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이리저리 할 수 있다라... 마치 신과 같다.
하지만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해서도 안되고.
유상천은 내게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힘을 취하려다 힘에 취하게 된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은 없을 겁니다. 저도 또한...”
유상천은 자신의 왼손 약지에 껴 있던 반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내가 짐작한 것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회장님의 아내 분께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예? 아니요. 지금쯤 손주와 함께 집에 돌아오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뭐지.
“아니... 그럼 약지에 껴 있는 반지는 왜 만지작거리셨는지...?”
“평소 습관입니다. 손을 가만히 놔두면 심심해서 말입니다.”
“아... 네.”
참 이분도 정상은 아니네.
유상천은 자신이 하려던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저도 젊은 때에는 어떻게든 좀 더 강해져보겠다고 부끄러운 짓들을 많이 했더랬죠. 지금 와서 돌아보니, 참 한심했습니다. 성진 씨도 힘에 현혹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힘이란 게 가지고 있다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성진 씨도 잘 아실거라 믿습니다.”
“물론입니다. 지금도 명심하고 있습니다.”
힘이란 게 참 좋으면서도 좋지가 않다.
없을 땐 그거만큼 서러운 게 없고, 있어도 과하게 있다면 목적을 위해 힘을 쓰는 게 아니라 목적이 힘이 돼버리니.
“제가 망언을 한 것에 비해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저도 아직 세상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는 유상천과 함께 회의실에서 나와 1층으로 내려왔다.
괜찮다 했지만 유상천이 반드시 배웅을 해주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었기에 같이 내려왔다.
덕분에 나이에 맞지 않게 잘생기고 훤칠한 유상천을 구경하겠다고 사 내 사람들이 1층에 몰려와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 한 달 뒤에 경기장에서 뵙겠군요.”
“네. 경호하다 시간이 좀 나면 회장님께 잠시 놀러가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그때 쯤엔 자연지기를 조종하실 수 있으실까요?”
“음...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어째서 임종훈이 한 달 뒤에 유상천으로 하여금 한국을 없애버린다는 정보를 얻게된 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으로만 봤을 때 유상천이 그런 짓을 할 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도리어 내 힘에 관한 비밀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유상천과도 좋은 연이 이어졌으니 꽤나 좋은 성과를 이뤘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유상천에게 간단한 목례를 하며 빌딩을 나섰다.
유상천도 내게 목례하며 작별 인사를 하였다.
“그럼, 다음에 봅시다.”
“네. 힘 좀 키워오겠습니다.”
자동문이 스르륵 열리며 따뜻한 햇살이 나를 맞이했다.
***
김성진이 나가는 것을 보고 있는 유상천은 작게 중얼거렸다.
“젊은 친구가 참 대단해.”
유상천은 자신을 찍고 있는 사원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다들 오늘도 고생하십니다. 조금만 더 힘내서 일하고 퇴근합시다!”
““네~!””
유상천은 사원들을 바라보며 흐뭇함을 느꼈다. 이들 중 교인들의 수가 절반도 채 되지 않았기에.
이 말은 곧 스카이 디엠이 천마신교라는 종교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소리였다.
물론 교인들이 싫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족처럼 친근하고 좋다.
다만,
유상천은 더 이상 스카이 디엠에 천마신교 같은 고리타분한 종교는 필요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요즘 시대에 천마라는 신을 섬긴다니. 전혀 어울리지 않다.
유상천은 그리 생각했다.
유상천은 회장실로 돌아가며 아까 젊은이들에게서 들은 정보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었다.
“내가 한국을 없앤다라... 왜지.”
모쪼록, 별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유상천이었다.
***
스마트폰을 꺼내보니, 임종훈에게서 카톡이 하나 와 있었다.
[오늘은 그만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천마 관련 건은 저희가 따로 알아볼테니, 추후에 연락을 드릴 때 회사로 오시면 됩니다.]
순간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 다시 카톡을 읽었다.
오후 2시에 퇴근에다, 연락할 때까지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하지만 카톡은 처음 읽었을 때와 똑같이 써 있었다.
즉, 진짜란 소리다.
혹시나 싶어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카톡을 보내놓은 뒤, 머릿속으로 임종훈을 떠올렸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최고십니다...”
그때.
꼬르르륵.
배에서 나 배고파요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각해보니 임종훈이 날 버리고 점심을 먹으러 갔었구나.
날 기다렸다면 나도 지금쯤 맛집에서 밥을 먹고 있었겠지.
감사는 취소다.
점심도 안 주는 회사라니, 이딴 회사가 어딨어?
“일단 집에 가야겠다.”
나는 검지와 중지를 이마에 댄 뒤 집 앞으로 순간이동하였다.
슈-욱!
착.
이번에도 편안하게 착지하였다.
집 앞 복도로 이동되었기에 곧바로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띠 띠 띠 띠리링-.
.
.
.
라면을 끓이고 있는 중이었는데, 뭔가를 놓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뭘 빼먹었나?’
면, 스프, 건더기, 전부 다 넣었다.
애초에 집에 들어올 때부터 뭔가를 놓치고 있단 생각이 들었기에 라면과는 관련이 없다.
‘뭐지...?’
잠시 라면이 보글보글 끓는 동안, 곰곰이 오늘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음...’
늦잠자고, 취직하고, 천마 만나고, 집에 오고.
‘너무 평범한데?’
삐삐삐-
라면을 끓인 지 3분이 지나자, 냄비에서 알람 소리가 났다. 이번에 새로 산 라면 전용 냄비인데, 은근 쓸 만하다.
