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거래
요시다와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가 서울의 큰형님께 전화를 넣었다.
서방파가 너무 싸게 거래를 해서 큰 이익이 남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큰형님은 첫술에 배부르겠냐며 걱정하지 말고 거래 잘 마치고 오라했다.
다음 날, 요시다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신의 오야붕이 저녁에 태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전갈이다.
희미한 희망의 끈을 발견한 것 같았다.
샘플로 가져간 약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나까무라가 야마구치구미 사무실로 안내를 했다.
전형적인 일본식 2층 가옥이 사무실 겸 오야붕이 지내고 있는 건물인가보다.
돌담이 끝도 없이 이어질 만큼 큰 가옥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우리나라로 치면 회의실에 해당하는 넓은 다다미방에 양쪽으로 야쿠자들이 끝도 없이 앉아 있었다.
하나같이 날카로운 눈빛을 태수에게 쏟아낸다.
어지간한 심장으로는 감히 들어갈 엄두도 안 날 그런 분위기였다.
이래서 ‘특수부대 훈련을 받아야 했었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눅 들지 않은 걸음걸이로 오야붕 앞에까지 걸어갔다.
서서 깊숙이 인사를 했다.
능숙한 일본말로,
“처음 뵙겠습니다. 김태수라고 합니다.”
“너는 남자구나. 겁도 없이 당당하게 들어오는 것을 보니”
“이렇게 귀한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아라. 차를 한번 마셔봐. 맛이 괜찮을 거다.”
태수가 서있는 자리에 방석과 함께 작은 찻상이 있었다.
태수가 방석에 앉자 기모노를 입은 일본여자가 와서 차를 따라준다.
따라준 차를 한 모금 마셔보았다.
약간 씁쓸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느껴진다.
이런 맛이 좋은 차의 맛인가 보다.
태수는 차의 맛이 좋은지 나쁜지 모른다.
그러나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아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저는 차의 맛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어떤 차가 좋은 건지 알게 되었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에서는 차를 마시기보다 커피를 더 좋아한다고 하던데 커피를 줄 걸 그랬나?”
“아닙니다. 이럴 때 좋은 차 맛을 맛보지 언제 또 구경하겠습니까.”
태수가 솔직하게 대답을 하면서 대화를 하자 오야붕은 그런 면을 좋아하나 보다.
아까부터, ‘혼도니 오도꼬다(진짜 남자다)‘ 소리를 연발하는 것을 보니.
오야붕이 무슨 결정을 내리고자 할 때 이렇게 다들 모이나보다.
오늘은 아마도 마약거래 때문인가 보다.
오야붕이 요시다를 향해 말하라고 한다.
요시다가 일어나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소리를 높여,
“지금 이 사람은 김상입니다. 김상은 마약을 거래하러 왔습니다. 약값은 1g당 삼십만 엔을 달라고 합니다. 의견들을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마약을 거래하러 왔다고 하는 순간부터 웅성웅성 거리더니 약값이 그램당 삼십만 엔이라고 하자 여기저기서 ‘오마에 빠가까?(너 바보냐?), 빠가야로(미친놈)’ 소리까지 별의 별 소리를 다 한다.
오야붕이 요시다에게 야마모또한테 샘플을 보여주라고 한다.
아마 야마모또라는 사람이 이중에서 발언권이 가장 센가 보다.
요시다가 야마모또한테 샘플을 주고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호오. 이런 약이 다 있다니. 처음으로 보는 품질 좋은 약입니다.”
“진짜? 품질이 그렇게 좋아? 어디 나도 좀 보자고.”
태수는 주머니에서 샘플을 더 꺼내어 요시다에게 주었다.
야마모또가 칭찬을 하자 다들 한번 보자고 앉은 순서대로 돌아가며 새끼손가락에 찍어 냄새를 맡은 다음 코로 흡입을 하여 맛을 본다.
요시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거래하던 약은 그것대로 판매하고 김상이 가지고 온 약은 돈이 좀 있는 고급손님들한테 판매하면 어떻겠습니까?”
요시다가 그렇게 말하자 태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되면 태수가 가져온 약값을 깎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며 앞으로 수요가 점점 품질이 월등히 좋은 태수네 쪽으로 기울어질 것이다.
이제 오야붕이 어떻게 나오느냐가 문제다.
오야붕이 입을 열었다.
요시다의 생각이 좋을 것 같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다.
다들 그게 좋겠다며 찬성을 한다.
‘요시(좋아), 됐다!’ 태수는 저절로 파이팅을 외치며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오야붕은 언제부터 약을 공급할 수 있냐고 물었다.
태수는 한 달 안으로 운송을 하겠다며 일본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일본의 책임이라는 말을 분명히 전했다.
서방파도 그렇게 거래를 했는지 오야붕은 순순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이제 일 얘기는 다 끝났다는 듯 식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각자의 상에 음식들이 올려 진다.
회부터 스테이크까지 온갖 음식이 접시가 비워질 때마다 새로운 음식으로 채워졌다.
오야붕이 태수에게 물어본다.
“너는 어느파냐? 서방파는 아니겠고 동방파냐?”
