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아주 서서히.
강민아 연구원의 방.
“다른 분들은 아직 지하에 계실테니 그동안 얘기 나누셔도 돼요.”
“그런데 이사님. 경찰들을 속인 건 그렇다치고, 꽤 폭발이 컸던데 뉴스는 어떻게 막으실 생각이십니까.”
천수호는 뭔 이상한 소리를 하냐는 듯 내게 말했다.
“예? 뭐가요. 그거 대피 훈련 아니었습니까? 연구소 주인이 그렇다고 하는데 누가 습격 사건이라 하겠습니까. 아까 연구소로 들어오면서 기자분들께 연락해놨습니다. 걱정마세요.”
“아니 그것보단, 누가 연구소를 습격했길래 성진 씨가 이렇게 막으시려는 거에요?”
“확실히... 성진 씨.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사실 습격이라고 보긴 좀 애매합니다.”
내 말에 세 사람이 의문을 표했다.
난 그 의문을 해결해주기 위해 아까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게, 조석호 회장님의 영원몽 속 세상의 사람들이 벽을 부수던 것이었습니다.”
“예? ... 정말 그쪽 세상이 실존하게 된 거군요.”
“네. 그리고 이쪽으로 넘어오게 된 건 그쪽의 천마라는 자가 무슨 진법 비스무리한 것을 펼쳐서 넘어온 것이라곤 하는데, 어떻게 이쪽 세상을 발견하게 된 건진 모릅니다.”
곰곰이 듣고 있던 안유진 과장이 내게 물었다.
“연구소 벽은 왜 부수던 거래요?”
“제가 여기 갇혀있던 건 줄 알았답니다. 절 구하려 그랬다고 하더군요.”
“예? 하하하하. 성진 씨완 별로 어울리지 않는 말인데요.”
“어쨌든, 폭발을 보고 제가 연구소 앞에 나타나니, 그제야 자신들이 착각한 것을 알아차리곤, 얘기를 좀 나누고 있었는데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고요?”
“예. 아마도 그 진법의 효과가 다 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여전히 무슨 얘긴지 하나도 모르고 있던 강민아 연구원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들어도 뭔 얘긴지 모르니 전 지하에서 올라오는 동료들에게 갔다올게요.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동료들도 있을거고 하니 말이에요.”
“예. 다녀오세요.”
“얘기 다 끝나면 연구원님 쪽으로 가겠습니다.”
“그럼 이따 오실 때 커피 좀 시켜주세요.”
드르르륵.
강민아 연구원이 나가고.
안유진 과장은 자신이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 내게 물었다.
“그러니깐, 그쪽 세상에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 여길 알아냈고, 천마라는 자가 성진 씨가 감옥 같은 곳에 갇혀 있는 줄 알고 부하들을 보냈다 이거네요?”
“네. 맞습니다.”
“다행히도 오해는 풀렸고, 세부사항들에 대해 얘기하다 진법 같은 게 효과가 다 돼서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간 거고요.”
“네. 잘 알아들으셨네요.”
“원래 이런 일들 많이 하다보면 상황 파악 정돈 금방하게 되죠.”
나는 품에서 천마패를 꺼내 아직 얘기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천마패를 부수면 그쪽 세상에서 이쪽 세상으로 사람들이 넘어올 수 있단 것도 확답을 받았습니다.”
“마구잡이로 넘어오는 건 아니겠죠?”
“아마 교주, 그러니깐 천마와 관련된 사람들만 넘어올 겁니다. 제가 도움이 필요할 때 부수라 했으니 말입니다.”
“흠... 그럼 다행이네요. 갑자기 가상 세계의 사람들이 실존하게 돼서 마구잡이로 현실로 넘어오면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 가능성도 높아질테니 말이에요.”
“어쨌든 여기까지가 방금 전 사건의 전말입니다. 교인들이 사라지곤 아까 보신 것처럼 여기 지역 경찰들과 한 판 붙었습니다.”
얘기를 다 들은 천수호는 인상을 찌푸린 채 투덜거리고 있었다.
“연구소 부서지고 기사들 덮고 아주 그냥... 어휴...”
“뭐 어떻습니까. 가상의 세상이 실존하게 되었다는 정보 정도면 적당한 값 아닙니까?”
“아니... 어휴. 됐습니다. 앞으로의 일들이나 얘기하죠.”
“네. 조 회장님의 꿈속 세상이 실존하게 된 것이 성진 씨의 능력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모종의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는 상황이죠. 맞죠?”
“네. 그것말고도 아직 모르는 게 투성입니다.”
