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일.
벌컥.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가니, 임종훈이 조봉식, 문수환과 마주 보며 소파에 앉은 상태였다.
“어, 왔구나!”
“성진아. 네가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다.”
“야야. 빨리 앉아.”
“다들 왜들 그리 날 반겨?”
이건 마치 서로 어색한 친구끼리 있다가 둘 모두와 친한 친구가 왔을 때 반기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런데 임종훈이 화난 상태가 아니네?’
나는 임종훈의 옆에 앉은 뒤 셋을 잠깐씩 쳐다봤다.
“사장님. 이분들이 와서 뭐랍니까?”
“여기 와서, 갑자기 희원이를 찾더라고. 아무래도 수상하니깐 일단 여기 앉힌 뒤 왜요?라고 물어보던 차에 성진 씨가 들어온 겁니다.”
“그거, 황금 눈은 안 썼고요?”
“야야. 그걸 말하면...”
그걸 숨긴다고 숨겨지겠냐.
‘아무튼, 아직 희원이에 관한 일은 모르는 상태라는 거군.’
“조봉식 씨. 조봉식 씨가 직접 말하시죠.”
“아... 내가?”
“그럼 누가 합니까.”
“그, 그렇지. 내가 해야지. 그렇지...”
눈앞에 자신이 계획에 이용하려고 한 아이를 아끼는 사람이 있다면 섣불리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하긴 어려울 거다.
제아무리 조봉식이라도 이건 별 여지가 없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래도 마무리 지을 건 마무리 지어야 한다.
내가 이 자들의 부탁을 들어주든 안 들어주든 그 전의 일은 전부 청산을 해야하는 것이다.
조봉식이 일어나자, 문수환도 슬쩍 눈치를 보더니 똑같이 일어섰다.
“성진 씨. 전 이분들을 모르는데요? 그런데 저한테 할 말이 있다는 게...”
“그건 직접 들으시죠.”
조봉식은 머뭇거리다 겨우 입을 뗐다.
“제가... 음... 여기 있는 김성진 씨를 유인하려고 임 대표님과 김성진 씨 모두와 관련이 있는 최희원 양을 납치하려고 했습니다.”
“?”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임종훈은 굉장히 벙찐 상태였다.
“???”
나를 한 번 쳐다보고,
“?????”
조봉식과 문수환을 각각 한 번씩 쳐다보고,
“뭐... 몰래카메라인가요?”
“아뇨. 사실입니다.”
“제가 아까도 희원이를 집에다 바래다줬는데요?”
“계획만 했다잖아요.”
“이분들이?”
“네.”
순간 임종훈의 표정이 굉장히 험악해질 뻔 했다가 간신히 원래 표정으로 돌아온 걸 목격했다.
‘무슨 도깨비도 아니고.’
소파 한쪽 걸이에 팔꿈치를 기대고 미간을 찌푸리던 임종훈은 손을 휘이 저어 둘보고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털썩-.
“후... 그런데 저분들은 왜 이 말도 안 되...는 이런 걸 제게 실토하고 앉았고, 성진 씨는 그걸 또 어떻게 안 겁니까. 심지어 성진 씨는 여기에 뒤늦게 오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좀 이야기가 깁니다.”
“아니요. 아니요. 희원이 일인데,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아, 두 분은 어디 갈 생각 하지 마시고.”
이 새끼. 말로는 회사를 위하네 뭐네 하면서 당사자들이 눈앞에 있으니 그딴 건 신경도 안 쓰는 거 봐라.
‘뭐, 나쁜 건 아니니 상관은 없다만.’
“그런데 너 이 사람들이랑 싸우면 한 1초 만에 죽을 텐데 뭐 어떻게 할 자신은 있냐?”
“...”
“야야. 분위기 좀 봐라.”
“그걸 수환이 너 새끼한테 들으니깐 좀 웃기네.”
“욕 좀 하지 말고. 새끼야.”
조봉식과 문수환이 사과하는 입장이라 그렇지, 진지하게 임종훈과 맞선다면 임종훈이 상대조차 안 되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 분위기가 워낙에 냉랭해져서 둘은 나와 달리 알아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상태였다.
