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달걀동자 아저씨 #09. 기회
자살하려던 남자. 그는 새로운 길을 걷게된다.
#09 기회
--- 지난 이야기 간단 요약 ---
부산에서 사고치고 할머니 죽어서 서울로 올라온 고지안.
서울 룸살롱 자전거에서 이제 자리 잡기 시작한다.
고지안에게 술접대를 하라는 가득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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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고지안은 당황했다.
어린 남자를 좋아한다는 말에.
그는 사장에게 되물었다.
“뭐가 ‘네?’인거냐? 임마.”
“그러니까. 제가 경찰서장을 모시라니요?”
“들어가서 술도 따르고···.”
사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지안에게 이야기한다.
“...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지안아.”
“네. 사장님.”
“너 여기 와서 일 시켜달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사장은 담배를 하나 꺼내물었다.
천천히 담배에 불을 붙인다.
몸을 소파로 걸치며.
다리를 꼬았다.
‘뭔가 거짓말 하려나 보구나.’
“별거 아냐. 그냥 들어가서 술 따라주고 필요하면 노래도 한번 하고 그러는 거야.”
“한 번도 안 한 일인 데다가. 그건 그냥 저희 가게 여성 접대부가 있지 않습니까?”
“사람마다 취향이라는 게 있어.”
후우-
담배 연기가 매캐하게.
고지안의 코를 찌른다.
“쿨럭. 쿨럭.”
“아. 이 새끼는 양아치처럼 살면서 담배 연기에는 약해가 지곤···.”
사장은 고개를 돌려 연기를 내뿜는다.
그래도 그나마 예의 있는 행동.
“지안아.”
“네. 사장님.”
“칼로 사람을 찔러 죽여봤냐?”
두근.
가득염 사장의 말에.
지안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수도 없이 꿈꿔봤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인 놈들.
아니. 그 작당한 놈들까지.
죽이는 꿈.
그 꿈 하나로 여기 서있는 지안.
하지만.
그는 누굴 죽이거나.
찔러본 적은 없다.
“콤파스로 까부는 새끼 한번 찔러봤습니다.”
“크크크. 그래. 네 나이 치고는 강한 경험이었네.”
“한 새끼 발목도 분질러봤습니다.”
지안은 차분하지만.
뜨거운 마음으로 이야기했다.
“칼로 사람을 찌르는 건 말이다.”
후우-
담배연기가 왼쪽 구석으로 흘러간다.
“그런거 하고는 달라. 누군가를 죽이려고 하는 거니까. 넌 죽이지 않고 해결하려고 한 거잖아.”
“네. 맞습니다.”
“누군가를 죽이는 건 말이야. 그 칼로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찔러야 하거든.”
후우-
가득염 사장은 피우던 담배를 비벼끈다.
“손에 느껴지는 묵직함. 그 새끼의 눈을 보면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봐야 하고···.”
“...네. 사장님.”
“무엇보다 제일 더러운 건. 그 새끼의 피가 내 손에 튀길 때의 그 따뜻함이지.”
“그렇습니까?”
“응. 그 피가 내 몸에 닿으면 너무 따뜻해. 그게 제일 날 흥분시킨단 말이야.”
“왜 그런 이야기를···.”
가득염 사장은 일어서서.
지안의 어깨를 잡았다.
“난 그렇게 이 자리로 올라왔다. 몇 명이 내 칼에 찔려서 따뜻한 피를 내 손에 뿌렸는지 모르지?”
담배 냄새.
가득염 사장의 몸에선.
담배 냄새가 풀풀 풍긴다.
역겹다. 이 새끼.
“그런 마음으로 너도 일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이 세계에선 너 배에 칼이 들어오게 되는 거야.”
협박인가?
아니다.
협박을 이렇게 길게 할 필요는 없다.
이건 “설득”이다.
그는 지안을 설득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건 그래도 사장이 고지안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이번 일 하고 나면 한 열흘 휴가 줄 테니. 할머니 묘에도 다녀오고 친구도 보고 와라.”