천수호는 잠시 무언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성진 씨가 앞으로도 간간히 영원몽 치료에 참여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러면서 정보들도 얻고.”
“저 취직했습니다. 일해야 돼요.”
“그런 사람이 평일날에 여기서 이러고 있습니까?”
“아니 그건 말입니다...”
“됐고. 이제 공무원 아니시니 보수도 드리겠습니다. 부업 같은 느낌으로 하세요.”
우리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안유진 과장이 천수호의 말에 긍정의 표시를 하였다.
“잘 됐네요. 안 그래도 인력 충당이 아슬아슬하던 참인데. 성진 씨. 가끔씩 병원 오셔서 영원몽 치료를 하시는 거 어때요?”
“아... 알았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어차피 영원몽 치료는 담당의가 허가만 하면 딱히 제한되는 건 없으니 연락만 하시고 오시면 될 거에요.”
어째, 경찰 때보다 일이 많아지는 건 기분 탓인가.
‘임종훈이 뭐라 하진 않겠지.’
.
.
.
강민아 연구원의 방에서 나와 지하로 향하다 1층에서 강민아 연구원이 동료들과 함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가 다가오는 걸 본 강민아 연구원이 손을 흔들었다.
“여기에요! 여기로 오세요!”
나는 연구원들이 아까의 폭발로 놀라진 않은 건지 물어봤다.
“다들 당황하진 않았답니까?”
“다 깜짝 놀랐죠. 갑자기 실험하고 있는데 건물이 막 진동하고 안내방송으로 대피하라 하니깐 말이에요.”
“혹시 부상당하거나 그런 사람은 없죠?”
“네. 연구소가 엄청 딴딴했나 봐요. 그래서 뭐 건물이 무너지거나 그러진 않아서 그런지 다들 멀쩡해요. 그 와중에 몇몇은 마저 할 게 있다고 연구실로 갔어요.”
연구소엔 연구에 미친 사람들 밖에 없다는 걸 알긴 했지만 막상 직접 그 얘길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런데... 아까부터 뭘 그렇게 찾으세요?
“자꾸 뭘 찾으시는 거 같은데, 혹시 뭐 잃어버리셨습니까?”
“아. 그 커피...”
[커피 좀 시켜주세요.]
아 맞다.
“저희가 대화 끝나고 바로 여기로 오는 바람에 못 샀습니다.”
“쩝. 뭐 어쩔 수 없네요. 아무튼, 그럼 이제 연구소에서 볼 일들은 다들 끝나신거에요?”
“네. 수습도 어느 정도 됐고, 더 여기 있어봐야 연구원분들께 민폐니깐요.”
연구소에서 확인할 건 다 확인했으니 굳이 연구소에 남아있을 필욘 없었다.
없었긴 했는데... 유난히 천수호가 연구소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듯 우리를 재촉했다.
“자자, 다들 작별 인사하시고 빨리 갑시다.”
“에이. 이사님. 저 싫어하세요? 유난히 빨리 가고 싶다는 눈치시네.”
“나빴다. 이사님. 인사 정돈 제대로 하세요.”
“우우우우.”
“아니, 그게...”
그때.
“가긴 어딜 가. 이놈아.”
천수호를 아는 듯한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하하하하. 오랜...만이시네요?”
“오랜만은 개뿔... 왔으면 조용히 있다 갈 것이지. 연구소 벽 부수는 건 도대체 뭐하자는 거냐? 내 살다살다 이런 건 처음 본다.”
“아니 그... 제가 한 게 아니고...”
안유진 과장이 우물쭈물해하는 천수호를 보며 내게 속삭였다.
“천 이사님 저런 모습은 처음인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분은 누구신지.”
내 말에 강민아 연구원이 답했다.
“저분은 연구소장님이세요. 천 이사님이랑 아는 사이신 줄은 저도 몰랐어요.”
천수호를 혼내던 소장은 우릴 발견하더니 반갑게 말을 걸었다.
“다들 반가워요. 수호 지인분들 되시죠? 이놈이 참 철이 안 들어서...”
“아닙니다. 그래도 진지할 땐 진지하더군요.”
“허허허허. 어쨌든 수호 좀 잘들 부탁드려요.”
“그... 저흰 그럼 가보...”
“어허! 어딜 그냥 가려고. 우리 직원들 연구하다 갑자기 중단되서 손해가 얼마나 큰 줄 알고 그러는거냐? 그 저 뭐냐. 찬식이도...”
소장은 천수호를 붙잡곤 계속해서 훈계를 하고 있었다.
