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훈 7
천명은 정창훈의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또 많은 얘기를 했다.
정창훈에 대해서 알아갈수록 천명은 왜 간첩이 되어야 했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너 왜 간첩이 됐니?’ 하고 물을 수도 없고.
천명이 정창훈에게 어릴 때 사진 있으면 보여 달라고 했다.
정창훈은 방으로 들어가서 앨범과 사진들을 꺼내왔다.
앨범은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앨범이었다.
학생 때도 여자보다 더 예쁜 얼굴이었다.
짧은 머리의 정창훈은 보이시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성인의 사진에서는 여장을 한 사진도 있고 남장을 한 사진도 있었다.
일부러 변장을 하지 않고 찍은 사진이라서 이목구비가 정창훈의 얼굴이다.
회사 다닐 때 찍은 사진에는 정장차림이었는데 여자가 양복을 입은 모습처럼 보였다.
뭘 입어도, 뭘 해도, 여자처럼 보이니 많이 속상했었을 것 같았다.
천명은 사업얘기를 하지 말자고 했지만 조심스럽게 꺼내보기로 했다.
“사업은 잘 돼요?”
“응. 생각보다는 잘 돼.”
“그럼. 중국말도 잘하시겠네요?”
“중국에서 사업하는데 중국말을 못하면 안 되지.”
“저도 중국말 좀 하는데.”
“그래? 따로 중국말을 배운 거야?”
“어릴 때 저를 돌봐주시던 이모할머니가 조선족이셨어요. 그분한테 중국말을 배웠어요.”
“무성이 너 어릴 때부터 좀 사는 집 애였구나.”
“할아버지가 일으키신 사업을 아버지가 더 성장을 시키셔서 못 살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왜 보험회사에 다녀?”
“사업이 귀찮아서요. 저 원래 의예과 출신이에요.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한 의사에요. 전공의는 안 땄지만.”
“헐. 의사가 왜 보험회사를 다녀? 회사를 다니고 싶으면 아버지 회사를 다니면 되지.”
“제가 좀 평범하지 못한 사람이에요. 지금 다니는 보험회사도 얼떨결에 다녔는데 다니다보니 재미있어요.”
“그래? 확실히 평범하지는 않네. 무슨 보험이야? 하나 들어줄까?”
“아니요, 아는 사람한테는 보험 영업 안 해요. 편하게 오래 만나고 싶어서.”
“그렇구나. 넌 생각이 참 올바른 사람 같아. 그게 네 매력 인가봐. 그런데 그렇게 해서 보험을 할 수 있겠어?”
“밥 굶고 살지 않아요. 용돈도 충분하고. 그럼 됐지, 뭘 더 바라겠어요.”
“집은 어디서 살아? 혼자 살아?”
“아니요. 할아버지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아요.”
“나와서 혼자 살 생각은 안 해봤어?”
“그랬다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한테 저 죽음이에요.”
“집안 분위기가 굉장히 다정한가보다. 우리 집은 우울해. 모두 나 때문에. 내가 평범하지 못해서.”
그 말을 하는 정창훈은 우울해보였다.
생각해보니까 처음 정창훈의 집을 알게 된 것이 정창훈의 어머니 때문인데 어머니가 집을 나오면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집안에서 상처를 많이 주고받은 모양이다.
하긴 그럴만도 하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중성인데.
부모 된 입장에서는 얼마나 속이 상하시겠는가.
천명이 다시 사업얘기로 돌아가서,
“언제 중국에 가요?”
“왜? 같이 가게?”
“네. 휴가내고 저도 중국 따라가게.”
“다음 달에 가기는 하는데 여행이 아니고 사업차 가는데 뭐하려고 따라와. 혼자 호텔에서 방콕하려고? 호호홋.”
“낮에는 혼자 여행하면 되죠. 저녁에는 같이 술 마시고. 어때요? 같이 갈래요?”
“음.... 생각 좀 해보고.”
“왜 제가 방해될까봐서요?”
“응.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잖아. 그러니까 일정을 좀 살펴보고, 같이 갈 수 있으면 같이 가고 안 그러면 혼자 가고.”
천명은 사업얘기는 여기까지만.
다음에 또 하면 되니까.
벌써 새벽 5시다.
천명이 시간을 보면서 너무 늦었다고 이제 그만 집에 들어 가봐야겠다고 했다.
정창훈은 아쉬운지 물끄러미 천명을 바라본다.
천명이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다음에 또 같이 술 마시자고 달래야 했다.
다음에 또 술을 마신다고 하자 그제야 얼굴이 환해지며 자주 연락하라고 했다.
천명이 정창훈의 집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나보다.
