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온 손님.
“그럼 저흰 가보겠습니다.”
“만약에라도 찾게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나와 천수호는 연구소에서 나온 뒤 어느새 어두워진 주차장 앞에서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다른 곳 더 알아볼까요?”
“아뇨. 늦었기도 하고, 이분들 말씀하시는 거 보니깐 다른 곳 가서도 크게 얻을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신물질 연구소에서부터 천수그룹 산하로 타임머신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연구소, 그리고 이곳, ‘주인공화’ 집중 탐구 연구소까지.
총 세 곳을 돌아다니며 ‘주인공화’와 관련하여 이번 일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는지 물어보고 다녔지만, 세 곳 모두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하나였다.
[이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글쎄요... 안타깝지만 제 능력 밖의 일인 것 같습니다.]
[한 번 찾아는 보겠지만, 꽤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아예 못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불가능하다.
정확히는 ‘지금’은 불가능하다였지만, 가능한 한 빨리 해결하고픈 나로썬 아쉬울 뿐이었다.
***
일주일 후.
해방단체를 돕는다는 핑계로 기존에 하고 있던 일들을 내팽개쳐둘 순 없었으므로 일을 다 마치고, 혹은 쉬는 날에 정보를 모으고 다니는 중이었다.
정보를 모은다고 해봤자 어디 연구소를 찾아가거나 스스로 실험을 해보는 게 다이니 일주일이 지났다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얻은 거라곤 의식적으론 시간을 되돌리지 못한다는 능력의 모자람 뿐이었고.
똑똑똑-.
일단 오늘은 쉬는 날이라 무의식적인 척 의식적으로 시간을 되돌려 보려는, 일종의 괴상한 실험을 하려고 했는데 임종훈에게서,
[성진 씨. 오늘 휴일이죠? 지금 사무실로 오셔야 될 거 같ㅇ...]
“들어오세요.”
그래서 지금 임종훈의 사무실로 온 참이었다.
벌컥-.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의외의 얼굴들이 있었다.
“두 분이 여긴 왜...?”
“oh! sungjiㅣㄴ 씨!”
“하하하하. 오랜만입니다”
‘또 번역이 되나 보네.’
날 보자마자 반가워하는 둘과 악수를 나눈 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임종훈에게 둘을 소개했다.
“이쪽은 미국 남극기지 연구원 케빈 씨, 스미스 씨입니다. 저번에 산타 할아버지 만나기 전에 만나서 친해진 사입니다.”
“아... 그건 그렇고, 이분들이 왜 성진 씨 말고 저한테 온 겁니까?”
“제가 사장님 명함을 드렸는데, 글쎄요. 이분들 왜 왔지?”
“제 명함을 왜 이분들한테...?”
“일단 앉으시죠. 케빈 씨랑 스미스 씨도.”
“네네.”
‘놀러 왔나?’
둘은 편한 옷차림에 캐리어를 하나씩 가지고 온 상태였다.
“두 분은 무슨 일로 한국에 오신 겁니까?”
“저희요? 음... 말하자면 긴데요.”
들어보니 그리 길지는 않았다.
마침 이번에 둘에게 여름 휴가가 주어졌고, 어디로 놀러 갈까 하다가 때마침 품속에 있던 임종훈의 명함을 보게 돼 한국행을 결정했다고 하였다.
영어를 꽤 하는지 케빈의 말을 문제없이 듣고 있던 임종훈은 자신의 명함이 언급되자 나를 보며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자기 걸 냅두고 왜 내 걸...”
“에이. 둘 다 줬는데 우연히 사장님 걸 본 거죠.”
“에휴...”
“아,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로는 일주일 전에 둘이 산타 할아버지를 만난 뒤 한국에 가 날 돕는 게 어떠냐고 권유를 하였다고 하였다.
“그, 막 신비로운 분위기의 그분이요?”
“네. 갑자기 나타난 다음에 인사 좀 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더라고요.”
“네. 그리고 제가 봤을 땐 권유라기보다는 거의 반강제적인 분위기였습니다. 뭐 안 가면.”
