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문#21 원망하지마.
자살하려던 남자. 그는 새로운 길을 걷게된다.
"같..같이 자는건가요?"
"난 씻을건데..넌?"
고도리 선생은 거북이를 다시 네모난 투명 어항에 넣었다. 거북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인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돌아다니다 잠들었다. 집이란 거북이에게도 그런 것이다.
아니 불가사리에게도 그런 것이다.
"냉장고 콜라랑 커피 있어. 마실거면 마시고."
"여기서 같이 자는거란 거죠?"
"같이 자는 건 아니지. 난 내 자리에서 잘거고.. 넌 저 구석에서 자면 되잖아."
마이클 창은 묘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뭐야. 걱정하지마. 미친놈 아니니까...코는 좀 골지도 모르겠다. 피곤해서."
난 샤워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마이클 창은 구석에서 뻗어서 자고 있었다.
생각보다 성격은 좋은가보네 하면서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내 자리에서 잠들었다.
****
아침이 밝았다.
언제나처럼 점집의 청소를 하기 위해서 마당을 쓸고 있는 동안 마이클 창은 계단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마당을 다 쓸고 나서 허리를 길게 펴며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고도리 선생님"
"왜? "
난 쓸어모은 쓰레기를 담아 쓰레기 통에 버리다 말고 그를 쳐다본다. 마이클 창은 나름 푹 잔 탓인지 푸석해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피고한 기색은 없다. 젊다는 건 참 좋은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 능력자가 왜 이런 일을 해요?"
"뭔 개소리야. 돈벌려면 일해야지."
"네?"
"돈 벌려면 일해야한다는거 모르니? 난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난 다시 걸레를 빨아 들고 손 소독제를 뿌린 다음 정문을 닦기 시작했다. 천천히 조심스레 정문을 반짝거릴 정도로 깨끗하게 청소하고 있는 사이 마이클 창은 계속 날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근데 제가 안 도와드려도 되나요?"
"뭔 소리야. 넌 손님이잖아. 그냥 하고 싶은 것 해.그리고 시차 적응도 안 되서 피곤할텐데 괜찮냐?"
"네. 그런건 괜찮아요. 고향은 안 가지만 동남아도 놀려 갔다 오곤 하니까."
"고향이 어디야?"
"홍콩이에요. 실제 태어난 곳은 대만이고."
"그렇구나. 고생했겠네..."
솔직히 별스런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외지 생활이라는 게 그리 쉬운건 아니니까. 이미 나도 충분히 경험해보기도 했고 해서 그렇게 던졌다.
"그 새끼가 우리 엄마 아빠를 먹어치우는 걸 보면서 트라우마가 생겨서 그 곳 근처로는 가지도 않지만 이렇게 한국에 오게 될지는 몰랐어요."
난 청소를 하다말고 잠시 그를 쳐더봤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 녀석도 슬픔의 중간에서 누구도 상상못 할 무시무시한 일을 겪은 녀석이라는 걸. 그리고 이런 녀석들은 꼭 누군가에게 그 말을 하고 싶어 한다. 똑같은 이야기를 몇 번씩 들어야하는 것만큼 싫은 일은 없음에도 말하지 말라고 하기에는 또 그 무게감이라는 게 있으니 그러기도 어렵다.
"그래서 넌 어떻게 살았는데?"
"도망가고 싶어서 홍콩 항구로 도망왔어요. 그리고 거기에 커다란 콘테이너에 USA라고 적혀있는걸 찾아서 숨어있었죠. 전 숨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잡히지 않으니까."
그는 자기 옆에 서 있는 유니콘을 보며 이야기했다. 유니콘의 1차 능력은 분명 보이지 않게 해주는 능력이다. 그것만으로도 저 녀석은 분명 미국에서도 존나 편하게 살았을 것이다. 범죄의 나라 미국에서 저 능력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잘 먹고 살 수 있으니까.
"그래도 유니콘 덕분에 편하겐 살았을거 아냐. 기분은 더럽고 범죄에 연류가 될지는 몰라도 적어도 힘들고 배고프게 살진 않았을거니까."
"사람은요. 아무리 배부르고 누군가 위에 군림한다고 하더라도...그게 옳지 않다면 언제나 살얼음판 위에 서 있는 그런 기분이더라구요. 더군다나 그 부모님의 일에 대한 공포감은 밤마다 날 괴롭혔으니까. 그래서 마약쪽으로 손대기 시작한거에요."
"고생했네."
어느 새 문은 반짝이면서 청소가 완료되었다.
"여기요."
마이클 창은 가지고 있던 커피 캔을 나에게 던졌다. 나는 그것을 받아 캔을 따고 담배를 한 대 꺼내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난 단련했어요. 칼 하나를 사서 유니콘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했죠. 총보다는 칼로 그 녀석을 죽이고 싶었어요. 칼로 하나하나 세포들을 다 찢어 발기고 싶었죠. 더군다나 제 신체의 능력도 이 녀석이 부스터로 업해주니까. "
"솔직히 말해도 되니?"
