가게에서 산 것이 분명하다.
이 할머니는 아이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것 같다.
아니고서야 저렇게 밝게 말할 리가 없다.
보통의 할머니들은 도둑고양이 밥 주지 말라고 하는 게 정상인데···.
"난 고양이는 좋아하지 않지만. 저 아파트 지하실은 가 보고 싶었거든."
나도 마찬가지였다.
저 아파트의 지하실에는 전체 아파트에 공급하는 보일러실이 있다.
추운 겨울 애들이랑 숨어서 야한 잡지를 보고 싶었는데.
항상 아이들끼리 가면 안 된다고 어른들이 막은 기억이 있다.
"절대 아이들끼리 가면 안 되니 저 아저씨랑 같이 가. 서울 양반이라 참 착해."
몇 번을 말했던 것 같은데 그냥 포기했다.
할머니 저 부산사람이라니까요···.
****
아파트의 경비실을 지났다.
경비 아저씨는 나를 힐끔 봤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 인사했다.
아이들과 같이 가는 나를 물끄러미 보기만 한다.
"뭔 일로 아파트로 들어가요?"
"아. 이 아이들과 찾을 게 있어서요."
경비원 아저씨는 아이들을 쳐다본다.
"조심히 다녀오이소. 너희끼리 가면 안 된다. 이렇게 어른이랑 같이 가야 해."
"네. 아저씨."
아이들은 거의 동시에 대답하며 나를 따라왔다.
약간 후회했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한 이 아파트에 발을 들였다.
첫사랑이었던 그 아이에게 사탕을 주러 몰래 올라가던 때가 생각났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렇게 아파트로 들어서서.
6층 거리를 한 걸음으로 올라갔는데···.
이 아파트는 오래되어서 엘리베이터가 없다.
그래서 걸어서 올라갔다 내려와야 했다.
12층이나 되는 거리를 거기다가 옥상까지 그 아이와 참 자주 다녔는데···.
"아저씨. 뭐 해요. 지하로 내려가야죠."
"아···. 이 아저씨 좀 이상해. 멍하게 서 있기만 하고."
"얼른 내려가요. 우리 화이트 키티 찾아야죠."
"앞으로 그냥 하얀 고양이라고 하면 안 될까?"
아이들과 나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내려 건다.
지하로 내려가자마자 완전히 햇빛이 차단되어 간다.
어둡고 습기가 가득한 곳.
오래된 큰 건물의 지하는 그렇게 생겨 먹었다.
꼭 그렇게 생기어서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분명 느낌만 그렇다는 거다.
"아저씨. 이 동네 고양이들은 자꾸 사라져요."
"우리가 맛있는 거 많이 주는 데 좀 있으면 사라져요."
"이번에도 화이트 헬로키티에게 일주일 정도 밥도 주고 했는데···. 오늘 이렇게 또 사라졌어요."
아이들은 시끌시끌하며 내 뒤를 따라오고 있다.
하긴 이렇게 아이들이라도 없었으면 이 지하실이 무서웠을 것이다.
소풍 가는 기분으로 아이들과 같이 가고 있어서 아무런 두려움 없이 걸어 나갈 수 있다.
좀 더 지나가니 퉁퉁거리는 소리가 난다.
보통 도둑고양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
습기가 있고.
소리가 있고.
어둡고 거기다가 따스한 온기가 있는 곳.
스르륵.
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이 보통 이런 오래된 아파트에서는 지하의 보일러실이다.
댓글과 추천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추천이 많아야 글이 잘 써져요..
- 작가의말
3월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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