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장 2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태수일행은 아침에 먹었던 호텔 레스토랑으로 가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강박감 때문인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덕분에 관광은 언제 하느냐고 투덜거리던 성호와 독사는 긴장을 했는지 말을 아낀다.
말은 안 해도 내일 마약상을 만나러 간다는 생각이 일행들의 머릿속에 가득한 것이다.
무척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이른 저녁을 먹은 성호와 독사는 태수의 방에서 커피 타임을 가졌다.
성호와 독사는 총을 꺼내들고 총 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까 무기상의 주인이 가르쳐준 방법대로 어깨를 일직선으로 하고 팔꿈치 부분은 약간 굽히고 쏘는 연습이다.
태수는 아직 이른 저녁시간이니 괜찮겠지 하며 마약상에게 전화를 걸었다.
ㅡ 헬로우!
ㅡ 헬로우. 저는 한국에서 온 태수김이라고 합니다. 마이클과 통화하고 싶은데 바꿔줄 수 있습니까?
ㅡ 마이클? 어느 마이클? 여기 마이클만 두 명이나 있는데.
ㅡ 어, 음... 마이클 루이스요.
ㅡ 기다리세요. 마이클, 마이클 루이스! 전화 받아. 한국 이래.
전화기에서 마이클 루이스를 찾는 소리가 태수의 귀에게까지 다 들려왔다.
ㅡ 여보세요? 한국에서 왔다고? 여기는 어떻게 알고.
ㅡ 한국에 있는 로빈에게 소개받았어요.
ㅡ 아! 로빈이 말한 사람이 당신이었군. 로빈이라면 믿을 수 있으니까 말해보세요. 거래를 원한다고 하던데... 맞나요?
ㅡ 맞습니다. 우린 로빈이 거래하는 조직과는 다른 조직입니다. 당신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만나죠?
ㅡ 어디에 있어요?
태수가 호텔이름을 알려주자 마이클은 몇 호실이냐며 묻는다.
호실을 알려주자 자신들이 내일 오전 11시에 찾아가겠다며 내일보자는 말로 통화를 끝냈다.
태수는 마이클이 자신들의 사무실이나 거처로 일행이 오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건 태수일행에게 다행이었다.
똥개도 제집 앞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지 않던가.
그들의 홈그라운드로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이쪽으로 온다니 다행이다.
위험이 반으로 줄어드는 것이니까.
다음날 태수일행은 늦은 아침을 먹었다.
태수는 입안이 깔깔해 배고픈 줄을 모르겠다.
그건 성호나 독사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음식을 깨작거리는 것을 보니.
태수일행은 마이클이 오는 동안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태수와 성호 그리고 독사는 혹시나 싶어 소음기를 끼운 채, 권총을 허리 뒤 벨트에 숨겨놓고 마이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태수는 솔직히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일행 중에 마약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추천해주는 약들이 좋은지 어떤지 모른다.
히로뽕은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코카인이나 헤로인, LSD, MDMA, 야바, 러미라, 해쉬쉬, 물뽕(GHB) 등은 잘 모른다.
미국에 오기 전, 로빈이 가르쳐 준 몇 가지 풍월로 해낼지 모르겠다. 일단 닥쳐서 겪어봐야 알겠다.
정각 11시가 되자 태수일행들은 문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11시 5분쯤에 ‘딩동’ 하는 소리가 들렸다.
태수가 볼록렌즈로 밖을 바라보았다.
흑인 남성 한명과 백인남성 두 명이 보였다.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렌즈 상으로는 세 명만 보였다.
태수가 문을 열자 세 명의 일행들이 들어왔다.
렌즈로 본 사람들이 다였나 보다.
맨 앞에 들어오는 사람은 흑인남성으로 긴 머리를 몇 가닥으로 촘촘하게 땋았고 두 사람은 청바지에 편안한 티를 입고 있었다.
마피아라고 해서 뿔이 두 개 달린 괴물은 아닌가 보다.
보통사람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성호와 독사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흑인 남성이 자기가 마이클이고 옆에 두 사람은 지미와 에릭이라고 소개한다.
태수도 일행을 소개했다. 태수가 마이클 일행들에게 쇼파에 앉으라며 권했다.
마이클은 가져온 가방에서 이것저것 꺼낸다.
말로만 듣던 마약들이다.
6~7개의 약을 꺼내 보이며 어떤 약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하나하나 다 알려주며 이것 말고도 또 있으니까 특별히 찾는 게 있다면 말만 하란다.
태수는 필로폰을 쳐다보았다.
히로뽕은, 필로폰(Philopon)의 일본식 발음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고 정확하게는 필로폰이다.