천명이 내려가자 할아버지가,
“우리 똥강아지 밥 묵고 가야지. 그냥 갈라꼬?”
“밥은 됐고 저도 커피나 한잔 마시고 갈게요. 할아버지, 아버지 식사는 하셨어요?”
“온야. 우리는 밥 묵었다. 아즈매! 여 우리 똥강아지 커피 좀 갖다 주이소.”
할아버지가 아주머니한테 커피를 주문하신다.
천명이 얼른 식당으로 가서 커피를 받아와 거실 쇼파에 앉았다.
아버지가 천명을 행해 묻는다.
“천명이 어제 저녁에 나갔다 왔어?”
“예. 아는 친구가 술 한 잔 하자고 해서 나갔다 들어왔어요.”
“요즘 술을 자주 마시는구나.”
“그러게요. 자꾸 마실 일이 생기네요. 하하하. 아, 참. 어제 저녁에 발발이 삼촌 만났어요. 우리 술값을 계산하셨더라고요. 미안하게. 술도 많이 마셨는데. 아버지가 다음에 발발이 삼촌, 술 한 잔 사드리세요.”
“그랬어? 어디로 갔었는데?”
“아버지랑 몇 번 갔었던 르네상스 바요.”
“거기 갔었구나. 알았다. 다음에 아버지가 삼촌한테 술 한번 사지 뭐. 친구랑 갔었어?”
“네.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친구인데 지난번에 제가 얻어먹어서 어제는 제가 내려고 했는데 발발이 삼촌이 내셨어요.”
그때 할아버지가 아버지와 자신을 바라보면서,
“천명이 애비야, 우리 식구들은 우찌 그리 다들 술을 좋아하노. 그것도 말술로다. 우리 똥강아지도 술 잘 마시재?”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말술인거. 하하하.”
“느그 애비도 술을 잘 마시는데 니라꼬 못 마시겠노. 허허허.”
천명이 시계를 보고 이제 출근해야 한다고 하자,
“우리 똥강아지 오늘도 잘 댕겨온나.”
“예. 할아버지. 아버지 저 다녀오겠습니다.”
천명이 신발을 신고 집에서 나와 회사로 출근을 했다.
출근을 하니 선배님이 오늘도 벌써 출근해 계신다.
“어? 선배님. 오늘도 벌써 출근하신 거예요?”
“어제는 잘 쉬었어?”
“말도 마십시오. 어제도 오늘 새벽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오늘 잠을 한숨도 안자고 나온 겁니다.”
천명은 정창훈을 만나서 집까지 갔다 왔다고 얘기를 했다.
선배는,
“그럼 정창훈의 얼굴을 정확히 본 사람은 너 밖에 없네? 그나저나 내 너희들 그럴 줄 알았다. 술만 마시고 다른 일은 없었어?”
“헐. 선배님. 저를 어떻게 보시고.”
“어쨌든 이제 길을 잘 닦아 놨으니 자주 들리면서 정보 좀 캐봐. 가만히 보면 넌 간첩 잡는데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예전에도 한 놈 붙잡고 늘어지니까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처럼 다 딸려왔었잖아. 이번에도 잘 해봐라. 기대할게.”
“그럼 오늘은 외근 안 나가시려고요?”
“아니, 나가야지. 하루 만에 어떻게 정보를 다 캐와. 오늘도 나가서 어디를 가는지 살펴야지.”
“그럼 보고서 작성하고 나가시죠.”
“그래. 오늘은 네가 보고서 작성해라. 오늘 새벽까지 술 퍼마신 것도 다.”
“...........예. 알겠습니다.”
천명이 대답은 했지만 왠지 사생활을 다 들키는 것처럼 기분이 별로였다.
천명과 정창훈의 두 사람 얘기들이 세상에 다 까발려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일이다.
둘이 나눈 얘기까지 다 적어야 한다.
천명은 적당히 들어도 괜찮은 얘기만 적고 둘만의 얘기는 적지 않았다.
어떤 게 괜찮은 얘기고 어떤 게 둘만의 얘기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그저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의 얘기, 이를테면 정창훈을 보면서 순간순간 여자로 보였다든지 또는 여자보다 더 예쁜 얼굴이라든지 아니면 정창훈이 겪었던 학교와 군대시절의 얘기들 말이다.
천명이 선배한테 차를 바꾸자고 했다.
계속 선배님의 차로 미행, 감시를 했으니까 혹시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니 자신의 차로 가자고 했다.
선배는 그러자고 했다.
천명의 차로 정창훈의 아파트에 도착해 1012호실이 잘 보이는 곳에 차를 주차시켜놓고 기다렸다.
천명은 야구모자에 선글라스를 착용해야 했다.
정창훈이 알아볼까봐.
정창훈은 집에 있나보다.
