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안 나이트 #03-처용무와 황금보검
자살하려던 남자. 그는 새로운 길을 걷게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카페로 들어간다.
아무리 여기가 신라의 고대 유물 지역이라고 해도.
카페까지 이렇게 고풍스러움이 가득하다니···.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종업원이 다가와서 주문을 물어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2잔 하구요. 사장님께 아랍인 때문에 왔다고 전해줘요."
"아. 네.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종업원은 친절하게 마실 물을 가져다주며 웃었다.
물은 셀프인 곳도 많은 데..
물을 가져다 주는 걸보니 커피가 꽤 비싼 곳인가보다.
잠시 후 사장님이 커피를 가지고 나타나셨다.
"그분들이시군요. 아랍인을 찾는다는···."
사장은 우리에게 커피를 놓아주고는 옆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제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보라기보다는 경주가 좀 좁다 보니···."
사장님은 되게 젊어 보였다.
30대 중반 정도 되는 예술가 타잎.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워요. 아랍인들은 뭔가 다르거든요."
"그렇긴 하죠. 다른 외국인과 다른 포스가 있죠."
"더군다나 그분들은 좀 더 포스가 있었어요. 들어오면서부터 뭐랄까. 그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고 있는 물건부터···."
사장님은 약간 눈이 커지면서 그때 기억을 떠올리는 듯했다.
"가방이···. 구찌였는데요. 한정판이었어요. 근데 거기 막 먼지가 묻어도 굳이 털지 않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고 다니는 가방이거든요. 적어도 5000만 원짜리 정도 백인데도 그냥 들고 와서 턱하고 바닥에 놓더라고요. 거기서부터 전 오금이 저려서요."
아는 사람만 아는 것.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 있다.
비가 오면 내가 비를 맞고 우산을 백에 씌우는 게 정상이라고들 하던데.
"으아. 구찌 한정판을 바닥에 놓았다고요?"
"네. 그러더니 거기서 구찌 한정 지갑을 꺼내서 계산하셨어요. 커피를 마시고 나서 잘 먹었다며 팁도 주시고."
"호텔도 아닌데 팁을 주셨군요."
"네. 1000달러 정도 주시더라고요. 수표로 끊으려고 하시다가 갑자기 그냥 현금으로 줬어요. 자신의 신분이 들키면 안 되니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 마셨다.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팁을 주려고 하다니···.
"외국인들은 팁을 주긴 하시는데 그렇게 수표로 끊으려는 분은 처음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분들 정확히 기억해요."
"남자분과 여자분이셨을 테고···."
그 사장님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손사래를 치며 이야기한다.
"아닌데. 남자분들이었는데요. 여자분은 안 계시고 남자들 2분이셨어요."
연희가 깜짝 놀라며 다시 물었다.
"둘은 연인관계라고 들었는데?"
사장님은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러고는 손바닥을 탁하고 쳤다.
"아! 그랬구나. 왠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서로 머리도 쓰다듬고 손도 만지고 하면서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참 친한 친구들인가보다 했는데···. 이제 이해가 되네요. 연인관계라고 하니까."
우리는 또 한 번 우리의 무지를 깨달았다.
할머니도 말씀하실 때 분명히 아랍인들을 찾아달라고 했었다.
여자와 남자를 찾아달라고 한 거 아니었는데···.
연인관계라고 알고 있었을 뿐.
그 순간 우린 남녀일 그것으로 생각했을뿐.
"연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오래 살았으니 좀 더 이해가 빠르겠네."
"아뇨. 더 이해가 안 되네요. 이란의 왕자가 남자와 사귄다니···. 아랍권 사람들이 그런 관계라는 건···. 이게 더 이상한 일인 거죠."
"이상하다기보다는 문화적으로 좀 더 복잡한 일이라는 거겠지."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란의 적통 왕자가 남자 애인과 한국에 왔다니.
그림이 좀 더 이상해졌지만.
그렇다고 크게 다른 그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이 어디로 간다고 하던가요?"
나의 질문에 사장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저에게는 국립 경주 박물관에 간다고 했어요. 뭐라더라···. 무슨 보검을 보러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처용무를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었어요."
"처용무. 그건 그냥 춤과 이야기로 알고 있는데 그걸 굳이 이란 왕자가 왜?"
나의 질문에 사장님도 고개를 갸우뚱하신다..
"보통 여기오면 박물관은 가시긴 하는데 처용무를 찾는 사람은 또 처음이었네요. 저도 잘 몰라고 모른다고 했다니 알겠다면서 나가셨어요."
연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음. 그럼 우리가 갈 곳은 정해졌네요. 고도리 선생님. 한 번 가 보시죠. 그들이 뭘 보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거기 CCTV에서 확인 가능할 거 같네요."
사장님은 우리 커피를 다시 수거해가셨다.
"이거 테이크 아웃 잔에 다시 드릴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감사합니다."
친절한 사장님이시다.
그러니 이렇게 나름 유명한 카페를 하고 계신 것 같았다.
일단 남자 2명.
그리고 그들은 연인관계로 추정.
(아닐 수도 있다. 뭘 숨기기 위해 그럴 수도 있으니···.)
그들은 경주에 와서 커피를 마시고.
처용무와 무슨 보검을 볼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경주 국립 박물관에 가면 그들이 보고 싶어 했던 것 중 무슨 보검을 볼 수 있다.
왜 그걸 보려고 할까는 일단 가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테이크 아웃 잔에 다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넣어주신 사장님께 인사하고 나왔다.
"담배 한 대 피우고 가자."
"그래요. 아저씨."
연희와 나는 구석진 곳의 흡연 장소로 가서 커피와 함께 담배를 피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말보로.
세상에 둘도 없는 환상 궁합이었다.
이란 왕자와 이스라엘 연인처럼.