태수는 필로폰, 아니 히로뽕(필로폰=메스암페타민=히로뽕)이 들어있는 조그만 봉지를 들고 뜯어봐도 되느냐고 물었다.
마이클은 당연하다는 듯 괜찮다고 하였다.
태수가 물 컵에다 생수를 반쯤 따른 다음 히로뽕 봉지에서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한줌을 쥐어 냄새를 맡아본 다음 물 컵에 넣었다.
약은 컵 속에서 가라앉으며 녹아들었다.
좋은 히로뽕은 물에 넣었을 때 기포를 터트리며 녹는다.
그런데 마이클이 준 히로뽕은 컵 속에서 그냥 가라앉았으므로 결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없는 품질이었다.
그런 태수를 마이클 일행들이 쳐다본다.
‘뭐하는 수작이지?’ 하는 표정으로.
태수는 설명하지 않았다.
품질이 안 좋다고 솔직히 말해서 괜히 싸움이라도 나면 곤란하니까. 혼자 속으로만 알면 되었다.
하지만 마이클이 물었다.
“지금 뭘 한 거지?”
“내가 아는 방법으로 약을 실험해봤는데 품질이 좋은 것 같아. 좋은 약을 가지고 있군.”
하며 거짓말을 했다.
태수는 거짓말한 것이 들통 나지 않도록 다른 쪽으로 말을 돌렸다.
약을 어떻게 한국으로 보내느냐고 물었다.
마이클은 그건 걱정하지 말아달라고 한다.
자기들의 영업비밀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정확하게 2~3일 안으로 도착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태수는 값은 어떠냐고 물었다.
마이클은 지금 다 사가려고 하냐며 오늘은 샘플로 조금밖에 안 가져왔다고 한다.
태수 역시 오늘 사는 건 아니고 배달하는 문제와 약의 품질을 보고 싶었다며 흥정을 하자고 했다.
너무 비싸면 우리도 남는 게 없어서 가져갈 수가 없다며 진짜 살 것처럼 얘기를 했다.
태수는 이들의 약이 별로이기 때문에 살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나 굳이 여기서 사니, 안사니 떠들 필요가 없었다.
생각해보고 연락 준다고 말하면 그만이니까.
마약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코카인, 헤로인, 아편 등은 마약이고 히로뽕은 향정신성 의약품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마가 있다.
태수는 로빈을 통해 대충의 가격대를 알고 있다.
히로뽕에 비해 한국에서 널리 유통되고 있는 MDMA(흔히 엑스터시라 불림), LSD, 야바, 러미라 등의 가격은 싼 편이었다.
MDMA의 경우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해 1g당 6만원~8만원 정도다.
히로뽕(한번 투여량 10만원~20만원)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다.
히로뽕 1회의 투여량이 0.03~0.05g이므로 1kg, 즉 1,000g이면 33.000번이나 맞을 수 있는 양이다.
그러면 10만원만 잡아도 33,000번이니까 가격이 30억이 넘는다.
이건 제일 싼 가격대로 계산한 것이다.
처음 고객을 잡으려고 할 때 부르는 가격이다.
다른 곳보다 훨씬 싸다고 인식시키기 위해.
히로뽕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다.
그때그때 유통되는 물량에 따라 값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간에 유통단계를 거치게 되면 가격은 5~10배로 뛴다.
LSD는 곡물의 곰팡이, 보리 등에서 분리해 합성한 중추신경 흥분제이고, 야바는 세계 최대 마약밀매 조직인 ‘쿤사’가 개발한 것으로 한번 복용하면 3일간 잠을 자지 않을 정도로 환각효과가 강하다고 한다.
생아편은 1g당 7만원 정도에서 거래된다고 했다.
대마초는 더 싼 가격이었다.
마이클이 이건 얼마고, 저건 얼마며, 이러저러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어쩌고저쩌고......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태수의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열심히 듣는 것처럼 보였지만.
태수는 히로뽕을 직접 만들어 파는 것을 연구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히로뽕은 80%가 한국에서 가져간다.
품질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일본의 야쿠자들은 대만이나 중국 그리고 홍콩에서 싼 가격으로 거래를 해봤지만 품질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한국의 히로뽕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한국에서 만든 히로뽕이 좋은 이유는 물이 좋아서도 아니고 기후나 온도가 좋아서도 아니다.
히로뽕을 만드는 기술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태수는 마이클에게 지금까지 충분히 설명을 들었고, 가격도 한국에 전화해서 허락을 받아야 하니 좀 시간을 달라고 하였다.
마이클은 순순히 그렇게 하라고 말하며 일행들과 함께 돌아갔다.
