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지만, 대단하다.
“예. 아무리봐도 그것 외엔 보이지가 않습니다.”
하얀 패널을 모르는 우든이 봤을 땐 이거 밖에 없긴 하다. 나조차도 첫 추측은 이렇게 하긴 했으니.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어.”
“...”
“진짜다. 아무튼, 네 사연을 좀 들어보자고. 이대로 감옥가는 건 너무 억울하잖아?”
“예...”
감옥이라는 말에 녀석은 풀이 죽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어렸을 ㄸ...”
“그만.”
“...예?”
“어릴 때부턴 너무 길잖아. 너가 어째서 이런 일을 벌였는지에 대한 원인과 결과가 드러나게끔 말해. 다 말하지 말고.”
“아, 예.”
우든은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는 듯 눈동자를 왼쪽 위로 올린 채 인상을 찌푸렸다.
“16살 ㄸ...”
“그만.”
“이거를 말해야 전후과정을 알 ㅅ...”
“흠... 너 지금 몇 살인데.”
“스물 넷입니다.”
생긴 건 마흔인데...
‘힘든 삶을 살았나 보군.’
나는 안타까움을 느껴 눈을 감은 채 고개를 까딱였다.
“더 간결하게는 안되나?”
“아, 줄여보겠습니다.”
“좋아. 우든.”
나쁜 녀석은 아닌 거 같은데.
우든은 더 생각을 하다 입을 열었다.
“전 녀석을 이 세상에서 없애고자 했습니다.”
“녀석?”
“제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마...”
“일단 말해봐. 듣고 판단하자고.”
“예. 제가 말하는 녀석이라 함은.”
우든의 표정이 한껏 비장해졌다.
“유젼자입니다.”
“유전자?”
“네. 전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전자를 없애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부 다 없앤 거군.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네. 사람들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유전자를 구축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습니다.”
신기한 발상이다. 특정 국가나, 인종을 죽이고 싶은 게 아니라 유전자라니.
다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어째서 너 자신은 없애지 않은 거냐? 유전자라면 우든, 너 안에도 있을 텐데.”
“물론 저도 스스로 소멸할 생각이었습니다. 지구에 저를 제외하곤 유전자의 흔적이 없었다면야.”
“그래서 나보고 죽어달라 한거였구나.”
“네...”
신념은 확고하다...인가.
나는 행동에 관한 이유를 물었다.
“유치하게 들리실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생물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왔습니다.”
“직업이 철학 관련 분야인가?”
“아뇨. 소방관입니다.”
“소방관은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잖냐.”
“그렇기에 더더욱 유전자가 싫었던 겁니다.”
“어째서? 유전자가 사람을 죽인다는 연구 결과라도 나왔어?”
어쩌다 소방관이라는 녀석이 저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우든은 뭔가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한 채 말을 이어갔다.
“그.. 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였습니다. 밤이든 낮이든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항상 화재현장으로 뛰어갔죠.”
“훌륭한 소방관이었나 보네.”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예. 그랬습니다. 올해의 소방관 상도 받았으니깐요.”
“그래서, 유전자를 없애고 싶은 이유는?”
“녀석은 아주 치밀하고, 악랄한 생존기계입니다.”
“치밀하고, 악랄하다?”
유전자에게 성격이란 게 있었던가.
“유전자라는 놈은, 살아남아 그 대를 잇게 하기 위해선 뭐든지 하는, 구제할 수 없는 쓰레기입니다.”
“근거는?”
“어째서 부모가 자식을 자신의 뼈를 깎으면서까지 키우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어째서 남자가, 여자가, 서로가 서로에게 이끌린다고 생각하십니까? 어째서, 모든 생물은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들어본 적은 있다.
유전자는 항상 이기적이랬나 뭐랬나. 살아남기 위해 유전자의 복제로 하여금 만들어진 개체에 직, 간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하는 걸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거 하나로?”
“저는 수많은 현장들을 목격했습니다. 불길 속에 갇힌 아이를 꺼내오기 위해 제 몸이 불타는 걸 마다하지 않고 뛰어가는 부모부터, 자살시도를 하려다 공포가 죽음을 뛰어넘지 못해 다시 난간 위로 올라가려다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학생... 등등 선생님께는 하나로 보일 진 몰라도 제겐...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머리로 겪고, 몸으로 겪은 수백, 수천의 경험들은 저에게 하나의 목적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게 유전자를 없애는 거다?”
“네.”
이거 완전... 미쳤지만 대단하군.
우든은 내가 자신에게 미쳤냐고 욕을 하지 않자,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계속해서 나를 설득하기 위해 애를 썼다.
“유전자는,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자신의 번영과 안식을 위해 생물을 조종하고, 죽였던 겁니다. 마치 숙주를 서서히 죽여가는 기생충마냥 말입니다.”
“그래서 녀석이 괘씸해 더 이상 대를 잇지 못하게 없애려고 했다는 거군.”
“예.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될 지라도, 녀석에게 한 방을 먹이고 싶었습니다.”
“그 한 방이 단순히 한 방 정도가 아니라는 게 문제지만.”
나는 우든에게 다른 사람들은, 생물들은 자신이 죽고 싶어했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인간사회에서 이런 말은 우습지만, 세상은 잔혹하기 때문이다.
힘이 세면, 의견은 커지기 마련이고, 약자의 의지는 함부로 무시되기 일쑤니.
사람의, 동물의, 생물의 생사여탈권은 강한 자에게 있기 마련이다.
나조차도 유전자를 없애겠다는 우든보다 세기에 원래대로 돌리겠다는 소리를 하고 있고.