****
국립 경주 박물관.
지방에 있는 건물치고는 매우 크고 예쁘다.
그리고 사람들도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있다.
"보통 박물관은 잘 안 오는데···."
"미국에선 여행 가면 박물관 자주 가요. 박물관을 먼저 한 번 둘러봐야 그 지역의 역사와 전통이 이해가 되거든요."
연희는 박물관으로 들어가면서 이야기한다.
"그렇네. 그게 맞는 거긴 한데···."
"미국인들이나 외국인들은 보통 꼭 박물관은 가 보더라고요."
그러게.
우리는 보통 그 나라의 먹거리나 먹으러 가곤 한다.
박물관 가자고 하면 좀 싫어하는 편이다.
그냥 맛있는 거나 먹지 하면서.
고도리 선생은 살짝 반성했다.
다음부터는 어디 여행 가면 무조건 그곳의 박물관부터 한 번 보고.
그곳의 역사와 전통을 확인해야겠다고 느끼는 고도리 선생이었다.
어두운 곳을 들어가서.
이왕에 온 거 이것저것 둘러 보기 시작했다.
"교과서에서 본 그림과 다르게 신라 유물은 되게 유리 공예품이 많네."
"그러게요. 아저씨. 그리고 굉장히 세련된 유물들이군요. 그냥 쇠나 금붙이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거 아마 수입품인 것 같아. 우리는 이런 유리나 귀한 보석 같은 걸 사용하기 힘든 나라잖아. 그렇게 많이 생산되지도 않고."
아름다운 물건들이 가득했다.
초기의 물건들은 그냥 우리가 알던 그 정도 수준이었지만.
후기로 갈수록 화려하고 아름답다.
역사를 생각해보니 당나라와 교류도 많았고.
천문에도 관심이 많았다는 것들이 기억났다.
신라는 고려나 조선보다 훨씬 해외로의 개방성이 있어 보였다.
고려나 조선의 유물은 국립 중앙 박물관이나 각종 책에서 봤는데···.
이런 신라의 말기 유물들은 눈으로 보니 놀라웠다.
지금 세공한다고 해도 이 정도 하기 어려울 것 같은 물건들이 많았다.
"와. 이거 유럽이 따로 없네요."
"이 먼 나라까지 이런 세공품들이 전해지다니···. 대단하네."
둘은 하나의 유물 앞에 멈춰 섰다.
"이거네. 예쁘다."
연희가 바짝 붙어서 멍한 눈으로 바라본다.
[ 보물 제635호. 문화재청의 정식 명칭은 '경주 계림로 보검' ]
"이걸 보기 위해 온 거라고? 이란 왕자가 그의 연인과 함께?"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는 거잖아요."
"응.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물건인 것 같아. 너무 멋진데?"
어릴 때 봤던 아라비안나이트가 떠올랐다,
거기 왕자들이 꺼내던 단검들.
화려한 보석이 박혀있는 비싸 보이는 단검.
이걸 경주의 박물관에서.
신라 시대 유물로 만나게 된다니···.
고도리 선생은 놀라움에 그 단검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아저씨. 처용가에 관한 이야기도 있어요."
"응? 처용가? 아 그 사람들 처용무도 보고 싶다고 했었지?"
연희는 글자들이 잔뜩 적힌 것을 읽고 있었다.
"이거 봐요. 처용가의 주인공 처용에 대한 설명인데···. 신기한데요?"
"그러네. 이런 걸 읽어본 적이 없는데···. 읽어보니 신기하네."
[ 879년 왕이 행차하여 울산 개운포(開雲浦 : 현재 울산화학공단과 온산화학공단 사이 외황강 하구 지역)에 이르렀을 때, 이상한 생김새와 괴이한 의복을 입은 용왕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처용이라는 자가 왕 앞에 나타나 노래하고 춤추며, 왕을 따라 서라벌까지 왔다.
처용은 급간이라는 벼슬을 받고, 달밤이면 나가 춤추고 노래 하다가, 마침내는 그 행방을 감추어 버렸다.《악부(樂府)》에 그의 춤이 “처용무”(處容舞) 또는 “상염무”(想髥舞)라고 전해지고 있다.1505년 조선 연산군 때는 내관 김처선이 처형당한 것을 연유로, 공문서를 비롯한 모든 문서에서 “처(處)”자 사용을 엄금하여 이때는 처용을 풍두(豊頭)라고 하였다. ]
"처용이라는 사람. 외국인이구나."
"혹시 이 사람이 아랍인이었을까요?"
연희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란의 왕족. 그의 혈통에 대한 어떤 것을 찾고 있는 건가···."
"아저씨. 21세기에 그게 무슨 필요가 있을까요?"
"숨겨진 왕족의 왕이 되기 위한 어떤 과정일 수도 있지. 밀교 같은 것일 수도 있잖아."
고도리 선생은 머릿속을 완전가동하기 시작했다.
"연희야. 혹시 괜찮으면 전문가가 필요할 거 같은데?"
"에이. 여기가 어디예요?"
"경주잖아. 그리고 국립 경주 박물관?"
연희는 웃으면서 내 어깨를 툭 친다.
"여기야말로 전문가가 계시는 곳이죠. 가시죠. 해설자를 찾아서 해설을 부탁드립시다."
연희와 나는 로비 쪽으로 나갔다.
해설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도우미가 서 있었다.
빙고.
그래 모르면 사람 불러야지.
그건 만고 불변의 법칙이다···. 모르면 사람 불러야 한다.···.
국립경주박물관의 계림로 14호분 황금보검의 사진
댓글과 추천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추천이 많아야 글이 잘 써져요..
- 작가의말
남자분 2분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원래대로 밤 10시에 올리는걸로..
낮에 올리려니 미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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