난 해당 사항 아니죠? 하하하하하.
“하하하...”
“미친놈.”
“성진 씨. 저 지금 진지하니깐 얘기나 좀 해주시죠.”
아니 근데, 솔직히 임종훈이 이렇게 진지한 거 나만 웃긴가? 물론 나도 처음에 화를 내긴 했지만, 그래도 웃긴 걸 어떡하냐.
이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아니, 속으로 웃는다는 게 그만... 예. 좀 기니깐 생략 좀 할게요.”
“뭔 생랴...”
.
.
.
임종훈은 심각한 표정으로 내 얘기를 전부 다 듣곤,
“그래서 희원이한테 사과를 하려고 여기에 왔다. 희원이는 그 기억도 모르는 상태인데?”
“그건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라서 제 책임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분들 제가 봤을 땐 딱히 사과할 마음 없습니다. 이분들 완전 사장님 괍니다.”
“아니, 나는 사과하고 싶은데?”
“아까 뭐라 했죠? 우리 서로 진실만 말하기로 한 거 아녔습니까?”
“아니 진짠데...”
내가 미처 고려하지 못했더라도 진짜 사과를 할 정도로 미안했다면 희원이가 납치를 당했단 기억이 없어졌단 건 알고 있었어야지. 그게 아니더라도 보통 당사자한테 찾아가 당신을 납치하려 했습니다라고 하는 건 좀 이상하잖아.
나였으면 차라리 경찰서에 가서 자수했겠다.
깊은 한숨을 내쉰 임종훈은 둘에게 말했다.
“일단... 예. 뭐, 맘 같아선 두 분을 감옥에라도 보내고 싶지만 성진 씨 말대로 전 힘도 없는 약골이라 그런 건 못하겠네요. 그렇다고 희원이한테 이 일을 언급도 하고 싶지 않고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어차피 나도 당신과 동류라 사과할 마음 없는 거 압니다. 죄송하단 말 함부로 입에 달지 마세요.”
“네.”
임종훈의 말투가 묘하게 싸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저도 굉장히 제 이익을 우선시 하기 때문에 제 사람 아니면 손해를 보든 뭘 하든 신경도 안 씁니다. 딱히 지켜야만 하는 윤리관 같은 것도 없고요. 다만, 사과하신다고 하니 한 가지만 약조해주십시오.”
“무엇을 지키면 되겠습니까.”
“어떤 일이든 그 당사자와 관련 없는 사람들은 건드리지 맙시다. 저도 평소에는 누구든 도움만 된다면 이용하고 그랬는데, 제가 당해보니 굉장히 기분이 더럽네요.”
“아...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 알겠습니다.”
어차피 조봉식은 말만 저렇게 하고 신경도 안 쓸 게 분명하다.
아직 아내와 자식들을 되찾지 못했으니깐.
이걸 딱히 비난하거나 힐난하고 싶진 않다.
임종훈도 지금까진 조봉식과 크게 다른 점이 없었기도 했고 내가 조봉식의 입장이었다면 저거보다 더하다면 더했지 덜했진 않았을 테니깐 말이다.
내가 남의 사정까지 고려하고 그럴 필욘 없지만 뭐,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고.
이를 임종훈도 어느 정돈 이해하고 있는지 더 이상 말하진 않았다.
임종훈은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가며 내게 말했다.
“전 나갑니다. 보니깐 성진 씨는 저분들이랑 볼 일 있던 거 같은데, 알아서 하세요.”
“어디 가요? 사무실 주인이 사무실 버리고.”
“그냥... 기분이 좀 그래서 그럽니다. 사무실 나가면 꼭 잠그시고요.”
“네.”
하긴, 자기가 지금껏 취해 온 입장에서 벌이는 짓을 고스란히 당해보니 기분이 영 언짢겠지.
내가 처음 임종훈과 만났을 때 범죄 관련된 짓거리들을 하지 말라고 안 했다면 지금보다 더 기분이 더러울 상태였을 거다.