툭.
가득염은 고지안의 어깨를 한번 치고.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간다.
“윤 실장! 차 준비해.”
“네. 형님.”
“아. 이 새끼는 진짜······.”
“죄송합니다. 사장님.”
“형님이라고 좀 하지 마. 우리가 양아치냐?”
“죄송합니다. 형···. 아니 사장님.”
그렇게.
그들이 이야기하면서 나가는 동안.
고지안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시발. 진짜 x 같네.’
알고는 있었다.
여기서 있는 이상.
언젠가는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것을.
‘시발. 차라리 한 새끼를 죽이라고 하지···.’
고지안은 주먹을 쥐고.
사장이 앉아있던 자리를 노려본다.
‘너를 포함해서. 이 새끼야.’
가득염.
지안은 알고 있다.
자신의 아버지를 뒤통수친 새끼가 누구인지.
여기 와서.
다 퇴근하고 나서도.
숨겨진 열쇠들을 찾았었다.
가득염 사장의 수첩.
가끔 술을 많이 먹고 두고 가는 그 수첩.
거기에 적혀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주었던 뒷돈.
그 뒷돈이 어떻게 흘러서.
아버지에게 칼날로 돌아왔는지.
그걸 상상하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
그 상상이 현실화하여갈수록.
거기에 가담한 놈들은 구체화 되었다.
죽여야 할 녀석은 4명.
현재까지 얼굴을 본 사람은 2명이다.
가득염.
지만호.
어쩌면 윤 실장까지.
마음속의 분노를 숨기기 위하여.
얼마나 거울을 보고 연습했는지 모른다.
마음을 숨기는 연습.
고지안은 매일 밤 연습했다.
그 뜨거운 마음을 숨기는 차가운 목소리.
복수의 눈빛을 숨기는 절망한 표정.
영화배우가 될 듯이.
철저하게 연습했다.
‘아직은 아니다. 시간이 필요해.’
고지 안의 계획대로라면.
나머지 2명을 확인하고.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모두 죽여버려야 한다.
만약 지체되면.
그들이 가진 힘과 재력으로.
날 막을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들의 체인이 느슨해지는 그 순간을.
그 순간을 기다리기 위해.
지안은 그들에게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래. 너희들의 목숨값. 내가 천천히 적립시켜놓을게.’
고지안은 눈을 한번 감았다.
이 복수는 아버지를 위해서도.
어머니를 위해서도 아니다.
이 복수를 하지 않으면.
인간으로서의 가치.
고지안의 가치.
자신의 가치.
그것을 온전하게 유지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빨에 낀 음식.
그걸 남겨두면 언젠가 이빨은 썩을 테니까.
내가 나로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이빨에 낀 음식들을 다 빼야만 한다.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보며.
그는 그렇게 결심했다.
고지안은 길게 한숨 쉬었다.
그는 피식하고 웃었다.
‘별짓을 다 해야 하는구나. 역시 남들의 목숨값은 이렇게 비싸고 귀한 건데 말이야.’
고지안은 바깥으로 나갔다.
“실장님. 1시간만 달리고 올게요.”
고지안은 실장에 빙긋 웃으며 말했다.
윤실장도 알고 있다.
오늘 밤 고지안이 겪어야 하는 일.
“지안아. 여기···.”
윤 실장은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하나 꺼냈다.
“돌아올 때 나 햄버거 하나만 사주라.”
“네. 알겠습니다.”
“잔돈은 가져올 필요 없어.”
괜히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다.
음료수 하나 사 먹으라고 돈 주기 껄끄러워서.
윤 실장은 그런 사람이니까.
“아 참. 남는 돈은 음료수나 하나 사 먹어. 맥주 마시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실장님. 게토레이 사 마실게요.”
“그래. 천천히 돌다가 와. 아직 오픈까지 2시간 넘게 남았으니까.”