“예. 맞습니다. 저는 동방파입니다.”
“동방파에서 너의 위치는?”
“중간파 보스입니다.”
혹시 우리 구미에 들어올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
태수는 요시다에게 그랬듯이 죄송하다며 동방파에 있겠다고 말했다.
오야붕은 아쉽다는 듯 다음에 한국에 놀러가면 너의 오야붕 좀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어떤 오야붕이 너를 데리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태수는 자신의 오야붕도 당신만큼이나 좋은 분이시다고 말했다.
그러자 재치 있는 태수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하하하 거리며 크게 웃었다.
오야붕이 웃자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웃었다.
요시다는 거래가 무사히 성사되어 잘됐다는 표정이다.
태수는 요시다에게 빚을 진 기분이다.
본격적으로 약을 판매하기 시작하면 따로 요시다에게 돈을 좀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술도 한잔씩 마셔가며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전화로 큰형님께 그램당 삼백만원을 받기로 했다고 전했다.
큰형님은 그 정도까지 생각을 못했었던지 잘했다고 칭찬을 하신다.
다음 날, 천천히 아침을 먹고 있을 때 요시다가 찾아왔다.
태수는 요시다에게 너무 감사하다며 이 은혜는 잊지 않겠다고 했다.
요시다는 거래가 잘 성사되어 자기도 기쁘다며 오늘 한국으로 돌아갈 거냐고 물었다.
태수가 빨리 돌아가서 약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자 요시다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
태수가 일본에서 돌아오자 마약을 만드는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태수는 임승헌에게 발발이를 마약 만드는데 참여시켜 달라고 했다.
우리 일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만약을 대비해서 약 배합이라든지 여러 가지 공정과정을 발발이에게 전수시켜 달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썩 내켜하지 않았지만 태수의 거듭된 요청에 제자 하나 키우는 셈치고 알려주겠다고 했다.
태수는 발발이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떼지 말고 잘 배우라고 했다.
그리고 그 과정들을 노트에 하나라도 빠짐없이 적어 놓으라고 했다.
혹시라도 임승헌이 잡혀가거나 태수 본인이 또는 발발이가 잡혀가도 노트에 적혀있는 방식대로 하면 조직에는 지장이 없을 테니까.
히로뽕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는 순도인 것 같다.
시중에 나와 있는 방정식대로 하면 히로뽕이야 만들 수 있겠지만 순도가 떨어져 제값을 받고 팔수가 없다.
어떻게 높은 순도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가가 기술의 핵심이다.
순도가 중요한 것은 가격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첫날엔 태우고, 이튿날엔 식혀 말리고, 사흘째 물건을 볼 수 있다.
기술자들은 보통 사흘 동안 철야 작업을 한다.
이중 가장 신경 쓰는 단계가 냉각과정이다.
기술자들은 냉각과정을 냉장고를 이용해 활용한다.
메스암페타민 즉 히로뽕의 제조 과정은, 염산에페드린을 빙초산에 녹여 촉매제(파리디움 황산 바리움)와 과염소산에 열을 가해 섭씨 80~90도에서 접촉, 환원한다.
그런 후, 촉매를 여과하고 농축시킨 뒤 찌꺼기를 소량의 물에 녹여 강알칼리성으로 만든 다음 추출하는데 여기까지가 1차 공정이다.
2차 공정은 반제품에다가 염산가스를 통하여 염산염으로 만들어 침전시키고 초산 크로로포름으로 재결정시키는 것이다.
1차 공정에서 불가피하게 나오는 염산냄새 때문에 무인도나 바닷가, 외딴 집, 또는 돼지 사육장등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트럭에다가 제조시설을 설치하고 고속도로를 누비며 1차 공정을 끝내는 아이디어까지 나왔다.
태수는 이 과정을 최근 시중에 나오기 시작한 공기청정기로 해결하려고 한다.
우선 10대로, 10대로 안되면 20대로, 20대로 안되면 30대로...
요즘은 1차 공정과 2차 공정을 분리하여 장소를 옮겨가며 만드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태수의 화학회사에는 1차, 2차, 3차 공정까지 모두 한 건물에 다 있다.
덕분에 마약 단속반에 걸리게 되면 1차 공정과 2차 공정 그리고 건조하는 과정까지 다 걸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곳에서 다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다.
사실 국내에 약을 풀게 아니기 때문에 걸릴 확률은 지극히 낮다.
국내에 풀게 되면, 시중에 형성된 약의 가격도 달라질 것이고, 마약을 사는 이와 파는 이들이 돌아다니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단속반에 걸릴 위험도 높다.
그러나 전부 다 일본으로 판매하면 일단 약을 어디서 만들고, 언제, 어디로, 가지고 가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단속에 걸릴 일이 없다.
히로뽕 시장은 품질을 생명으로 한다.
냉각과정의 반복이 계속되는 ‘창호지 위에서의 건조’ 과정에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
1차 공정은 꼬박 하루가 걸리고 액체를 추출하는데도 하루가 필요하며 냉각 건조과정에서도 족히 하루가 걸리니 최소 3일이 필요한 셈이다.