다만, 우든에겐 유전자의 만용을 포용할 정도의 관용은 없었던 모양이다.
“우든. 네 뜻은 잘 알겠다.”
“그럼...”
“아쉽게도. 네 뜻대로 되진 않을 거야.”
“예...”
나는 생물학 박사가 아니기에, 우든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
모르니깐.
유전자라는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 아니, 애초에 살아있는 것이긴 한가?
“난 살고 싶다. 너도 죽고 싶진 않을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물론 이 두려움조차도 너가 말한 대로 유전자의 농간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말이다.”
나는 잠시 말하는데 구간을 둔 뒤,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우린 살아야 한다. 유전자의 영향이 있든, 없든 간에, 그것을 내가 원하니깐 말이다.”
“...”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심지어는 건물도. 없애선 안 돼. 왜? 내가 그렇게 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야.”
“예...”
유전자는 사람을, 생물을 이기적으로 행동하게끔 한다고 한다. 살기 위해서 말이다.
우든은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모양이다. 어찌 보면, 그 누구보다 깨어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깨어있자고 죽을 순 없잖은가.
난 그러기 싫어. 비록 이 모든 것이 유전자의 의도일지라도,
“난 유전자라는 배에 올라탄 거 같다만, 방향키는 넘겨주지 않았다. 너는 어떻게 할 거지? 원한다면 죽여줄 수도 있다.”
“흠...”
우든에게 죽음은 나와 똑같이 두려움의 대상이겠지만 극복하지 못할 정도는 아닐 거다. 이 녀석에겐 신념이라는 무기가 있으니.
“살아서 유전자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게끔 막아도 되고, 죽어서 네 몸 안의 유전자의 대를 끊어지게 해도 상관없다. 오로지 너의 의지다.”
“전...”
난 우든이 소방관으로서 사람들을 더 살리길 바랬다.
이왕이면, 무엇을 없애고, 죽여서 목적에 한 걸음 다가가는 것보단 살리고, 구해서 다가가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을 할 거냐.’
고개를 숙이고 생각을 하던 우든은 이내 고개를 들었다.
“... 살겠습니다...”
“좋아. 잘 선택했다.”
“그런데...”
우든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어떻게 원래대로 돌리죠?”
“어... 그러게.”
“?”
“왜. 애초에 너가 이러지만 않았어도 되는 거 아니냐.”
“아니...”
“반박은 받지 않는다.”
“옙.”
나는 벤치에서 일어서며 우든에게 말했다.
“원래대로 돌아가면, 평소대로 사람을 살려라. 어차피 이 일은 너와 나 밖에 모를테니, 내가 조용히 한다면 감옥에 갈 일도 없을 거다.”
“아... 감사합니다.”
“아니. 내가 네 의지를 꺾었는데 무슨.”
“아...”
나는 마지막으로 우든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하필 오늘이었어? ‘주인공화’는 12년 전에 됐잖아. 뭐 수련이라도 했어?”
“아. 사실...”
“내가 아까 말했지. 질질 끌지 말라고.”
“그게... 제가 제대로 본 게 맞는지가 애매해서 말이에요.”
“뭘?”
“원래 제 능력은 이렇게 세지 않았습니다. 2층 건물 정도만 간신히 부술 정도였습니다.”
“그래?”
대체 건물 한 채에서 지구 전체로 대상이 바뀌려면 어떤 짓을 해야하는 건데.
“한 달 전에 정부에서 지시가 내려와 남극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무슨 지시였는데.”
“‘주인공화’의 기원 뭐 어쩌고 저쩌고인데, 전 제 선배를 따라서 인원수를 채워 간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연이라도 얻은 거야?”
“기연이 뭔지...”
이 친구. 무협지도 안 읽어봤나.
“별 거 아냐. 그건 됐고, 어쨌든 할아버지가 뭐?”
“한밤중에 벌칙으로 기지 밖으로 나가 인증샷을 찍는 그런 게 있었습니다.”
“당연하게도 너가 벌칙에 걸렸겠고.”
“예. 그래서 기지 밖으로 나가 빙하와 바다의 경계까지 갔습니다.”
“거기서 수상한 할아버지를 만난 거냐? 무슨 산타할아버지도 아니고.”
“놀랍지만, 사실입니다.”
허. 산타가 진짜 있었어?
아니다. 용도 있는데 산타라고 없겠어.
“그럼, 산타할아버지가 선물로 능력이라도 강화해준 거야?”
“그건 잘 모르겠는데... 제 두 손을 잡고선 목적을 이루라고 하더군요.”
“흠... 그 사람 아직도 거기 있으려나.”
“아, 근데 그 말을 하시곤 사라졌습니다.”
“사라져?”
“예. 애초에 한 노인 분이 남극 한 가운데에 있는 게 이상해 다가간 것이었는데, 진짜 산타할아버지였나 봅니다.”
나중에 한 번 남극 좀 가야겠네.
일단 지금은.
“자, 이젠 작별할 시간이군.”
“그런데 어떻게...?”
“그, 있어. 아무튼, 나중에 지나가다 보면 쌩까지 말고.”
“그건 당연하긴 한데... 예. 뭐. 알겠습니다.”
어떻게 돌아갈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뚱아.”
내 말에 응답하듯 내 앞에 동그란 구 형태의 물체가 생겨났다.
“저, 저게 무슨...!”
“얜 뚱이야.”
“뚱이...”
뚱이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안 그래 뚱아?
!!!
화아아악-.
갑자기 정체불명의 빛이 터지며 내 시야를 가ㄹ...
***
“뚱아. 너, 최고구나.”
눈을 떠보니, 난 소파에 누워있었다.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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