“안 가면?”
“3달 동안 눈보라가 끊이지 않을 거라나 뭐라나.”
좀 무서운 분이셨네.
“그런데 절 왜 도우라 하셨는데요?”
“글쎄요. 물어봤더니 가보면 안다고 하시던데.”
임종훈의 표정은 더욱 더 어이가 없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남극에선 무슨 일이...”
“뭐, 잘됐네요. 때마침 두 분의 도움이 절실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는 이것도 알고 있었던가.
‘정체가 대체 뭔지...’
진작에 이 둘을 고려 대상에 넣은 상태였긴 했지만 이 둘과 접촉을 함부로 시도하였다간 미국 측에 걸리기 딱 좋았기에 섣불리 다가가지 못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저번에는 어찌저찌 우연히 만났다고 하여 간신히 넘어갔지만 두 번째 만나는 건 더 이상 우연이 아니지 않나.
나를 잡아가진 못할지라도 나에 관한 정보를 찾다가 해방단체와의 접점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일에 차질이 생길 확률이 높아질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는데...’
여하튼, 나는 마음속으로 산타 할아버지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스윽.
나는 염동력으로 냉장고에서 콜라 네 캔을 꺼낸 뒤 각자에게 나눠주었다.
“제 사무실의, 제 냉장곤데요...”
“아. 그럼 지금이라도 허락을...”
케빈과 스미스에게 날라가던 콜라 캔이 공중에서 멈추는 바람에 둘의 손이 허공에 어정쩡한 상태로 멈춰 있었다.
임종훈은 그런 둘을 보자, 한숨을 한 번 내쉬곤 빨리 가져나 가라는 듯 손을 휘적거렸다.
“하하. 감사합니다.”
“...”
“하하하하. 사장님이 참 친절하신 분이시네요.”
치익-.
“크으... 한국에서 콜라를 마시니, 더 맛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게. 한국에 판매되는 콜라는 뭐가 더 추가돼서 판매되는 겁니까?”
“아뇨.”
“크흠...”
뭐라니.
나는 재빨리 캔을 비우곤, 둘에게 길고도 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거의 한 열 번은 반복하는 얘기였지만, 이들에겐 처음이었다.
그리고, 날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니 귀찮다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
둘에게 조봉식, 문수환과 있었던 일 같이 개인적인 것들은 말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괜한 감성팔이로 보일 수도 있었고 그런 것까지 말하게 되면 하루가 걸려도 다 못 말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유엔 인권 이사회(UNHRC)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도 비슷한 기관이 있는 걸로 아는데, 뭐였지?”
“아마 ‘주인공화’ 관련 피해자 머시기머시기 였는데...”
“‘주인공화’ 관련 피해자 구제 협회(PVRC)요.”
“네. 그거.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둘은 미국인인지라 천수호나 임종훈을 설득할 때보다 얘기를 하기가 더 편했다.
이미 미국에도 해방단체와 같은 유의 협회가 꽤 큰 규모로 있었거니와 유엔과 같은 곳에서도 종종 언급이 되는 걸 들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해방단체완 달리 인식이 긍정적인 상태였다.
그나마 이들이 있기에 우리나라도 눈치를 보느라, 그리고 법 때문에라도 해방단체를 없애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쪽으로의 연결, 그러니까 해외와의 접선은 현재 해방단체의 대표, 강수호로 하여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해방단체 이미지가 상당히 안 좋다 보니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도 피해자들을 상대로 등쳐먹고 구제협회인 척 하는 이상한 단체가 있다나 뭐라나.
하여튼 개고생 중이라고 조봉식에게서 들었다.
다시 이곳으로 넘어와서, 이런 저런 사정을 설명한 뒤 둘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겠냐고 물어보자, 둘은 흔쾌히 수락한다고 말하였다.
단, 이 조건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번에 저희가 도와주며 얻게 되는 정보들은 저희 연구소와도 공유가 가능해야 합니다.”
“네. 이거로 장사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이미 무엇을 해야하는지 둘에게 말해놓은 상황.