윤 실장은 침을 퉤 하고 뱉으면서.
다시 자전거 안으로 들어간다.
“감사합니다. 형님.”
고지안은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윤 실장은 한 손을 들고.
“알았어. 임마.”
아마 기분 좋은 표정일 것이다.
돌아보지 않고 내려가고 있긴 하지만.
윤 실장이 들어가는 내내.
난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고 있었다.
************
작은 공원 벤치.
시안은 벤치에 앉았다.
게토레이를 마시면서 송골송골 맺힌 땀을 바람에 식히고 있었다.
“박충덕.”
조용히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
쉬익-
실제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살짝 등골이 차가운 느낌이 든다.
그게 나타난 것이다.
“아이고. 불러주시다니요.”
가운데가 대머리.
그리고 양옆으로 머리가 나 있는 아저씨 귀신.
지안의 벤치 옆자리에 앉았다.
“뭐야? 다리 아파?”
“아뇨. 귀신이 무슨···.”
“근데 굳이 왜 앉아?”
“이게 습관이 말입니다.”
“하긴 그렇겠다.”
“마지막에 죽을 때 노숙 생활하다 얼어죽···. 아닙니다.”
“얼어 죽은 거야?”
“...네.”
박충덕은 눈물이 글썽거리는 것 같았다.
“자. 이거 마셔.”
“네?”
“귀신은 뭘 못 먹나?”
“아뇨. 먹을 수 있어요.”
제사를 지낼 때처럼.
내 눈엔 귀신이 햄버거를 먹는 모습이 보인다.
“이게 뭡니까?”
“그거 햄버거야.”
“와. 되게 맛있는데요?”
“응. 콜라도 먹어. 같이 먹어야 맛있지.”
귀신이 음식을 먹더라도.
그 음식은 그냥 남아있다.
어차피.
윤 실장을 줄 것이니까.
‘음덕이라도 하시게 해야겠다.’
지안은.
그가 맛있게 햄버거를 먹는 걸 지켜본다.
“너 여기 경찰서장 새로 온다는 거 알아?”
“네. 이야기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래?”
햄버거를 먹던 충덕은 지안을 쳐다본다.
“궁금하십니까?”
“응. 그렇지.”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되는데···.”
“응. 그거 햄버거 먹었으니 될 거야. 이야기해봐.”
박충덕은 깜짝 놀라서.
지안을 쳐다본다.
“아니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우리 할머니가 무당이잖아. 바보야.”
“아. 맞다. 귀신이 음식 먹으면 소원 들어주는 거 아시는구나···.”
박충덕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이야기해주기로 했다.
잠시 뭔가.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박충덕 귀신.
‘귀신들끼리 교감하고 있는 건가?’
할머니가 그랬다.
몇 시간을 가만히 앉아서.
그렇게 계시곤 했다.
“할머니 뭐해요?”
“운기조식 중이야.”
“조식? 아침 먹는 건가?”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그 사람 어린 남자아이들을 좋아해요.”
“알아.”
“얼마 전까지 부산에 있었네.”
“그것도 알아.”
“그럼 왜 물어봐요?”
충덕 귀신은 약간 배알이 꼴렸나보다.
지안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어디 보자···.”
“뭐 하세요? 지금?”
“응. 반짝이는 쇠붙이 찾고 있어.”
“네?”
“귀신을 죽이려면 필요하다면서?”
충덕 귀신은 눈이 반짝인다.
지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닙니다. 기다려보십시오. 지안님.”
“응. 그래. 빨리 찾아야 할 거야.”
지안은 햄버거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더 식기 전에 가야 하거든.”
“알겠습니다. 충성!”
집중하는 표정,
심상치 않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휘잉-
살짝 바람 같은 게 불었다.
충덕 귀신의 몸에서 나온 바람.
뼈까지 시린 느낌이다.
‘이거구나. 가끔 이해 못 했던 그 이상하게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지안이 생각하던 차에.