난 마이클 창을 쳐다봤다.
"넌 이무기에게 걸리면 세포까지 찢겨 죽어. 그리고 피를 빼앗기게 될거야. 그냥 지금처럼 누군가를 도와주는 역할로 더 맞는 것 같아. 기분 나빠하지마. 진실은 언제나 귀와 마음에 쓴 맛을 안겨주니까."
나는 담배연기를 길게 뿜으며 마이클 창의 옆자리에 앉았다. 마이클 창은 슬쩍 옆으로 앉으며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뭘 이렇게 자리를 만들어. 그냥 옆에 자리가 널널한데.."
"하하. 그러네요. 이런것도 습관인거 같네. 내 친구들은 자꾸 내 옆에 붙어서 앉으려고 해서 전 그게 싫어서 이렇게 옆으로 비키는 습관이 있어요."
"친구가 옆에 앉는게 어때서?"
"몰라요. 그 친구가 내 비밀을 알게 될까봐. 유니콘의 능력으로 내가 이렇게 싸움도 잘하고 일을 잘 하다는 걸 들키기 싫었어요. 그냥 내 능력으로 속이고 인정받고 싶었으니까. 뭐랄까. 좀 병신 같지만 그랬어요. 꿀리기 싫더라구요."
"음. 그건 이해가 되네. 가끔 나도 이 능력이 내 것인것 처럼 느낄 때가 있어.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이야기하지만...그래도 뭐 어쩔수 없는거더라구. 그게 인간이 가진 얄팍함일수도 있지만 반대로 인간만이 가진 자기 방어 능력 같은 것 이기도 하고..."
마이클 창은 나를 쳐다본다.
"가끔 고도리 선생은 졸라 똑똑한 것 같아요. 일반 사람에 불과한데 말이죠."
"난 사업이란 걸 했어. 남들이 대충 일하고 놀때 난 죽을만큼 일했거든. 그리고 어떻게든 굷어죽지 않으려면 바둥거렷단 말야. 너처럼 누군가가 날 부스터 해주지 못하니까. 그때 읽고 보고 배웠던 것들이 지금 이 능력과 함쳐지면서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우리 부모님이 살아 계셨다면 그 분들도 고도리 선생님처럼 나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며 살았겟다."
마이클 창은 눈이 촉촉해진다.
'이 새끼. 확실히 트라우마 덩어리구나.'
"그 트라우마 지금의 너를 있게 해준거야. 그래도 나쁜 짓도 하고 남의 눈알을 빼기도 하지만 뭐. 세상 살려면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인생도 있으니까."
"이제 그렇게 살 생각 없어요. 만약 이번 일이 끝나면 사죄하는 마음으로 좋은 일이나 좀 하면서 살까해요. 대니 밀스 옆에 있어도 되냐고 물어볼거에요. 된다고 하면 대니 밀스와 세상 좋은 일들을 만들어가볼까하는 마음이거든요."
마이클 창은 웃었다. 한 없이 좋아보이는 웃음이었다.
"응. 좋네. 대니 밀스 녀석 정도면 충분히 좋은 녀석이니까. 평생 스스로의 죄를 가슴 속에 담고 좋은 일하며 살어."
"네. 그럴려구요."
"죄를 짓고 벌을 받지 않으면 말야. 그 죄는 더 무거워지고 나중엔 그 무게에 깔려 버리게 되는 거니까. 나도 벌을 받아야 할 일이 많았거든. "
월급을 안줘서 힘들었을 직원들.빌린 돈을 못 갚아서 미안한 다른회사의 사장들을 비롯해서 은행과 각종 관계기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결국 모두가 나의 선택이고 능력 부족이었는데 그 세상을 원망했던 그 때가 생각났다.
"난 그 죄를 내가 지은 게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은 하면서 세뇌하며 살았던 것 같네. 어쩌면 내가 가진 가장 큰 죄는 스스로를 속인 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야."
마이클 창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정말 스스로에게 한 말이었다.
그 때 본당에서 연희의 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 할머니!! 왜 이러세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뭐야. 이런 시발. 난 마이클 창의 손을 꼭 잡았다. 연희의 목소리가 완전 다급하게 느껴졌다. 할머니에게 뭔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일단 내 손 잡아."
마이클 창은 내 손을 꽉 잡았다.
슈숙.
우리 둘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바람처럼.
댓글과 추천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추천이 많아야 글이 잘 써져요..
- 작가의말
그렇습니다.
죄 짓고 살지마세요.
다 우리 자신의 잘못입니다. 원망하지 맙시다.
세상이 아무리 X같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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