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정보원 2
천명은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주시했다.
점심 무렵에 들어간 이제현 여당 국회의원은 저녁 9시쯤에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천명은 선배 요원을 깨웠다.
그리고 천천히 따라갔다.
국회의원은 아파트 입구에서 택시를 탄다.
천명은 택시를 쫒아갔다.
이제현의 집은 마포구 홍대 근처에 있는 동교동이다.
그러나 택시는 집으로 가지 않고 신사동 쪽으로 가고 있다.
신사동 사거리에서 우회전해 한참을 가다 고급스러운 룸싸롱 술집 앞에서 내렸다.
천명은 술집 근처에 주차를 한 다음 선배 요원을 쳐다보았다.
‘이제 어쩌죠?’ 하는 물음이 담긴 눈빛으로.
선배 요원은 룸싸롱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차를 룸싸롱 앞으로 가서 세웠다.
주차요원이 깍듯하게 인사를 하며 차문을 열어준다.
대신 주차시킬 테니까 들어가시라고 친절히 안내한다.
선배 요원과 천명이 룸싸롱으로 들어가자 벽부터 바닥까지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고 조명이 휘황찬란하다.
넓은 로비에는 웨이터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인사를 한다.
천명은 그들이 “어서 오십시오. 손님. 반갑습니다.” 하며 다 같이 합창을 하니 더 주눅이 든다.
선배 요원이 지나가면서 유니폼에 걸려있는 이름표를 보고 조용필을 지명했다.
자신을 찾아온 손님이 반가운 조용필은 ‘감사합니다’라며 큰 소리로 인사를 한 뒤 천명과 선배 요원을 안내했다.
룸으로 들어간 뒤, 기본으로 한상 시키고 얘기를 해야 하니 아가씨는 조금 있다 들어오라고 했다.
잠시 후, 조용필의 밑에서 일하는 웨이터가 술과 안주를 들고 들어왔다.
선배 요원이 문을 잠근 뒤, 웨이터에게 십만 원짜리 수표를 들고 말을 시킨다.
“이름이...?”
“강현섭입니다.”
“아주 잠깐 알바 하나 뛰고 이거 받을래?”
웨이터 앞으로 십만 원짜리 수표 세장을 내밀었다.
“무슨... 일이신데요?”
웨이터의 눈에서 돈을 가지고 싶어 하는 눈빛이 가득이다.
“우리 들어오기 전에 한 남자가 먼저 들어왔지? 혼자서.”
“예. 단골손님입니다.”
묻지도 않은 ‘단골손님’이라는 말까지 한다.
“그 방이 어디인지 알지? 강현섭씨도 들어갈 수 있어?”
“예. 그 방도 제 담당입니다.”
선배 요원이 만년필을 안주머니에서 꺼내어 웨이터의 이름표 주머니에 끼워 넣으며,
“이거 자동으로 찍히는 만년필 동영상 카메라거든? 지금 켜 놓았기 때문에 강현섭씨가 들어가면 저절로 카메라가 작동을 해. 한 바퀴 돌면서 사람들 얼굴 한 번씩만 비쳐서 내게 갖다 줘. 그러면 이 돈은 강현섭씨 돈이야. 어때, 할 수 있겠어?”
웨이터는 입술을 혀로 한번 축인 다음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선배 요원이,
“이 일은 우리만 아는 거야? 나중에라도 밝혀지면 당신도 우리도 다 모르는 일로 하자고. ok?”
웨이터는 이번에도 역시 고개를 끄덕거리며 만년필을 꽂은 채 룸을 나갔다.
웨이터가 올 때까지 선배 요원이 담배를 피우며 기다렸다.
선배 요원을 술을 따서 언더락스로 만들어 조금씩 마셨다.
룸은 조용하고 온도가 알맞게 조절되어 있었다.
선배 요원의 행동은 이런 일을 많이 해본 솜씨였다.
천명은 지금까지 본 선배 요원의 이미지가 확 바뀐다.
댓글이나 적고 차에서 쿨쿨 잠만 자던 선배 요원이 진짜 실력 있는 정보원의 이미지로 겹쳐진다.
그렇게 선배 요원만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웨이터가 들어왔다.
만년필을 돌려주며 충분히 다 찍었다고 말한다.
선배 요원은 만년필을 돌려받으며 삼십 만원을 웨이터에게 주었고 웨이터는 ‘감사합니다’ 크게 인사를 하였다.
선배 요원은 아가씨 좀 들여보내라고 한다.
천명은 눈치만 살피며 조용히 있었다.
잠시 후, 아가씨가 열 명 정도 들어왔다.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선택하라고 한다.
천명은 얼굴이 빨개져서 아가씨들 얼굴을 못 보겠다.
하나같이 다 예쁜데다 옷들이 어찌나 야한지.
천명이 못 고르고 안절부절 하자 선배 요원이 대신 한명을 골라주었다.