즉 이들은 ‘주인공화’의 일시적 무력화에 관한 정보를 미국에 넘기겠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나쁜 쪽으로 생각한다면 미국이 패권을 쥐고 있는 국제경찰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이 정보까지 얻게 된다면 거의 지구를 다 먹을 수도 있겠다만, 둘이 그럴 생각도 못할 정도로 순진한 애국심으로 말한 건 아닐 테다.
둘은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의식했는지 덧붙였다.
“물론 저희 연구는 하나도 숨김없이 세간에 공개될 겁니다. 또한 이에 대한 방지책도요. 저희도 마찬가지로 장사할 생각은 없습니다.”
“좋습니다. 혹시 한국엔 며칠 정도 있으실 생각들입니까?”
“정확히 일주일입니다. 7일 휴가를 받았거든요.”
7일 휴가인데 7일 다 날 도울 생각인가?
“저도 제 일은 다 하고 이분들을 돕는 상황인데, 굳이 휴가까지 반납하시면서 도우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뇨. 어차피 휴가로 한국행을 결정한 순간, 쉰다는 생각은 반쯤 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제 사촌 중에도 피해자가 있거든요. 될 수 있다면 빨리 해결하면 좋지요.”
“저도 동감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저희가 해결법을 발견한다면, 그리고 이걸 세상에 알린다면 혹시 모르죠. 몇 년 뒤엔 교과서에 실릴지도.”
“다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인복이 참 좋구나.
우리 셋이 화목하게 얘기를 하는 동안 묵묵히 듣고 있던 임종훈은 유창한 영어 솜씨를 발휘해 둘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두 분 묵을 곳은 있으십니까? 캐리어가 여기 있는 걸 보면...”
“오. 눈썰미가 남다르시네요. 아직 호텔 예약은 못했습니다.”
“사실 도와준다고 왔는데 방 정돈 대신 예약해주겠지라는 생각으로 왔습니다.”
“그 말은?”
내가 도와주러 왔는데 방 하나 정도도 안 잡아주겠어? 라는 생각으로 예약을 안 해놨단 소린데.
“사장님. 저희 도와주는데 좋은 호텔로 잡아주시죠.”
“왜 저희라 하십니까. 제가 아니라 성진 씨를 도와주시는 거니 성진 씨가 잡아드려야죠.”
“거 참 쩨쩨하게.”
“맞는 말인데요. 뭐.”
나는 하는 수 없이 둘이 묵을 방을 예약하였다.
“감사합니다.”
“저희가 이런 호사를 막 누려도 되나...”
“으흐흐흐흐...”
“흐흐흐흐흐...”
“...”
월급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긴 해서 큰 부담은 가진 않았다만 그래도 적은 돈은 아닌지라 마음 한 구석이 웬지 모르게 따끔했다.
임종훈은 신이 난 듯 이어서 둘의 거취를 정하자고 하였다.
“그럼 장소는 어디로 할까요. 뭐, 연구실 같은 장소가 필요하지 않으세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성지...”
“아. 딱히 연구실 같은 곳은 필요하진 않을 거 같네요. 책상, 의자, 패드만 있으면 됩니다.”
“네. 저희가 공짜로 묵을 곳도 얻었는데 연구실은 저희가 되려 부담스럽습니다.”
그냥 실내이기만 하면 된다는 거잖아?
“두 분. 제가 적당한 장소를 압니다.”
“어디죠?”
“여기요. 책상, 의자는 기본이고, 패드는 각자 가시고 계실 거고, 삼시 세끼 전부 제공입니다.”
“아니 그게...”
“오. 역시 성진 씨가 다니시는 회사라 사장님 통이 크시네요. 하하하하.”
“그러게요. 한국에 오길 잘했습니다. 하하하하하.”
“아니...”
케빈과 스미스가 웃는 상황에 똥을 뿌릴 순 없었는 듯 임종훈은 어쩔 수 없이 수락하게 되었다.
나만 당할 순 없지. 안 그러냐?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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