문이 열리지 않아서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정창훈은 하루라도 술을 안마시면 잠을 못 잔다고 했다.
분명 저녁이 되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밤 12시가 다 되도록 나오지 않았다.
선배는 천명에게 이제 그만 퇴근하자고 했다.
천명이 선배의 집까지 태워다 주고 집으로 들어갔다.
방에 올라가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정창훈으로부터 전화가 들어온다.
ㅡ여보세요?
ㅡ여보세요. 나 미란이. 자고 있었어?
ㅡ이제 들어와서 막 씻고 침대에 누워있었어요. 미란씨는 안자고 뭐해요?
ㅡ술 마시고 있어. 혼자 마시니까 별로 맛이 없네. 후후.
ㅡ맥주 마시는 거예요? 아니면 양주?
ㅡ뭐 마시는지 한번 맞춰봐.
ㅡ폭탄주... 아닌가? 하하하.
ㅡ딩동댕. 맞췄어. 폭탄주를 마시고 있었어.
ㅡ몸 생각해야지 그렇게 자꾸 술을 많이 마시면 어떡해요.
ㅡ나도 술을 줄여보려고 애를 써봤는데 안 되더라. 이제는 포기했어. 부어라, 마셔라. 깔깔깔.
ㅡ밥은 먹고 마시는 거예요?
ㅡ아까 육개장 시켜서 먹었어.
ㅡ그래도 밥을 먹었다니 다행이에요. 밥도 안 먹고 술만 마셨다고 하면 화내려고 했는데. 이제 그만 마시고 얼른 자요.
ㅡ그래 이제 그만 마실게. 나도 잘래.
ㅡ잘 자요. 미란씨.
ㅡ응. 너도 잘 자.
전화를 끊고 휴대폰 속에 저장시켜 놓은 정창훈의 사진을 찾아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중국 연변의 호텔 커피숍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이 사람은 인생의 낙이 뭐가 있을까?
평양까지 가서 받아오는 지령은 뭘까?
왜 한국에서는 만족하지 못하고 북한을 선호하는 걸까?
보수주의를 따진다면 남한보다 북한이 더 폐쇄적인데.
그곳에서는 남자가 여장을 한다고 하면 무척 싫어할 텐데.
북한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도 여성호르몬 과다분비에 걸려서 가슴이 나오고 여성스러워져 승계 작업에서 탈락되어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만 봐도 북한 사회가 얼마나 보수적인지 알 수 있다.
그런 보수적인 북한에서 어떻게 정창훈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까?
그것도 김정은과 함께 사진을 찍을 만큼 가까운 사이던데.
전에 팀장님이 정창훈이 중국으로 떠난 후 집을 수색했을 때 찍어온 사진을 보았다.
김정은이 여장한 정창훈의 어깨에 손을 얹고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이었다.
어떤 일을 하면 김정은과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위험한 일은 아닌지.... 솔직히 걱정이 된다.
천명은 스스로 깜짝 놀랐다.
정창훈을 걱정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
할 수만 있다면 간첩을 그만두게 하고 싶다.
자수하여 떳떳하게 남한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다음 달, 중국 갈 때 같이 갔으면 싶다.
같이 간다는 말은 평양에 안 간다는 말이니까.
평양에 가면 며칠 있어야 한다.
연변과 평양의 노선은 관광객을 위해 4박 5일이나 5박 6일짜리 여행일정을 짜서 전세기를 띄운다.
그래서 한번 평양에 가면 최소 4~5일은 있어야 온다.
그동안 혼자 놔두고 평양에 가지는 않으리라.
다음 달, 중국에 혼자 간다면 이번에도 평양을 가는 것이고 같이 간다면 중국에서 사업상의 일만 처리할 것이고.
천명은 왜 자신이 정창훈을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여자로 보여서 좋아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순간순간 설렌 적은 있었지만 그건 너무 예뻐서 그런 것이고 마음을 주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아니라고 하면서 나는 정창훈을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닐까?
두렵다.
좋아하게 될까봐.
인생을 망칠만큼 가치가 있을까 생각하면 모르겠다.
이제는 같이 술을 마시지 말자고 다짐해보지만 자신은 없다.
그러나 가까이 하지 않으면 어떻게 정창훈을 저 수렁 속에서 건져낸단 말인가.
정대식 삼촌이나 리동철처럼 건져내고 싶다.
호선이 같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었다.
너무 깊이 빠져있어서.
정창훈도 호선이 못지않게 빠져있지 않을까?
과연 건져낼 수 있을까?
아, 내가 왜 이러지.
난 그냥 간첩만 잡고 북에서 무슨 지령을 받았는지 알아내는 게 내 일인데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 정창훈 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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