임종훈이 나가려던 찰나, 문수환은 허리를 굽히며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이것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임종훈은 허리를 굽히고 있는 문수환을 잠깐 보기만 하다가 나갔다.
탁.
“야야. 이제 고개 들어도 돼. 재 갔다.”
“너는... 에휴. 아니다.”
털썩-.
문수환은 어떤 의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다시 앉았다.
‘아무튼, 일단 여기 오긴 했다만.’
아직까진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조봉식은 내가 이곳에 온 것에 대해 환영한다거나, 의외라거나 같은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래서. 여기에 왔다는 건 내 부탁을 수락한다는 얘긴가?”
“그건 아닙니다.”
“?”
이번엔 뭔 개소리야? 라는 반응을 했다. 문수환도.
“야 이 새끼야. 어제, 음... 너한텐 아까구나. 부대표님이 부탁을 수락할 의향이 있으면 오랬잖아.”
“그래. 수환아. 말 잘하네. 김성진이. 아무리 너가 갑이라도 이런 식이면 곤란하지.”
“아니, 뚱이가 가라는데 어떻게 안 갑니까? 그리고, 여기 내가 다니는 회산데 왜 당신들이 오라 마라 합니까? 생각하니깐 어이없네.”
“에엥? 그건 나랑 부대표님이 할 말이지. 괜히 억울한 척 그만두라고.”
거 참. 부탁한다는 새끼들이 목소리는 제일 커.
조봉식은 계속 고민하는 내게 말했다.
“어제도, 아니, 아까도 말했지만 너가 무슨 선택을 내리든 더 이상 간섭은 하지 않을 거다. 거절하면 우린 당장 나갈 거고, 수락한다면 계획을 짠 다음 14년 전으로 가는 거지.”
“근데 이게 참... 어렵네요.”
“뭐, 내 입장에선 당연히 수락해주길 바라지만, 넌 내가 아니니깐, 충분히 기다려주마. 뭐, 정 오늘 안에 못 내릴 거 같다고 하면 나중에라도 연락을 하던가.”
“그게 대충 언제까지...”
“야. 임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당연히 최대한 빨리지. 그걸 또 기한을 알려고 하네. 그냥 오늘 해!”
“이게 그렇게 쉽게 내릴 수가 없어서 그럽니다.”
조봉식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 상태론 고민만 20화 넘게 할 것 같으니, 일단 가보는 건 어떠냐.”
“20화라뇨? 그보단 어딜 갑니까?”
“15년 전. '주인공화'가 발생한 달에.”
***
2010년 5월 2일.
“웬 통로?”
“아마... 여기가 용인일 거다. 이 부근에 내가 다니던 회사가 있었거든.”
“그런데 이렇게 함부로 와도 되는 겁니까? 제 경찰 동료한테도 그렇고, 뉴스에서도 본 건데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중국 등등에서 ‘주인공화’가 일어난 날의 시간축이든 뭐든 털끝 하나 바뀌는 걸 다 지켜보고 있다던데요. 이러다 잡혀가는 거 아닙니까?”
“내가 그걸 모르겠냐. 그리고 지금은 ‘주인공화’ 일어나기 일주일 전이다. 5월 2일이라고.”
“일주일이면 꽤 가까운데...”
“원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다. 이 녀석들이 말만 겁주고 막상 빡빡하게 감시하고 그러진 않아. 그리고 일주일 전인데 우리가 뭘 딱히 하려는 건 아니잖아? 만약에 걸리더라도 그냥 구경왔다고 잡아떼면 된다.”
해방단체 사람 말을 잘도 믿겠다.
그런데 조봉식의 말대로라면, 진짜 왜 온 거지?
“그런데 여기 뭐 하려고 온 겁니까? ‘주인공화’가 없던 시절과 2025년은 그다지 차이가 없다? 뭐 그런 걸 보여주려고요?”
“차이가 없다기엔 너무 다르지. 딱히 별 뜻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이러면 어떨까 해서 와 보자고 한 거지.”
새삼스럽게 느끼지만, 조봉식의 이미지완 달리 조봉식이란 사람은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는 것 같다.
한 마디로, 기분파란 소리다.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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