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1
오늘도 보람차게 하루를 마감했다.
방배동 아파트의 집으로 퇴근하는 태수.
그런데 자신의 집 앞에 웬 바구니가 놓여있다.
‘응, 이게... 뭐지?’
팔짱을 낀다.
태수는 눈만 깜빡이며 쳐다보고 있었다.
아파트는 복도식이 아닌 계단식으로 되어있다.
태수가 사는 9층은 앞집과 자신의 집만 있을 뿐이다.
분명 앞집이 아닌 자신의 현관문 앞에 있다.
바구니는 태수에게 볼 일이 있다는 뜻이다.
베이지색 수건으로 덮여있는 바구니에서 뭔가가 꼼지락거린다.
처음에는 뱀인 줄 알고 소름이 돋아 화들짝 놀랐다.
설마...? 하면서 고양이 또는 강아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여간 언제까지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다.
수건을 슬쩍 들어 보았다.
“헉, 이게 뭐야? 아기잖아!”
“누가 아기를...”
두리번거리며 위층, 아래층 계단까지 살펴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기는 너무나 작아 금방이라도 숨을 멈출 것 같이 앙상하다.
“이렇게 작은 아기는 몇 개월 인거야?”
“한 달? 아니 더 작은가?”
‘어떡하지?
일단 신고를 해야 하나?
신고는 112였던가?
아니지,
이런 경우는 119로 신고해야 하나?
지금까지 살면서 신고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네.
태수야, 침착하자! 침착.
설마 경찰서로 데려다 줘야 하나?‘
아니, 아니 경찰은 싫다.
짭새들과 우리 사이는 철천지원수이거나 천적이니까.
‘아, 진짜 아침부터!!! 정말... 미치겠다.’
후... 언제까지 구시렁구시렁 거릴 수는 없다.
일단 집에 들어가고 보자.
태수는 아기가 담긴 바구니를 안고 집으로 들어갔다.
거실 의자에 앉아 바구니의 수건을 걷었다.
아기가 눈을 뜨고 이리저리 살핀다.
태수와 눈이 마주쳤다.
‘빙긋’ 웃는다.
뽀얀 피부의 아기는 사과 같다.
그리고 인형 같기도 하다.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다.
태수는 아기들이나 어린 아이들을 정말 싫어했다.
시끄러워서.
그런데 이 아기는 울지도 않는다.
오히려 태수를 향해 방긋방긋 웃음까지 짓는다.
아까부터 계속 눈을 마주쳐 온다.
아기는,
마치 푸르고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듯하다.
넓고 넓은 초록빛 바다를 바라보는 듯도 하다.
그렇게 태수의 머리와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아기는 태수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못하게 한다.
자기만 바라봐 달라는 듯 태수만 바라본다.
태수가 조막만한 아기의 손을 만져봤다.
아기는 꽤 힘차게 태수의 손을 꼭 잡는다.
갑자기 가슴이 콱 메어온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이번에는 아기를 가만히 안아보았다.
너무 작아서 실수로라도 떨어뜨릴까,
혹시나 잘못 될까봐 아기를 어찌 안아야 할지 모르겠다.
왼쪽으로 안아보기도 하고.
오른쪽으로 안아보기도 했다.
‘아, 이러다 애 떨어지거나 큰일 나겠다’
싶어 그냥 바구니에 도로 넣으려는 순간 손이 축축하다.
아기의 옷을 벗기니까 사내아이다.
오줌에 응가까지 해놓고 좋다며 지금까지 웃어대고 있었다.
‘아, 나 참... 기가 막혀서.
뭐로 닦아야 하는 거야?
물티슈 있는데 그걸로 닦나?
에이 손에 묻으면...
하!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야. 안 되겠어, 일단 씻겨야겠다!’
아기를 안고 욕실로 가서 샤워기를 틀었다.
따뜻한 물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기저귀를 떼어냈다.
따뜻한 물이 나오기 시작해 아기를 욕조에 세워놓고 닦으려 했다.
아기의 고개가 ‘툭’하고 앞으로 떨어진다.
기겁을 한 태수는 한손으로는 아기를 안고 또 한손으로는 샤워기를 잡고 한숨을 내쉰다.
휴우...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다.
어찌어찌 간신히 아기를 씻길 수 있었다.
한쪽팔로 아기의 머리부터 가슴께까지 안았다.
샤워기로 아기의 온 몸을 다 씻어 버렸다.
기분이 좋은지 아기는 아까보다 더 방실방실 웃어댄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아기를 씻긴 태수는 기진맥진이다.
차라리 서방파랑 한판 붙는 게 낫지 아기를 씻긴다는 건 태수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우선 목욕수건으로 기저귀를 대신했다.
행여 추울까 담요로 얼굴만 빼고 몽땅 싸매놓았다.
거실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꺼낸다.
누구한테 전화를 걸어야 하나,
제일 믿을만한 성호한테 전화했다.