충덕은 눈을 떴다.
“아내는 죽었어요. 얼마 전에···. 그리고 딸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이번에 대학에 입학한 친구네요.”
“나보다 한 살 많구나.”
“강남으로 와서 돈을 많이 벌어서 해외로 도망갈 생각인가 봅니다.”
“그래?”
“이미 일본 쪽에 집도 사두었어요. 얼마 전에 서울 올라오면서 산 것 같네요. 부산 집 팔고···. 어? 어디서 돈을 받았는데···.”
“어디서 돈을 받은 거야?”
“검찰 쪽 누군가와 손잡고 일본 야쿠자들에게 돈을 받았습니다.”
“일본 야쿠자?”
“이런. 지안님.”
박충덕 귀신이 깜짝 놀라며 날 바라본다.
“얼른 거기서 나오세요.”
“무슨 말이야?”
“자전거 말입니다! 거기 내일 일본 야쿠자들이 치러 온다고 하는데요?”
박충덕은 거기까지 말하더니.
갑자기 얼굴이 핼쑥해진다..
“뭐야? 너?”
“전 귀력(鬼力)이 다했습니다.”
“더는 알아볼 수가···.”
박충덕 귀신은 입에서.
하얀 김을 토하기 시작했다.
“불···. 가능합니다.”
“약해빠진 새끼구먼.”
“헤헷···. 죄송합니다. 전 이거 감자튀김 좀 먹고···.”
그는 감자튀김을 먹었다.
미친 듯이 우적거리면서.
“죄송한데 저 어두운 곳에 좀 숨어서 운기조식을···.”
“뭐야? 운기조식이라니. 다들 무공수련자들인가?”
“무공이나 우리 귀력이나 비슷비슷합니다. 다 몸속의 힘 같은 거니까.”
귀신마다 능력도 다르고.
그 체력이나 힘도 다르다.
이 녀석은 약골 귀신이다.
“그래. 가서 쉬어라. 당분간 안 부를 테니···.”
“더 정보도 없습니다. 그게 마지막 정보입니다.”
“고맙다. 충덕.”
그 말에 충덕 귀신이 날 바라본다.
눈이 물이 가득 차서.
글썽거리더니 뚝뚝 눈물을 흘린다.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흑흑.”
“알았으니. 얼른 꺼져.”
충덕은 사라졌다.
“넌 이제부터 눈물의 곡절이다. 이 자식아.”
지안은 벌떡 일어났다.
내일이라고?
‘여기 자전거에 야쿠쟈들이 습격한다고.?’
지안은 햄버거를 들고.
자전거를 향했다.
‘어차피. 내 말을 믿지도 않을 거다.’
지안은 걸어가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원래부터 작살내려고 했던.
자전거와 사람들.
‘나에게 찬스가 온 것일지도 몰라. 그 검사 지만호가 배신한 것일 테고···.’
지만호는 야쿠자에게 붙었다.
경찰서장도 야쿠자에게 붙었다.
이번 피바람으로.
잘리게 될 경우.
도망갈 일본의 집까지 사둔 상태.
내 손을 대지 않고.
윤 실장과 가득염을 분위기 봐서 날릴 수 있다.
거기다가.
그들의 복수를 핑계로 지만호 검사까지 날릴 수 있다.
나머지 2명.
그걸 알 수 없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언젠가 찾아내면 되는 거니까.
‘이번이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고지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흐름이 보인다.
고지안은 자전거 앞에 섰다.
피식.
어린 나이지만.
세상의 풍파를 이미 겪을 만큼 겪은 애어른.
그에게 웃음이 난다.
“시발. 개새끼들. 배신과 배신의 연속이구나.”
댓글과 추천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추천이 많아야 글이 잘 써져요..
- 작가의말
쓰고싶을 때 쓰는 거라서.
그런데 그러다보니.나름 이야기는 잘 만들어지네요.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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