“네 아버지한테도 이번 일은 말해야겠다.”
“아! 그것만은 하시면 안돼요. 차라리 연구비. 그래. 연구비 예산 좀 늘려드릴게요.”
엄한 표정의 소장은 천수호의 제안이 솔깃했는지 슬쩍 물었다.
“얼마.”
“큰 거 10장.”
“크흠... 그럼 이번만은 넘어가지.”
“...”
천수호와의 협상에서 큰 이득을 본 소장은 다시 생글생글 웃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다들 이제 가시는 건가요?”
“네. 뭐. 얻을 건 다 얻었고, 여기 있으면 민폐만 될 거 같아서요.”
“허허허허. 더 있으셔도 돼요. 수호야. 지인 분들 잘 좀 챙기고. 어?”
“걱정마세요. 이분들은 그냥 휴가왔죠. 휴가.”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들 일들 하러 가세요.”
그렇게 우리 셋은 강민아 연구원과 연구소장의 인사를 받곤 연구소를 나왔다.
“넌 조금 있다 가라. 연구소 벽 수리에 대해 한 번 들어봐야겠어.”
“아...”
천수호는 빼고.
.
.
.
연구소에서 나온 뒤 안유진 과장에게 물었다.
“과장님은 어떻게 가십니까?”
“전 차 끌고 왔어요. 성진 씨는 어떻게 가시게요?”
“전 순간이동해서 갈 겁니다.”
“와. 부럽다. 저도 좀 알려주세요. 요즘 기름값이 올라서 순간이동 쓸 수 있으면 참 좋을 거 같은데.”
나는 안유진 과장에게 순간이동을 쓰는 법에 대해 설명했다.
“드래곤불 아시죠? 거기 주인공처럼 이렇게 이마에 검지랑 중지를 대고.”
“검지랑 중지를 대고... 그리고요?”
“원하는 곳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음... 혹시나 했는데. 안되네요.”
“수련하시면 언젠간 될 겁니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네. 영원몽 치료 까먹지 마시고요.”
“네. 다음에 봅시다.”
나는 머릿속으로 집 앞 현관을 떠올렸다.
슈-욱!
***
이날 저녁.
아까 집에 온 뒤부터 자연지기를 연습한다는 핑계로 뒹굴뒹굴 거리며 티비를 보고 있었다.
오늘은 무슨 일들이 벌어졌나 뉴스를 틀었는데, 익숙한 장소가 나오고 있었다.
[예. 아까 오후 1시 경,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성남이었군.”
포탈을 타고 가서 정확한 지역명은 몰랐는데, 뉴스를 통해 연구소가 성남시에 있었단 걸 알게 되었다.
[의문의 폭발이 있었는데요. 이와 관련해 한 관계자는...]
그래도 천수호가 어떻게 잘 수습한 것인지 연구소에서의 사건이 실전을 가장한 대피훈련이었다는 식으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런 거지.’
나는 잠시 창문을 통해 밤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교주가 이쪽 세상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인지, 하얀 패널이 왜 인식 저해를 일으켰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었다.
이런저런 추측들을 하며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뭔가...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참 반짝반짝하네.”
‘주인공화’ 이후로 좋아진 것 중에 하나가 별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떤 과학자가 대기 중에 있는 오염물질을 없앴다나 뭐라나. 하여튼 그 덕분에 도시에서도 많은 별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난 쓸데없는 걱정은 잠시 잊어둔 채 조이콘을 집어들었다.
일요일에 옆집 애들이 집에 놀러오기 전 미리 마지막 보스를 깰 생각이었다.
“엔딩은 내가 먼저 봐야지.”
애들 상대로 그러고 싶냐고? 그래도 엔딩은 넘겨줄 수 없다.
***
김성진이 반짝이던 별들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어둡다면 어둡고, 밝다면 밝은 밤하늘 사이에서, 의문의 존재들 또한 김성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자인가? 기어코 톱니바퀴를 어그러트리는 자가.]
분명 깜깜한 밤하늘에서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이들이 있는 곳엔 따스한 햇빛이 내리고 있었다.
[한낱 필멸자 따위가 운명을 거스르려 하다니.]
[방심하지 말게. 자넨 늘 그러다 큰 코 다치더군.]
[허. 이번엔 다를 거요. 어디 두고 보시지.]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이들의 대표격으로 보이던 존재가 입을 열었다.
[그럼, 천멸군의 가용을 허가하지.]
쿠우우우웅-!
서서히, 아주 서서히, '빛'이 다가오고 있었다.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