찝찝한 기분을 뒤로 한 채, 라면이 담긴 냄비를 들고 거실로 왔다.
삐-
라면을 먹는 동안, 티비를 틀어 뉴스를 보기로 했다.
[네.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사...]
후루루루룹.
“평일 오후에 집에서 라면을?”
뉴스에선 본격적인 순간이동 사업의 확장과 관련된 소식들이 나오고 있었다.
[오는 10월, 인천 국제공항 내 처음으로 신설되는...]
순간이동기의 발명으로 인해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의 교통산업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기에 정부에서는 그간 공공기관에서의 순간이동기 사용만을 허가하고 있었으나, 오는 10월, 인천 국제공항 내에 최초로 1호 민간 순간이동 정거장이 신설된다.
굳이 인천공항 안에다 정거장을 짓는 이유는 대강 감이 온다.
순간이동기 사업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곳이 비행기 쪽 산업이니, 아예 순간이동기 쪽 사업을 인천공항 측에서 진행시키게 하여 비행기에서 순간이동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단계로 인한 피해를 최대한 줄이려는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누가 비행기를 타겠어.”
상식적으로, 값도 훨씬 싸고 시간은 아예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나는데 누가 비싼 돈 주고 비행기를 타려 할까.
물론 해외여행을 하는 기분을 내고 싶다며 비행기를 아득바득 타려는 호구들이 있긴 할테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순간이동기를 선호할 것이다.
[예. 이번 10월에 저희 천수그룹과 인천...]
어디 안 끼는데가 없는 천수그룹답게 이번에도 참여하고 있던 모양이다.
‘순간이동...’
왠지 모르게 순간이동이란 단어가 눈에 밟히고 있었다.
‘뭐지...?’
순간이동... 순간...이동...
!!!
아까 집에 올 때 순간이동을 썼었다. 그것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이다.
유상천의 말대로라면, 내 기가 오르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자연지기를 쓸 수 없기에 집에 올 때는 순간이동을 할 수 없어야 했었다.
별 특별한 상황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도대체 뭐지...?’
기준이 너무나도 애매하다. 도대체 힘이 오르는 때가 언제란 말인가.
힘이 오를 때만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아까는 뭐지?
분명 내 힘의 비밀을 알았으니 헷갈리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도리어 비밀을 알고 나니 더 헷갈린다.
아직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다.
***
다음날, 천수그룹 빌딩 로비.
오늘은 가짜예수 때문에 미뤄놨던 연구소를 방문하는 날이었다.
천수호가 천수그룹 빌딩에 오라고 했으니 순간이동으로 로비에 들어왔는데...
‘아.’
방금도 무의식적으로 순간이동 해버렸네.
나는 다시 검지와 중지를 이마에 대 집으로 순간이동 하려 하였으나,
“역시 안되네.”
어제 오후부터 여러 가지를 실험해보면서 안 것인데, 순간이동이나 소멸 등 특수한 능력을 쓸 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무의식적으로 능력을 쓸 정도로 그 능력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때이다.
반대로 능력에 확신이 없는 순간에는 능력을 쓸 수 없었고.
쉽게 말하자면, 숨쉬는 것이나 글씨를 쓰는 것마냥 당연하게 콜라 500ml를 원샷하는 경우에는 쉽게 성공하지만, ‘원샷해봐야지.’처럼 시도를 하는 것인냥 행동을 할 때는 능력이 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제 실험의 결과와 유상천이 내 힘의 근원이 자연지기의 조종이라고 설명한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이것을 알아가는 게 앞으로의 숙제다.
“뭐가 역시입니까.”
내 혼잣말을 들었던 건지 천수호가 내 쪽으로 다가오며 물어보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안 과장님은요.”
“제가 까먹고 빌딩으로 오라는 말을 안 해서 그냥 연구소에 갔답니다.”
“그럼 우리도 이제 갑시다.”
“네. 팀자, 아. 이제 일반인이시네. 하하하.”
내가 경찰을 그만둔 것을 알게 되었는지 나를 놀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냐?
“제가 경찰 그만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일개 경찰이 퇴직한 게 뉴스에 나오진 않았을텐데.”
“할아버지께서 알려주셨습니다.”
맞다. 할아버지가 경찰청장이네.
“그건 그렇고, 차타고 갑니까?”
“아뇨. 이번에 개발한 민간 전용 순간이동기를 한 번 써봅시다.”
“불법 아닙니까?”
이능력 외에 민간인이 기계를 써서 순간이동을 하는 것은 불법아닌가?
“시제품 테스트 용이니,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뭐 어때요. 꼰지르시게요?”
“네네. 갑시다.”
천수호가 손목에 찬 기계를 몇 번 두드리더니, 천수호의 앞에 주황색 포탈이 열렸다.
화아아악.
“색이 주황색이네요?”
“네. 색깔 정돈 바꿔줘야 경쟁력이 있죠.”
"맞긴 하네."
우리 둘은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
잠시 후. 연구소 안.
“아니...!”
“왜, 왜요?”
강민아 연구원이 덜덜 떨면서 천마패를 가리켰다. 그 반응에 우리 셋도 덩달아 놀라 질문했다.
“뭐 특이한 물질입니까?”
“외계의 물질입니까?”
“뭔데요. 뭔데.”
강민아 연구원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냥... 나무입니다...”
별 것도 아니면서 호들갑은.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제목 정하기가 좀 빡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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