아가씨는 천명의 옆으로 바짝 다가와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세은이에요.”
“.......... 아, 예.”
“저희 가게 처음이세요?”
“........아, 예.”
“아잉, 뭐야. ‘아, 예’ 소리만 하고.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천명이 이름을 가르쳐주어도 괜찮은지 선배 요원을 쳐다보았다.
선배 요원은 룸싸롱을 많이 다녀봤나 보다.
벌써 아가씨랑 짝짜꿍이 되어서 술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얘기를 하고 있다.
천명을 쳐다보지도 않고 둘이만 얘기하기 바쁘다.
천명은 혹시 몰라서 가명을 가르쳐 주었다.
‘명천’이라고.
천명을 반대로 하면 명천이다.
하아. 작명 솜씨하고는.
천명이 혼자서 쪽팔려하고 있는데 술을 잔에 따라서 준다.
같이 마시자며 자기의 잔에도 술을 채운다.
천명이 운전을 해야 해서 술을 못 마신다고 하자 선배 요원이, ‘대리기사 부를 거니까 마셔, 마셔!’ 한다.
그제야 천명은 술을 마셨다.
옆에 아가씨가 천명의 허벅지에다 손을 올린다.
천명은 깜짝 놀라서 아가씨를 쳐다보았다.
아가씨는 씩 웃으며 또 마시자고 한다.
이번에는 러브샷을 하자며 팔을 천명의 안쪽으로 두른다.
얼떨결에 팔을 들어 같이 러브샷을 하고 나니 아가씨가 안주를 먹여준다.
괜찮다고, 자신이 먹겠다고 해도 끝까지 먹여준다.
천명은 에라, 모르겠다 하며 술만 계속 마셨다.
술기운이 몸에 도니 긴장감이 조금씩 풀어진다.
같이 노래도 하고, 술도 마시고, 함께 춤도 추고...
하루를 아주 버라이어틱하게 보내는 천명이다.
오전에는 댓글을 적고 오후에는 미행, 감시에 저녁에는 룸싸롱에서 예쁜 아가씨와 술도 마시고.
선배 요원은 술이 취했다.
대리기사를 불러 선배 요원을 태워서 보내고 천명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출근을 하니 선배 요원은 벌써 자리에 앉아있다.
“선배님. 어제 집에 무사히 잘 들어가셨어요?”
“응. 덕분에 잘 들어갔다. 너는 즐겁게 잘 마셨어?”
“아, 예. 선배님 덕분에 룸싸롱도 가보고 참, 출세했습니다.”
“짜식. 날이면 날마다 오는 장날이 아니에요. 어쩌다 미행하다 보면 얻어 걸리는 날이지. 하여간 재미있었으면 됐다. 또 언제 갈지는 몰라도.”
“감사합니다. 출근 첫날에 신세계를 보여 주셔서.”
“그래. 오늘도 어제처럼 오전에 댓글 좀 적고 오후에는 다시 또 미행, 감시조로 나간다. 사진 몇 장 더 찍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그런데 선배님. 술값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같이 부담해야 하지 않습니까?”
“뭔 술값을 부담해. 우리 팀에 책정된 작전비용으로 쓰는 건데. 어제 카드 긁은 거 다 비용 처리했어. 우리 일이 끝 발 좀 날리는 양반들 미행 감시하다 보면 비싼 음식점에도 가게 되고 어제처럼 룸싸롱에도 가게 되고 그래. 그래서 작전비용이 나와. 그러니까 술값 걱정하지 말고 일이나 똑바로 잘해.”
“네. 알겠습니다.”
오전 내내 댓글을 적고 점심은 어제처럼 밖에 나가서 먹은 후, 차에다 GPS를 부착시켜 놓아 언제라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이제현 여당 국회의원을 미행 감시했다.
이 양반 참 바쁘다.
여기 저기 안다니는 곳이 없다.
민생을 그렇게 바쁘게 다니면 좀 좋을까.
맨 무슨 협회, 무슨 총회, 무슨 회, 회, 회.... 하루 종일 사람들 만나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도대체 일은 언제 하는지 궁금하다.
국회의원이 만나는 사람마다 사진을 찍고, 지나가는 척하며 또는 전화하는 척하며 전화기를 귀에 대고 국회의원이랑 얘기하는 사람들 근처로 가서 녹음하고, 이게 다 정보원의 일이다.
아, 그런데 녹음기는 신기했다.
스마트폰이 아닌 2G 휴대폰과 똑같은데 안테나가 달려있다.
안테나를 길게 뽑은 다음 뒤로 돌아서서 안 쳐다보는 척하며 녹음한다.
안테나가 녹음기다.
요즘 누가 2G 폰을 쓰나 싶어 쳐다보는 사람이 있지만 안테나가 녹음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천명도 처음 봤으니까.
5m 정도 떨어진 사람을 녹음할 때 쓰기에는 그만이다.