마이클 일행이 돌아가자 한동안 방이 조용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긴 한숨만 내쉬었다.
비싼 총까지 구매하며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허무하게 끝난 것이다.
성호와 독사는 태수의 눈치를 살피며 무슨 말이든 하라고 재촉하는 눈빛을 보낸다.
하긴 영어를 하나도 못 알아듣는 입장에서는 답답할 것이다.
거래가 된 건지 안 되었다는 건지. 태수가 성호와 독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약을 직접 만드는 게 좋겠다.”
성호와 독사는 깜짝 놀라며,
“직접요? 직접 만들 수도 있습니까? 누, 누가... 어, 어떻게, 어디서요?”
성호는 말까지 더듬어가며 물어본다.
태수는 마이클의 약은 품질이 떨어지는 하품이라 거래가 성사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히로뽕을 만드는 일은 미국에 오기 전부터 생각했던 문제라고도 대답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온 것은 미국 약의 품질이 어떤지 그리고 유통과정은 어떤 식으로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서방파는 어떤 약을 팔까 궁금했다.
만약 오늘 마이클이 가져온 약과 비슷한 품질을 판다면 약 효과가 떨어질 텐데 어떻게 영업을 하는지 무척 알고 싶어졌다.
태수는 이제 일은 다 끝났으니 좀 쉬었다가 관광이라도 다니자고 말했다.
성호와 독사는 그제야 굳은 얼굴을 펴며,
“앗싸!!! 드디어 미국 구경을 하는 겁니까? 이제부터 술도 좀 마시고 미국 여자도 구경하고 싶은데...?”
태수의 얼굴을 보며, 하다못해 맥주라도 한잔 하자고 조르는 표정이다. 태수는,
“너희들 방에 가서 한잔씩 마시고 있어라. 난 좀 생각할 것도 있고 쉬고 싶다. 이따 저녁에 같이 마시자.”
태수가 쉬고 싶다고 하자 둘은 방을 나갔다.
태수는 창문 쪽으로 가서 맨하탄 거리를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언젠가부터 뭔가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굉장히 중요한 뭔가를.
‘그게 뭘까?’ 생각을 쥐어짜봤지만 도저히 기억이 안 난다.
이번에는 천명이 생각을 했다.
천명이 생각만 해도 태수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돌아갈 때 천명이 선물을 사가야지, 이모님 것도 하나 사가야겠다, 하다가 혹시 자신이 없는 사이에 국정원 사람들이 천명이에게 접근하는 건 아닐까?
잠깐, 국정원? 잠깐, 잠깐...
그때 그 남자, 국정원의 사람을 만나던 날 그가 분명히 얘기했다.
‘동방파가 약을 시작하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태수의 얼굴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새파래졌다.
그 전날 큰형님과 단 둘이서만 나눈 얘기다.
‘어떻게 둘이서만 나눈 얘기를 국정원에서 알고 있지?’ 더구나, ‘누군가는 약을 판매할 테니까 이왕이면 동방파가 해라. 뒤는 내가 봐주마. 다 천명이 때문이다.’는 뜻의 말을 했었다.
그날은 천명이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떨려서 마지막에 했던 그 말이 귀에 안 들어왔었다.
오로지 천명이를 자신한테서 빼앗아가려 한다는 생각만 했기 때문에 그동안 잊고 있었다.
그는 태수한테 정보를 준 것이다.
‘너희 동방파에 정보원이 있다’고.
‘헉, 나 말고 또 다른 정보원이 있다고? 사실일까?’
동방파에 정보원으로 들어 간지 6년이 넘었다.
그런데 나 말고 다른 정보원이... 아니, 아니다.
그저 국정원에서 도청기를 달아 놓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국정원이 아닌 누군가가 큰형님 집에 도청기를 달아 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어쩌면 자신의 옷이나 시계, 휴대폰 등에 도청기를 심어 놓았거나.
아.... 갑자기 현기증이 일면서 이 사태를 어떻게 생각해야 올바른 건지 감을 못 잡겠다.
그러니까 정리 좀 해보자. 가능성은 세 가지다.
동방파에, 그것도 큰형님 주위에 정보원이 있거나, 국정원에서 큰형님 집에 도청장치를 했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도청장치가 있거나.
지금 이 사태가 세가지중 어디에 해당되는지를 정말로 모르겠다.
그 국정원 남자, 이름이 김창현이라고 했지?
그 사람을 다시 만나서 정확한 정보를 들어보는 것이 옳은 걸까? 그냥 모른 척하고 있어야할까?
젠장,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 미국 출장 2 > 끝
.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