일단 아는 여자가 없으니까.
있다 하더라도 술집 여자들이나 마담들 밖에는 없다.
그녀들이 아이를 키워봤을까? 생각하니,
아무래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반면, 성호는 같은 보육원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 태수가 먼저 동방파에 들어왔고 그 후에 성호가 태수의 밑으로 들어왔다.
성호는 태수가 없을 때 태수를 대신한다.
모든 일을 맡길 만큼 제일 믿을만한 괜찮은 놈이다.
“성호냐? 형이 지금 급해서 전화했다. 너 아기들 입는 옷이랑 기저귀랑 또... 음... 아, 그래 먹을 거! 우유인가? 아니 분유던가? 야! 아무튼 한 달 정도 된 아기 먹을 거랑 좀 사서 우리 집에 빨리 가져와라.”
“잉? 형님,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 갑자기 아기는 뭐고 기저귀는 뭐고... 형님한테 아기가 생겼어요?”
“나도 지금 어찌 된 영문인지 잘 모르겠다만 우리 집에 아기가 왔어. 그런데 아무것도 없어서 뭘 사야하고 뭘 먹여야 하는지. 아. 나 참... 나도 정신이 없으니까 너 여친한테 한번 물어보고 급히 필요한 물건 좀 사가지고 빨리 와줘라. 형 죽겠다. 지금.”
“알았어요. 여자들한테 물어보고 당장 급한 것들 사가지고 갈게요.”
“야, 성호야! 여기저기 떠들지 말고 조용히 일 처리하자. 응? 괜히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귀찮으니까. 알았지?”
“예, 형님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전화를 끊고 아기를 바라보았다.
혹시나 싶어 바구니를 쳐다봤다.
아기에 대해서 뭐라도 써놨나 싶어 바구니를 뒤집었다.
다행히 맨 밑에 편지봉투가 있었다.
대체 이 아기가 왜 자신한테 온 것인지 몹시 궁금했다.
태수는 얼른 봉투를 열어 보았다.
[ 많이 놀라셨지요?
무작정 아이를 맡기게 되어 너무나 죄송합니다.
오랜 시간 실장님을 지켜보았습니다.
누구보다 믿을만하다 싶어 이렇게 불쑥 아이를 맡깁니다.
지금은 제가 키울 형편이 안 되어 부득이 실장님에게 보냅니다.
제발 버리지 마시고 키워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아이는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었고 이름도 아직 안 정했습니다.
저에게는 아기 말고도 혼자서 남편 없이 또 한명의 여아인 첫째를 키워야 하는데 첫째 아이에게 신체장애가 있습니다.
도저히 두 아이를 다 키울 자신이 없습니다.
첫째 아이가 어느 정도 큰 다음에 찾아뵙고 사죄를 하겠습니다.
그때까지만 아이를 맡아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누가 보냈는지는 안 적혀있다.
그저 맡긴다는 말만 적혀있다.
참 기가 막힐 뿐이다.
내용이 아주 못 배운 사람은 아닌 듯하다.
다시 찾으러 온다는 것을 보니 완전히 버린 아기도 아닌 것 같다.
태수가 조직 안에서는 동생들이 ‘형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밖에서 만난 사람들은 태수를 ‘실장’으로 알고 있다.
요즘 조폭들은 명함에 동방건설이나 동방무역상사, 동방호텔 등등에 상무나 부장 또는 실장으로 불려진다.
실장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밖에서 만난 사람인가 보다.
그동안 지켜보았다면서 내가 조폭인 것을 모르나? 거, 참.
무슨 사정이기에 아이를 맡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아기를 다른 곳으로 보낼 수는 없을 것 같다.
태수는 옆에 뉘어놓은 아기를 다시 한 번 쳐다본다.
그리고 혼자,
“네 팔자나 내 팔자나 도긴 개긴 이다. 내 인생도 그리 좋은 건 아니지만 너는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태어났구나.
나는 그래도 4살 때까지는 부모님들한테 사랑도 받아 보았고 얼굴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너는 기억조차 없으니.
후... 참 불쌍하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워야 좋을지 지금은 아무 생각이 안 나는데 이대로 너를 버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 우리 한번 잘 살아보자.“
태수가 아기를 붙잡고 그렇게 한참을 중얼거리며 얘기한다.
신기하게도 아기는 마치 태수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
사슴 같은 눈망울로 진지하게 쳐다본다.
만약 천사가 진짜로 있다면 아기천사의 모습이 바로 이 모습이지 싶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어?”
아기는 다시 생글생글 웃는다.
화답이라도 하듯 ‘으갸,으갸’ 거리며 팔과 다리를 꼼지락거린다.
마치 다 알아들었다는 듯 ‘걀걀’ 거리며 또 웃는다.
아기가 참 예쁘고 귀엽다.
자기도 모르게 슬쩍 미소가 피어오른다.
태수는 자기 생전에 아기가 예쁘고 귀엽게 생각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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