가까이에서 녹음할 때는 휴대폰으로 녹음하고.
그렇게 천명은 정보원 생활에 하나씩 적응을 해 나갔다.
이제현 여당 국회의원을 미행, 감시한지 이주일이 지나자 임무는 끝났다.
증거가 충분하니까 이제 미행, 감시는 그만하라고 했다.
대신 다른 일거리가 들어왔다.
황창식 선배 요원과 함께 고정간첩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미행, 감시하는 일이다.
눈치도 빠르고 변장에 능해 그동안 몇 번이나 놓쳤는지 모른다며 투덜거리는 팀장님이, 이번에는 너희가 한번 해보라고 하신다.
천명은 댓글 안 적는 게 어디냐 하며 신났다.
이제야 비로소 정보원다운 일을 하게 됐다며 심장이 벌렁벌렁 거린다.
이름: 정창훈
나이: 29세
직업: 무직
가족: 부모님과 여동생이 한명 있음
주소: 서울시 동작구 대방동 현대아파트 308동 804호
결혼: 미혼
학력: 한국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군복무: 만기제대
정창훈은 대기업에 다니다 퇴사하고 현재 무직이었다.
아버지가 경제력이 있어 무직이어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주민등록상의 사진이 있었지만 얼굴이 다르다고 한다.
어떤 얼굴이 진짜인지 모른다고 했다.
그만큼 변장술에 능하다는 뜻이다.
주소를 부모님 집으로 해놓았지만 실제 거주지는 노원구였다.
사는 곳이 노원구이지만 어디인지는 모른다.
노원구까지 따라붙었으나 놓치는 바람에 실제 거주지를 모른다는 말이다.
할 수 없이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언제고 부모님 집을 가거나, 어머니라도 아들집에 가시거나 하겠지 하며, 대방동의 현대아파트 308동 앞에다 차를 세워놓고 하염없이 기다렸다.
진짜 말 그대로 언제까지인지 모르는 답답한 일거리였다.
정창훈이 고정간첩으로 의심하는 이유가 ‘우리민족끼리’라는 북한 사이트로부터 시작되었다.
북한의 관변단체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2003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웹사이트로 줄여서 ‘우민끼’라고 부른다.
과거 조평통의 상위 단체였던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에서 과거에 운영하던 대남 선전용 라디오 방송인 ‘구국의 소리방송’이 우민끼의 전신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사이트를 통해서 북한은 각종 선전 문구를 인터넷으로 전송하고 있었다.
남한에서는 허락 없이 북한 주민을 만나는 게 불법이고, 유해사이트로 분류되어 있어서 접속이 차단되어 있다.
이적 목적이 아닌 이상 접속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글 작성이나 댓글을 남기거나 하는 행위 등을 할 경우 접촉으로 간주되어 남북 교류 협력법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다.
서버는 중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IP조회를 해보면 중국IP로 뜬다.
‘우민끼’는 2013년 4월 4일 '어나니머스(Anonymous)'라고 하는 해킹단체에 의해 털렸다.
한 술 더 떠서 가입자 명단을 모조리 공개해버렸다.
그때 정창훈이 가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적어서 접촉한 흔적은 없었지만 가입을 했다는 자체가 의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때부터 감시가 시작되었지만 회사에 다니는데다 한 번도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아서 감시를 하는 둥 마는 둥 했었다.
그러다 고정간첩을 일망타진할 때 정창훈의 이름이 나왔다.
딱히 어떤 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고정간첩들이 모이는 어느 모임에서 봤다는 이들이 여러 명이었다.
그런데 보기는 했지만 본 사람마다 얼굴이 다 달랐다.
어떤 이는 키가 크고 잘 생겼다고 하고, 어떤 이는 키는 적당한데 얼굴에 흉터가 있다고 하고, 뚱뚱하다는 사람도 있고, 말랐다는 사람도 있고...
결국 감시에 들어갔지만 지금까지 사는 곳조차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그런 정창훈을 천명의 조가 맡게 된 것이다.
아파트 앞에다 차를 세워놓고 감시를 한지 일주일.
오늘도 별다른 일이 없나보다 하고 있을 때 정창훈의 어머니가 보따리를 들고 집을 나선다.
차로 뒤 쫒으니 택시를 타고 노원구로 간다.
앗싸, 드디어 정창훈의 집을 알게 되는구나!
어머니가 밑반찬을 싸서 아들집에 가져다 주나보다.
천명은 신이 나서 택시를 쫒았다.
노원구 상계동 동성아파트로 간다.
천명이 차에서 내려 어머니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탔다.
어머니가 10층을 누른다.
천명은 12층을 눌렀다.
10층에서 어머니가 내렸다.
어머니가 내린 후, 천명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어머니가 1012호에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다.
몇 호인지를 확인했으니 됐다.
다시 차로 돌아갔다.
< 국가 정보원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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