건조과정은 제조자들끼리도 극비로 삼고 있다.
플라스틱 비이커에 든 약품을 가스 분사기를 이용하여 얼마나 정교하게 기술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특급기술자 대우를 받는다.
그런 점에서 임승헌은 특급기술자다.
현재 남아있는 기술자들 중에 가장 실력이 좋을 것이다.
기술자들이 거의 다 잡혀가는 바람에 특급기술자가 거의 없다.
특급 기술자가 만든 약은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컵에 물을 담고 히로뽕을 넣었을 때 거품을 튀기며 녹는 것은 상질의 제품이다.
그러나 그대로 가라앉으며 녹으면 하품이다.
냄새가 나거나 착색이 되어있으면 순도가 낮고 알맹이가 굵으면 순도가 높다.
메스암페타민은 부서지기 쉬운 결정체 또는 분말형태로 백색과 연회색을 띠고 약한 신맛이 난다.
보통 냄새가 없지만 순도가 높으면 약한 암모니아 또는 비린내를 풍긴다.
물에 잘 용해되며 결정성 분말, 정제, 캡슐 형태로 밀매되고 있다.
주로 정맥주사 방법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코 흡입, 흡연, 경구 투여도 가능하다.
태수가 약을 만드는 것에 온 신경을 쓰고 있다.
빨리 10kg 이상을 만들어 일본에 판매할 생각으로 거의 화학공장에서 지내다시피 한다.
대신에 태수의 영업장은 성호와 독사가 살피며 해나간다.
태수와 발발이 그리고 용식은 화학공장으로 매일 출근하고 퇴근한다.
이것저것 준비할 게 왜 그렇게도 많은지.
임승헌이 이건 이렇게 해라, 저건 저렇게 해라, 졸졸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를 해대어 귀가 다 아플 지경이다.
드디어 모든 준비가 다 끝나 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화학교사 김기훈, 소심한 최현준, 결단력 빠른 김영철 그리고 임승헌과 발발이가 실험실과 연구실에 모였다.
임승헌은 연구실에서 혼자 건조과정을 한다.
아, 발발이도 같이.
다른 사람들은 2차 공정까지만 함께 했다.
히로뽕의 순도를 결정짓는 건조과정 만큼은 임승헌도 저들에게 안 가르쳐주었다.
그래도 김기훈이나 최현준, 김영철은 불만을 갖지 않았다.
오히려 어설프게 알고 있던 제조과정을 비록 2차 공정까지지만 그것만이라도 알게 되어 학문적으로 만족해한다.
화학 전공자들답게 임승헌이 1차, 2차 공정하는 과정을 보고 금방 따라했다.
발발이만 이건 뭐고, 저건 뭐냐, 어떻게 하는 거냐... 등등등 귀찮게 쫒아 다니며 묻느라 바쁘다.
첫 번째 약이 완성되었다.
부산 항만에서 일본으로 배에 실어 보내야 한다.
오리콘에서 나오는 초코파이를 일본으로 수출하는 배로 위장시킬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 수출하는 품목중에는 반도체, TV 등 가전제품, 실리콘원료, 화장품, 초코파이등이 있다.
처음에는 화장품을 싣는 배로 둔갑시킬까도 생각했지만 화장품보다는 초코파이가 부피도 작고 비닐로 포장되어 더 안전하겠다고 생각했다.
도매상에서 초코파이를 엄청나게 사다가 10,000개의 겉포장을 일일이 잘 뜯어내 내용물은 치우고 비닐로 1g씩 포장된 약은 초코파이 안에 다시 넣어 표시가 안 나도록 기계로 재포장한다.
그렇게 10kg을 1g씩 포장해서 진짜 초코파이와 함께 박스에 담았다.
마약을 만드는 일에 참석한 동생들도 특별수당을 주니까 아주 열심히 한다.
혹시라도 내용물이 삐져나올까봐 하나하나 일일이 확인하고, 무게를 재지 않고 눈으로 볼 때는 여느 초코파이 박스와 똑같아 보이게 했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일본에 판매를 하게 되었다.
컨테이너에 초코파이를 담고 트럭으로 부산까지 갔다.
컨테이너의 문을 열면 꽉 들어찬 초코파이 박스만 보인다.
진짜 초코파이는 일본의 과자 도매상으로 갈 것이다.
부산까지 가는 동안에 검문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일명, ‘커튼치기 수법’으로 컨테이너 제일 안쪽 맨 밑에 마약을 담은 상자가 있어서 박스를 다 꺼내기 전에는 안 보인다.
처음이니만큼 태수와 독사가 같이 배를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부산에서 일본으로 안전하게 건네주기 위해.
초코파이를 실은 컨테이너가 배의 화물칸에 무사히 들어갔다.
멀리서 바라보던 태수는, 참 다행이다.
아무 문제없이 화물칸으로 들어가서.
하긴, 하나하나 일일이 다 꺼내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아챌 수 없게 해놓았기 때문에 누가 콕 집어 ‘이거라고’ 알려주기 전에는 모른다.
드디어 일본에 도착했다.
아침 7시 30분, 후쿠오카에.
< 마약거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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